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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는 비결 (신 2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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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는 비결 (신 28:12-14)

본문에 하늘에 아름다운 보고 즉 보물 창고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보고는 쉽게 말하면 보물창고를 뜻합니다. 보물 창고가 열려야 복을 받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신령한 복이라는 제목으로 구원 받는 복, 성령 충만한 복 그리고 위로받는 복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우리모두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문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늘 문이 언급 될 때는 대개 하나님이 주시는 영, 육간의 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도가 안 될 때 기도문이 안 열렸다고 합니다. 잘 되면 기도문이 활짝 열렸다고 합니다. 물질의 복도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건강 의복도 하늘 문이 열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도 하늘 문이 열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임합니다. 그래서 하늘 문이 열려야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야곱은 창 28:17절에서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대개 하늘이 닫혀있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신 11: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하늘을 닫아 버리면 비도 오지 않습니다. 단지 구름에서 내리는 비도 하늘이 열려야 하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부분들이 하늘과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하늘 보물 창고가 열려야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는 비결일까요?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고 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흔히 축복의 장이라고 합니다. 68절까지 있는 비교적 긴장입니다. 1-14절까지가 축복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15절부터는 68절까지 무려 네 배가 넘는 54절이 저주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주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그것은 저주받을 일에 대하여 조심하게 하기 위해 더 자세히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잘못하여 저주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8장을 자세히 보면 축복과 저주가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면 그 문을 닫아서 저주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신 28:9절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늘의 아름다운 보물창고의 문을 열고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인 신 28:12-14절 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늘 문을 여는 비결입니다.

토마스 왓슨 목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 보다는 우리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선지자의 말을 순종하므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마지막 양식을 바치라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으로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과 불신의 도시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했고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주님의 음성에 의심치 않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자손 대대 복을 받았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못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던지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하며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의 고기를 잡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성경에서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인격적으로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가 열리고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레오 톨스토이가 쓴 글에 늙은 구두 수선공 마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은 아내와 자식이 죽은 후 한 경건한 오랜 친구에게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나?”라고 절망에 빠져 울부짖었습니다. 그의 친구는 “하나님을 위해 살게” 라고 대답했습니다. 마틴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건가?”
그 신자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보여 주셨으니 복음서를 사서 읽어보면 자네는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인지 알게 될 걸세. 모든 설명이 거기에 있네.”
바로 그 날 마틴은 신약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은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복음 6:27-35을 읽고 나서 마틴은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로 따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하신 29절의 말씀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지를 깨닫기 시작하며 “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지키기 어려운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마틴처럼 우리도 “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아주 어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풍성하고 자유로운 삶을 만드는 것 곧 우리를 위한 것임을 꼭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알고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축복의 하늘문은 활짝 열릴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것 십일조를 바치는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두 번째로 하늘 문에 관한 말씀은 말라기 3:10-1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하늘 문이 직접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 3:10-12절을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신앙 고백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과 그리고 그것들을 주셔서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과 감사의 고백이 십일조를 드림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십일조를 드릴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늘 문을 여는 키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잘 드리는 사람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두 가지의 복이 임합니다.

① 믿음이 성장하는 복이 임합니다.
물질을 드리면 자동적으로 몸과 마음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라고 하셨습니다.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시험이 되지만 자원하는 헌금과 신앙의 성장은 언제나 비례합니다. 잘 드리는 사람이 믿음이 성장하고 복을 받습니다. 왜냐면 물질 드릴 때 물질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헛수고 하지 않게 됩니다.
말 3:11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황충이란 갈가먹는 메뚜기라는 뜻입니다. 이 황충떼가 한번 지나가면 일년내내 수고한 농사가 완전히 헛것이 되고 맙니다. 포도나무의 소산이 익기 전에 떨어지는 것도 헛수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헛수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일년 내내 번 돈을 순간적으로 날려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 감사헌금, 드릴 때 아까워서 벌벌 떨더니 1년 번 돈을 순간적으로 날리고 깨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헌금이나 할걸...」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만큼 황충이 와서 갈가먹어 버립니다.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황충을 막아주신다고 했습니다. 헛수고 하지 않게 하십니다.

③ 나머지를 보장받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나머지 아홉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버는 것보다 보장받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리기 않는 것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놓고 하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믿음의 씨앗이 십일조인데 종자 씨앗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교회의 성도들은 150명이라고 하던데 그 중에 몇 사람이 십일조를 드립니까?” 목사님은 웃으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150명 모두가 십일조를 잘 드립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라며 “아니 어떻게 그렇게 150명 모두가 다 십일조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까? 목사가 대답했습니다.
“150명중에 50명은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고 나머지 100명은 하나님이 직접 거두어 가십니다”

십일조가 아까워서 교회에 드리지 못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나머지를 보장해 주시지만 십일조를 안하면 전부를 보장해주시지 않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닫혔던 하늘 문이 십일조로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3, 베푸는 삶이 하늘 문을 엽니다.

세 번째로 하늘의 문을 여는 비결은 “나눔과 베풂의 삶”입니다. 나누고 베풀어줄 때 하늘 창고의 문이 열려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잠 11:24-25절을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것을 흩어 나주어 주는데 더욱 부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일반적인 경제 원리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일반 은총적 영역에서는 부하게 되려면 쓰지 말고 저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 은총적 영역에서는 나누어주고 베풀어줄 때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히려 과도히 아끼고 인색하게 절약하여도 더욱 가난하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인색 병에 들면 하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색한 것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깁니다. 야고보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약 5:1-5절을 읽어봅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나누고 베풀 때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6: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경제 원리는 나누고 베풀어야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잠 11:24-25절의 말씀이 바로 천국의 경제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천국 경제 원리에 적용되는 방법은 30배 60배 100배 즉 곱하기 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하기 식의 복을 기대합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 식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저축하고 그렇게 모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도 얼마정도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변수가 많습니다. 새나가는 구멍이 많습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얼마를 모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도 모르고 주일도 모르고 열심히 살며 하루 벌어 하루 살고 모아도 평생 모은들 얼마나 모으겠습니다.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삶에서도 특별한 은총을 기대합니다. 그것이 바로 곱하기 식의 복입니다.
첫째 단계에서는 세상적인 방법이 유리합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1+1=2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방법은 1×1=1입니다. 첫 단계에서는 오히려 믿는 사람들이 손해를 봅니다. 진리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둘째 단계에서는 믿는 사람이나 불신자나 다를바 없는 단계가 있습니다.
2+2=4이고 2×2=4 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도 불신자들이 큰 소리칩니다. 너희들 그렇게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치는데 믿는 것이나 안믿는 것이나 다를게 무어냐고요. 하나님이 있다면 왜 복을 안주느냐고 ... 그래서 이 단계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고 주눅들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릅니다.
셋째 단계에서는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3+3=6이고 3×3=9입니다. 이 단계에서 부터는 확실한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네 번째 단계에 가서는 배의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4+4+8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4×4=16이 됩니다. 이제 부터는 불신자들보다 두배의 차이를 보이면서 단계를 거듭할수록 성경에서 말하는 30배 60배 100배의 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의 방법으로 심고 기다려야 합니다. 처음에는 시련이 있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이 내립니다. 천국의 보물 창고가 열리는 복이 임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늘의 보물창고가 열려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의 사역자와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베풀고 나누어 주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열어 주실 것 입니다. 주님오실 때 까지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가 열려서 복을 누리며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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