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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라 (창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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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라 (창 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라’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집 안에서 밤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잠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빨리 천막에서 밖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오니까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늘에 있는 별들을 헤아려 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후에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그 아내 이름 사래를 사라, 여주인으로 바꾸어서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일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보시고 천막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천막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까 하늘을 안보이잖아요. 천막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니까 천막 안에 있는 자기 환경만 눈에 보입니다. 이미 75살 되는 다 늙은 아내 85세가 된 자기 아무자식도 없는 메마른 광야와 같은 땅만 보였었습니다. 먼지와 티끌밖에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천막 밑에서 천막만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마음이 답답하고 앞길이 캄캄했습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막에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천막에서 나와야 하늘이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보고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천막 밖으로 나오라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인본주의 삶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과 경험과 감각의 천막 하에서 살고 있으므로 한계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에 천막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 지혜, 감각, 체험,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천막을 치고 그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좌절과 절망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막 밑에서 아무리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어요.

약4:14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전혀 내일일이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천막 안에서 삶은 좌절과 절망인 것입니다. 천막 바닥만 바라보니 염려, 근심, 불안, 초조, 낙심의 먼지투성이인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오늘날 인간이 살아갈 동안에 걱정, 근심하는 것이 5만개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만가지 걱정을 다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막 안에서는 먼지와 티끌이 오만가지 걱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을 때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낙심의 먼지투성이인 것입니다.

욥16:6에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근심이 안 풀린다. 마음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욥17:7에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라고 탄식을 한 것입니다.

천막에서 나와야 돼요. 아브라함보고 천막에 웅크리고 앉아서 늙은 아내를 바라보고, 늙은 네 몸을 보고 탄식하고 너희 천막에 아무것도 없는 적막강산을 보고 불안하고 초조하지 말고 천막을 털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라. 우리 인생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경험이나 지식만 생각하고 우리 인생의 현재 형편을 바라보고 탄식하고 낙심하면 갈 길이 없습니다. 적막강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하듯이 우리에게도 네 인생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라. 너를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라. 땅을 내려다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라. 인간중심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려면 나를 바라보는 눈을 돌이켜 하늘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하늘을 바라보고 땅만 내려다보는 우리 얼굴을 하늘을 쳐다봐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과 현실세계를 만든 영원한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바라보아야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42:11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스스로 생각하고 나만 바라보고 나만 의지하면 낙심하지만 소망을 얻으려면 천막 밖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우리 살펴주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높은 산과 골짜기를 넘어 멀고 험한 길을 가는 나그네 두 사람이 걷다가 지쳐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며 가면 우리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니 끊임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앞으로 걸어 나가자" 그러자 다른 사람 말했습니다. "아니요. 길은 땅에 있으니 땅을 보면서 가야지요." "하늘을 보고 가야 방향을 잃지 않으니 하늘을 봐야 한다니까." 이렇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각자 생각대로 길을 따로 나누어져 가게 된 것입니다. 한 나그네는 하늘을 보며 부지런히 걸어갔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길을 비추고 안내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눈비가 올 것을 알려 주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도 알려 주었습니다. 그 나그네는 하늘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고 가니까 무사히 땅의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지 않고 땅만 내려다 본 사람은 얼마 안가다가 방향감각을 잃었습니다. 동이 어딘지 남이 어딘지 북이 어딘지 서가 어딘지 방향을 잃어버리고 그는 비바람을 맞으며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걸었지만 큰 산 모퉁이를 뱅뱅 돌다가 그의 인생을 마쳐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2. 하늘을 쳐다보라

우리는 하늘을 쳐다봐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과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려면 하늘을 쳐다봐야 되지요. 우리가 인간의 불행을 당하여서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 때는 그것을 극복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형님 한분은 중대한 췌장암에 걸렸습니다. 암에서 해결될 도리가 없어요. 그는 직장도 사표를 내고 이제는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바라보니까 천지가 아득합니다. 눈알이 초롱초롱해서 바라보는 그 자식들의 학교공부도 아직 시키지 못했는데 젊은 나이에 암이 걸려서 직업을 그만두고 집에 드러 앉으니 얼마나 절망인 것입니까? 그러다가 그는 마음에 결심했습니다. 내 자신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절망이요, 갈 길이 캄캄하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다. 그래서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고개를 들어 자기를 떠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쳐다보니 새로운 소망이 생겼었습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니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좌절과 절망과 죽음에서 소망을 얻고 살 수 있다. 살 수 있다. 할 수 있다. 승리한다는 마음을 먹고 자기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는 살게 된다. 살 수 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므로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너희 암은 물러가고 건강한 세포는 살아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치료한 결과에 그는 암에서 깨끗하게 놓여남을 받아 새사람이 되고 건강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했었습니다. 만일 그가 땅만 쳐다보고 자기만 바라보았다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벗어나서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만 도와주시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부르짖지 않는 자에게는 도와주지 않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하지 않는데 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찾지 않는데 주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두드리지 않는데 열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외치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40:28~29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의 은혜를 입어서 꿈과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꿈을 얻는 창문이요, 믿음을 얻는 창문인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고 꿈을 잃어버리고 땅을 바라보다가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 좌절한 사람은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바로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주시고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을 주는 창문이 되는 것입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C. S.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예일 대학교 야로 슬라프 펠리칸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을 바라보면 비관주의자가 되고 하늘을 바라보면 낙관주의자가 된다. 땅을 바라보면 우울한 사람이 되고 하늘을 바라보면 밝고 즐거운 사람이 된다." 맞습니다. 우리는 천막에서 나와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하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크고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좁은 상상을 벗어나 큰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천막이란 좁잖아요. 내가 몸만 움직이면 동에 부딪히고 서에 부딪히고 남에 부딪히고 북에 부딪히고 좁은 세상 천막에 웅크리고 앉아서 좁은 세상을 바라보면 한없이 내 시야가 좁아지고 희망도 좁아지고 좌절과 절망이 덮쳐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은 광대무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끝없는 상상을 펼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끝없는 꿈과 환상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가면 우리는 땅의 좁은 것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땅의 좌절과 절망을 다 던져 버리고 넓고 크고 광대한 하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갖고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15:5~7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천막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 늙은 아내를 바라보고 뼈만 남은 자기 몸을 바라보고 자식 없는 것을 한탄하고 우리의 후손은 없고 이 많은 재산은 다 이방인에게 남겨주고 난 갈수밖에 없다고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야, 이 사람아! 왜 천막 밑에서 너 다 늙은 아내나 다 늙은 너 자신을 바라보고 자식 없는 것을 탄식하느냐? 밖으로 나오라.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려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별들을 헤아려라. 네 자손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새로운 꿈을 가져라. 새로운 믿음을 가져라. 용기를 갖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천막 밑에서 좌절과 절망을 갖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총명이나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이라는 천막 밑에서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나는 좌절이고 절망이다. 갈 길이 없다. 나는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웅크리고 앉아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나 총명이나 감각이나 생각을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 나오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 나오면 하나님의 광대한 하늘에서 하나님의 수없이 많은 은혜의 약속의 말씀이 별처럼 쏟아지고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꿈과 새로운 믿음을 얻고 내일을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쳐다보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깁니까? 저 광대한 하나님, 저 무수한 별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을 믿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만 부르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식 간에 얼마나 친밀합니까?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아버지께로부터 직접 난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아버지의 친자식이 되고 아버지가 자기의 영을 부어 주셔서 우리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친밀하고 우리하고 생명을 나눈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더 영을 나누신 친밀한 아버지시며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지 않을 턱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도 내 기도하는 데로 응답 안 해 주시는데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응답이냐, 어떤 것은 그 당시에 응답을 해주면 우리에게 해롭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응답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안주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여러 가지 물건을 보고 과자 점에 가서 과자를 볼 때 어린아이는 무엇을 집습니까? 건강에 해로운 여러 가지 과자들, 먹거리를 손으로 집습니다. 아버지가 보면 저것을 먹으면 반드시 건강에 해롭고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손을 탁 떨쳐버리고 "이것 먹지 마라. 다른 것을 먹어라."고 아버지가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해 줍니다. 자식이 보기에는 좋지 않지만 아버지 보기에 좋은 것을 주셔서 이것을 먹는 것이 좋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가고 나이가 들어서 보면 아버지가 선택해 준 것이 정말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고 아버지께 기도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원하는 것을 응답 안 해 준 것도 나중에 보면 감사한 일이고, 우리가 기도한데로 꼭 그대로 응답하지 않고 달리 응답해 준 것도 나중에 지나가 보면 감사한 것입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코 흘리게 어린 소년이 자기 여동생의 손을 잡고 추운 겨울날에 천막교회에 왔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콧물을 줄줄 흘리며 왔습니다. 그가 강영우 박사 오늘 미국 백악관 장애인 차관으로 있는 강영우 박사였습니다. 내가 볼 때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축구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서 한쪽 눈이 실명되고 다른 눈이 실명되어 가기 때문에 눈을 뜨게 해달라고 왔어요. 제가 그 애를 데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앞날에 희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만 하나님이 눈을 뜨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왼쪽 눈조차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실명하고 만 것입니다. 그는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느냐'고 탄식했습니다. 저도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왜 이 불쌍한 소년의 기도를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한쪽 눈마저 실명하게 해주셨습니까?'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는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오늘날에는 미국 백악관 장애인담당 차관까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오늘날 제게 간증하기를 "내가 주님께 눈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사역을 하기를 원했는데 하나님은 그때 내 눈을 고쳐주지 아니하므로 오늘날 세계적인 인물이 되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고 간증한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 사람이 계획하는 것과 하나님이 계획하는 것이 틀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서 계획한대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면 우리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한번 하늘을 쳐다 보십시요. 천막 밑에 좁디좁은 곳에서 탄식하지 말고 밖에 나와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십시오. 저 광대 무병한 하늘, 저 무수한 별들을 지으신 이가 바로 우리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나를 생각하고 나를 돌보시며 내 머리털수도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하시는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약하게 하고 두려워하고 놀라서는 안 됩니다.

시27:1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히13:5~6에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만 바라보고 땅만 바라보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고 저 광대 무병한 하늘과 저 무수한 천체를 만드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것을 알게 되면 이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마음에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별들을 헤아리라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셨으니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려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를 바라보지 않고 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려라. 별들은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으리라. 오늘도 하나님 말합니다. 너희 낭패와 실망을 바라보지 말고 현재 가정 형편과 생활의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현재 너희 고통과 괴로움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라.

우리의 하늘은 성경 속에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별들은 하나님의 무수한 약속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별들과 같이 우리에게 무수한 말씀의 약속들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약속들을 우리가 기억하면 그를 바라보면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게 되면 믿음으로 기도하면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꿈을 얻고 하늘을 쳐다보면 별들을 헤아리고 믿음을 얻고 믿음을 얻으면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서 내 인생의 운명이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53:5~6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것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그곳에 별들 같은 언약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짊어지시고 몸 찢고 피흘리시므로 용서와 의와 영광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치료와 건강을 약속해 주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부활, 영생, 천국도 약속해 주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전인구원도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별들처럼 반짝이는 약속이 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다는 약속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무수한 7천여가지의 하나님의 약속이 하늘에서 별들같이 반짝이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고 먼지와 티끌을 헤아리고 좌절하는 사람에게는 꿈도 희망도 얻을 수 없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꿈을 얻고 믿음을 얻고 강하고 담대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103:1~5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이것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땅만 내려다보고 띠끌 만 바라보고 울고 있으면 하늘에 있는 별들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천막에서 나와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이 뿌려 놓으신 저 별들같이 많은 언약을 바라보고 잊지 말고 그 약속을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찬양과 입술의 고백이 달라지면 우리 인생이 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 사랑의 아들나라로 옮기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은혜를 주어서 우리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 찌라도 남에게 꾸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천막 밑에 웅크리고 앉아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꿈과 믿음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별들처럼 많은 은혜를 주신 것을 우리가 헛되이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고후6:1~2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별들과 같이 많은 약속을 준비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은혜 베풀 때 너를 들을 테니까 기도해라. 기도해라. 내가 도와주고 싶다. 내가 너를 복 내리고 싶다. 희망을 주고 능력을 주고 싶다. 그러므로 내가 은혜 베풀 때 너를 들을 테니까 은혜 베풀 때 기도해라. 은혜 베풀 때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돕겠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라."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보다 간절하게 여러분을 복 내려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구원해 달라고 했나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직접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흘려 놓고 난 다음에 "받으라. 받으라. 용서를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치료를 받으라. 축복을 받으라. 천당을 받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언제 우리가 하나님이여 우리 살려달라고 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기를 간구하노라. 간절히 바라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내가 은혜 베풀 때 너를 들을 테니까 기도해라. 내가 은혜 베풀 때 너를 도울 테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체험이나 감각이라는 천막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못해.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절망이야. 나는 죽을 것이야.' 그렇게 하고 있으면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탁 털고 천막밖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이 세상에는 천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너는 내 자식이 되고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은혜를 예비해 놓았다. 별들같이 많은 약속을 주었으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난 다음에 생각이 부정적이 되지 말고 긍정적이 되며 절망적이 되지 말고 소망적이 되며 어두운 생각을 버리고 밝은 생각을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밝고, 맑고, 환한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을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것을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꿈으로 꽉 들어 채워 놓고 우리는 주를 믿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니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 약속이 없으면 믿을 수가 없지만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용서받은 사람이다. 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나는 치료받은 사람이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천국의 사람이 되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며 우리가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이름을 바꿔라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을 때 이름을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별들을 헤아리고 꿈을 얻고 믿음을 얻었으면 이름을 바꿔라.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운명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여러분의 미래가 바꾸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새것이 되었으니 우리도 이름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름을 바꾸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은혜로 이름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창17장에 보면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고 꿈을 얻고 믿음을 얻었으면 이름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고 믿음이 없을 때는 바꿀게 없기 때문에 그대로 옛날 이름 그대로 살아요.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고 꿈을 얻고 믿음을 얻었으면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새 이름으로 나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았습니까?

엡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자기를 부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뭐라고 이름을 바꿀까요? 여러분은 나는 믿음의 사람이다. 그렇게 부르십시오. 이제는 여러분은 감각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여러분의 이름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나는 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산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될 것을 믿고서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이름을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또한 소망의 사람으로 이름을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소망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146:5에 "야곱의 하나님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받았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나아지는 소망을 받았고 천국영생의 소망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절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소망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소망의 사람이다.

롬5:5에도 나는 소망을 갖고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나는 사랑의 사람이라고 이름을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미움이나 원한이나 분노의 사람이 아니라 나는 사랑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부어 주셨다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의의 사람이라고 이름을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이상은 나는 죄인도 아니요, 불의하고 추악하고 저주받은 사람도 아니라.

고후 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믿음으로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의 의로움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지칭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나는 평화의 사람이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이루었으므로 이제 우리 속에는 평화가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고후5:18에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 것 입니다.

우리는 화목의 평화를 가지고 있고 평화를 전달하는 평화의 전달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평화의 사람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나는 희락의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시16:11에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계신 곳에는 앞에도 기쁨이 있고 오른편에도 즐거움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의 새 이름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저주에서 벗어나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 라고 했었으니 나는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항상 나의 이름은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병든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로 말미암아 2천년 전부터 건강한 사람이라는 건강한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여러분 우리는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벅 미스트 풀러는 "모든 인간은 천재로 태어난다. 그러나 1만 명 가운데 9,999명이 성장 환경 속에서 둔재가 되어버리고 만다."고 말한 것입니다. 벅 미니스트 풀러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천재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을 닮았으니 천재가 안 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자꾸 땅만 웅크리고 바라보고 있으니까 땅에 있는 모든 좌절과 절망과 슬픔과 한계를 받아들여서 둔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땅에서 벗어나서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가면 모두다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밤잠을 재우지 않고 공부를 시키고 학원에 강재로 동원시키고 온갖 참고서를 다 준다고 천재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게 하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회복시켜 주므로 천재가 계발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천재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만든 짐승들이 앞으로 지나갈 때 동물들에게 이름을 다 지어 주었었습니다.

오늘날 동물학자들은 말하기를 그 당시에 동물들의 종류가 약 70만 종류가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70만 마리의 짐승의 이름을 그 자리에서 착착 다 지어 주었어요. 여러분 중에 70만 마리 짐승의 이름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주세요. 없지요. 7만 마리는요.. 7천 마리는요.. 7백 마리는요.. 70마리는요.. 7마리는요.. 그러니 아담과 하와의 지성에 비교해서 완전히 바보 아닙니까?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지성은 70만이면 우리는 7밖에 안되니까 10만분의 1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하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의 10만분의 1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회복시켜 줍니까?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이 지성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지성을 가질 수 있지요.

세계적인 신발회사인 캔버스가 내걸었던 광고 문구가운데는 '챔피언으로 태어나 패배자가 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은 천부적인 위대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현실 환경 속에서 한계상황을 만났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므로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전부 땅만 바라보고 '나는 못해.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망해. 나는 죽어. 나는 절망' 그런 한계를 당하고 난 다음에 그가 바보천치가 안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난 다음 '나는 의인이다. 나는 거룩한 사람이다. 나는 치료받은 사람이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는 천국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의인이 되었다. 나는 사랑의 사람이다. 나는 거룩한 사람이다. 나는 기쁨의 사람이다. 나는 평화의 사람이다. 나는 성령의 사람이다. 나는 평화의 사람이다. 나는 성령의 사람이다.' 내가 바꿔진 것을 알고 깨닫고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이름을 바꾸고 자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 85세에 없던 자식을 100세에 자식을 낳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기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기적을 주시는 것입니다. 천막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땅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기적도 주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꿈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상상을 새롭게 하며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 축복의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좁은 천막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는 인생을 패배하고 맙니다. 인본주의라는 천막을 벗어나고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사는 기적의 삶이 시작되어야 우리에게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인본주의에 서서 인본주의의 천막 밑에서 웅크리고 땅의 먼지와 티끌을 바라보고 탄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바보천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놀라운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다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쳐다보면 우주와 만물을 지은 자가 우리 아버지가 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별들과 같은 많은 언약을 주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다 천재와 같이 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천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고 꿈을 얻고 믿음을 얻고 기도를 얻고 기적을 얻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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