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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불입니다 (왕상 18: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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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불입니다 (왕상 18:30-40)

어느 신학자는 믿음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송충이를 잡아다가 원을 따라 줄을 세워놓고 중앙에 먹이를 갖다 놓으면
어느 한 녀석도 그 먹이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앞에 녀석 꽁무니만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드럼 소리를 듣고
그 대열에서 뛰쳐나와 먹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라고 비유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의 해로 선포하고
Again 1907을 외치고 있습니다.
Again 1907, 이것은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북소리를 듣고 안주하는 곳에서 뛰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교회로 나아와 하나님의 희망의 북소리를 듣고 믿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90년대 이후 정체 내지 침체되어 가고 있는 대열에 안주하지 말고
Again 1907의 하나님의 드럼소리에 맞추어
정체의 대열에서 뛰쳐나오는 우리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7년은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라고 평가받는
그 놀라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1월14일은
바로 평양대부흥의 역사적인 기름 부으심이 있었던 그 날입니다.
그러니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일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시 그 놀라운 부흥을 사모하여 꿈을 꾸며 회복하는 일입니다.
부흥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평양대부흥운동과 엘리야의 갈멜산상의 부흥을 재조명하므로
다시금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다시금 이 도성에 하나님의 부흥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평양대부흥이란 어떤 하나님의 사건입니까?
1. 평양대부흥의 개요와 의의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블레어 선교사는 평양대부흥운동을 가리켜
[ 한국의 오순절 ] 이라고 불렀습니다.
행2장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 교회가 경험했던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연상할 만큼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 모였던 교인들 가운데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행2: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처럼
평양대부흥운동도 결코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 민족의 불운한 미래를 내다보신 하나님께서
일찍이 1890년에
당시 헌신된 조선 선교사님들을 통해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채택케 하시고
계속된 사경회, 즉 말씀 운동을 통해 큰 부흥을 준비케 하신 것입니다.
먼저 1903년에 원산에서 하디 선교사를 통해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남으로
한국 교회는 크고 작은 영적 각성을 경험하면서
더 큰 은혜, 더 큰 부흥을 사모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게 됩니다.
1906년 8월 이후 평양선교사 사경회, 서울 선교사 사경회, 목포교회부흥
나아가 정오기도회는 평양대부흥의 발단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1906년 9월에 존스톤 선교사가 입국하여
2년전 영국 웨일즈에서 일어난 대부흥의 역사와
인도의 카시 지방의 부흥 소식을 전해 주었을 대
부흥을 사모하는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큰 도전과 자극을 받습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리는
평안남도 겨울 남자 도사경회에 대한 기대와 사모함이 대단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성탄절 휴가를 반납하고 매일 기도회로 모여
이 땅에 웨일즈에서 인도에서 일어난 부흥처럼
성령님께서 놀랍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겨울 사경회에 남자 성도들이 1000여명 참석했는데
역대 사경회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1월 13일 주일에는 평양 네 교회에서 각기 흩어져 주일 낯 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는 장대현 교회에서 함께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기대와는 달리 집회에 큰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14일 밤 윌리엄 헌트 선교사의 설교가 끝나고
이 길함(그레암 리) 선교사가 통성 기도를 인도했습니다.
통성기도 후에 사회자는
더 기도하고 간증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아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 5,6백명이 남았습니다.
이때부터 이 길함 선교사의 말을 빌리면
[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목도하지 못했던 그런 집회가 시작되었다 ] 고 합니다.
이 길함 선교사의 글에 보면
[ 그날 밤에 한 사람씩 일어나 회개하며 꼬꾸라져 바닥을 치며 통회자복했으며
눈물바다가 되어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 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길선주 목사가 설교를 맡았는데
더 강력한 성령의 은혜가 임하여 그날 밤의 장면을 설명하기에는
그 어떤 단어도 적합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불, 성령의 불이 임했던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의 가멜산상의 하나님의 불이 임한 사건을 통해서
다시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부흥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슴의 배경이 되는 선지자 엘리야 시대, 어떤 시대입니까?
2. 엘리야 시대의 백성들의 영적상태는 어떠했으며(참조/21절)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의 기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30절)
사실 이스라엘 역대 가운데
솔로몬 왕 이후에 가장 부강하고 막강한 때가 아합왕 때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합 왕은 16:30절 이하에
[ 아합이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더라 ]
즉 하나님 앞에 가장 악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이 악을 행하는 배경으로는
<시돈 왕 옛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바알 사당을 짓고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더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시돈은 무역의 중심 국가였습니다. 부강한 나라였읍니다.
그러니 시돈과 사돈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돈의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겼다는 것은
바알은 농사의 비 내리는 신으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그리고 아세라는 쾌락의 신으로 우리도 한번 즐겨보세
그래서 이세벨과 혼인하고 바알 아세라 우상을 섬기게된 것입니다.
나라가 부강해지니 다음 하는 일이
16:34절에 보면
[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
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가?
바로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입경 시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사람이고 건물이고 성중에 있는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말라고 했습니다.
혹 이스라엘이 하나님 모르는 세상문화, 그기에 마음을 빼앗길까봐였습니다.
그리고 [ 여리고를 다시 건축하는 자가 있으면
자식을 잃어리라 ] 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를 다시 건축하려고 했다는 것은
잘 살게 되니 바로 세상문화를 동경하는 당시 타락상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말로 하면
국가가 부강해지니 카지노, 터키탕 허가하고 경마장 만들고
사람들이 살만하니 호화별장 짓고 러브호텔 짓고 술집 짓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리고성 다시 건축하는 자는 자식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잘살아 세속문화가 발달하면 다음 세대는 망하는 것입니다.
혹 교인들 중에 유흥업소 퇴폐업소 부동산투기 하시는 분들
돈은 벌지 모르지만 자식들 망친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은 이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깨어있어야 하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강한 권력을 배경으로 하는
우상문화와 거센 세속적인 물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19:21절에 보면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
즉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오면 하나님 찾고 세상 나가면 세상스타일로 살아가고
이것이 당시 하나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하늘문을 닫으신 것입니다.
바알이 비 내리게 하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6개월 동안 비를 거두신 것입니다.
얼마나 가물고 사마리아에 기근이 들었는지
아합 왕과 궁내대신 오뱌다가 직접 땅을 두루 다니며 물을 찾는 형편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일차적으로 경제적 재제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전쟁이 오고 다음은 멸망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처럼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부흥의 역사를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선교 100여년 만에 정체 내지 침체기를 만났지마는
하나님은 이 땅에 부흥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나도 내게도 비록 지난 삶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다가 기근을 만났지마는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나를 통하여 부흥의 역사를 나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옛날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던 메시지가
오늘 우리 귀에도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30절에 [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

1) 30절 [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내게 가까이 오라 ] 고 합니다.
지금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합니다.
왜 머뭇머뭇합니까? 유리한데 붙으려고 그러는 거지요.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확신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관망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유익되는데 붙으려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나를 위한 종교입니다.
내게로 가까이 오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내 편에 서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게 가까이 오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설 것을 결단하라는 말입니다.
나의 삶에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면
바알을 등지고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 편에 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2) 30절 [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불의 응답은 대부분 단을 쌓을 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쌓는데서 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예배를 안 드린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이 금 은 백향목으로 지은 아름다운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마음이 바알에 가있기 때문에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마음이 세상 쪽에 기울여져 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미국 신학자 <위즈비>의 말을 기억하시죠.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교회이며 교회의 유일한 희망은 예배이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무너져 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더라도 형식적 습관적으로 드리지 말고
바른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쏟아 붓는다면 얼마든지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삶이 어렵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큼은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결코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의 사활이 걸려있는 시간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날 때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3. 하나님의 부흥의 특징이 무엇일까요?(32-35절)
1)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기 위해
먼저 31-32절 에서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에 따라 열두 돌을 취하여 단을 쌓았다」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대로 열 두 돌을 취하여 단을 쌓았다는 것은
오늘 교회 교인들 모두가 마음이 하나 되어야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 성회 하나 되어야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이 실패한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한군데 아프면 몸 전체가 스톱되는 것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로 보십니다.
수7:에 가나안 입경 후
금성철벽 여리고성 점령은 쉽게 이루어졌는데
후에 작은 아이성 공격할 때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간이란 자가 노략물 중 일부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이탈이 이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오늘 나 한사람 때문에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 되지 아니한다면 어떡하겠습니까?
나 한사람의 무관심 때문에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하겠읍니까?
행2:1절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
행2:46절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
행4:32절 [ 모인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
이것이 오순절 성령역사의 특징인 것입니다.
평양대부흥도 그날 밤에 장대현 교회에서 남자만 1500여명으로 불어났습니니다.
이번 부흥회 다 같이 한 곳에 모입시다.
다 같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흥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 33절에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합니다.
바른예배는 제물의 각을 뜨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각을 뜬다는 것은 바로 구체적인 회개를 말하기도 합니다.
회개란 나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것을 치우는 것입니다.
렘5:25절 [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을 치우는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것을 치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마음의 온갖 잡동사니 비우고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부흥의 불길은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특징은 바로 회개를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회개 없는 부흥은 있을 수 없습니다.
행2:37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백성들이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 하니
[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평양 대부흥 전에 1903년 원산의 부흥운동의 조짐도
선교사 하디(Dr. R.A. Hardie)가 ‘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학벌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한국인들을 무시하였다‘ 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원산의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양대부흥도 이 길함 선교사가 기도회를 인도할 때
당시 한국교회의 지도자인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 임종을 앞둔 한 나의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소.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주면 좋겠소.’
나는 ‘걱정마오, 내 그렇게 해 주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나는 미망인의 돈 100달러를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방해했으며,
100달러를 내일 아침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럴 때 즉시 벽이 무너져 내렸고
그 거룩한 자, 하나님이 임하셨음이 느껴졌습니다.
죄에 대한 통회가 청중을 휩쓸었습니다.
예배는 주일저녁 7시에 시작했는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끝나지 않았으며,
그 시간 동안에 약 12명이 죄를 고백하기 위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울며 서 있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더 들면
한 의료 선교사의 요리사를 하던 교인이 일어나
‘나는 매번 의료 선교사를 속여 왔으며,
내 집과 재산이 의사를 속여 확보한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요리사는 자신의 집을 팔아 그 선교사에게 그것을 모두 갚겠다고 했습니다.
한 선생은
선교사로부터 선교회를 위해 얼마의 땅을 사도록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땅을 확보하고 가격이 500달러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는 비록 너무 큰 금액이었지만 요구하는 금액을 지급했습니다.
그 선생은 자신이 실제로는 그 땅을 80달러에 확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갖고 있는 전 재산을 팔아
선교회로부터 사취한 420달러를 다 갚았습니다.
종군 기자 매켄지에게는
자신에게서 4달러가 못되는 돈을 사취한 한 급사가 있었는데
부흥운동 기간 동안 자신의 죄를 깨달은
그 소년은 80마일을 걸어가 한 선교사에게
그 돈을 매켄지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평북 의주에온 한 부자가
자기에게 첩이 있는데 정리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거의 완벽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아온 한 집사가 있었는데
부흥운동이 진행되면서 그는 자선기금 얼마를 사취했음을 고백했습니다.
어떤 교인은 7계명을 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일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기 위해 왔으나 두려움 가운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빈둥거리는 호기심으로 교회에 찾아온 깡패 두목이
죄를 깨닫고 회심했으며, 그리고 곧 경찰관에게 가서 자수했습니다.
깜짝 놀란 경찰관은 “당신을 고발하는 자가 없고 당신이 자수했으니
우리 법으로는 당신 사건을 다룰 수 없다”며 그를 석방했습니다.
한 일본 관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드디어 그의 모든 불신앙이 휩쓸려 지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바로 회개와 각성의 운동이었습니다.
평양부흥운동은 바로 회개의 불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의 응답은
먼저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의 가슴 속에
세속적 허영 된 욕망과 거짓을 불살라 버리듯이
우리의 가슴과 마음과 삶 속에 죄를 불사름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럼 부흥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4. 부흥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합니까?(36-38절)
오늘 엘리야의 갈멜산상 대결은
바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말해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은
갈멜산의 엘리야의 하나님 하면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지만
부흥의 신앙의 긴급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멜산 산의 엘리야의 결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급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이 걸려있는 사활의 문제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앞에 사활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90년 들어서면서 교회가 침체되어가고 있습니다.
침체된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기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책이 있어도 거대한 세속불결에 너무 미약할 따름입니다.
마치 교회와 세상은
애굽 왕 파라오 앞에선 촌부 모세와 같습니다.
골리앗 앞에선 소년 다윗과 같습니다.
미디안 135,000명을 감당하는 기드온 300용사와 같습니다.
그래도 비록 소수지마는 기드온 300명 같이 영적으로 민감한 자들이라면 몰라도
교인들마저도 3분의 2는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자들입니다.
정말 대책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인간적으로 대책이 없을 때 대책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역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여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절박한 때에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북소리는
내가 함깨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대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흥의 신앙에 눈이 뜨여져
우리 내일교회에 지금 내가 예배드리는 이 자리가, 이번 부흥회가
엘리야의 갈멜 산상의 제단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학자 알버트 반즈는 말합니다.
「지금도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부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그 날에는 교회사의 새로운 장을 열것이며
오순절 날에 나타난 것같은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불로 응답하는 갈멜산 제단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이 임하기 위하여 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생명의 사활이 걸린 문제에 승리케 하고
3년 6개월 메마른 당에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응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내일교회가 갈멜 산상의 승리의 제단이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제 엘리야가 하나님의 불로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무어라고 부르짖습니까?
3. 36절「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이것은 골리앗 앞에서 물맷돌을 들고 나아가는 다윗의 고백과도 같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소리칩니다.
삼상17:46절「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리니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노라」
성도 여러분! 비록 에리야 앞에 막강한 아합과 바알 선지자 같이
우리가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고
비록 다윗 앞에 거장 골리앗 같이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흥의 신앙을 갖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함을 나타내 보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함게 함을 나타내 보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인간적으로는 대책이 없지마는
대책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즉 불로 응답하시면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명이 나가떨어지듯이
우리 앞에 장벽이 무너질 줄 믿습니다.

엘리야를 통한 갈멜산상의 부흥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5. 엘리야를 통한 갈멜산상의 부흥의 결과는 어떠합니까?(39-40)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갈멜 산에 모여
자기들의 신을 위하여 단을 쌓고 오전 내도록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응답하소서」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큰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 칼을 가지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여 피가 흐를 지경에 이르러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저녁 소제드릴 때가 되어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소서 ]
[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소서 ] 라며 부르짖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단을 태웠던 것입니다.
이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를 도망하지 못하게 하고
잡아서 기손 시내로 데려가 거기서 죽였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승리요 교회의 승리인 것입니다.

평양대부흥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평양에서 한국 전역으로 저변확대 되어갔습니다.
1907년 중엽까지 평양 지역과 관련하여서 3만 명이 회심했습니다.
장대현 교회에 만약 2천명이 빼곡히 앉는다면 너무 밀착해
다리를 좀 편하게 하기 위해 앉아서 일어선다면
결코 다시는 앉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교인이 3천명으로 불어나
여인들이 먼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난 후 남자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평양 남쪽에 있는 한국의 고도(古都) 송도를 지나갔는데.
1907년에 부흥운동으로 그 교회에 500명이 증가했으며,
1910년 한 달간의 특별전도집회 동안에 2,500명이 모였으며.
1907년 서울에 모든 교회가 사람들도 가득 찼습니다.
수도 서울의 서쪽 제물포 항구에 있는 감리교 선교회에는
1907년에 800명의 교세를 가진 한 교회가 있었는데
1500명의 교세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항구 반대편에는 인구 17,000명의 한 섬이 있는데
그 섬의 교회들은 세례교인이 4,247명이었고
그들 중 반 이상이 그해에 세례 입교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곧 섬 전체가 주의 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남부 지방 도시 가운데 하나인 대구의 아담스(James E. Adams) 선교사는
그들이 10일 동안의 기도회를 가지고 부흥을 간구하자
성령이 일곱째 날에 놀랍게 찾아오셔서
대구교회에 부흥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부흥운동의 한 가지 결과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드는 바람에
대구 시내 교회 예배 공간이 너무 작아졌고,
시골 전역에 교회들이 새로 시작되었습니다.
대구지방에서 1907년에는 6,144명의 회심자를 얻었습니다.
황해도 선천에서는 800명 모이는 교회가 있었는데
1년 만에 870명이 불어나 1500명을 수용하는 교회당을 건축했다고 합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말씀에 토대를 둔 사경회에서 출발한 성령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나아가 성령의 역사로 인한 회개와 각성운동이 일어낫으며
개인의 각성이 사회각성과 사회개혁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평양부흥운동의 결과
교회가 세워지고 교인수가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평양시내에 술집들이 문을 닫고
주일날 상점에 문이 닫혀 거리가 한산했으며
소돔과 고모라로 통했던 기생과 환락의 도시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 불길이 다시 한번 대구교회에 붙기를 소망하며
다시금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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