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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망은 새 힘 발전기입니다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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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망은 새 힘 발전기입니다 (사 40:27-31)


옛날 이야기입니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대견스러웠습니다. 너무나 귀여웠습니다. 잘 생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고양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호랑이가 힘이 세겠지.>
그래서 <호랑이 고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보니 호랑이가 포수에게 쫓겨서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니다. 포수가 호랑이보다 힘이 더 센가 보다.>
그래서 <포수 고양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가다 보니까 포수가 밥을 먹지 못하고 비실비실대는 것이었습니다. 고양이는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아. 곡식이 더 포수보다 힘이 더 센가 보다.>
그래서 <곡식 고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곡식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오지 않으면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 고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비는 구름이 없으면 헛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구름 고양이>라 지었습니다. 그리고 구름을 보니까 바람에게 이리저리 쫓겨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이름을 <바람 고양이>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은 벽이 있으면 꼼짝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벽 고양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한참 지났습니다. 어느 날 보니 벽이 다 허물어져 이 곳 저 곳에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들쥐가 벽에 구멍을 내고 허물어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벽을 쥐가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중얼거렸습니다.
<벽보다 쥐가 더 힘이 세구나!>
그래서 <쥐 고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쥐는 고양이한테 꼼짝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고양이 새끼 이름을 <고양이 고양이>라고 지었습니다.
짐승도 사람도 모두 힘을 원합니다.

그러면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가요?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1. 소년이라도 피곤합니다.

소년은 누구입니까? 한창 힘이 솟구치는 나이의 남자입니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왕성한 나이입니다. 무박3일을 여행하여도 피곤하지 않은 나이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당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앗수르입니다. 한창 발전하는 나라입니다. 왕성한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중에는 강대국 앗수르에 의지하여 살자는 앗수르 파들이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친 앗수르파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앗수르도 피곤할 때가 있으니 앗수르를 의지하면 안 되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새 힘을 얻어야 한다고 예언하고 격려하는 말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모두 피곤하여 있습니다. 피곤한 인생입니다. 불쌍할 정도로 피곤에 지쳐있습니다.

왜 피곤합니까?

(1) 일이 잘 안 되면 피곤합니다.
일이 잘 되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일만 잘 되면 아무리 열심히 일하며 잠이 좀 부족하여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피곤은 육체적인 언어가 아니라 심리학적 언어입니다. 몸이 피곤하여 피곤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피곤하여 피곤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밤 늦게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가 지쳐 있었습니다. 한없이 하품을 하고 조는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피곤하시지요?>
기사가 말했습니다.
<손님들만 많으면 안 피곤한 데 일감이 없어서 피곤해요.>

TV에서 오징어 잡이 배들이 밤새 오징어를 잡아 가지고 새벽에 항구로 들어 왔습니다. 앵커가 물었습니다.
<밤새 한 잠도 안 잤나요?>
<네.> <피곤하지요?>
<고기만 많이 잡히면 안 피곤해요.>

(2) 꿈을 잃어 버리면 피곤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항상 생기가 넘치게 됩니다. 열정이 생깁니다. 힘이 솟구칩니다. 꿈을 버린 사람은 밤낮 지쳐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모험을 모릅니다. 도전할 줄을 모릅니다. 삶이 단조롭습니다. 안일하게 하루 하루 살아 갈 뿐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듭니다.

(3) 즐겁게 살지 않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즐겁게 살면 피곤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면 피곤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이 종살이, 감옥살이 하면서 한번도 짜증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자는 계획을 가진 남자를 좋아 하고, 남자는 미소를 가진 여자를 좋아 한다.>

요즈음도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간 신문을 보니 노 무현 대통령 그만 두면 살 집을 기공하는 데 돼지 머리를 놓고 절하며 고사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장에 가면 돼지 머리를 쌓아 놓고 팝니다. 그런데 웃는 돼지 얼굴 머리는 웃지 않는 돼지 머리보다 5만원 더 비싸다고 합니다.
즐겁게 살면서 항상 웃는 얼굴은 피곤을 이기는 비결이 됩니다.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합니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즐거운 것입니다.
어느 음식점은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종업원들이 거울앞에서 웃는 연습을 매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기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125억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약부터 입당까지 123일입니다. 매일 1억씩 지불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배가 기적입니다. 3월 4일 1300명이 첫 예배를 드리려고 계획하였는 데 1500명 정도 될 분위기입니다. 우리는 그 날부터 모르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웃어야 합니다.
케네디와 닉슨이 대결하여 케네디가 이겼습니다. 비결은 케네디의 미소였습니다. 그는 항상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얼굴입니다. 그러나 닉슨은 항상 근엄한 얼굴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피곤이 몰려 와도 웃는 사람을 좋아 합니다.
즐겁게 살지 못 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우리 몸속에는 650개의 근육이 있는 데 한번 통쾌하게 웃으면 231개 근육이 움직여집니다. 그래서 위장, 심장, 가슴 근육을 움직이게 하여 즐거워지고 피곤이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즐겁게 살지 않으면 피곤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게 살면 피곤합니다.

2. 장정이라도 넘어집니다.

장정은 누구입니까? 한창 무르익은 나이입니다. 성경은 군인 나이를 장정이라고 합니다. 대개 30세에서 50세 남자를 장정이라고 말합니다. 한창입니다. 큰 일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정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당시 앗수르보다 먼저 생겨서 발전한 강대국 바벨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이 없어지고 나약하여 지니까 소년같은 앗수르를, 장정같은 바벨론을 의지하자고 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친미파와 친중국파로 갈라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소년같은 앗수르도 피곤에 지칠 때가 있고, 장정같은 바벨론도 넘어지고 자빠질 때가 있으니 그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 장정이 넘어집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넘어지고 자빠지게 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전진하는 사람은 넘어지는 것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쉬는 시간입니다. 넘어져 쉬었다가 다시 일어납니다. 오뚜기같이 일어나서 다시 달려 갑니다.
항상 할 수 없다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넘어져 있게 됩니다. 항상 할 수 있다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힘차게 일어나 전진합니다.
부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넘어지게 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힘을 얻습니까

이사야는 새로운 힘을 얻는 비결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 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새로운 힘을 발전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힘이 필요합니까?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필요없는 사람에게는 힘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힘이 필요한 것일가요?
힘든 일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힘이 필요합니다. 도전하며 전진하려는 사람에게 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언제나 전진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코도 옆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뒤로 쑥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앞으로 튀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귀도 앞에 소리를 듣도록 앞을 향하여 열려져 있습니다. 눈도 앞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뒤통수에 눈이 하나 더 있으면 자동차 백밀러처럼 편리할 텐데 하나님은 눈을 뒤에 만들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전진하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전진하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머믓거리는 사람은 전진할 수 없습니다. 방황하는 사람은 전진할 수 없습니다.

건초더미를 양 쪽에 쌓아 놓고 가운데 노새를 놓았습니다. 얼마 후 노새가 죽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먹을 것 사이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이 쪽 것을 먹을가 저 쪽 것을 먹을가 결단하지 못 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굶어죽었습니다.
이제 방황을 끝내고 도전하며 전진하여야 합니다.

종에게 감자를 캐주면서 큰 감자는 오른 쪽에, 작은 감자는 왼 쪽에 그리고 중간 감자는 가운데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종은 감자 하나를 들고 해가 지도록 서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종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이 감자를 어디에 놓을 지 모르겠어요.>
인생을 망설이다가 다 버리면 안 됩니다. 이제 힘차게 전진하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무능입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실패입니다. 초고성능 기관차라도 정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바퀴 앞에 조그만 돌을 하나 놓아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200km 달리는 전차 앞에는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혀 있어도 뚫고 나가는 능력의 힘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나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가서 성막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때 큰 아파트에 보잉 747 비행기가 날다가 떨어져 부딪쳐서 한 채가 고스란히 쓰러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달리는 힘은 놀라운 힘입니다. 가만히 굴러가는 비행기는 집도 넘지 못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일가요?
그 비결은 간단합니다. 이사야가 그 비결을 확실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 힘을 얻는 비결입니다. 앙망은 힘을 일으키는 발전기입니다. 이사야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알지 못 하였느냐 듣지 못 하였으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으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한 때 우리 나라에서 건강강의로 유명하였던 이 상구 박사는 지금 미국에서 갈고 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 강의할 때 이런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쓰레기통이다.>

얼른 들으면 하나님을 비하하는 말같지만 사실은 좋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데 이보다 좋은 표현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강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내가 만난 하나님은 쓰레기 통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어디에도 버릴 수 없는 쓰레기를 잔뜩 안고 살고 있습니다. 병의 쓰레기, 모두가 갖기 싫어하는 절망의 쓰레기, 슬픈 쓰레기, 죄의 쓰레기를 잔뜩 안고 살고 있습니다. 내 이런 쓰레기를 모두 담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안 계십니다.
내가 이런 쓰레기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맡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망설이지 않으시고 모든 쓰레기를 맡아 주셨습니다.
이 분이 내가 만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쓰레기 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사람의 쓰레기를 다 담당하여 주시는 쓰레기통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힘을 더 하시는 힘의 공급자이십니다. 그렇기에 ·앙망은 힘을 일으키는 발전기입니다.
앙망한다는 원문의 뜻은 새끼 새가 어미 새를 향하여 입을 좍 좍 벌리면서 먹이를 기다리는 그 모습입니다. 오직 먹이 하나 먹으려고 찢어져라 입을 벌리며 오직 어미를 바라보는 눈을 앙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배고픈 거지 어린아이가 어디에서 빵 한조각을 얻어 먹기 위해서 깡통을 내밀고 주인의 자비를 구하는 자세를 앙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성령님!
오직 예수님의 도움만을 바라며 기도하고 매달리는 것을 앙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나 혼자 달려가도록 하나님이 내 버려 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하도록 고독하게 나를 내 버려 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할 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새 힘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는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은 사람은 이렇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새 힘을 얻은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치면서 올라감같이 힘차게 일하게 됩니다. 아무리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게 됩니다. 오래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됩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리간다는 말은 연구를 많이 한 말입니다.
조류 연구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독수리는 어릴 때부터 어미로부터 독한 훈련을 몸에 익히는 새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새끼가 성숙하면 어미 독수리를 새끼 독수리를 엎고 낭떨어지로 가서 사정없이 떨어 뜨립니.
새끼 독수리는 발버둥치며 떨어집니다. 그러면 어미가 가서 등에 받아 가지고 다시 올라와서 다시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가 치솟아 올라 올 때까지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치솟을 때 다른 새들이 날개에 걸리면 몸이 찢어져 죽는다는 것입니다.
새끼 독수리는 비둘기 크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치솟는 힘은 어느 새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힘있는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독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 만번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다른 새들은 독수리가 날기만 하면 모두 도망을 칩니다. 이런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도 2700년전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고 있던 중에 길을 잃었습니다. 너무 깊은 산속이라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빨리 산밑으로 내려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산밑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한없이 헤메며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여보게! 왜 헤메고 있나?>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었다면서 내려가면 어떻게 하나? 산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게. 방향을 알게 되고 꼭대기에는 반드시 내려가는 길이 있는 법이라네.>
그래서 그는 산위로 올라갔습니다. 방향이 확실하게 잡혔습니다. 그 쪽으로 난 길이 보였습니다. 무사히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새 해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새 힘이 생깁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앙망은 새 힘의 발전소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올라가야 합니다.
새 힘이라고 할 때 <새>라는 말은 원어로 카이로스가 되어 있습니다. 원어에 새롭다는 말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카이로스와 네오스입니다. 네오스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말이고 카이로는 질적으로 새롭다는 말입니다.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똑같은 것인 데 새로운 것을 샀을 때에는 네오스입니다. 그러나 질적으로 아주 좋은 것으로 바꾸었을 때에는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다음에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평안하게 들어간다 할지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저절로 이스라엘 민족의 땅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7족속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절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단강은 홍수로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광야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망막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앞으로 전진해라. 발을 요단강에 들여 놓으면 역사가 일어나리라. 범람하는 요단 강물을 두려워하지 말라. 저 여리고 성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가나안 땅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앞으로 전진해 가라.>
여호수아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발을 요단강에 들여 놓았습니다. 첫 발을 들여놓자 요단 강은 갈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여리고 성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성도님 주변은 문제 투성이로 가득차 있지 않습니까? 해결의 길이 없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해관계로 모인 99명보다 믿음의 사람 한 명의 힘이 더 강하다.>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삶이 새 해에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능력의 발전기가 돌아가며 독수리처럼 능력이 발전됩니다.
하나님 앙망하여 새로운 힘을 발전하는 발전기를 오늘 무료로 선물받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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