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배나 나은 축복 (단 1:8-21)
본문
인생이 날마다 순풍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결혼할 때, 아기를 키울 때, 중년의 위기를 겪을 때,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바람이 잔잔해지면 또 다른 태풍이 밀려옵니다. 인생의 풍랑에 정신 없이 휘말리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인생의 강풍 가운데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강풍 가운데서 흔들리는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외면하시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 곁에서 눈물 흘리시며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홀로 겪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숨 소리를 들으시며 중보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고난의 강풍 앞에서 우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달려오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배가 없으면 그 분은 물 위를 걸어서라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어쩌면 우리의 위기는 강풍이라기보다 강풍 앞에서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강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그때,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우리의 도움은 그분께로 말미암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의 저서 중에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는 도덕성을 잘 유지할 수 있다 해도 비도덕적인 사회에 들어가면 근본적인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이 구조적인 병폐 속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누구나 체험하게 됩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신학교에 들어갔던 이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막상 목회 현장에 나설 때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나 교계의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들과 자신의 인간적인 갈등으로 인하여 방황하고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울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며 손바닥으로 강을 막는 초라함을 느끼게 됩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한계를 느끼며 힘들고 못해먹겠다고 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본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결연한 의지와 결단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한 소위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채식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만 섬김으로 십배나 나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믿음의 축복
본문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뜻을 정하여'는 원어상 '마음을 결정하여'란 뜻입니다. 이는 히브리 개념상 '마음'이 전인격의 좌소라는 점과 '더럽히다'가 신적 모독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그들의 전인격을 다해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결단한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에 비추어 이들에게 주어졌던 왕의 음식들이 율법의 음식 규례(레11:2-8)에 어긋나는 부정한 동물의 고기 또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다 왕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 1차 침입 때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 중 일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포로요 인질이었던 셈입니다. 그 중에서 인물이 출중하고 박학다식하였던 관계로 일종의 특혜를 받아 바벨론 왕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개인의 명예와 부귀영화에만 집착하였다면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지간에 오직 여호와 신앙이 투철하였기에 그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와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다는 순교적인 의미입니다. 과연 누가 이런 생각과 결단을 할 수 있을까요?
한 교회의 집사님 부부가 갑자기 지방에 다녀올 일이 생겼습니다. 그 부부는 다섯 살짜리 아들을 누구한테 맡길까 고민하다가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다섯 살짜리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오셨으니, 기도를 부탁해 볼까? 얘야, 네가 식사기도를 하면 어떻겠니?" 목사님이 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모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평소에 엄마가 하시던 대로 하면 돼. 간단하게." 그랬더니 이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쳤답니다. "야, 이 돼지 같은 놈아! 좀 가만히 앉아서 먹지 못해!"
가정은 믿음을 세우는 곳입니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곳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어딜까요? 바로 식탁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305장은 노래합니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식탁이 살아있는 가정이 바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비록 음식의 가짓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다면 그 식탁은 육체적으로 풍성한 식탁입니다. 그곳에서 믿음과 사랑이 담긴 대화가 오고 간다면 정서적으로 풍성한 식탁입니다. 비록 남들에 비해 초라한 식탁이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고, 그 은혜가 경험되는 곳이라면 영적으로 풍성한 식탁입니다.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풍성한 식탁이 있는 그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다니엘은 분명 어려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철저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상이지만 다니엘처럼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자녀들을 교육하여 믿음 충만한 성도와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7년도에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십배의 믿음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얼굴의 축복
본문 15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다니엘과 세 친구는 열흘 동안 채식을 먹고 물을 마셨습니다. 바벨론의 소년들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열흘 후에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바벨론의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였습니다. 열흘이란 기간은 그들의 식생활에 대한 결과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기간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잘못된 결과를 쉽게 만회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여호와의 신앙에 목숨걸고 고수한 다니엘과 세 친구의 승리가 드러났습니다. '얼굴'이란 단지 신체의 일부분에 속하는 표면적인 얼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앙심에서 비롯된 외적인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을 뜻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은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존귀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아름답고 윤택하게 됩니다.
야망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스크루지 영감입니다. 심술궂은 스크루지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주변의 모든 물건을 이용해 한 푼이라도 더 쥐어짜 내는 일밖에는 몰랐습니다. 야망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품게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심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야망을 실천하며 사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야망이 하나님의 섭리와 일치하는 삶은 풍요로우며, 그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은 항상 의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야망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찾으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야망을 품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올바른 마음과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야망들 중에서 재고해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야망들이 어떤 동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냉정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야망을 품어야 할지 결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가정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추구하고 있는 야망들을 검토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이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렇게 해서 주님이 내게 주신 야망들을 이해하고 이에 방해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하나님과 신앙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우상을 섬기게 되고 교만하게 됩니다. 저주와 멸망의 삶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초라해지고 파괴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과 신앙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고백을 한 여호수아처럼 당당한 믿음의 삶을 살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복을 주십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상황 속에서 생명을 걸고 채소를 먹고 물을 마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얼굴과 건강과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2007년 새해에 하나님께서 십배나 나은 아름다움과 윤택의 복을 부어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지혜의 축복
본문 20절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줄을 아니라""
본 구절에서의 '지혜와 총명'은 피상적인 개념에서의 지혜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국정 전반에 관한 지식이나 판단 능력을 의미합니다. '박수'는 문자적으로는 '마술사'나 '점성술사'를 뜻하나 바벨론에 있어서 이러한 자들이 국정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특수한 관료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바벨론의 지혜자들입니다. '박수와 술객'은 바벨론의 모든 학문과 지혜를 대표하는 관료 계급을 일컫는 것입니다. '십 배'는 '열흘'과 같은 의미로 쓰여졌는데 박수와 술객에 대한 네 소년의 완전함과 탁월함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세상의 지혜보다 수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정확히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적인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뛰어납니다. 바울은 세상적인 지혜를 가리켜 없어질 관원의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없어지지 아니할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이 아무리 지혜를 추구했어도 십자가의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한 것입니다(고전1:25).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지혜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떠난 지혜는 없습니다. 미련이고 어둠이며 멸망과 지옥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이 지혜이고 축복입니다.
린다 밀로우의 「만족」이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엘라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따라 52년 동안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친숙했던 모든 것과 고향, 친구들을 떠났습니다. 아프리카 시골의 타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전기, 에어컨, 현대식 편의 시설들은 그림에 떡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더워서 온도계를 실내로 들여와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섭씨 49도를 넘기면 온도계가 고장이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활 여건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엘라는 땀방울이 몸을 타고 흐르며 곰팡내 나는 습한 공기 때문에 잠을 못 이루면서도 불평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엘라의 딸 미미는 최근 어머니의 낡은 일기장에서 이러한 그녀가 만족을 얻었던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①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심지어 날씨조차도- 불평하지 않겠다.
② 다른 환경이나 다른 장소에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지 않겠다.
③ 나의 몫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겠다.
④ '이것 혹은 저것이 지금과 달랐더라면'이라고도 가정하지 않겠다.
⑤ '내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내게 속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비밀은 그녀의 마지막 말에 들어 있습니다. 그녀는 눈을 영원에 고정돼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봤습니다. 또한 그녀의 모든 미래는 하나님의 강하신 팔 안에 든든히 놓여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데 있어 자유로웠습니다. 엘라는 '영원'에 집중했고, 이것이 그녀를 내적인 '만족'으로 이끌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이나 세상이나 그밖에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 십배나 나은 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자녀들에게 십배나 나은 지혜의 축복을 베푸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바벨론과 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하나님만 믿고 신뢰합시다.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맙시다. 하나님만 섬김으로 믿음과 얼굴과 지혜의 십배나 나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