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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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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12-20)


1. 부부와 아들, 세 식구가 사는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남편 김씨는 매우 비상한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도 항상 말할 것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고, 어떤 주제건 대화에 막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뛰어난 처세술과 탁월한 화술로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모이고 웃음이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아내 송씨는 무척 둔한 사람입니다. 한참이나 대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이유를 모릅니다. 농담과 진담을 구별할 줄 모르고, 우스개 소리를 해도 알아듣지 못해 때 맞춰 웃질 못합니다. 자기 성격대로 사는 사람이라 말을 골라 할 줄도 모르고, 또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면 참을 줄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간도 빼주지만, 한 번 싫은 사람은 죽어도 싫습니다.

이렇게 너무나 다른 성격의 김씨와 송씨는 결혼 3년만에 협상을 보았습니다.
각자의 일에 참견하지 않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때문에 늘 문제가 됩니다.
해야 하는 공부는 안 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선생님들께 태도가 불손하고,
참다 참다 안 되서 한 마디 하면, 죽어버리겠다며 나가버립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편은 아들의 문제가 아내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막무가내로 말하는 아내의 버릇이 아들을 말썽꾸러기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아들을 문젯덩어리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학기말 성적표가 도착했습니다. 그날 저녁 세 식구가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지만, 남편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던 아내는 아들에게 튈 불똥을 남편을 향해 쏟아 붓습니다.
“당신 어쩜 그렇게 무책임해요? 당신 애 아빠 맞아요? 아들의 성적표가 왔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아녜요? 이 상황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내 팔자에 남자라곤 도통 둘 밖에 없는데. 어쩜 하나같이 저 모양인지...
제대로 된 남자 하나 없으니...”

김씨는 기가 막혔습니다. 우선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성적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
언제든지 이런 식으로 앞질러 가서 사람을 묵사발 만드는 아내가 너무 밉고 싫습니다.
“야, 너 말 다했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거야. 넌 그런 상식도 없냐?
넌 말이야, 남편과 자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여자야.
뭐? 이 집에 제대로 된 남자가 없다고? 그래? 너 오늘 제대로 된 남자 맛 좀 봐라.”
(도은미, 사연으로 움직이는 가정, 12~18)

내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가정에만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은? 그리고, 사업은 어떠합니까?
사는 게 문제 덩어리입니다. 세상살이에 쉬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되는대로 살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지만,
제대로 하려고 하면 늘 문제와 씨름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2.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하니 더 힘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라.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라.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 너를 소송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이건 순교의 각오가 없인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게 순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주후 90년경 로마 황제 도미티안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당하던 상황에서 기록된 책입니다. 이 책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신앙 때문에 밧모섬에서 유배생활하던 중이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순교하던 상황,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예부터 순교는 인간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셔서 순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순교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 직장, 사업-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식 하나 키우는 것도 우리가 감당하기 너무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힘주셔야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순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속히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의인은 영원한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내가 속히 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의 마지막도 주님께서 때가 되면 불러가실 것입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인생살이도 예수님께서 책임지고 붙드시고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 한 가지만은 기억하십시오.
“나는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으로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소방훈련하던 굴곡차는 와이어가 끊어질 수 있어도, 예수님의 손은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높은 곳에 올려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실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여러분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3. 그 뿐입니까?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영원히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14절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누가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영생을 누릴 사람입니까?
누가 영원한 나라의 문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갈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까?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입니다. 두루마기는 우리의 삶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피로 씻음받은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피에 우리의 몸을 씻었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몸을 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백성입니다. 영생을 누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의 흘린 피 / 날 희게 하오니 / 귀하고 귀하다 /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이런 복을 받은 우리는 17절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말씀을 듣는 자는 “오라” 고 불신자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초대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먼저 영생을 누린 여러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불신자들을 초대하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그런데, 어윈 루처(Erwin W. Lutzer)가 쓴 <영원한 상급>이란 책을 보면, 천국에서도 눈물을 흘릴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니, 천국과 눈물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할른지 모릅니다. 그 눈물은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살았음을 슬퍼하는 눈물, 후회와 부끄러움의 눈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닦아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영영히 눈물을 그치지 못할 것입니다(계21:4). (어윈 루처, 영원한 상급, 7~8)

반면에,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상을 갖고 오십니다. 일한대로, 수고한대로 상을 주십니다.

예전에 우방놀이동산을 가보니까,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입장은 무료지만, 놀이기구를 타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는 사람은 천국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상을 받으려면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고후5:9-10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 모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전구라고 다 같은 밝기가 아니듯이, 천국에 들어가도 다 다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얼마나 일하였느냐에 따라 상급이 다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운명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선택과 행동은 우리의 미래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주석가 메튜 헨리는 “마지막 날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살라” 고 했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비문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고전 3:12-15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우리 인생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일생 살아온 삶에 대하여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불로 시험할 것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같이 다 타버려서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온 인생은 불에 타버리지 않을 인생, 상 받을 인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만 아니라,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시간, 재능, 건강, 지식 등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바로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폭염이 쏟아지는 사막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습니다. 목이 타 죽을 지경이 된 그는 펌프가 달린 우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펌프 옆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펌프에 부을 마중물을 사용할 것. 우물이 깊어서 목을 축이고 물통을 채울 수 있음. 다음 여행자를 위해 병에 물을 채워둘 것.”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물병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물에 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작은 물병의 물을 마셔버릴 것인가?
아니면, 원하는 만큼의 물을 길어올리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 물을 펌프에 부을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분의 가진 값진 것들을 주님께 부을 수 있겠습니까?

5. “마라나타-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님 곧 오십니다. 그날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러운 성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상급, 넘치는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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