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적
본문
황준식 목사 [성경본문] 창 18:1-15
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지나가지 마옵시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때는 오정 즈음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하루 중에 가장 더운 때로서 태양이 하늘 중앙에 치솟은 때입니다. 이때 팔레스틴 거민들은 대개 식사 시간을 즐긴 후에 약 1-2시간의 휴식을 취합니다.
아브라함도 오정이라 식사도 해야 하고 휴식도 취하여야 하는데 문득 눈을 들어 보니,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세 사람이 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브라함이 알게 되지만 이 세분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머지 두 분은 천사였습니다.
이 세분 중 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사실을 이미 1절에서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1절)
또한 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1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22절에: “그 사람들(천사들)이 거기서 떠너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이 세 사람중 두 사람은 천사들로서 소돔으로 떠나고 사람으로 오신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남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세분 중 한 분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아브라함과의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름을 알려 준 적도 없는데 이미 사라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다.
13절도 보면 사라가 몰래 웃은 것도 아시고 그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도 아십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사람의 형체를 입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앞으로 정말 사람으로 오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경건한 성경 학자들은
구약에서 사람으로 오시는 하나님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제 2위 되시는 성자 하나님이시라고 다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언약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 둘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사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입고 아브라함에게 오신 이유는 유한한 인간 아브라함에게 지금까지의 언약의 메시지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은 실제로 이 세상에 임마누엘 하실 하나님을 미리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명한 말씀, 곧 로고스로서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 히 1:1 ] :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곧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구원의 메시지, 곧 복음을 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되 사람의 형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도 놀랍게도 이삭의 탄생을 말씀하심으로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시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서있습니다.
그들을 보자 마자 아브라함의 행동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이 세 분 중 한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알고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성경도 9절까지도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3절에 가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로 표현함으로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과 천사들을 알아 보지 못하였으나 말씀을 받으면서 눈이 뜨이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 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브라함은 아주 정성스런 손님 대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합니다. 여행 중에 지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당시 풍습이긴 하지만 그 풍습을 넘어서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특별히 따뜻하게 영접하는 현장을 봅니다.
히 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이 내용은 아브라함을 두고 말씀한 것입니다. .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이 몸을 땅에 굽혀 인사합니다.
그리고 인사로 말씀을 드립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컨대 종을 떠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 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 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그들이 아브라함의 청을 받아 들이자, 아브라함의 행동은
- 급히 장막에 들어갑니다.
- 그리고 사라에게 부탁합니다.
고운 가루 세 스아를 반죽하여 떡을 만들게 합니다.
- 아브라함은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어 급히 요리하게 합니다.
- 그 동안 아브라함은 버터와 우유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속한 시간 내에 마침내 떡, 버터, 우유, 송아지 요리를 준비하였습니다.
이제 그 세분이 그 준비된 음식을 드십니다.
8절: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식사를 다 마친 후에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 장막에 있습니다.
-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르르면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겠다.
그때에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약속해 오셨던 가장 중요한 약속을 사람으로 오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는 순간입니다. ]
21절,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이 말씀은 네 아내 사라에게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형상을 입고 두 천사들과 함께 아브라함을 방문하여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바로 이삭을 통하여 낳게 될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 메시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이요 영생을 주는 복음이기에 주께서 친히 사람으로 오셔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는 89세였습니다. 이때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가 완전하게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사라가 조소하는 웃음으로 속으로 웃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남편도 늙었으니 내가 어찌 낙이 있으리요. )
사라의 이 웃음은 불신앙의 웃음입니다. 악한 웃음입니다. 하나님을 알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웃음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악된 웃음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는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선포하시고 다시금 사라를 통한 아들의 탄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곧 복음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라가 정색을 합니다.
사라가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승인치 아니하여 대답합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거짓말을 용납치 않으십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1. 첫째는, 아브라함에게 가장 기쁜 소식을 주시기 위하여 친구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 그리고 함께 식탁을 나누십니다. 이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 그리고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대화란 친구라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였다고 말합니다.
약 2:23 “이에 경에 이른 바 … 아브라함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친구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문제, 가장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시기 원하십니다.
특히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죄로부터 말미암습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오늘 임마누엘 하나님은 후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곧 우리의 지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하시듯 포도주와 먹을 것을 함께 나누시면서 예수님께서 고백하십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의 친구이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시고 하나님과 및 어린 양 보좌로부터 내리시는 생명떡과 생명수를 성령 안에서 먹고 마시는 식탁을 나누시며
성령 안에서 온갖 비밀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Good News)
바로 진정한 우리의 친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찬송가 487장에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둘째는, 불신앙의 사라를 바꾸셔서 신앙의 사라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사라의 불신의 조소를 우리는 보았는데요,
*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고
* 사라는 그 복음에 조소를 보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모든 죄악 중에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요일 5:9-10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들에 관한 약속을 오래전에 이미 주셨고 오늘 이 장면은 그 약속을 다시 재확신시켜 주시는 것인데, 사라는 그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죄악은 다른 죄악을 야기시킵니다. 사라의 경우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 그 분께 거짓말을 하는 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사라에게 은혜로우시며 너그러우셨습니다.
사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하셔도 됩니다.
<사라야, 네가 나의 약속을 지금까지 믿지 않았구나. 나를 불신하였구나. 따라서 지금까지의 나의 약속은 취소다.>
그러나 우리 좋으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복음을 선포하시지요.
같은 메시야 약속을 다시 하십니다.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지요.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는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기서 기억할 것은 여전히 [ 14절: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 바로 이삭의 탄생이지요. 이삭의 탄생과 함께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증거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탄생을 거듭 말씀하시므로 사라의 불신앙을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지난 주에 전에 말씀 드렸지요. 이삭의 탄생은 정확히 그리스도의 탄생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여러분! 오늘 내용은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그 분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사라의 불신앙을 변화 시켰습니다. 사라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곧,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탄생케 하신 사건은 그 이야기 복음과 함께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사로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가장 불가능한 사건 속에서 가능케 하시는 것으로 증거될텐데 가장 불가능한 사건 중에 하나가 사람의 불신앙을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 20: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그럴 듯 하게 앉아 계시지만,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가 엄청나게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여러분의 힘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탄생시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사라가 만난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3가지의 변화의 축복을 받게 되는데, 믿음없는 불신앙의 사라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롬 10:17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서 사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에 믿음을 소유한 사라에 대하여,
히 11:11 (변화)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 사라의 둘째 변화는 웃음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 사라의 웃음은 조소에 섞인 기분 나쁜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창 21:5-7
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악을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지요. 사라를 혼내고 심판하기 보다 결국 불신앙에서 비웃음으로 웃던 사라의 그 웃음을 사라로 “참으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바로 그의 아들 이삭 때문에 사라의 웃음이 바뀐 것이지요.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선으로 악을 대하사, 언제나 사라와 같은 불신앙의 조소를 하나님을 향하여 참된 웃음으로 바꾸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 셋째의 변화는 메시야 때문에 사라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18:12 ==> 벧전 3:6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 사라가 남편을 주인이라 부르는 구절은 오직 이 한구절입니다. 가장 비웃는 불신앙의 웃음 속에서도 무의식 속에서도 남편 아브라함을 “내 주인”이라고 부르는 순종을 보였습니다. ]
하나님은 이 순간을 가장 큰 놀라운 칭찬과 영광과 축복의 순간으로 만들어 버리시는데요,
이 순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으시는지요 è 벧전 3:6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불신앙 가운데서도 남편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인”이라 칭하던 사라:!!!! 하나님께서는 그 사라의 죄악 가운데서도 또한 사라의 그 작은 순종을 기억하여 최대한의 영광을 베푸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정산하실 때 우리의 실수와 죄악은 하나도 기억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행한 작은 순종들마다 최고의 영예로 갚으실 것입니다.
히 11장은 믿음장입니다. 이 믿음장을 보시면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모든 죄악은 다 감추어 지고 오직 그들의 믿음의 행위들을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노아: 부끄러운 행위는 다 감취어지고 오직 자랑스러운 믿음의 행위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간사한 사람 야곱, 살인자 모세: 마찬가지로 모든 죄악과 실수는 감추어 지고 오직 자랑 스러운 믿음의 행위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간음자 다윗:
평생 기생으로 바람만 피며 살던 삼손:
우상 숭배자 기드온:
심지어 기생 라합:
그럼에도 이들의 작은 믿음의 순종들을 아주 위대한 것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영원토록 칭찬하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가면 생명책이 있고 여러분의 행위가 담긴 다른 책이 있을 것입니다. 그 책들에는 여러분들의 죄악에 대하여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다 씻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우리의 죄로 인한 고통의 흔적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신자들을 위한 그 책에 꼭 기록된 것은 믿음을 따라 행한 행위들입니다. 신자들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잘 행한 것들뿐입니다.
그리고 행위에 따라 영원한 영광스럽고 영화로운 상급이 결정됩니다.
단 12: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도 우리가 잘못한 것은 이미 바다에 다 넣으셨습니다. 다시는 기억도 아니하십니다.
반면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것들에 대하여 영원토록 기록해 두시고 가장 큰 자랑과 영예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좋게 우리의 모든 것을 가장 좋게 변화시키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죠시 멕도웰의 간증]
죠시 멕도웰은 현재 CCC의 총 책임자이십니다.
Campus Crusade for Christ 창시자 빌브라이트의 뒤를 이어 두번째 총재로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원래 죠시 멕도웰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대학 생활 때에 특히 그는 마음 속의 허무와 공허를 만족시키고 싶어서 세상에 해 볼 만한 것들을 다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자신이 누구이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여러가지 것으로 찾아보지만 그 무엇도 답을 주지 않고 여전히 공허와 좌절만 남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죠지 멕도웰이 대학 내부에서 예수를 믿는 성경 공부 그룹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 특히 서로 나누는 깊은 사랑, 나아가 자신들의 그룹 외부에 있는 자들에게까지도 참으로 친절하고 사랑하는 그들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
죠시 멕도웰은 어렸을 적에 교회를 잠깐 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가 교회에서 얻은 인상은 아주 냉소적이고 규칙적이고 얼굴이 굳은 사람들이 모인 엄격한 곳이라는 인상만 남아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어떤 이쁘장한 크리스챤 자매와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어떻게 그러한 확신과 기쁨으로 살아 갑니까?>
그 자매의 대답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예수요? 그런 고리 타분한 얘기는 하지도 마세요. 저는 기독교 종교에 진저리가 난 사람입니다.>
<제가 언제 종교라고 했나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지요. 저는 그 분을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그 분이 저를 이렇게 변화 시키셨어요.>
그 이쁘고 착한 자매가 너무나 진지하게 예수를 존경함으로 더 이상 비방하고 깍아 내리는 대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죠시 멕도웰이 반박합니다.
<기독교는 지성적으로 모순 미신 덩어리 아닙니까?> ...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실이고, 증거가 있으며 당신의 지성과 전혀 모순되지 않지요.>
죠시 멕도웰은 이때 자존심이 상하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그 진리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하리라...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상태라 기독교를 대적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록, 드러나는 증거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체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는 부활하셨다.”를 거부할 수 없게 됩니다.
어느날, 죠시 멕도웰은 성경을 읽다가 계 3:20절에 눈이 가게 되면서
스스로 혼자 밤에 끓어 앉아 기도하게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 당신이 살아 계시면, 저를 이 밤에 용서해 주세요.
제가 성경 공부팀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고백한 것처럼, 주여, 저의 죄도 용서하실 수 있나요.
주여,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제 맘에 들어 오셔서, 저의 인생을 바꾸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주 간단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드리기 전에 그는 만일 주님이 살아계시면, 기도 직후에 자신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날 줄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마친 후, 오히려 몸이 더 피곤했고, 정말 주님이 살아 계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쓸데 없는 기도를 드렸나 의심이 닦쳐 오더란 것입니다. 그러면서 죠시 멕도웰이 주님을 영접한 날을 조용히 보내게 됩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여느 때와 같이 일어났습니다. 항상 하던 대로 기독교의 모순을 비판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부터 죠시 멕도웰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변화한 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과거에는 조시 멕도웰은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던 사람이었습니다.
잔꾀를 부려서 다른 사람으로 자신을 섬기게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다른 사람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것이 조시 멕도웰에게 나타난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Hot-Temper 가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할 수 없었던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사람들과 갑자기 주먹질을 하여 경찰소에 간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bad-temper, hot-temper 가 사라진 것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음 속에 있는 증오와 미움의 문제였습니다.
죠시 멕도웰은 미움으로 가득찬 채 자라났습니다.
한 남자를 향한 너무 심한 미움이 평생 그의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 있었습니다.
죠시 멕도웰은 사실, 자라나면서 어느날 밤인가 이 사람을 죽일 것이다라는 계획을 여러번 하면서 자라납니다. 경찰에 걸리지 않고 어떻게 이 남자를 죽일 것인가...
이 남자는 다름 아닌 죠시 멕도웰의 아버지였습니다.
죠시멕도웰이 자라 나는 동안, 아버지는 완전 술주정뱅이였습니다. 거의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죠시멕도웰이 친구들이 종종 학교에서 죠시멕도웰을 놀립니다.
저기 거 개천에 빠져서 길 바닥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가 보면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학교 동료들의 놀림은 죠시 멕도웰에게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죠시 멕도웰은 그들과 함께 웃으면서 마음 속에 있는 심한 부끄러움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미움으로 계속 자라난 것입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집에 가면, 술먹은 아버지가 말 채찍으로 하도 엄마를 두둘겨 패서 어머니가 젖소 외양간의 지푸라기 숲에 거의 죽어 있는 것도 발견한 적이 있고,
어느날은 어머니의 머리 카락을 다 뽑아 놓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반도 안남은 채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죠시 멕도웰은 결심합니다. “내가 조금만 더 자라서 아버지보다 힘이 세면, 내가 저 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어느날, 손님이 집에 오기로 한 때면, 아버지는 여전히 정신이 없을 만큼 술이 취해 있습니다. 이때는 죠시 멕도웰이 아버지를 곳간으로 끌고 가서 목에 줄을 메어서는 기둥에다 묶어 놓습니다. 손님들이 집에 방문한 동안에 아버지의 부끄러운 추태를 보여주기 싫었던 것입니다.
또한 혹시 더 심하게 줄에서 나오려고 하면 목이 메어 죽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기둥에다 아버지의 목을 밧줄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죽게 되기를 내심 기대를 하면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죠시 멕도웰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두 달전,
죠시 멕도웰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였을 때, 어머니가 심하게 울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니 곁에 갔을 때 어머니가 말씀합니다. “아들아, 네 아버지가 나의 마음을 산산 조각 아프게 하는구나. 내 맘이 이제 병들어서 더 견딜 수 없고 살고 싶은 의욕이 없다. 너 졸업하구나면, 아마 나는 죽게 될 것 같다.”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죠시 멕도웰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달 후, 어머니는 돌아 가셨습니다.
죠시 멕도웰은 그 죽음의 원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너무 산산 조각이 난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의 원인은 바로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죠시 멕도웰은 더욱 아버지를 미워하고 이제 틈만 나면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죠시 멕도웰이 어머니의 장래식을 마친 후 대학에 다니기 위해 그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십중팔구 죠시 멕도웰은 아버지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아버지를 미워하고 증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생활 중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이후, 하나님의 사랑이 멕도웰의 가슴에 흘러 넘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미움이 신비하게 사라집니다.
어느날 집에 방문하여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빠, 사랑합니다.”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술 주정뱅이 아버지...인데 말입니다.
어느날, 조시 멕도웰이 차 사고를 당합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차를 박은 운전수도 조시 멕도웰이 제일 미워하는 어떤 음주 운전사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지요.
아버지가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그날 만은 어찌된 것인지 술에 취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죠시 멕도웰이, 온전한 정신으로 병원을 찾아 온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아버지: <나 같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냐?>
멕도웰: <6개월 전만 해도 저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미워했어요.
그러나 예수를 믿고 그 분을 제 마음 속에 영접한 이후에, 저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어요. 그리고 주님이 제 마음 속에 오신 후에, 저는 이렇게 변화 되었어요. 저는 설명할 수 없어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은 주님이 제 마음 속에서 미움을 가져 가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 주셨어요. 제 마음은 주님이 주신 마음이예요.>
병원에서 한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가 조시 멕도웰의 이야기를 다 듣고 “너를 그렇게 놀랍게 변화시킨 것이 사실이면 나도 한번 변화되고 싶구나.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니.”
“그러면 진심으로 저를 따라 기도 하세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백하세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주님께 돌아갑니다. 제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저를 지켜 주세요.”
기도를 따라하신 아버지. 그 눈에 눈물로 가득....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다음 날로 아버지는 변화되십니다. 하루 아침에 40년 동안의 술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깝게도 예수를 영접하신 후 14개월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는 병 원인은 술중독 및 복합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40년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보고, 아버지가 예수님 영접하고 14개월을 사는 동안, 멕도웰이 살던 고향 사람들 수백명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으로 항상 술독에 빠져 있던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죠시 멕도웰은 그 이후, 그는 오직 예수의 이름만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의 유일한 삶의 목적…. 오직 예수!!!
이것이 바로 죠시 멕도웰의 간증이요 인생의 목적입니다.
조시 멕도웰은 그의 모든 설교에서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예수! 그 분의 전공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개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대치하는 것입니다.
결론) 저는 이 기적을 알기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계속 베푸는 축복된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이 땅의 교회는 가정과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가장 아름다운 기관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누구든지 모셔 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변화 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변화 시킬 수 없으나 주께서 친히 교회를 통하여 주의 복음을 통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삭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한 죄인이 변화되는 곳 마다, 조소와 불신앙의 웃음이 있는 곳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의 웃음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 교회가 되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준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