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 (요16:7-8)
본문
황준식 목사 [성경본문] 요 16:7-8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역사적으로 공식적으로 오순절날에 임하신 이후로부터는 성령님은 이제 “모든” 구원 받은 성도들의 마음 속에 거주하십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예수를 영접하는 자마다 성령이 임하시며, 한번 임하신 성령님은 영원히 그 사람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성령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그는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첫째로 성령님에 대한 이해의 가장 중요한 기본은 삼위 일체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2장 3절을 보면 )
하나님에게는 동일한 본체, 능력, 그리고 영원성을 가진 세 인격,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에는 3분이 계신데... 서로 구분 되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단들은 성령님을 어떤 무인격 에너지 정도로 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어떤 무인격체로서 하나님의 에너지나 어떤 속성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신성 모독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 그 분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구분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성령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분이시요, 하나님 아버지와 다른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곧 삼위일체를 알아야 성령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성령님은 성령님은 성부과 성자와 구분되시는 “인격”이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소요리 문답: 5번과 6번을 보면: 삼위일체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In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Spirit. And these three are one God, the same in substance, equal in power and glory.
하나님의 각 위를 Person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글로는 인격이라고 번역됩니다.
그래서 사람 “인”자가 쓰여 헷갈리게 되는데, Person 이란 사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Person은 (지정의)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곧, 성부 = Person, 성자= Person, 성령 = Person : 서로 다른 Person입니다. 그러나 각각 완전하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그리고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구분되는 인격이시라는 사실에 대하여 풍성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제가 마치 다른 분을 언급할 때 쓰는 그러한 남성 존칭형을 쓰고 계십니다.
곧, “저 분” “그 분” 이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성령 그 분이 오시면.... 그 분이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이 “그 분”이란 말 속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은 성령께서는 인격이란 사실이요, 곧, 지정의가 계셔서 다른 인격과 교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인격이시다>란 이 말씀은 아주 단순한 말씀이지만,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성령님에 대하여 인격이시라고 주장은 하지만,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 대화를 하는 것 처럼, 실제로 성령님을 인식하거나 의식하지 않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님에 대하여 관념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Person 이다, 곧 인격을 갖고 계시다 라고 믿으면서도, 인격적 교통과 교제가 가능한 성령님과 실제적 교제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제가 매일 제 아내와 대화도 하고, 시간도 함께 보내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아내를 알아가는 것처럼, 성령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교제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 주님과 대화하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웃고 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신자들은 성령님과 함께 대화를 하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친히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교제한 것과 같은 그런 교제가, 우리와 성령님 사이에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성령님과 대화를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리고 우리의 깊은 생각을 그 분과 함께 나누며 그분과 함께 웃고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인격적 교제를 강조하기 위하여, 성령은 인격이시다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도행전 2장에서 보여 주는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역사 가운데서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뚜렷한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들 가운데 계시면서 하나님과 및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14-16장까지는 거의 대부분 성령님에 대하여 예수께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 14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승천하실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떠나셔야 하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을 이 땅에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곧, 예수께서는 자신 말고 다른 분이 자신 대신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데, 바로 그 분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 자신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사명은 보혜사이십니다.
이 보혜사란 단어는 (파라칼레요)라는 헬라어입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보혜사란 명칭으로 쓰여지는 것은 요한복음 14-16장 사이에 4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 쫓아 해 봅시다.)
보혜사란 단어: “파라 칼레오” 는 확실하게 성령님의 사명을 드러냅니다.
파라: 가까이, 붙어서, 함께, 어깨를 나란히 대고...옆에 항상 서서..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항상 붙어 있는, 대단히 가까운 관계를 의미할 때 : 파라라는 단어를 씁니다.
곧,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파라”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붙어 계십니다. 아니 사실, 우리 마음 속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함께 계십니다. 옆에 항상 서서, 어깨를 나란히 대고, 아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곧, 성령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만나 듯, 예약이 필요하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언제나 우리를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계시고, 그리고 우리가 겸손히 마음만 열만 아무 때나 당장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성경은 그 분이 우리 몸 안에 (고전 3:16, 6:19), 우리 마음 안에 계신다고 (엡 1:13)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전 3: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6: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파라 옆에 붙은 “칼레오” 란 말은 불렀다는 뜻입니다. 사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곧, 성령님께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명은 그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서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를 도우시도록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오순절날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역사가 있는 동안,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요 14;16)
* 보혜사 =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무엇을 하시며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가?
보혜사 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의미는 일차적으로 COMFORTER, 위로자란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고아처럼 버려져서 스스로 외로워 하며 힘없이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애처로와서 성령님을 보내십니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십니다.
따라서 일차적 성령의 의무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격려하는 것입니다.
일로 고생하고 지쳐있습니다. 이때 위로하십니다. 이 때 그들은 성령을 통하여 안식와 힘을 얻습니다.
마음이 상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때 위로자 성령께서 오셔서 그 모든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들어주며 함께 아파합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쩔쩔 매고 있습니다. 이 때 위로자는 와서 정말로 힘이 되어 도와주고 그 상황을 극복하게 돕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너무나 큰 슬픔과 고독에 있습니다. 이때 위로자는 와서 그를 안아 주면서 그 외로운 기간 동안 함께 동행해주고 말벗이 되어 줍니다.
예~ 성령께서 보혜사란 뜻은 바로 이러한 위로자란 뜻이 가장 큰 뜻입니다.
특히 보혜사라는 “파라 칼레오”라는 원어에는 법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변호사란 뜻이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사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불가능한 죄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자비로운 분이 나타나셔서 모든 빚을 청산해 주고, 그를 위하여 무죄임을 변론해 주는 그러한 변호사... 그 뜻이 보혜사입니다.
또한 매사에 어려운 일때마다 가장 좋은 길을 상담해 주는 최고의 상담자라는 뜻이 보혜사라는 단어의 의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자는 많은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상담의 역할을 잘 한답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사명과 소원은, 그 분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충만히 거하시며
주님의 백성들을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가장 좋은 길로 상담해 주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성령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내신 성령님!
그 분은 우리에게 항상 같이 계시며 우리와 교제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이 땅에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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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이 귀하신 성령님과 어떻게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나요?
어떻게 성령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천국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나요?
성경은 가르치길, 성령님과의 인격적 교제의 방법은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우리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과 인격적 교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하면 믿음을 행사하지 않은 동안은 우리는 성령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믿음은 말씀에 대한 믿음이므로 말씀을 모르면 성령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곧 세상 다른 일에 정신이 빠져 지내고 있으면 성령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 가운데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의도적으로 성령님을 찾지 않으면 그 분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님과 교제가 없는 사람은 성령님에 대한 경험이 없고, 그 분이 어떤 분인지 감이 잡히질 않으며, 나아가 성령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그 분이 우리 마음 속에 계심을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 “실제로” 성령님은 경험되어집니다.
그러면서 성령님의 흔적이 눈으로 보이는 세계에서 확실히 보이며, 심지어 실제의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분이 만져지고 정신적으로 체험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령님의 존재와 활동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의 실제 눈으로 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바람을 우리의 피부로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요, 그 바람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그 바람이 지나고 난 폐허의 자리를 보면서 알 수 있듯이, 성령님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바람을 체험한 이후에 바람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듯이, 한번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를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듯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던 성령을 체험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의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님은 모든 보이지 않은 세계의 비밀들을 우리에게 실제로 보여 주시고 우리의 믿음의 세계를 우리의 현실의 체험과 삶의 세계로 옳겨 놓으시는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과 및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들을 증거하십니다.
따라서 신자로서 삼위 일체의 3위 되시는 성령님을 이해함과 그분을 체험함이 없이는, 그가 신자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사람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이 땅의 많은 신자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예수를 영접하여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는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신기함으로 교회를 열심히 다닙니다. 세례를 받을 때면, 온 마음을 다하여 오직 주를 위하여 살아 보겠다고 다짐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다니고 성경 공부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욕도 사라지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답답함 속에 머무는 신앙 생활이 됩니다. 죄에 승리하지 못합니다. 세상 유혹에 빠져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먹고 사는 일로 쫓기게 되면서 신앙은 뒤로 쳐지게 됩니다.
어느새 신앙이란 것은 형식만 남게 되고, 성경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 그냥 교회만 다니는 Churchian (교인)이 되어 버립니다.
어디가서 전도 한번 하지 못하고 매일 세상에 쫓겨 사는, 아무 힘이 없는 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답답하고 생동력이 없는 신앙 생활의 모든 이유는 신자들이 성령님이 누군지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고, 특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 가는 그 승리의 삶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말씀드리는데요, 신자들이 성령님과 함께 교통하며 살지 않고서는 절대로 승리의 그리스인의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체험하는 자들은 드디어 그의 신앙의 세계가 현실적 체험으로 와 닿고, 하나님이 그의 삶 속에서 만져지고 느껴지기 때문에, 그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권능을 나타내는 살아 숨쉬는 엄청난 생명력이 있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일생 마치는 그 날까지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을 향한 믿음을 통하여 더욱 그 분을 체험하고 알아간다면, 계속 풍성한 믿음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을 의식하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을 의식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중요한 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 사도 및 히브리서 기자, 그리고 사도 요한 및 누가 등... 모든 주의 제자들마다 성령님과의 개인적 교제가 긴밀하게 있는 것을 증거하며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님과의 개인적 인격적 교제를 요청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성령님과의 교제를 신학적 표현으로 <성령과의 교통>이다라고 말합니다.
축도할 때에도, 주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에서 성령의 교통하심이란 뜻이 바로 여러분들이 성령님과 인격적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과의 인격적 개인적 교제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가능하기 시작하면, 그 동안 무심히 지나가던 성령의 역사가 이제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 분의 일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며,
우리의 양심에 음성을 들려 주셔서 죄에 대하여 아프게 하시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싶은 욕구를 주십니다.
또한 동시에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사랑들이 우리 마음 속에 생기고, 기도를 하는데, 기도의 권능도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절대로 깨달아지지 않았던 진리들이 깨달아지기도 하고,
또한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서 기억나게 하시는 그런 역사도 체험하게 됩니다.
그 동안 항상 어떤 죄악에 대하여 패배만 하던 자신이었는데, 성령님의 도움으로 죄를 이기는 자신을 보면서 성령님의 도움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또한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영원한 징표가 되어 주심을 알면서 정신적 위안과 확신을 얻게 됩니다.
전에 없었던 사랑이 교회를 향하여 샘솓고, 그러면서 성령님으로 하여금
주님의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힘과 여건과 은사를 공급받게 되면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분과의 교제가 깊어지면,
우리는 그분의 인도함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사건과 환경 속에서,
성경의 말씀과 더불어서, 그 사건과 만남과 환경을 통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게 하심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때는 기적과 같은 병낳는 역사도 나타나고, 완고한 마음의 사람들이 우리들의 기도와 대화를 통하여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지혜와 영적인 힘을 주시는 성령님을 느끼게 됩니다.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성령과 인격적 교제를 하며 지난 세월을 돌아 볼때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복이 있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게 하셨는 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성령님보다 더 예수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장 잘 아셨던 것 같이 성령님만이 예수를 가장 잘 아십니다.
사실 성령님의 조명없이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자요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영원토록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 수가 없답니다.
곧 성령이 없이는 예수를 알 수도 없고, 구원의 길을 깨달을 수가 없으며, 그러기에 성령님이 없는 자들은 다 눈이 먼 장님들과 같이 영원한 구덩이에 빠져 영원한 지옥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성령님께 맡기신 그 사명을 감당하시는 데에 있어 가장 큰 방해는, 사탄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그 방해는 우리들의 마음의 주인인 우리들 자신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도와 주시고, 알려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한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역사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그의 백성들이 무지해서 성령님을 모르고 있고, 알더라도 그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성령님을 의심하거나, 또는 그 마음을 열어 성령님과 교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치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것처럼 성령님께 마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성령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을 기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가장 큰 기쁨은 여러분과 교제하시면서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돕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혜사로서 오신 그 분의 사명은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돕고 사랑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
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빌 2: 1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 3: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
}
사랑하는 여러분!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을 성령님께 드리기 바랍니다.
성령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 분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반갑게 영접하시길 원합니다.
< 성령님... 그 동안 몰라 봐서 죄송합니다.
제 마음 속에 계신데도 제가 마음 문 열지 않은 것 죄송합니다.
이제 제 마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제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 제 마음을 드립니다. 저를 가지세요. 제 인생을 드립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그 분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을 찾고 구하고 사모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
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때가 되어 성령님과 깊은 친분이 만들어지고, 그분과의 많은 추억이 생기고
그 분을 향한 확신이 생기면, 이제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며 우리를 통하여 많은 죽은 영혼들이 영생을 얻고,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능력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또 다른 보혜사! 하나님과 성자 예수께서 보내신 보혜사를 감사하며, 그 분을 찬양하고 예배하시는 복된 주의 백성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