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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와 자녀(엡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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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와 자녀(엡6:1-4)




1910년 미국에 있는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한 촌락에서 안나 자비스는 26년간이나 주일학교 교사로 충성스럽게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는 말씀가운데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즐겨 선택하였고, “항상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는 좋은 방법을 생각하라”고 어린이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안나 자비스 여사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해 5월, 여사의 1주기를 추모하는 예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그녀의 딸인 안나 소녀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추억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되새기는 뜻으로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렸습니다. 이 소녀의 갸륵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은 백화점 왕 존 와너메이커(John Wanamaker)는 이 모녀의 독지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고 자기 회사의 나이많은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베푼 것이 이 어머니 주일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미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 번져서 전국교회들이 다같이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주일로 지키게 되었고 1914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대사관이 들어가는 나라마다 이 어머니 주일의 기념행사도 함께 따라가서 세계적인 축제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국회에서 5월 8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하여 발표하므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973년, 3월 30일 대통령의 공포로 어버이날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라는 말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합쳐 부른 말입니다.

어느 사람이 어버이를 생각하며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쓴 ‘부모님을 위한 기도문’을 읽어 드립니다.



오늘은 안개꽃 섞인 빨간 카네이션을 한 아름 가슴에 안고

부모님을 찾아 가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곳이 서울이든 부산, 광주, 대전, 제주이든

서둘러 일을 끝내고 밤세워 달려 가고 싶습니다.

부모님 가슴에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 드리면서 큰 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게 해주신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오늘 부모님을 찾아 뵐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면

부모님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를 바치고 싶습니다.

부모님을 사랑과 존경으로 섬기라 명하신 주님!

부모님의 여생을 건강하고 편히 지내게 하시고

후세에는 영원한 천국, 아름다운 주님의 나라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우리 같이 어버이 은혜를 불러볼까요?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버이의 은혜는 가이없어라.




어버이의 은혜는 부르고 또 불러도 우리의 가슴을 메어지게 하고 숙연하게 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자들마다 눈물이 앞을 가리우지 않는 자가 없고 감동함을 입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낳으시고, 기르시고, 얼러주시고 자녀들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시며 오직 자녀만 잘되고 건강하고 복되게 성장하기를 원하셨던 부모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버이와 자녀는 어떤 산물로도 비교가 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다만 창조주와 피조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도 아버지이시듯 아비도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권위는 가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권위와도 같습니다. 이러므로 어버이의 부재가 자녀들에게는 얼마나 큰 불행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버이의 부재는 청소년들의 비행, 정신불안의 원인이 됩니다. 아버지는 규범과 가치관의 상징이 됩니다. 어버이가 가정의 기강을 세우고 자녀들에게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자녀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어버이의 권위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은 커서 어버이의 모델이 없기 때문에 권위와 질서를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오늘날 어버이의 권위와 잘못된 교육이 낳은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서 이기주의와 편향주의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어버이된 성도 여러분! 권위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성경말씀이 말씀하시는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사는 모범을 보여 주십시오. 이렇게 못한다면 이는 중대한 직무유기요 태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권위있는 어버이의 성경적 가르침을 받은 자녀가 훌륭하고 안정된 인격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와 자녀는 효의 관계로 세워져야 합니다. 효는 윤리와 도덕의 근본입니다. 제5계명 인간생활에 대한 첫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입니다. 그런데 시대의 변천과 함께 이 근본이 점점 허물어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오늘날 이렇게 불효한 자녀가 많고 따라서 불행해지는 노인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은 도시화 되어지고 산업화된 세계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잃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환경가운데 자란 자녀, 부모의 사랑을 잃은 자녀는 결국 부모에 대해 무관심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가하면 효의 부재원인 중에는 대가족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 제도로 변화된 것도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살아갑니다. 이러다보니 이기주의가 만연해 부모에게까지 무관심한 자녀들이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해도 크리스챤의 자녀는 이런 세태를 따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신27:16.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출21:17)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21:18-21)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패역한 자녀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할 만큼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신약에서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크리스챤의 자녀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해 드려야 합니다. 악행을 일삼아 이곳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아들을 둔 부모는 평생 마음고생을 할 것입니다. 이런 아들이 아무리 부모에게 많은 물질과 진수성찬을 제공한 들 무슨 공경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부모를 공경한다면 부모가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고 그것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말로만 ‘공경합니다’ 라고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부모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공경은 생존해 계신 부모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영적생활의 안정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는 장수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장수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심지어 혐오 식품까지 먹습니다. 여러분은 부모 공경이 가장 효능있는 장수비결임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잘되고 장수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 비결은 무슨 거창한 행위에 있지 않고 주님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결실이 바로 자녀양육과 부모공경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나는 올바른 어버이인가? 나는 부모를 공경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고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서 근원적인 부모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일에 조금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 부족함을 느끼거나 이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위대한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주시며 우리 생활가운데 선한 결과가 나타나도록 해 주십니다. [강헌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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