거룩이냐 쾌락이냐
본문
황준식 목사 [성경본문] 창 19:30-38
오늘로서 아브라함 강해 시리즈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사는 롯에 관한 마지막 기사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시면서 여러분 각자에게 귀한 인생의 결단이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몇 년 전 롯과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함께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아간 반면, 롯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하여 살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성에 따라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모든 것을 잃고 오직 어두운 동굴 속에서 두 딸과 함께 남아있게 됩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풍성하게 살아보겠다던 롯은 결국 풍성한 삶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헛수고와 비참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이 풍성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고려치 않은 모든 수고에 대하여 성경은 확실하게 경고합니다.
호 8:7
7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이 성경을 놓는 그 순간부터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똑같이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영혼을 구원하시고 따로 구별하여 풍성한 삶을 살게 하셨건만, 그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니 멸망해 가는 세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롬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레 18장을 보면 애굽에서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3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4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곧 성경을 알고 그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살아야 그리스도인들은 풍성한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롯의 자녀인 두 딸이 아버지로 더불어 타락하고 있습니다.
이 자녀들에게서 기준이 없음을 봅니다. 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성경을 모르니 소돔과 고모라의 풍습을 그대로 본 받고 있는 것입니다.
롯은 육신에 속하여 살다보니 자녀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사사기 시대처럼,
삿 2:10
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따라서 오늘 본문의 롯의 두 딸은 성경을 전혀 모르는 자녀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지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위기 상황에 처하여 있을 때 이 세상에서 보고 들은 대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스타일이 바로 세상을 닮아가는 삶의 스타일이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믿음이 아닌 불신앙의 결정을 내리고 좇아온 소돔과 고모라의 길….
아마 롯은 이렇게 깊게 두 딸들에게 무서운 영향을 미칠 줄은 전혀 계산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아니, 아마 롯 자신도 죄에 대하여 이미 무감각한 사람 중에 하나였을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잃어가는 개인들은 언제나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정 공동체에서 죄를 합리화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점점 죄에 대한 무감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세상은 타락하는 것입니다. 기준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면서 서서히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20년 전 여러분과 지금의 여러분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이 죄의 기준이 바뀌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녀 7세 부동석… 여자와 남자가 악수하는 것…. 큰일 아니였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얼마나 무서운 죄악들이 쉽게 저질러지고 있습니까?
오늘 롯에게 있어서 더 무서운 것은
롯의 후손들입니다. 모압 및 암몬이 롯의 딸들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악의 후손들입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따라서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범죄를 범할 때 마다 그의 범죄는 용서함을 받을 수 있으나 언제나 그 죄의 열매가 실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으로 그들에게 옷을 입히심으로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죄의 열매가 탄생합니다. 바로 첫아들 가인입니다.
요일 3:10-12 절을 보면, 가인은 죄의 열매요 따라서 사탄의 후예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충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를 범하였습니다.
후에 다윗은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의 열매는 본인의 인생에서 쓴 맛을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 죄의 열매로는 먼저
암논의 사건이 있습니다. 배다른 큰 오빠가 누이 동생을 강간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하여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게 됩니다.
후에 다윗이 그렇게 사랑하는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반역하더니 다윗의 후궁과 함께 모든 사람이 보는 지붕에서 아주 부끄러운 성적인 범죄를 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다윗 자신이 다윗의 지은 죄악에 대하여 용서는 받았으나 그 죄악으로 인한 열매를 먹게 되는 현장인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에 속하여 범한 불신앙과 죄악들마다 사탄은 그 틈을 사용하여 자신의 씨를 뿌려 놓는 것입니다. 그 씨는 죄의 열매들입니다.
그 죄의 열매들은 우리의 인생 속에 언제나 함께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참한 열매를 보면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열매는 자신들이 뿌려 놓은 죄악의 씨앗의 열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전형적인 육신에 속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롯 말고 한 사람 더 들수 있는데 그는 바로 삼손입니다.
삼손은
- 수태치 못하는 모친의 서원 기도로 태어나 일평생 나실인으로 바쳐집니다.
- 그는 특히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 가운데 탄생하여서 힘이 장사였습니다.
- 그러나 그는 일찌기 쾌락에 눈이 뜨입니다.
- 부모의 만류를 무릎쓰고 이스라엘의 금기 사항을 어기면서까지 불레셋 여인과 혼인합니다. (삼손은 맘 먹은 것은 기필코 해내는 고집이 센 성품이었습니다.)
-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이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à 그러자 계속 창기를 찾고 또 다시 블레셋 창기인 들릴라를 사랑한 것을 볼 때 그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의 무분별한 삶은 결국 들릴라에게 배신을 당하고 블레셋 군사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 감사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회개함으로 자살을 통하여 다곤 신전을 무너뜨림으로 간신히 믿음의 행위를 드러냅니다.
삿 16:30 “…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아브라함 강해 시리즈를 마치며 성도들의 긍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선포하길 원합니다.
여러분! 성도들의 신앙의 최종 목적은 거룩입니다. ( X 3)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패는 거룩을 잃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얻어도 거룩을 잃으면 우리는 실패작입니다. 거룩을 잃고 돈이 많아지는 것도 실패입니다.
거룩을 잃고 인기가 많아 지는 것도 실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정산하실 때 얼마나 거룩한 가로 평가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향한 최고의 존재 목적은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룩은 금욕주의적 개념이 아닙니다. 거룩이란 죄를 이기며 하나님을 순종하여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금욕 주의는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쉽게 속는 것이 있는데 이는 세상 철학인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서 아주 많이 속는 점입니다.
그래서 금욕주의를 거룩으로 오해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계룡산 도 닦은 목사::: 기도원에서 금식했다고 하고… 무슨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 거룩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중세 교회는 복음을 잃은 가운데 거룩에 대하여 완전히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승이 탄생하고 기독교를 금욕주의화 시켰습니다.
수녀 제도가 탄생하고 성이라는 것과 결혼을 더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위 “영적 결벽증”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복음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러한 금욕주의적인 거룩의 개념은 사탄의 속임수임을 자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딤전 4:1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이러한 사탄의 흉계는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대한 오해를 하게 한 후 평범한 사람은 거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거룩한 삶을 금욕주의적인 삶이라고 오해하니 질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기를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아주 차원 높은 간계이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성경에서 거룩의 개념은 온전함입니다. 흠이 없는 것입니다. 풍성한 것이며 건강한 것이요 아름다운 것입니다.
레위기는 거룩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알려 주는 성경입니다.
레위기 11장 같은 경우를 보시면 부정한 짐승, 정결한 짐승을 구분하는데
그 구분 기준을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동물은 정결하며 그렇지 못하고 변형된 것들은 부정하게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 조류는 날개 + 두 다리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땅의 동물은 네다리가 있고 날개가 없어야 합니다.
바다의 물고기는 지느러미, 비늘, 꼬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기준에서 변형된 것은 부정합니다.
예를 들어 박쥐는 동물인데 날개가 있습니다.
양서류의 경우는 땅에 속하지도 않고 바다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타조의 경우는 조류지만 날지 않고…땅에서 달립니다.
곧 거룩이란 것은 죄로 인하여 망가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가장 건강하고 가장 풍성하고 가장 맑고 순결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이 THE “HOLY” SPIRIT 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이란 거룩한 영으로 충만한 것이요, 거룩한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저절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죄를 이기며 죄와 무관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거룩한 사람은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 5: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이란 아름다운 사람이요, 귀한 사람이며 너무나 좋은 사람입니다. 평안한 사람이고 자꾸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흠이 없이 건강하며 아주 매력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축복 받기를 원하기에 아주 강하게 거룩을 향하여 도전합니다.
롬6:19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6: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딤후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전4: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살후2:13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살전4:7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전5: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3:13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후7: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는 언제나 두 길이 있습니다.
거룩이냐 쾌락이냐? 거룩이냐 죄악의 길이냐?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서 계십니까?
죄의 열매들이 여러분의 인생 속에 너무나 많아서 추스리지 못하고 계십니까?
죄의 열매의 쓴 잔을 마시며 비참과 좌절 속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삶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편안이냐 평안이냐?
편안을 추구하는 자는 돈을 추구하게 되고 돈이 있으면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바로 롯의 인생이요 삼손의 인생입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오직 편안을 추구하는 자녀들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평안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늘의 기쁨을 추구합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향한 갈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올 수 밖에 없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은 오직 거룩한 삶에 있으니 주와 동행하는 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인 것입니다.
여러분!
거룩을 추구하는 삶은 그의 삶의 스타일이 거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알기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추구하며 성경을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언제나 힘쓰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롯의 죄의 결과를 말하였지만, 하나님의 자비가 멈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죄의 결과 마저도 완전한 축복으로 바꾸어 내십니다.
믿으십니까?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롯의 죄의 열매인 암몬과 모압 마저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으셨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결과마저도 제거되며 축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의 조상 중에 가장 중요한 여인 중에 한 분이 룻입니다.
(롯? à 룻? ::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를 쫓아 복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 신앙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더니 그 곳에서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보아스와 만나 결혼하게 되어 자녀를 낳게 되었으니 바로 다윗의 조상이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는 아무리 비참한 죄의 결과라 할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죄의 결실이 완전히 회복되어 오히려 큰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열매인 복음은 암몬과 모압 족속을 찾아내셔서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축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회복하실 뿐 아니라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눅 15장을 보시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멀리 타국으로 떠나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곧 롯처럼 육신에 속한 죄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탕자의 육신의 속한 삶의 결국은 언제나 그러한 것처럼 죄의 결과로서 비참과 가난과 부끄러움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1) 눅 15장 17절에 보면 이제 탕자가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죄악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2) 그리고 이성을 차리고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은 것이구나’
(3) 20절에 보면 이 깨달음 이후에 당장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아버지께 죄를 자백합니다.
21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이때 아버지의 반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반응입니다.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라. 발에 최고의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는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그리고 아버지 집에 잔치를 하며 크게 즐거워 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언제나 죄인들로 하여금 거룩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딛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죄의 삶 가운데서도 예수님께 돌아오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원주 우리 주 예수님을 향하여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던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죄악과 그 결과에 대하여 묻지도 아니하시고 단지 그 넓은 사랑의 두 팔을 벌리시고 여러분을 안으시며 다시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07년 한해의 반을 보내며 새로운 반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6개월… 어떻게 보내셨나요?
성령의 열매로 주렁 주렁한 아름다운 거룩한 삶이 되셨나요? 아니면 미움과 더러움과 시기와 거짓과 악으로 보내셨나요?
오늘 하나님께서는 2007년 후반부를 허락하시며 한번 더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제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또는 우리가 이 땅의 인생을 마치고 주를 뵐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선택은 여전히 주어집니다.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여전히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롯의 인생을 살렵니까? 탕자의 인생을 살렵니까?
아니면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고 새로운 거룩의 삶을 시작하시렵니까?
오늘 이 아침에도 여러분의 남은 여생에 대하여 여러분 자신들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을 벗어 던지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우리의 남은 여생을 향하여 이 아침에 거룩을 향한 발걸음으로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거룩한 삶의 주인공이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합시다.
그래서 가장 복되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을 통하여 많은 아름다운 열매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역사에 남기시는 복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