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게 하는 기도(祈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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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기도(祈禱)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十字架) 밑에 나의 무거운 모든 짊을 내려놓고 믿음의 기도(祈禱)를 드려서 주 안에서 자유(自由) 함을 누리는 삶이되시기를 소망(素望)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모든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드린 기도 내용 중 세월이 흐른 후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부당한 것들이 많았음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원이 금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기도응답도 속히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소원대로 속히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적절한 때 주어집니다.
전3:1절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했듯 하나님은 전능하신 지혜와 사랑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신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은 기도 응답에 해서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때를 기다리게 하는 응답(應答)의 유형입니다. 시22:1,2절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1)장기적(長期的)인 시간(時間)이 지난 후의 응답(應答)입니다. 이 응답의 첫 유형은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응답되는 형태입니다. 가령 성군 다윗은 자기 생전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삼하7:12,13절에서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위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의 기도는 솔로몬 시대에 와서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응답되는 예가 많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응답되는 예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이 드린 기도 내용을 잊지 말고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2)점진적(漸進的)인 응답(應答)이 있습니다. 기도한 내용에 대해 응답을 하시는 데 기도한 내용 그대로 바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먼저 주시는 예가 점진적인 응답입니다.
구약시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이 걸려 선지자 엘리사에게 병을 고쳐주기를 간청했을 때 엘리사는 즉각 고쳐주지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명했습니다,
왕하5:10절에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여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은 후 문둥병이 나은 응답을 얻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도가 “열매”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씨”를 주시는 예가 있습니다. 즉시 기도한 것을 주시지 않고 어떤 과정을 응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순종하여 시간과 몸을 드려야 소원한 내용을 얻을 수 있도록 섭리하십니다.
3)간접적(間接的)인 응답(應答)이 있습니다. 역시 성도가 원하는 내용대로 즉시 응답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내용으로 먼저 응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예로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전도하는 것을 기도했는데,
그 응답은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죄인으로 고소당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행25:15-21절에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 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 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로마 황실 재판소에 재판을 받는 자로 압송되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행27:1절에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라고 했습니다.
또 행28:16-31절에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이루어졌으나 그 응답은 다른 형태로 나타났으며 수많은 과정과 세월이 흐른 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가 성도의 기도에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때를 기다려 응답(應答)하시는 이유(理由)입니다. 전3:1절에 “천하(天下)에 범사(凡事)가 기한(期限)이 있고 모든 목적(目的)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1)성도(聖徒)의 그릇이 준비(準備)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월은 유치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을 덕 있는 사람으로, 교만한 사람을 겸손한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위대한 교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원한다고 해서 그 원하는 대로 금시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면 복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혈기 왕성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자처했을 때 그 자격을 주신 것이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노년이 됐을 때 비로소 출애굽의 지도자(指導者)로 임명하신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성도(聖徒)가 신앙적(信仰的)으로 성숙(成熟)하여 그 주신 축복(祝福)을 잘 운용(運用)하고 관리(管理)할 때까지 기다려 응답(應答)해 주시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섭리(攝理)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라는 간청을 들었음에도 요7:6절에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라고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후에 나귀를 타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입성하시므로 그 간구에 대해 응답하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 내용 중 그 내용은 의롭고 선한 것이나 아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니므로 응답을 즉시 안 하시는 예도 있습니다.
가령 “어서 재림(再臨)해 주옵소서!”라고 간구(干求)해도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기(始期)가 있기에 즉시(卽時) 응답(應答)될 수 없는 기도(祈禱)입니다.
3.때를 기다리는 성도(聖徒)의 자세(姿勢)입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1)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4:2,3절에서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장기적으로 응답을 지체하시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그 응답을 받을 만한 자격을 지니지 못한 예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상태와 자신의 기도내용을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 의식 중 진리에 어긋난 점은 없는지, 또 자신이 원하는 내용에 인간의 정욕과 사심은 없는지 먼저 살피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사욕을 따라 구하는 예가 많기 때문입니다. 2)확신(確信)과 인내(忍耐)를 지녀야 합니다. 만일 성도가 구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부합되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는 것임에도 응답이 지연된다면 이는 “기다리라”는 메시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더 온전한 것으로 응답해 주시려는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응답되리라는 확신을 지니고 그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는 때를 얻든 못 얻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본분에 열중해야 합니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려 그때가 되어 파종하고 수확하듯 낙심치 말고 응답의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기도가 어느덧 응답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즉시 있을 때도 있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고 아예 응답을 해 주시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무응답도 기도의 응답입니다. 기도 응답을 해 주었을 때 오히려 화를 불러 올 수 있으면 기도 응답을 해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릴 뿐이요 응답은 여호와 하나님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뢰는 가도 제목마다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