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본문
황준식 목사 [성경본문] 창 17:1-6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그 전능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오늘 아브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지난 주 아브람은 사래의 제안에 따라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그후 13년이 경과하였습니다. .
그 13년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이제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습니다. 사래는 89세입니다.
정말로 아브람과 사래는 전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생리적으로 완전하게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지금까지 약속해 오셨던 그 약속하신 자녀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불가능한 것을 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 자신과 아내 사래의 생산 능력이 완전히 끊어지고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므로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확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잠간 의심하였으나 그는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 믿음의 순종이 바로 창 17장에 나타나는 할례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아브람이 100세 되던 때, 사래는 90세가 되는 때에 이삭을 낳게 되고, 그리고 이삭을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메시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는 아브람에게 촛점을 맞추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그의 믿음을 구체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보시고 결국 90세의 사래에게 이삭을 허락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아브람을 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전능하심을 체험하시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어려움을 인내하며 믿음 안에서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죽은 영혼이 살아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나는 것이니 이를 위하여 누군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순종하고 인내하는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였는가 봅시다.
먼저 “아브람”이란 이름의 뜻은 “많은 사람의 아비”란 뜻입니다.
아마 아브람의 아버님 데라가 아브람에게 많은 자녀를 낳으라고 이 이름을 붙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브람은 86세까지 한 사람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75세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시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때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납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납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아하... 이제사 나의 이름 값을 하게 되겠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많은 자녀를 주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구나...>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
창 13:2을 보면 부자가 되어있는 아브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7을 보면 아브람의 양과 소와 장막이 점점 많아지고... 또한 롯의 양과 소와 장막도 점점 많아진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아서 서로 싸울 지경입니다.
곧,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부자가 되었더라... 그 말씀입니다.
... 그러나!... 자식이 없습니다.
이방 나라 가나안에서 이러한 목축업을 하는 아브람에게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물이었습니다.
창 21을 보시면, 그 가나안 땅에 아비멜렉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람을 찾아와 브엘세바에서 언약하는 장면이 나타나는데 이때 언약의 이유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파놓은 우물을 자꾸 아비멜렉의 종들이 늑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창 21: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아무튼 아브람의 우물 브엘세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당시의 중동 사람들은 낙타에 짐을 싣고 여러가지 일로 여행을 다닙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디서 쉬는가? 바로 우물이 있는 곳에서 쉴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브람의 우물에는 온갖 종류의 여행자가 머물게 되었습니다.
여행자들이 아브람의 우물 브엘세바에 오게 되면 아브람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먼저 통성명을 하겠지요.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은 어디어디에서 오며 어디로 가는 아무개.... 누구 누구 입니다.... >
아브람: 저는 이 우물의 주인 아브람입니다...
여행자들: 아브람…: 참 귀한 이름입니다... 많은 자녀의 아비라....그런 뜻이네요..
실례지만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 얼마나 이곳에서 사셨나요. ...(그리고 반드시 묻는 것이 있습니다. ) 자녀는 몇이나 있나요..
이때 난처한 아브람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름은 : (많은 자녀들의 아비): 그런데 실제로는 자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끄러웠겠는가?)... 머뭇 머뭇 하던 아브람이 대답합니다. ..... <하나도 없습니다...>
이때 나그네들의 표정이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 아브람과 인사를 마치고 나그네들은 나그네들은 그 주변에서 텐트 (장막이라고 하지요) 를 칩니다.
이때 나그네들은 속으로 비웃거나 한참 웃었을 것입니다. 혀를 차는 나그네도 있었을 것입니다.
( 이 우물 주인... 아브람:::: 쯧쯧... 엄청난 부자구먼.... 이름이 아브람이라구...
나는 적어도 수십명의 자녀가 있는 줄 알았건만... 자녀가 하나도 없다구...
근데 왜 아브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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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람에게는 많은 하인들과 계집 종들과...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창 14장을 보시면 아브람에게는 훈련된 군사가 318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브람은 이제 가나안 사람을 포함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당시는 장막이라는 텐트에 살던 시대였는데 개인의 비밀이 거의 노출되던 때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브람이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Gossip 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부자지요. 착하지요....이름은 (많은 자녀를 둔 아비)지요... 그런데 자녀가 하나도 없지요. 딸도 없구 아들도 없구...
마을 사람들은, 아낙네들은 빨래터에서, 목동들은 들판에서, 아이들은 공터에서...
청년들은 시장에서... 이러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을 것입니다.
< 누가 문제일까? 사래? 아브람? 도대체 누가 문제이길래 아이가 없는 것일까?>
1970년대에 한국의 어떤 부자집 양반 가문에서 며느리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5년이 넘도록 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시어머니가 못된 짓을 하셨는데, 도대체 누구 문제이길래 5년이 넘도록 아이를 못 낳는가?.... 병원에 가서 알아 보았습니다.
그 결과 며느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시어머니가 내린 조치가 며느리를 내 쫓고... 아들을 새장가 들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비일 비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람 당시는 누가 문제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자식을 데리고 오면...그 남자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사건이 창 16장에서 사래가 하갈을 첩으로 주는 사건 아닙니까?
사래가 그 몸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는 사건은 그 동네에서는 최고의 뉴스였습니다. 아니 전세계로 나가는 해외 토픽이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은 이 사람 저 사람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서..... 끝도 없이 퍼졌을 것입니다.
장막을 치고 살던 시절입니다.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었다는 것은 하갈과 아브람을 위하여 텐트가 따로 만들어 졌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다 보는 장막입니다. (여기 여기... 저 장막 있지... 저 장막이 아브람과 하갈의 장막이야... 히히... 아브람이 아이가 없으니 사래가 그 몸종 하갈을 줬다지 뭐야...에고 망측해라... 아브람이 85세인데... 별꼴을 다 보네...)
밤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가 아브람과 하갈의 장막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늙은 아브람이 지금 85세라지. “많은 자녀의 아비” 라는 아브람. 그러나 자녀가 하나도 없는 아브람이 결국 첩을 얻어 들어가는구나... 오늘 밤도 아브람과 하갈이 함께 있겠구나...과연 그 첩이 아이를 낳을까? ) 동네 부부 간의 최고의 화제거리였을 것입니다. (아브람의 집에 자녀가 없었던 것은 누가 문제였을까? )
그 첩이 아이를 낳으면 지금까지 아브람에게 자녀가 없는 이유는 사래가 문제였던 것이 확실해 지는 순간입니다.
[ 그 동네 사람이 되어 계속 아브람의 가정을 봅시다.]
동네 사람들은 아브람의 집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 할아버지 할머니.. 종들... 군병들... 아이들.. 청년들.....
그런데 드디어 하갈이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얼마나 싱글 벙글..하던지…. 동네 사람들은 다 보았을 것입니다.
( 따라서 아브람은 능력있는 남자로 증거되었습니다. 부자일 뿐만 아니라 아이도 낳은 수 있는 건강하고 문제가 없던 남자였던 것입니다. )
이제 하갈이 사래를 업신 여기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더 호기심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누가 아브람의 유산을 얻게 될 것인가? ... 저런 저런...
이제 할 수 없지... 하갈이 낳은 아이가 되겠지...>
하갈의 배가 불러 오고 아브람의 본처 사라는 더욱 비참하여집니다.
여자 구실도 하지 못하는 비참한 여인!
그런데 얼마 안되서 하갈이 집을 나가고... 사래가 화가 나서 돌아 다니고... 아브람은 난처한 얼굴로 창피해서 다니고...
그리고 몇칠 후 다시 하갈이 돌아오고...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합니다.
결국: 아브람: (1) 86년 만에 아들을 얻음. (2) 자신은 여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성임을 증거... (3) 지금까지 이 가정에 자녀가 없음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우쭐했겠습니까////
여러분!...아무튼 아브람 가정은 온 동네와 나라의 가장 화제거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람에게 그 약속하신 아들을 말씀하실 때:
창 17:17-19. “아브람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아브람의 하나님을 향한 대답 <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
이 얼마나 불신앙의 대답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무지 속에서 대답하는 아브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에 관하여 신약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갈 4:22-28
{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곧 이스마엘의 출생은 아브람의 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처럼 자연스럽게 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이스마엘의 출생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일반 은총 속에서 하나님의 일반 섭리를 따라 태어난 것입니다.
비록 아브람 86세 였으나, 하갈을 첩으로 얻었을 때는 그때까지 여전히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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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함께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다시 아브람의 우물 브엘세바로 가 봅시다.
여행자들이 ... 아브람의 우물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람과 여행자들의 대화를 합니다. :
통성명: 안녕하십니까? 어디어디에서 오며 어디로 가는 아무개.... 누구 누구 입니다....
아브람: 저는 이 우물의 주인 아브람입니다...
여행자들: 아브람: 참 귀한 이름입니다... 많은 자녀의 아비라....그런 뜻이네요..
그리고 나이 질문... 얼마나 이곳에서 사셨나요. ...(그리고 꼭 묻는 것) 자녀는 몇이나 있나요..
지금까지는 이 질문이 제일 난처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생긴 이후는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이름을 물을 때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이름이 무엇? 아브람. 많은 자녀를 두었다는 뜻이네요. 자녀가 많은가 보네요.
축하합니다... 몇명입니까? ==> 한명입니다. (많지는 않아도 그래도 간신히 남성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대답입니다. 아무튼 아들이 있음. 아무튼 자신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성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3년 후입니다. 아브람이 99세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약속하신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람의 대답이, <하나님! .. 저 이제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제 이스마엘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약속을 져버리신 것은 아니지요. 하갈을 통해서 이렇게 해서라도 이스마엘을 얻었으니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마엘로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바다의 모래...하늘의 별들처럼 만드시면 되겠습니다... 이 이스마엘을 축복하소서...>
(이것이 아브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반대였습니다. 곧 하나님의 계획은 하갈과 관련이 없었구, 이스마엘과도 관련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이삭을 기적을 통하여 탄생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과 생각은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셨던 여자의 그 후손, 곧 메시야의 탄생이요 구속주의 탄생이 이삭으로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삭의 약속과 기적의 탄생을 통하여 앞으로 오실 그 메시야도 약속과 기적을 통하여 탄생하실 것을 미리 예표하신 것입니다.
창 17: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제 너를 내가 약속한 그 아들을 보냄으로 너로 열국의 아버지를 만들겠다...(모든 나라들의 아비)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 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하라.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 하나님과의 만난 이후 사건을 이제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 봅시다.
아브람이 가족들과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내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더 이상 아브람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아브라함”이라고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말합니다. :
아브람! 그 이름 때문에도 그렇게 고생하더니...이제는 아브라함이라구...?
그 뜻은 열국의 아비:; 많은 나라의 아버지::란 뜻인데…
이제 아브람이 99세가 되더니 노망이 들었구먼...
사람들마다 이 아브람을 정신이 서서히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너무나 자녀가 그리운 나머지... 이제는 돌았구먼....쯧쯧...:
자신을 많은 자녀의 아버지라 부르더니 86세에 아들 하나를 첩을 통해서 얻더니...
이제는 기고 만장을 해도 너무한 걸....이제 자신이 많은 나라의 아버지라니..)
영어로 말하면)
아브람의 이름: Father of many children: 그러나 86까지 Father of nobody – 상태였고,
86세 되서야 하갈을 통하여Father of many children: ==> Father of only one boy– 되었습니다.
이제는 열국의 아비로 이름을 바꾼다....Father of many nations:
아브람이 86세에 하갈 통하여 간신히 하나 얻고...이제는 간덩이가 부어서 99세에 나는 수천수만수억의 아비....라고 자신을 불러달라고 한단다...
우스꽝 스러운 아브람:!!!!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는 언제나 아브람은 조롱거리... 놀림 거리...화제... 정상인 것 같은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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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아브람의 모습이 우리의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생각치도 못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는 120년 동안 마른 하늘 아래서... 지구를 덮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며..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때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조롱하였는지 아십니까? .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 약속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로서 온 역사와 우주를 포함한 계획... 전능하신 하나님.!!!!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롬 4:19-21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여러분! 오늘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됩니다.
이삭 탄생 후 약 1000년 후 이사야라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이 말씀은 < 유다왕 아하스때에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남유다를 공격해 오려는 싸움 앞에서, 남유다 입장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전쟁입니다. 그래서 처절한 두려움에 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 :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말씀하신 예언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러한 가장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그 전쟁의 두려움 앞에서 걱정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예언은 아브람이 이삭을 얻은 후 약 1500년 후에 이삭의 후손 요셉과 마리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마 1:18-23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니리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전능하심을 드러낸 사건은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역사속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똑 같은 패턴을 보게 됩니다.
곧 아브라함의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었습니다.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생명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음이요, 약속한 아들을 보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 고백이 할례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부르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름으로 부름을 받을 때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던 말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핵심은 인간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법인, 오직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케 하여 마리아를 통하여 약속한 메시야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를 믿음으로 붙잡고 있으면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멘? 아멘?….
아브람이 이제 내 이름은 아브라함이요라고 외쳤던 것처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들은 내 이름은 이제 그리스도인이요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지 않으시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냥 지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을 뿐...우리의 신앙의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치 않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만일 실제의 삶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치 못한다면 그의 믿음이 어찌 살아있는 믿음이겠습니까? 죽은 믿음이지요.
이 시간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브람이 예배한 그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슬픔에서 기쁨을 만드시며 온갖 무질서와 고통 속에서도 평화와 질서를 만들어 내시고 // 미움 속에서도 사랑..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저주를 변하여 온전한 축복으로 바꾸시는 분도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 부분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어.. >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삭을 보낸 방법으로 성령으로 마리아를 통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하스 왕처럼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연합군 앞에서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부분이 있어서 포기하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우주에 누가 나의 죄를 사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사건! 그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정녕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를 믿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거짓을 말할 수 없고, 그 분은 언제나 약속하신 대로 다 이루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곧 어떠한 문제이던... 하나님께서 해결하지 못할 사건이 없습니다.
자녀 문제입니까? 경제 문제입니까? 결혼 문제입니까? 건강 문제입니까? 직장 문제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 아뢰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일들이 내 뜻대로 안되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 보다는 내 뜻을 고집함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실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전능하심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전능하심을 사용하시되 그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십니다.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전능하심을 언제나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이 시간에 믿고 바라 보시며 이후로 더욱 믿음 가운데 평강을 삶이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 다 함께 눈을 감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그 무서운 고통을 당하시기까지….
그렇게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저의 모든 인생의 문제를 주께 맡깁니다. 주님 기적을 행하시고 전능하심을 보여 주옵소서....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기에 말씀하시는 데로 다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황준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