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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 (전 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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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 (전 7:11-14)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때도 있고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형통할 때가 있고 곤고할 때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도 있고 병들 때도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가 있고 안 풀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에 보니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 병행하게 했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든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공할 때는 조심해야 됩니다. 형통했다고 교만하거나 방탕할 때 넘어집니다. 그러나 곤고할 때도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아야 됩니다. 곤고한 날이 자기에게 불행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세상 부귀영화를 다 누린 사람같이 보이는 형통한 삶을 살아간 사람같이 보이는 솔로몬이 이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다 살고 두 가지를 깨닫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인생은 곤고하다는 것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데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해 가면서 살고 있는데 그것 자체도 곤고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형통한 날은 모든 것이 잘 될 때입니다. 곤고한 날은 실패했을 때입니다. 병들었을 때입니다. 사고가 났을 때입니다. 부도가 났을 때입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입니다. 환난을 만날 때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길 때입니다. 사업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길 때입니다. 슬픔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특별히 남자들이 직장을 잃고 사업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됐을 때 곤고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럴 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으면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로 12절에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지혜도 나를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나를 보호하는 것이 되지만 지식은 생명을 보전시키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은 많은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데 특별히 곤고한 날에 사는 힘들고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곤고한 날에는 생각을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곤고한 날에 살 수 있는 지혜가 뭡니까? 첫째로, 곤고한 날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형통한 것은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고 곤고한 것은 사탄이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곤고한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하루 중에 밤과 낮이 있습니다. 만약 밤이 없고 낮만 있다면 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낮이 없고 밤만 있다고 해도 우리 모두 영양실조로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랍 격언에 보면 '비가 오지 않고 햇빛만 계속 비추면 좋은 땅도 사막이 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1년 중 가장 좋은 때가 봄입니다. 그러나 봄만 계속되면 안 됩니다.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야 우리의 생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로 20절에 보니까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애매한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은 욥입니다. 이 욥은 인간적으로 별로 허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는 당대 유명한 재벌이었습니다. 양이 7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천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나 됐습니다. 거기에다가 아들이 일곱에다가 딸이 셋을 가진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 재벌이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됐습니다. 흔적조차 없습니다. 욥은 부동산 투자를 한 것도 아닙니다. 증권투자를 한 것도 아닙니다. 화폐개혁으로 모아놓은 돈이 휴지조각이 된 것도 아닙니다. 수출했던 물건이 문제가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가 부주의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탄이 그를 시험한 것입니다. 갑자기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그 많은 재산을 다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일시에 자녀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큰 아들 잔칫날 형제들이 모였는데 갑자기 태풍이 불어서 집이 무너지고 열 자녀가 몰살당했습니다. 이런 환난을 받으면 보통 사람은 충격으로 쓰러지거나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욥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의 생애를 아름답게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이 올 때 우리는 원망 불평할 것을 찾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질 때 은혜와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곤고한 날에는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은 불같이 뜨거웠으며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목이 마르고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아들은 원망이 가득찬 목소리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에게 있는 것은 죽음 뿐입니다. 더이상 걸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이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죽는 게 낫겠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얘야, 조금만 더 가면 틀림없이 맑은 물과 마을이 나타날 거야. 힘을 내렴." 그 때 두 사람 앞에 커다란 무덤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아들은 더욱 절망해서 울부짖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도 우리처럼 죽은 거예요. 이젠 정말 완전히 절망이에요."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들아, 무덤은 희망의 징조란다. 무덤은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희망의 표시란다." 과연 두 사람은 곧 마을에 도착해서 살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 사막의 무덤 같은 시련을 만납니다. 그러나 이것이 희망의 징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날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곤고한 날에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 인간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자기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때입니다. 대개 곤고한 날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슬퍼하고 탄식합니다. 여러분, 건강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물질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배신당한 아픔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식구를 잃고 직장을 잃고 가정을 잃고 자식을 잃고 명예를 잃고 남편 아내를 잃고 물질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전부다 잃었다는 절망감 때문에 심령이 곤고해 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봐야 됩니다. 잃은 중에도 얻은 것이 있고 망한 중에도 남은 것이 있고 손해보는 중에도 유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어떻게 유익입니까? 유명한 찬송시 작가 크로스비는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하기를, 육체적인 눈은 가려졌지만 죄악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이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으니 자기는 행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세상에서 유익을 찾으려고 하면 한계가 옵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유익을 얻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전부 물질로 계산하고 따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될 것이 뭡니까?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할 때보다 곤고할 때 하나님이 더 좋습니다. 내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하나님이 더 좋습니다. 내가 잘 될 때보다 어려울 때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함을 느끼게 됩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곤고한 날에 만나게 됩니다. 곤고할 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이 때 하나님이 내게 은혜 주신다, 하나님이 내게 축복 주신다 라고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됩니다.

시편 119편 65절에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잘 될 때만 하나님이 나를 선대한 것이 아니라 잘 되지 않을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선대하고 계심을 믿어야 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올 때 이 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십시요. 만약 여러분의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곤고할 때 고생이 많지, 힘들지? 그래도 좋으신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바라보며 기도하자 하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 정이 드는지 아십니까? 잘 될 때는 보통 정이 듭니다. 그런데 안 될 때는 깊은 정이 듭니다. 형통할 때가 아닌 환난날이 오고 역경이 올 때 하나님과 깊은 정이 드는 겁니다. 주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나무가 여름에는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그러나 찬 바람 불고 겨울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속을 채웁니다. 성공하고 형통하면 밖으로 돌면서 휘청거립니다. 교만의 줄기가 뻗치고 자랑의 뜰이 무성해집니다. 그러나 찬바람 불고 인생의 곤고한 날이 오면 모든 잎이 떨어지고 속을 채우는 성숙한 신앙인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곤고한 날을 통해서 그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화려한 별장 침대에서 신약성경의 절반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쓴 것이 아닙니다. 차디찬 감옥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곤고한 세월 속에서 인생의 고뇌 속에서 글을 써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곤고한 날이 오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됩니다. 건강할 때는 느낌없이 그렇게 살아갔지만 병들었을 때는 왜 살아야 되는가 인생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통한 날을 사는 지혜가 있고 곤고한 날을 사는 지혜가 있습니다. 곤고한 날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지 말고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며 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곤고한 날에는 성도들이 반드시 취해야 될 신앙적인 자세가 있습니다.
바로 무릎 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형통한 날에는 감사하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됩니다. 인생의 삶이 곤고해지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겹겹히 내 삶을 애워싸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미래를 주님께 의탁해야만 합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알면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한 가지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천국에 간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또 하나님 뜻대로 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내일 내가 건강할지 병들지 형통할지 곤고할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장래 일은 하나님만 아시면 됩니다. 나는 다만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됩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랬습니다.

이 말은 오늘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으니 너희는 다만 내일 염려는 주께 맡기고 할 일을 그날 그날 기도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랬습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 가장 많은 지탄과 비난을 당한 분은 아브라함 링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 준 사람으로써 유명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미국이 비극적 분단에 놓여있을 때 나라를 구해낸 대통령으로 기리기리 남을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한 번은 내각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아서 전 내각 각료들에게 24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무릎을 비비면서 기도했든지 그가 앉은 자리의 카페트가 너덜너덜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무수히 많은 기독교인들 그 모든 사람일수록 곤고한 날을 기도로 이겼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든 사업을 하든 농사를 짓든 누구를 막론하고 곤고한 날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했고 시편 46편 1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큰 도움이라'고 했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기다려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도 해결되는 일이 있고요, 꼭 기도해야만 해결되는 일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기도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직장 문제도 기도해도 될 수 있고 안 해도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기도해도 될 수 있고 안 해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기도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것들은 기도하지 않고는 절대로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근심, 걱정이 어떻게 나가겠습니까?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악한 생각과 원망, 불평, 미움, 시기, 질투는 기도해야만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곤고한 것들을 쫓아내야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곤고와 마음의 불안과 초조함을, 모든 것들을 기도하여 내쫓아야 됩니다. 기도함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을 믿음으로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셔드립시다.
그 분 안에서는 형통이든 곤고든 아무 것도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설혹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환난이 온다 할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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