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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한 일을 보고 이 사실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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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한 일을 보고 이 사실을 믿어라
물맷돌 [성경본문] 창11:1-9, 롬8:14-17, 요14:8-17
창11:1-9, 롬8:14-17, 요14:8-17


지금은 아마 그런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만, 얼
마 전까지만 해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는 웃
기지 않는 속설을 믿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런 속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어느 할머니 댁에서 실제
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지난 설날 새벽 다섯 시쯤, 그 할머니 댁의 암탉이 ‘꼬끼오
-’하고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서 “아니, 정월 초하
루에 암탉이 울면 어쩐다냐!”하시면서 닭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암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
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닭이 더욱 얄미워
서 막대기로 막 때렸습니다.
대충 화풀이를 하신 할머니는 집안으로 들어오셔서 다시 잠
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꼬끼오-’하는 소리가 들렸습
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할머니는 다시 닭장으로 달려가셨
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암탉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닭장 문을 열었을 때, 그 암탉은 푸
드득 하고 깨어나더니 할머니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에 할머니는 더욱 화가 나서 “이놈의 닭이 이제는 미쳤네
그려!”하시면서 더 큰 막대기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러자 그
암탉은 ‘퍽’하고 쓰러졌습니다. 할머니는 적잖이 당황이 되
었지만, ‘차라리 잘 되었구나! 안 그래도 잡아서 막내딸 주려
고 했는데…’하시면서 그 즉시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막
내야, 닭을 잡아놨으니, 가져가거라!”
잠시 후에 식구들이 모두 일어나자, 할머니는 새벽에 있었던
일을 식구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명절을 지내려고 내려
왔던 작은아들이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웃음을 삼킨 작은아들이 “어머니, 그건 제 휴대폰 알람소리였
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알람소리 덕분에 애매하게
도 암탉이 그처럼 큰 봉변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눈치를 채신 할머니, 멀쩡한 암탉을 때려죽인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엄마, 닭 안 죽었어!”하는 막내딸의 외침소리가 들려왔습
니다. 안마당에 나가보니, 새벽에 죽었던 그 암탉이 살아나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암탉이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할머니가 매를 들
었을 때에 “할머니, 제가 안 울었어요!”하고 외쳤을 것입니
다. 그랬으면, 그 암탉은 그처럼 억울하게 매를 맞고 쓰러지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사람과 닭이
서로 대화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같은 사람끼리도 그 출신 국가나 민족이 다를 경우, 그
래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때에는, 서로 대화를 할 수가 없습
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엄청난
돈과 시간, 그리고 정열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어
가 만국공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면 직장 잡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서, 영어가 필수적인 언어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
니다. 머지않아 통역을 자동으로 해주는 휴대폰이 나온다는 소
식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젊은 세대는 영어를 하지 못할 경우,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만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영
어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말이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을 부리
는 바람에 언어의 혼잡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는 많은 고난과 재앙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를 사
용했기 때문에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
다만, 사람들은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가 시날평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평지에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이 아주 불순했습니다. 그 도시건설의 목적이 하나님을 대
적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우리 모
두 함께 도시를 건설해서 하늘까지 닿을 수 있는 탑을 쌓자! 그
래서 우리의 이름을 좀 날리고 땅 위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하
자.”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살고 싶어서 그런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 인
간의 참된 본분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드러
내고자 하는 욕심에서 바벨탑을 쌓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하는 짓을 바라보시고 하신 말씀이 창
세기 11:6-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인간들이 어쩌려고
이러는가? 이들이 모두 한 민족이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
이 없겠구나! 그러니, 이제 인간들이 쓰는 말을 섞어놓음으로써
서로 뜻이 통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땅 위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살
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도시건설은 중단
되었으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올라가던 바벨탑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그 이름을
날리기커녕, 오히려 이미 갖고 있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의 그릇된 욕심 때문에, 하
나님과 인간,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대화가 끊어지
고 그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지혜를 얻게 되고 복이 되는 길을 갈 수 있습
니다. 시편 1:2 말씀에 ‘복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
거워하며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했으니, 어떻게 하늘의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인간
의 헛된 욕심을 따를 경우, 파멸과 불행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그 말씀을 거역
하면서 어찌 그 인생이 잘 되기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바벨탑사건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인류는 참으로 불행
하고도 가련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그 품격과 그 아름다움은 거의 다 사라지고, 짐승보다 결코 낫
다고 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인
간의 처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가슴 아프게 여
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
하여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십자가
에 달려 돌아가시고,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모
든 인류에게 참소망과 참기쁨을 안겨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
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
았습니다. 심히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제자들까지도 주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100% 완전히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요한복음 14장에서도, 주님의 제자인 빌립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8)”하고 요구했습니다. 이때, 주님께
서는 “내가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있었는데, 아직도 내가 누
군지 모르겠느냐? 누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
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말은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다.”하시고, “나와 하나님이 하나라
는 것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한 일을 보고 이 사실을 믿
어야 한다(11)”고 가르치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과 예수님
은 분명히 그 격(格)이 다른 분이시지만, 그러나 두 분이 말씀
하시는 진리가 동일하고, 또한 그 성령도 하나이기 때문에, 하
나님과 예수님은 두 분이 아니라 하나이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8:14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이 인도하
는 대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그 숫자가 열이든 백이든지 간에, 그래서 그 몸은 여럿일지라
도, 그 생각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들
은 주님 안에서 하나(공동체)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뵙기 전에는, 그 생
각이 제각각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주님을 열심히 따르는 충
실한 제자들이었지만, 그 마음에 품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
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 제자들은 그들의 모든 꿈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머지, 예수님이 운명하시기도
전에 각자 자기 갈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된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 마음속에 각기 나름대로 갖고
있던 세상적인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그 마음에 주님의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
었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에는 사람들의 언어가 하나였
지만, 그들의 지나친 욕심과 교만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가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말이 통하지 않게 되니까 그들의 마음과 생
각도 분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천지사방으
로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1.오늘 우리는 사람의 생각을 멀리하고 성령의 지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오만한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창
조주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면서 그 욕심대로 살게 될 경우, 바
벨탑 사건과 같은 어리석고 미련한 짓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
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분열과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
나 세상 욕심을 멀리한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쓸 때
에는, 성령이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지혜와 능력을 주셔
서, 생명이 되고 복이 되는 길을 갈 수 있게 하십니다.
더군다나, 예수를 믿는 여러 사람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경우, 교회라고 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됨으로써, 하나
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
령은 각 개인에게도 임하지만, 주님의 뜻 안에서 여러 사람이
하나가 될 때에 더욱 강하게 역사하셔서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미스라는 분이 ‘성령의 세례’라는 책을 썼는데, 어떤 분
이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기를‘주님, 주께서 저를 부르신 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같이 엄청난 일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그때, 그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왜, 안
되겠느냐? 나는 네가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은, 아주 훌륭하고 온전
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려고 어리석고 연약한 사람을 선택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
님은 겸손히 자기 자신을 낮추면서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자를
가까이하여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
다. 남의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타박하지도 않습니다. 조용
히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도와주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지혜도 주시고, 복
이 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반드시 시험과 유혹이 있게 마련인데, 성령은 그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2.이처럼,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서 살
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빌립에게 “누
구든지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다(요14:9)”라고 말씀
하신 후 “내가 행한 일을 보고 이 사실을 믿어라.”고 하셨습
니다. 요컨대, 주께서 행하신 일을 보면, 주님을 이 땅에 보내
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안다
는 것과 보는 것이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
명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바벨탑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욕심대로 살려고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이름만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목
적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그 삶이 선하고 아름답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명예를 이루기 위해서 살려고 하면, 그 인생은 자꾸만
한없이 추해지고 유치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려고 할 때에는, 그 인생이 참으로 아
름다워지고 고상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바벨탑을 쌓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개인적인 욕심
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
할 경우, 그 즉시로 찾아와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품이 온전하다거나 아는 것이
많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믿음이
좋아야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를 막론
하고‘저는 부족하오니, 저를 도와주소서.’하고 기도하면, 하
나님은 그를 도와서 올바른 인생을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가꾸고 다니시는 할아버지가
한 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꼬마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기어코 할아버지께 질문했습니다. "할아
버지,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에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아니면, 밖에 내놓고 주무세요?”갑자기 질문을 받은
그 할아버지는 금방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얘야, 미
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을 못한 일인데, 오늘밤을 지내본 후에
대답을 해주마.”하고는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밤새 수염하고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니 답답하고, 내놓고 자니 그것도 이
상했습니다. 30년 동안이나 달고 다닌 수염이지만, 그 수염이
잠을 잘 때 이불 속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미처 생각을 하
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것을 의식하게 되니
까, 어지간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이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성
령이 자기 안에 계시는지 밖에 계시는지, 그 누군가가 질문을
할 경우 선뜻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영 불편하거나 마음이 괴로우면
성령을 받지 못한 증거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회 오는 것이
즐겁고, 찬송을 부르거나 말씀을 듣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사
람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성령은 우리를 생명이 되
고 복이 되는 길로 인도하지만, 욕심이나 교만은 패망의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품을 경우, 성령은 우리
에게서 떠나가고, 악한 영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게 됩
니다. 그래서 우리를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해서 죄악에 빠지게
하고, 끝내는 실패와 파멸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엄청난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된 삶을 살기 위해서
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욕심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그 욕심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욕심을 이겨내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자녀 된 긍지와 자부심을 잊어버리지 말
고,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기 위하여 더욱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학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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