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신앙을 가지라 (요 3:1-15)
본문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3:5)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알고 깨달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거듭나는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거듭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일원으로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술을 끊고 담배 피우기를 삼가 하는 것과 같은 삶의 교정이 아닙니다. 거듭남이란, 분노와 식욕과 쾌락의 습관을 조절하기 위하여 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이란, 값비싼 보석 목걸이와 팔찌를 하지 않거나, 일주일 중에서 교회 가는 날만 조금 다르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삶을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뜯어고치거나 향상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이란, 본성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고, 과거에 싫어하던 것이 좋아지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미워하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정하게 되며, 즐겨하던 쾌락이 싫어지고 그 쾌락이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인생 전체의 방향과 목적과 동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은 영적 표현으로 말한다면 거듭남이란, 자신과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며, 새로운 생명의 사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거듭난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효과적으로 역사하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거듭남의 경험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급격한 생애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 곧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인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드려 간직하게 되고 영원하고 파괴되지 않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남의 결과로 얻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나라를 볼 수도 있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② 하나님의 자녀인 새로운 존재로 살아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
③ 하나님의 성품이 생겨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1:3-4)
그러면 이 거듭남의 삶은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 그것은 지식과 지성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바리새인이고 산헤드린 의원이며 율법에 정통한 지식인이며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니고데모를 ‘유대 사람의 지도자’였다고 했고, 예수님은 그를 ‘이스라엘 선생’이라고 칭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지식과 지성으로 거듭남의 진리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 하실 때에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듭남의 진리는 영적인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니고데모는 생물학적으로 이 진리를 이해했기에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5-6절)
예수님은 거듭남이 물과 성령으로 되어 진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물은 씻음을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죄를 씻겨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말합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듭남은 체험적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이론적 이해가 아닌 경험적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8절)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거듭남의 확증은 체험인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 분이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1703년 19명의 형제 중 15번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목사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로 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 후 25세의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 내의 “홀리(Holy)클럽”의 지도자가 되어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Holy클럽이란 그 동생 찰스 웨슬리가 창설한 것으로 저녁에 함께 모여 3시간 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 금식을 통한 경 건 생활에 힘쓰는 써클 이었습니다. 얼마나 철저한 경건생활을 지켰는지 주위로부터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별명 을 얻었는데, 이것은 “규칙쟁이, 엄격주의자”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별명이 후에 감리교회 이름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미국 죠지아 주 선교사로 활동하기 위해 북미로 향하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 강력한 대서양 폭풍을 만났습니다. 폭풍 가운데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모라비안 신도들의 신앙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려움가운데 있었던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회의하기 시작 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께서는 1736년 1월 일기에서 선교여행 중 폭풍우를 마난 후 그 때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녁에 또 폭풍이 일어났다. 그 폭풍은 더 강하게 되어 그들은 배가 휘몰려 쳐지게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떻게 아직도 믿음이 없어서 죽기를 원치 않는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믿음이 불분명한 것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미국 선교 중에, 모라비안 사역을 주도하던 ‘아우구스트 스팡겐버그’ 와 대화하는 중에 그는 웨슬리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안에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 합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나는 그분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압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나는 압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나의 대답이) 무의미한 말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후, 웨슬리는 포터에게 보내는 편지가운데서, “나는 기독인이 아니다. 나는 추구할 뿐이자 아직 기독인이 되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북미에서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온 웨슬리는 1738년 5월24일 얼더스게이트(Alderrsgate) 거리에서 있는 한 신도회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8시 45분, 이때에 죤 웨슬리 목사님은 성령께서 증거 하시는 내적 회심인 거듭남의 뜨거움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그의 일기의 기록에 보면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어느 모임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 되어서, 그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역사 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을 느꼈고, 그 분은 내 죄들, 내 죄조차 없이 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게 주어졌다..... 그런 다음 내가 가르친 것은, 죄를 이기는 승리와 평화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근거한다는 것이었다.”
거듭남의 체험의 확신을 가진 웨슬리는 그 이후 평생에 25만 마일을 다니며 전도했고, 1년에 천 번 이상 설교했으며, 400여권의 책을 썼고, 수백 개의 단체를 만들고, 학교 병원 고아원을 세우는데 앞장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듭남의 체험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거듭남의 체험의 증거를 가지는 데서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거듭남의 확증의 증거를 이렇게 질문하면서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데서 확증할 수 있습니다.
①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1:8)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 즉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는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③ 죄에 대한 민감도가 있어 죄를 싫어하게 되었고, 죄가 싫고 짓지 않으려 하지만 육신이 약하여 죄를 짓게 될 때에, 이런 자신을 안타가워 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싸워 이길 것을 믿으며 승리하고 있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3:9)
④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여 나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8)
⑤ 나는 마음과 정신을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돌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요일1:6)
⑥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고 있는가?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니"
⑦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원하는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시 40:8)
⑧ 기도하고픈 마음이 있는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⑨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강한 소원을 갖게 되는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확신 있는 그리스도인의 영광과 축복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