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행2:30-36절)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십자가 (행2:30-36절)

본문

십자가 (행2:30-36절)




사람은 대체로 나쁜 소식은 숨기면서 삽니다. 은폐시키기도 하고, 거짓을 통해서라도 위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제를 더 확대시키곤 합니다.

호주사람과 결혼하여 시드니에 살면서 호주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한인 여 집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여집사가 호주인 남편과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진 여집사는 한국말로 “야! 이녀석아”라고 말했습니다. 말다툼을 하다말고 호주인 남편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여집사는 엉겁결에 그 말은 한국에서 쓰는 속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라고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며칠 후 한인교회 목사님이 여집사 집에 심방을 왔습니다. 마침 그날은 남편이 쉬는 날이라 남편도 집에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오셨다고 하자 남편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서투른 한국어로 “목사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뒤 목사님을 안으면서 한마디 더 보태는 말이 “야! 이녀석아”라고 그만 실수를 하고 만 것입니다.

거짓말은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쁜 것이기 때문에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자랑합니다. 사업이 잘되고 자식이 잘되고 하는 일들이 잘되면 이런 것은 모두 자랑하고 으쓱대면서 뽐내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소식은 슬픈 소식입니다. 비극의 소식이며 아픔과 고통의 소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처참하게 죽으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들도 초대교회도 이제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갈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기독교의 심벌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증거하고 자랑합니다. 이 십자가와 함께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1. 주님의 십자가는 화평을 이루는 십자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치 아니하고 거역하여 범죄를 하자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졌고 우리는 죄로 죽었던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땅에 오셨고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주님이 대신 짊어지셨고 우리의 저주와 죽음과 불행과 우리의 모든 슬픈 모습들을 다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와 사망과 싸워 십자가로 승리하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바다 때문에 서로가 못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바다 때문이 아니고 사랑 때문도 아닙니다. 죄 때문에 못 만나고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게 했고 장벽을 쌓게 했고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죄는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자식, 부부사이라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멀어지게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엉뚱한 일도 하고 잘못을 크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잘못을 했을 때에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저녁시간이 그렇게도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들어오시고 며칠이고 계시다가 오시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남편이 중동에 갔을 때 그 부인이 죄를 저질렀는데 그 즉시 드는 생각이 남편이 안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것이었답니다. 몇 년 만에 돌아오는 남편이 반가울텐데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가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죄, 보이지 않는 마귀가 평안을 빼앗아가고 행복, 기쁨 평안을 빼앗아가며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가므로 노예로 묶습니다. 마음을 묶고 우리의 정신을 묶습니다. 불행과 온갖 환난으로 우리를 묶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야 할 우리가 미움을 받게 되고 여유가 있어야 할 우리가 여유가 없고 기쁨이 충만해야 될 우리들이 슬프게 살고 서로 간에 화평을 이루어야 할 하나님과 우리, 나와 너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것은 원수 마귀, 죄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해결하고자 죄인을 구원하고자 우리와 화평을 이루고자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말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을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거룩하게 하고 흠없게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1:19-22)




2. 십자가는 짊어지는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친히 오셨다는 이 사건이 기독교에서는 가장 놀라운 사건이며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요 기적인 것입니다. 왜요? 나를 찾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뿐이고 부끄러운 것뿐인데도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고통 당하셨으며 그 십자가는 나를 도와주시고 대속하신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려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질고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건강회복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시고 지신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만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깨끗케 하고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주님은 희생되신 것이고 화목제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다른 것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하고 기름 가마에, 창칼에, 사지가 찢겨져 죽도록 사명을 감당한 것은 오직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날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 때문에 나도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으며 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16:24에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고 하셨으며, 눅14:27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굳게 잡고 짊어져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만이 승리하게 하시고 구원하게 하시며 두려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들이 잡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십자가 구속의 피를 믿으므로 우리는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되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망과 마귀의 저주에서 건짐을 받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로 승리했습니다. 이 십자가 때문에 우리의 삶은 감사의 삶으로 바뀌었고 우리의 삶은 새로운 삶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고속도로가 확 뚫렸고 구원의 고속철도가 열렸습니다. 어두움의 모든 세력은 이것 하나 때문에 물러갔습니다. 모든 저주와 질병과 불행과 슬픔도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평화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나와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보람을 얻게 되었고 우리에게 눈을 뜨게 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평화와 나와 이웃 앞에 봉사와 사랑과 섬김이 사명으로 바뀌었습니다.




3.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가 생명이고 십자가 때문에 모였는데 교회의 심벌인 십자가 그늘 아래 있는데도 십자가를 바라보지 아니하는 성도라면, 십자가를 잊어버린 기독교라면 거기에는 생명을 잊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 떠나가면 몸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송장이고 가치가 없습니다. 교회가 십자가를 경홀히 여기고 십자가를 바라보지 아니하는 성도는 가치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국기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는 국기에 십자가를 사용하여 바라보게 합니다. 세계에서 십자가를 그 나라 국기로 한 나라들은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피곤하고 지쳐서 모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이곳에는 식물도 없다, 물도 없다, 우리 마음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는가 하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어 물어 죽게 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용서해 주소서, 구원해 주소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바라본 즉 살게 되었습니다(민21:4-9).

내가 약해진 것은 십자가를 잊어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떠나면 생명도 없고 힘도 없고 사명도 없고 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십자가를 증거하는 삶은 위대한 삶입니다. 십자가로 사는 삶은 평화의 삶이며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은 거룩한 삶이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은 소망의 삶이요, 십자가를 사랑하는 삶은 행복한 삶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고, 나는 저주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귀한 십자가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헌식목사]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