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19~21)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19~21)

본문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19~21)


예수를, 십자가를 전혀 모르는 할머니가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어느 집의 열려진 창문으로 집안에 걸려있는 그림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에는 나무로 된 십자가 위에 어떤 낯모를 사람이 걸려 있었습니다. 피가 흐르는 이마에는 면류관 가시가 있는 모자가 씌어져 있었습니다. 다리에도 손에도 피가 나 있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까닭도 내용도 알지 못하면서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림에 이상한 힘이 있는지 할머니는 땅에 묶인 것처럼 한참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누가 옆에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처럼 그 집안에 있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그 얼굴을 할머니가 보니 무언가 감격, 감동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저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아느냐.” 아이가 “아, 할머니는 모르셨나 보죠?” 라고 대답하면서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할머니 저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있는 분은 예수님이고요,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로마군인입니다. 울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랍니다. 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때까지도 내용을 잘 모르는 할머니는 너무 슬픈 마음에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참 있다 발길을 돌렸는데 얼마쯤 갔을 때 아까 그림을 설명해 준 아이가 헐레벌떡 따라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그림을 설명 할 때 한 가지 빠뜨렸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답니다” 할머니는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이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죽음의 십자가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시고 기어코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신 것으로 끝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기독교의 권세와 능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위에 계시고 인생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신 예수를 우리 구주로 모시고 우리 또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본받아서 우리도 죽고 부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바로 권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제자들은 겁이 났고 무서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믿고 의지 하던 선생님 무엇이나 못하던 것이 없으시던 그 선생이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죽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죽은 시체를 볼 때 참 겁이 납니다. 시신을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가 염할 때 어쩌다 손과 머리를 잡게 되면 싸늘한 것이 느껴지는데 자주 해도 겁이 날 때가 아주 많습니다. 더구나 죽음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들을 보면 상당히 겁이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연적인 죽음 편안한 상황 가운데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수치와 모욕 온갖 아픔을 겪으시고 참혹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그 선생님의 죽음을 본 제자들은 겁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유대 지도자들은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제자들은 위대하신 자신들의 선생님이 당하셨다면 우리도 이제 곧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겁이 난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아마도 모인 장소는 며칠 전에 스승 예수님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그 다락방 같습니다. 겁이 나니까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문을 연 사람이 없었고 열어 준 사람도 없었는데 갑자기 죽으신 예수님이 방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못 찔린 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창에 찔린 옆구리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몇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몇 마디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자 마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말씀하셨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다시 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평강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정도의 평화가 아닙니다. 아무 일 없는 것 별 탈이 없는 이런 정도의 평화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인 평화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만들어 내는, 힘을 쓰고 애를 쓰고 모든 노력을 방법을 동원해서 만들어 내는 평화입니다. 이런 평화가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아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평강이라는 말씀을 쓰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평화를 누리는가?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그 평화를 누리도록 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만히 앉아서 제자들에게 평화를 너희들이 만들어서 너희들이 누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런 평화가 아닙니다.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써봐야 소용없으니까 마음 가라앉히라는 의미에서의 평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없으므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의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 2장에서도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먹을 양식이 없는데 입을 것, 먹을 것, 치료 할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힘들게 살지 말고 편안하게 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야고보 선생을 통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입을 것, 따뜻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말로만 추운 날씨에 떨지 말라고 말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말씀입니다. 영양 있는 것 잘 챙겨먹고 건강하게 살라고 말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평안할 지어다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책임지고 챙기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그렇게 만들어 주겠으니 너희들은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보고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당신만 믿고 하나님 당신만 쳐다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면 하나님 당신이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체 속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육신을 괴롭히고 여러분의 가정을 괴롭히는 일들이 있다면 우리 주님께서 채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하나님 당신이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없애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인생에 무엇이 꼭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서 여러분들이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면 어디서든지 갖고 와서 채워 주고 챙겨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 땅에 그런 것이 없다면 새롭게 창조해서라도 챙겨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것은 말로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서서 이렇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 당신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출애굽을 할 때 뒤에는 이집트 군사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혀 있어서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갈수가 없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누구든지 흔히 할 수 있는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겁내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말로 끝이 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 하시는지 우리는 알지를 못합니다. 약 200만 명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구원시켜 주실 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한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시는 평화는 바로 이런 평화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우리 주님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 하리라.” 저 뒤에 따라 오는 사람들은 바닷물을 막아서 다시 쫓아오지 못하게 만들고 가까이 오는 사람들은 바닷물로 쓸어버리겠다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사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화를 주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방식대로 하십니다. 틀림없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는 이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싸울 것이니 너희들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싸우실 필요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나설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만 쳐다보면 됩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면 우리 주님께서 평화를 만들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 일, 우리 하나님은 바다를 갈라 주셨습니다. 홍해를 지나고 난 후에도 연약하고 믿음이 없어서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쓴물이라고 징징거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직은 덜 성숙한 사람들인 것을 아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내가 바꾸어 주겠다고 말씀하시고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물 조금 마시지 못하여 힘들어 죽는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먹지 못하여도 그럴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바위를 깨뜨려서 물이 나오게 해 주셨고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 져서 먹게 해주셨습니다. 또 징징거리니까 견디지 못하는 백성인줄 아시고 메추라기를 땅에 가득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일어 난 전쟁이 아말렉과의 전쟁인데 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맨 처음에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게 하셨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전쟁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백성들이 아는 동안 하나님께서 승리를 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평강은 바로 이런 평안입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만들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이 오시면 가정이 평안해집니다. 여러분, 돈이 없는 문제도 아니고 누가 잘못된 문제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에 평안이 없는 것이고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의 지도자들, 가정의 지도자들이 평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예수를 모시기만 하면 어느 곳이든지 간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드리지 못하고 내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가장이 예수가 주시는 그 평화의 권세와 평강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본문 21절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낼 것이니 너희는 나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반기지도 않는 곳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또 내가 아끼는 것, 좋은 것 등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 선교나 전도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절대 순종입니다. ‘왜 하필 나입니까?’ 라는 자기 부정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뜻대로 하십시오. 라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순종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꺼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라는 말씀은 우리들도 예수님이 절대 순종하신 것처럼 절대 순종하여 예수의 사랑과 예수의 부활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고난의 십자가 뒤에는 영광의 십자가가 나타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