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욥 2:7-10)
본문
여러분은 어려움이 생길 때에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욥을 보세요.
1:1에서는 욥을 가리켜서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습니다.
1:5에서는 “욥이 그의 자녀들의 성결 된 삶을 위하여 아침에 일어나서 그 자녀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낳은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 되게 살아가도록, 철저하게 신앙의 훈련을 시켰던,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네가 욥을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소와 나귀가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종들은 불로 살라 죽임을 당했고,
약대들과 종들도 다 죽었고,
심지어 남자 7명, 여자 3명, 10명에 달하던 욥의 자녀들이 집이 무너져서 몰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 물러나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합니다.”
얼마나 가려웠든지 욥이 잿더미 위에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가려운 곳을 벅벅 긁고 있는데 아내가 욥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
왜? 왜? 진짜 믿음의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신실하게 살아 보려고 하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들이 터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아니면 그냥 설렁, 설렁 얼렁뚱땅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과연 그럴까요?
만일 우리에게 고난이 고통이 닥쳐온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작가 또는 문인하면 일반적으로 아! 그분들이야 지성인이지! 하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
적어도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그것도 일류 대학을 나왔을 것이고,
미국의 헤밍웨이를 보세요.
그분의 학벌이 뛰어 나지가 않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헤밍웨이는 세계 최고의 노벨문학상을 당당하게 수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학교를 못나왔거나,
혈통이 나쁘거나,
공부를 못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에게만 고통과 환난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난 못해,
나에게 이럴 수 없어
정말 난 능력이 없어
난 자신이 없어
난 할 수 없어, 하는 사람만을 고르면서 끝가지 물고 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앙의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나의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다시 말해서 그 어떤 환난이나, 고통을 이길 수 있다고 외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한 사람에게도 환난과 고난은 얼마든지 다가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약속을 기억하세요.
38년 된 병자까지도 고치시고,
흑암을 광명으로 바꾸어 놓으신 하나님의 약속을 내 가슴속에 꽉 끌어안고 살면, 내 삶의 계획에 중심으로 모시면 믿음을 지키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실재가 되는 줄 믿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을 가지십시다.
잠 18:14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그것을 일으키겠느냐?”
월남이 월맹군에게 패망하였습니다.
이건 세계전쟁사에서 치욕적인 패배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월남이 군사력으로 비교하면 월맹하고는 수십 배의 차이가 났고,
경제적으로도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이고,
또 미국의 직, 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해서 패배한 첫 번째의 전쟁이 바로 월남전 이라고 합니다.
왜 패배하였나요?
비행기가 부족해서 인가요?
탱크가,
군인이,
현대적인 무기가 부족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월남 군인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이미 무너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아무리 해도 않되는구나,
이제, 정말 월남은 망하는가 보다,
월맹군이 강한 게 사실이구나,
이렇게 되니까 누가 싸우려고 하겠습니까?
그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도망을 칩니다.
사람들은 거리로 밀려 나옵니다.
이쯤 되니까, 북진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월남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은 네 마음을 지키라. 네 마음을 지키면 저 엄청난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
마음을 지키면,
마음을 다스리면,
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
다시 선포합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이기려니와, 그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환경이 바뀐다고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변화되니 환경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모든 일을 부정적인 생각을 들게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안 되었던 일들만 떠오르게 합니다.
겁을 먹으면 파리 한 마리만 보아도 아, 아, 아 저... 무서운 파리, 저 발바닥으로 더러운 똥에도 앉았을 것이고, 쓰레기 위에, 오물, 시체위에도 앉았을 텐데, 그게 내 밥그릇 위에 앉았으니 아, 아, 아, 난 이제 죽어야만 하는구나.
저 쥐, 쥐, 쥐
페스트를 옮기는 쥐,
저 쥐가 내 곁에서 몸을 떨었으니, 그 균이 내 입으로 들어가겠지 클럭! 클럭! 난 이제 죽는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내 마음이 얼마나 강하고, 담대해지는지 모릅니다.
욥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다 빼앗기고,
다 죽고,
다 사라지고,
마누라까지 저주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기서 1:22에서는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더라” 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쳐서, 나를 멸하시며, 나를 끊어 놓는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기뻐하나니 나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치 아니 하였기 때문이라고” 6:9에서 고백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욥기서 42:12의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 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처음보다 갑절이나 되는 복을 받게 되었더라”
믿으시면 아멘!
우리도 어려울 때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으로 심령을 굳세게 해서,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