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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벧엘(창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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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벧엘(창35:1~7)

많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한 남자가 유명한 카운슬러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혹시 문제가 없는 곳이 있나요? 알려 주십시오. 그런 데 가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카운슬러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딱 한 군데 있기는 합니다. 저 너머 공동묘지죠.”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살아있는 사람 중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군가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심하게 말해서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므로 당연히 문제가 많습니다.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가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정들을 보십시오. 어느 가정에 문제가 없습니까? 저는 못 찾았는데, 혹시 성경 읽다가 찾으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변의 가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일이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중요합니까? 어차피 문제 자체를 피할 수 없을진대, 해법이 있으면 됩니다. 아무리 문제가 어려워도 해답이 붙어 있으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는 인생이 불행한 게 아닙니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인생이 불행한 겁니다. 문제가 있는 가정이 불행한 게 아닙니다. 문제를 풀지 못하는 가정이 불행한 겁니다. 문제가 있어도 풀 수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해답이다!” 아무리 얽히고설킨 문제, 아무리 큰 문제라도 하나님에게 갖고 나아가면 다 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마스터키(Master Key)가 들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보다 크신 분’입니다. 내 앞에 태산 같은 문제가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래알과 같이 작은 문제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이 그런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느 가정이 등장합니까? 야곱의 가정! 정말 큰 문제로 고민하던 가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문제가 해결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어떤 문제를 갖고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민하지 마십시오! 걱정하는 대신, 고민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래서 야곱의 가정처럼 승리하는 가정, 행복한 가정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1] 야곱의 가정에 닥친 문제 : 진퇴양난의 위기

야곱의 가정은 지금 세겜 성(城)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히위 족속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히위 족속은 가나안 원주민 중의 한 족속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큰 문제가 생깁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창세기 34장)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인 세겜이 디나를 성폭행한 겁니다. 세겜은 그 성(城)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명명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추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완력으로 성추행을 한 겁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고대인들은 성추행 당하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겼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부하던 야곱의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기기 막혔을 겁니다. 디나의 오라비, 즉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심에 불타서 복수를 합니다. 디나와 같은 어머니(레아)에게서 태어난 시므온과 레위 두 아들이 주동을 합니다. 세겜이 디나를 성폭행한 후에도 계속 연모해서 정식으로 청혼을 합니다. 그때 야곱의 아들들이 펄펄 뛰었지만 계속 청혼을 해오자 결혼을 빙자로 속임수를 씁니다. 결혼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세겜 족속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을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할례(割禮 Circumcision, 창17:9~14)는 남자의 앙피(陽皮)를 베어 내는 수술로 하나님 백성임을 표시하는 겁니다. 한 마디로 거룩한 종교 의식이죠. 그런데 이것을 원수 갚는 속임수로 사용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겁니다.
어쨌든 그런 제안에 동의한 세겜 족속의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게 됩니다. 사흘이 되면서 그들은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워합니다. 바로 그때 야곱의 아들들이 습격을 감행합니다. 남자들을 다 죽이고, 부녀자들과 재산을 약탈합니다. 사고를 쳐도 크게 친 겁니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세겜 족속을 학살한 그 상황을 주변의 족속들이 구경만 하고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들은 세겜과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합세해서 공격을 해 온다면 수적으로 열세인 야곱의 일족은 완전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기가 닥쳐오자 그 앞에서 탄식하는 야곱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창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인간적으로 볼 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냥 있어도 멸망당하고, 도망가도 멸망당할 게 뻔합니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입니다. 그동안 야곱과 그 가족들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 중의 위기였습니다.

[2] 그 문제의 원인 : 벧엘을 잊어버린 야곱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에 닥친 문제에도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원인이었을까요?
잘 아시는 대로 야곱에게는 쌍둥이 형 에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간교한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냅니다. 그 술수가 들통 나자 에서가 흥분하고 야곱을 죽일 태세입니다. 야곱은 그 위기를 모면하고자 가나안 땅을 떠나 멀리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는데, 그 도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극적인 체험을 합니다. 야곱은 감격하며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 짓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합니다. 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그 서원을 들으시고, 야곱의 도피 기간 동안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는 20년 만에 거부가 되어 가나안 땅에 돌아옵니다. 금의환향이지만 원한이 풀리지 않은 에서가 죽이려고 사병(私兵)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야곱은 두려워 떱니다. 밤새 얍복강 나루에서 기도하다 천사와 씨름하며 눈물로 간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시기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다음 날 에서를 만나지만, 하나님의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셔서 극적인 화해가 이뤄집니다.(창세기 32장~33장)

하나님께서 야곱이 어려울 때마다 베푸신 은혜는 크고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야곱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당연히 벧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가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벧엘로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자기 입으로 했던 서원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숙곳을 거쳐 세겜으로 빠집니다.(창33:17~20) 야곱에 왜 그랬습니까? 아마 세겜이 주위 어느 도시보다도 살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육신의 안일을 위해 그곳에 정착한 겁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영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멀리 한 채 세속에 얽매여 뭉기적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때 마귀가 틈을 탄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질 때, 하나님과 틈이 벌어질 때 반드시 마귀가 시험을 해옵니다. 마치 생쥐가 작은 틈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어질러 놓는 것과 같습니다. 야곱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자기는 육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안일한 데 살면서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지만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3] 하나님의 해법 : 회개와 하나님께 연합

그러면 야곱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간적으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은혜를 베푸시어 해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사방팔방이 막혀 있을 때, 그때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앞이 막히고, 뒤도 막히고, 옆에도 막혀 있다면 이제는 위를 보라!”

하나님이 제시해 주시는 해법이 정답입니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한 마디로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가라는 겁니다! 세겜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장소입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육신의 안일만 추구하던 장소입니다. 이제 자리를 박차고 떠나라는 겁니다. 벧엘은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품 안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다행히 야곱은 하나님이 제시한 해법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결단합니다. 가족들에게도 명령합니다. 2절. “ ...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하나님의 선민인 야곱의 가정에 우상 신상이 있었다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죄악이 있었다니! 딱한 일입니다. 야곱은 그것을 다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합니다.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새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3절.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 ” 이제는 하나님에게 돌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자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올인’(All-in)의 삶을 제안합니다! 이게 온전한 신앙입니다. 다행히 가족들이 순순히 순종합니다. 4절.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땅에 묻었다는 것은 모든 죄악과 우상 숭배와 단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겜을 떠난 야곱과 그 가족들은 마침내 벧엘에 당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합니다. 야곱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 다시 돌아와 하나님을 만난 감격! 그 감격으로 그는 그곳의 이름을 다시 명명합니다. 7절 “그가 거기(벧엘)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엘벧엘! 무슨 뜻입니까? 벧엘의 하나님! 더 큰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엘’은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동안 세속의 재미에 파묻혀 멀리 했던 하나님! 어려운 시절 그렇게 자기를 사랑해주시고 은혜 베푸셨던 그 하나님의 품 안에 달려가 와락 안기는 야곱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회개, 그리고 하나님께 연합!

① 회개 : 회개는 세상으로 행하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행하는 겁니다. 방향전환! 이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아무리 크고 복잡한 문제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가면 실마리가 풀립니다. 문제가 스르르 해결됩니다.
또 회개를 다른 말로 설명하면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멀어졌던 것을 다시 이어주는 겁니다. 계2:1~7 보면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편지가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은 것도 있지만 무엇 때문에 책망 받습니까?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잘 했었는데, 첫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떨어졌습니다. 끊어졌다는 겁니다. 그것을 빨리 깨닫고 다시 이으라는 겁니다.

전방에 가면 GOP 부대가 있습니다. 철책선을 경계하는 부대입니다. 밤새 군인들이 보초를 서면서 적군의 침투를 감시합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동이 트면 밤새 혹시라도 철책선이 끊어진 데가 있나 확인합니다. 끊어져 있으면 큰일이죠. 적군이 침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또 침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끊어진 데가 있으면 빨리 이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살피고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선이 끊어지면 큰일 납니다. 회개는 끊어진 선을 확인하고 잇는 것입니다.

② 연합 : 회개하고 하나님에 돌이킨 후에는 다시 세상으로 죄악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연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성경은 누누이 강조합니다. 신30:20에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재차 당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한글개역판 : 附從하라, NIV : hold fast to Him)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하나님께 꼭 붙어 있어야 복된 삶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어 붙어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믿음의 선배들의 모범을 소개해 드립니다. 한국교회 초대교회의 전통입니다. 성경읽기,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성결, 그리고 복음전도! 어렵던 시절 하나님에 매달렸던 신앙의 전통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신앙생활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우리 후손들이 그 혜택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육신적으로 살만해 졌다고, 내 힘으로 뭐가 된다고 착각한 나머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여러 겹으로 묶이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묶이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전통을 잘 계승해서 하나님께 늘 연합됨으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축복 : 해결과 형통

야곱과 그 가족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연합되자 어떤 일들이 생깁니까? 위기 중의 위기, 문제 중의 문제 때문에 고민했는데, 그 모든 게 말끔히 해결됩니다.

① 하나님의 해결 : 5절.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을 떠날 때 주변의 족속들이 전혀 공격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공포심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엄청난 숫자와 군사력을 갖고 있는데도 두려워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잘 보면, 벧엘로 올라가기 전입니다. 겨우 출발했을 때에 생긴 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결단한 것만 보고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마음만 먹어도 이미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갈 포즈만 취해도 이미 도와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에서 뭉기적거리고 여전히 엉뚱한 데 기웃거리고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② 형통의 축복 :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자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십니까? 창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에 돌아온 것은 10년 전입니다. 그런데 벧엘로 올라가지 않았던 겁니다. 10년 만에 벧엘로 올라간 야곱!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지금 가나안 땅에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10년 동안 야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축복하셨을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창35:11~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야곱과 그 후손을 축복하셔서 크게 번성하고, 왕들이 나온다는 예언입니다. 물론 야곱의 말년의 기록을 보면 고난이나 문제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인생은 살아 있는 한 문제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붙어 있으면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안 됩니다. 야곱의 말년이 그랬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큰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큰 축복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덕분에 흉년의 때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이민 가게 되었고,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디딤돌이 될지언정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눅15:보면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불리는 ‘잃은 아들의 비유’(눅15:11~32)가 나옵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멀리 떠난 아들, 가출한 탕자! 다 망했을 때 다행히 깨닫고 회개합니다. 눅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When he came to his senses) 가로되 ... ” 여기서 돌이켰다는 말은 제 정신이 들었다는 겁니다. 아버지 집이, 아버지 품이 얼마나 좋습니까? 벧엘(하나님의 집)의 축복입니다. 정신이 나가니까 가출을 하죠. 그런데 세상에서 실패하고 망한 후에 제 정신이 드니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미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아주십니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엘벧엘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 가정적으로 ... 이런 문제들이 혹시 하나님과 멀어진 가운데 생긴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달려 나아가십시오! 온 가족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게 눈 녹듯이 스르르 해결됩니다. 믿으십시오! 큰 문제가 없으십니까? 감사하시고 더욱 하나님께 붙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하나님 품에 안기심으로 엘벧엘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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