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적 그리스도인 (요 3:3-5)
본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또한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은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거듭남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며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거듭남이어야 하고 거듭나는 것이 곧 진정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믿기는 하는데 거듭나지를 못했다면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할 겁니다.
구원파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구원받았습니까? 거듭난 날이 언제입니까?”
그리고 잘 모르겠다고 하면 구원 못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단입니다.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거듭난 날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물론 아시는 분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짓다가 갑자기 예수님 믿고 회개하게 되니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잘 모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났던 날을 자기가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다 모릅니다.
어떻게 우리가 알았습니까? 우리 부모님께서 생일을 알려주셔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날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분이 구애받을 것 없습니다. 다만 거듭난 증거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거듭난 사람으로서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합니다.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께서 중국 선교를 하실 때에 어떤 청년이 와서 “선교사님, 신자가 되는데 몇 년이 걸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 청년에게 “렘프 불 켜는데 얼마동안 불을 붙여야 빛이 납니까?”라고 물었고, 그 청년은 “선교사님 그거야 불 붙이면 바로 빛이 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 믿고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은혜 받은 것 깨닫는다면 그때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영국의 스로스츠 라는 죄수는 40년동안 감옥에서 살았으며,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가죽 채찍으로 50번씩 8번 맞았지만 변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와 교도소에서는 골치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어쩌다가 구세군 숙박시설에 가서 하룻밤 신세를 졌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구세군 출옥자 보호소에서 18년간 봉사를 했는데 그분은 “400번의 가죽 채찍으로 매를 맞고, 40년간의 교도소 생활에서도 변화되지 않았던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1-2분만에 변화가 되었습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거듭남의 변화는 어떤 면에서 순간적입니다. 믿음으로 순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그 변화가 삶을 이끌게 될 때 이것을 거듭남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것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믿었느냐에 있지 않고 구원에 대한 확신과 변화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2:28에서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레가 할레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레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과 바울의 이면적 유대인은 같은 의미입니다.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있는 사람, 예수 믿는 믿음의 증거가 있는 내면적 그리스도인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돌감나무에 아무리 거름을 많이 주어도 거기에 단감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돌감나무에 거름을 많이 준다면 돌감만 더 많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감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단감나무를 접붙인다면 그때부터는 단감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내면적 그리스도인으로 새로워졌을 때에 그때부터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품에 변화가 생기며, 정직한 사람이 되고,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며,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내면적 그리스도인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 즉 내면적 그리스도인은 자나 깨나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거듭난 사람, 내면적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변화된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행동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생각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거듭남에 대하여 마틴 루터는 세 가지 회심를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돈지갑의 회심이 그것입니다.
머리의 회심이란 지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복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를 깨닫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가슴의 회심란 가슴에 뜨거운 사랑과 정의가 있어 그것을 이웃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지갑의 회심 곧 물질에 대한 변화입니다.
물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회심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된 삶이 증거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머리에 그리고 가슴에 그리고 돈지갑에 회심이 일어났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외면적 그리스도인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믿음으로 변화된 내면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믿음으로 거듭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269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269년 전 외면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한 사람이 내면적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며 거듭났습니다. 그로부터 오늘의 감리교회가 시작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타락하던 영국 사회를 살리는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이 말씀은 존 웨슬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새롭게 변화하게 한 말씀입니다. 외면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웨슬리가 비로서 내면적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학자였고 지식인이었으며 훌륭한 믿음의 가문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선교에 대한 열정도 있었고 헌신하고자 하는 결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야 할 거듭남,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영적 회심이 없었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선교를 떠나 3년여 간 노력 하였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실패에 대한 좌절과 실망뿐이었습니다. 선교 실패의 아픔을 안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던 길에 큰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며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옵니다. 배 밑 작은 선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격과 기쁨의 얼굴로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목사인 자신은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 떨고 있는데 그들은 오히려 평화로운 모습으로 찬양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실패를 통해서 철저히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형식과 외적 경건만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종교생활은 너무도 무기력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종교의 자유를 찾아 북미로 떠나는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만남은 그들이 가진 내적 능력의 위대함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외관상 훌륭한 신자이다. 위험이 없을 때는 설교도 잘하고 믿음도 좋다. 그러나 죽음이 그 무서운 입을 벌리고 나를 엄습할 때는 나는 불안과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함이 된다’는 담대한 고백을 감히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 양심은 부패하였으며 가증스럽게 되었다. 나의 행동과 수고와 의지로서는 도저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에는 죽음의 선고가 떠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믿음 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는 믿음과 성령이 친히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는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
웨슬리의 실패는 오히려 그의 생애를 다시 새롭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실패를 통해서 진정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의 깊은 영적 갈망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형식적 종교인의 틀을 깨고 진정한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세워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738년 5월24일 오후9시15분 그는 올더스케잇의 작은 예배당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케잇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인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아홉시 15분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따뜻해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만 믿고 있음과 그 위에 주께서 나의 죄를 아니 나의 죄까지도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웨슬리의 회심은 깨달음이었으며 구원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회심의 경험 후에 그는 확신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의 나열로서의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는 설교로 바뀌었습니다.
이 회심의 사건은 웨슬리를 열정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복음적 활동들은 부패와 타락으로 어두워졌던 영국사회를 살리고 전 세계 죽어가는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감리교 복음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성령의 활동은 놀랍습니다. 얼마든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며 이곳에 모여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뜨겁게 감동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원할 때 틀림없이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에 성령의 감동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존 웨슬리목사님이 경험한 회심의 사건은 여러분들에게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웨슬리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회심 이후 웨슬리의 설교는 달라졌습니다. 확신에 찬 강력한 복음의 말씀이 선포하였습니다. 특히 옥외 집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설교했습니다. 탄광촌을 다니면서 설교하고 노동현장을 찾아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군중들 앞에서 설교할 때 3000명씩 회개하며 예수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듯이 웨슬리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예수를 영접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마상의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매년 4,5천 마일의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1773년 이후로는 마차를 이용하였지만 그 전에는 말을 타고 다니며 전도하였고 마상에서 설교하기도 했습니다. 회심한 웨슬리의 가슴에 불붙는 전도의 열정은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마침내 1791년 3월2일 오전6시 한 책의 사람, 기도의 사람, 위대한 전도자 웨슬리는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들어 갔습니다.
그의 기념비에는 세 귀절의 글이 새겨졌습니다.
하나는 그의 활동 전성기에 외친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말과
그의 임종 시에 남긴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찰스 웨스리의 말 “하나님은 그 일군은 장사하시나 그 사업은 계속 하신다”는 것입니다.
269년전 한 사람의 회심은 이렇듯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오늘의 감리교를 출발시킨 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복음에 붙들린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시대와 역사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영적 갈망에 사로잡힌 이들을 세우십니다.
거룩한 뜻을 위해 온 맘과 생을 드리기로 결단하는 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이 어두운 시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할 때에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일에 쓰여 지는 일꾼들이 됩시다.
외면적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거듭난 내면적 그리스도인의 참 삶을 살아가십시다.
하나님은 오늘도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찾아 시대의 사명자들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내면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웨슬리 목사님이 남겼던 말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나는 감리교회가 쇠약해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가졌던 교리와 정신과 훈련을 소홀히 함으로 잎만 무성한 바리새인적인 종교로 전락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옵소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처럼 되지 말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내면적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