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롬5:1~11/2007년 6월 17일 설교 > 설교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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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선물 로마서5:1~11 2007년 6월 17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설교 모든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또 어떤 종류의 사람을 싫어합니까? 제가 맞추어 볼까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은 ‘척’하는 사람입니다. 잘난 척, 가진 척, 배운 척하며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남을 잘 세워주는 사람, 덕을 세우는 사람은 다들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하나님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굽니까?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고 겸손한 사람은 가까이 하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입니다. 다들 자기는 교만한줄 모르고 있고 이 정도면 겸손하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 한 종류를 덧붙인다면 하나님은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받은 은혜를 헤아리고 늘 감사하며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받은 은혜는 잊어버리고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내는 사람, 근심걱정이 가득한 사람은 정말 싫어하십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보세요. 그렇게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 불평하니 가나안땅에 들여보내지 않고 광야에서 다 죽게 합니다. 출애굽 20세 이하 사람과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데리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십니다. 그러기에 받은바 은혜를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감사를 제대로 하나요? 자격 없는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그저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자기가 잘나서 된 것으로 자랑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일방적인 사랑, 위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상대가 누굽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과거 우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1. 우리는 과거 누구였습니까? 우리나라의 <김영길 박사>하면 창조 과학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NASA-미국 항공우주국에 근무한 학자이며, 지금은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든 학자입니다. 그가 미국에 가서 유학할 때는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부인을 따라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같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죽었다고 하는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가 앉아 있어도 뭔 소리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는 있지만, 전혀 감동이 없는 마지못한 출석이었습니다. 그래도 부인의 강한 요청과 한국사람 만나고는 재미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자이기에 성경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열심히 읽었습니다. 유명한 기독교 서적이란 서적을 다 읽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6시경부터 밤 11시까지 성경과 신앙서적을 놓고 연구하는데,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려면 죄 없는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한다, 죄인을 대신하여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신이신 하나님이 대신하여 죽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내려 보내 주셨고, 그가 죄 없으신 분으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 예수님이시다. 그 분이 나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순간 어두웠던 마음이 물러가고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시간 저의 죄를 주님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면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출근하는데, 하늘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하늘은 어제 본 그 하늘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으며, 다르게 보였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거듭남의 체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하늘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이 감당했어야 할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그 믿음으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까? 그 사실이 믿어지고 깨달아집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여 구원을 받았는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누구를 믿었다는 말이며, 무엇을 믿었기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고 그분의 십자가의 구속, 죄 값을 지불하신 것을 믿어 “죄 없다, 올바르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마치 죄수가 판사 앞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무죄입니다. 죄없다, 이 말을 의롭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죄로 인하여 멸망 받아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으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믿습니까? 요한복음5장24절에 의하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 인간 모두는 본래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자범죄로 인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3장 36절을 보세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골로새서3장5-6절도 봅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2:5에서도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고 세상 중심으로 나가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매 맞을 일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고, 지금도 그 진노가 우리 머리위에 머물게 되었고, 또 앞으로 받을 진노를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왜 이런 무서운 진노를 받았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일찍이 아담에게 명령하시기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정녕 죽으리라,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신다고 하셨으면 반드시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범죄하여 어두움에 속하였고 그 속에서 살다보니 온갖 죄를 다 범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의인은 없는데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죄인이요, 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지금 재미없는 소리를 하지요? 그래도 들어야 합니다. 왜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 중에 6절부터 11절의 말씀을 잘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전혀 자격도 없었습니다. 죄를 죄로 알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위해 엄청난 선물을 주셨습니다.
2.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53: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다 양 같았습니다. 다 각기 제 길로 가고, 본래부터 죄인이다 보니 하는 일마다 죄였고, 우리의 삶 속에서 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왜 그분이 담당합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요? 그 죄악의 짐을 담당할 만한 인간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죄인의 값을 치루겠습니까? 물에 빠진 사람을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구해 내겠습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때문에 고민했을 것이다.” 왜냐? 인간이 아니시기에 인간을 대신하여 죽을 수가 없고, 하나님은 언제나 심판하시는 자리에 설 수밖에 없고, 인간은 자기의 죄에 대하여 아무런 조처를 취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은 사랑하시지만 신이기에 인간을 위하여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시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땅에 보내어 죄 없는 인간이 되게 하셨고, 그로 인간을 대표로 하여 심판 받아 죽게 하셨고, 이것을 믿으면 심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시고 예수 안에 들어온 사람은 의롭다 여기고, 구원 하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표적(表迹), 사인(sign)이 되셨습니다. 8절을 보세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아직 자격 없을 때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이 재미 없지만 오늘 본문을 깊이 읽어보고 연구해보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6절에도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여기 아직 연약할“때”라는 말씀과 “기약대로”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즉 자격이 없을 때 하나님은 기약대로,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 우리들이 받아야 하는 모든 심판과 진노를 아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고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때에 우리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다 이루었다"는 말은 "완불되었다", "빚을 다 갚았다"는 말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받아야 하는 모든 벌을 받으셨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율법의 핵심, 범죄한 영혼을 죽으리라는 말씀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심판의 자리에 서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 나의 주님이 되어 달라고 고백하며 기도하였습니까? 그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6:47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가질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소유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선물로 주셨고, 성령을 선물로 우리 속에 보내 주셨습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데,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냥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이 위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3. 이런 선물을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엄청난 선물을 받은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세상 사람과 구별된 우리입니다. 그러기에 사는 모습도 달라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 봉독한 말씀을 근거로 세가지만 살펴봅니다. 
1)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1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화평을 누리자”는 말은 ‘즐긴다’는 말이고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심판받을 것 같아 불안해하십니까? 안심하고,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자식이 아비가 두려워 아버지 앞에 벌벌 떨고 있으면 아버지가 기뻐하실까요? 자식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고 아비는 지식을 바라보며 흐믓하고 기뻐해야 온전한 관계입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얼굴이 흐믓하고 기쁜 얼굴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죄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두려워서 숨거나 도망치면 화평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이미 댓가를 치루시고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제 화평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2절)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제는 우리는 사는 이유가 있으며, 죽을 수 있는 이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은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 인도함을 받아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도록 허락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스리랑카에 산골짜기에 선교훈련을 받던 자매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리랑카의 산골짝 험한 곳에서 고생하는 그들에게 왜 이곳에 와서 고생하느냐 물었는데 그때 그자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신 것인가를 바라보며 기쁨으로 훈련을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장차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것이란 말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참고 견딘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쓰시면서 나타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야 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시하게 세상의 일에 목숨 걸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3~4절)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환란이 있습니다. 믿음을 소유한 자는 더 많은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란은 결코 환란으로 그치지 않고, 인내심을 길러줍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인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우리를 연단시켜 줍니다. 그 연단은 마침내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망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데 목적지가 없는 여행을 떠나면 그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고 종착역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소망가운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존 와나메이커(1838~1922)는 서점 점원으로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신앙인입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도 지냈으며, 교육사업, 위생사업, 사회사업에도 투자했고, 주일학교를 설립했으며, YMCA를 창설했습니다.
그가 중국에 시찰 갔을 때, 어느 시골 길을 걷다가 밭을 가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쟁기를 보니까 왼편에는 소가, 오른편에는 청년이 끄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상한 광경을 본 와나메이커는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왜 사람이 소와 함께 밭을 갈게 합니까? 그 청년이 어디 견디겠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저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은 예수를 믿는 아인데 작년에 저기 보이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소 한 마리를 팔아 예배당에 건축헌금을 하고 자신이 소를 대신해 밭을 갈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청년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이 청년은 대답하기를 내가 소를 대신해 그 멍에를 메고 밭을 갈고 있으나 아름답게 건축된 교회를 바라보면 하나도 힘이 안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와나메이커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청년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청년이구나 생각하고 그 아비에게 소 값을 지불하고 그 청년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 신학공부를 시켰습니다. 그가 바로 중국 복음화의 기수 성문삼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고 계십니까? 구원백성으로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지는 않습니까?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할 것입니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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