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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을 살아봅시다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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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을 살아봅시다 (요 15:1-8)


풍성한 삶을 살아봅시다

1908년 어느 늦가을 밤, 당시 세계 최고의 부호이자 자선사업가로 이름을 떨치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한 젊은 기자를 자신의 서재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젊은이에게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부와 성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찾아달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젊은이는 아무런 보수도 약속되지 않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2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 오늘날 성공철학의 교과서라고 불리우는 책들을 남깁니다. 『부의 법칙(The Master Keys to Riches)』,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라(Think and Grow Rich)』이런 책들은 전세계적으로 5,000만부 이상 팔렸으며, 저자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은 오늘날 성공철학의 위대한 거장이라 불리우게 됩니다.

나폴레온 힐의 지론은 이것입니다. “성공은 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종종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그러나 모든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지 않는가?”

그의 지적처럼, 풍요로운 삶에 대한 소망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런 갈망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또 풍성한 삶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 <요한복음 14-16장>은 ‘다락방강화’라고 이름붙여진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그러니까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을 행하신 후,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시기 전까지 그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긴 시간 강론하여 주신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 다락방강화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 내용이 거의 다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서, 성령님 오실 것에 대하여서, 세상이 제자들을 핍박할 것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에 대하여 등등 제자들이 풍성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중요한 가르침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장 1-17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농부와 포도나무와 포도나무의 가지의 모습으로 비유하셔서 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농부, 예수님은 포도나무 그리고 제자들은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이렇게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멧세지는 사실 간단합니다. “너희는 열매맺는 삶을 살아라, 풍성한 삶을 살아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의 뼈대를 요약하면, 이렇게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열매를 풍성히 맺는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열매 맺는,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서는 우선은, 농부에 해당하는 아버지의 손길로 너희가 깨끗하게 손질이 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손질이 되었으면, 가지인 너희는 포도나무인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면 저절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더 짧게 요약하면, “내 안에 머물러 있어서 열매맺는 삶을 살아라”라는 멧세지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제일 많이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는 “머물러 있어라, 거하라”<11번>이고 그 다음 두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열매”<8번>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포도나무와 가지로 말씀하신 비유의 실제적인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를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 본문의 핵심 가르침을 다음의 세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둘째,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손질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셋째,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우리는 어떻게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첫째,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소위 열매맺는 삶, 풍성한 삶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흔히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열매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성령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 그래서 풍성한 삶은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서 인격이 훌륭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 예배자로서의 삶의 모습과 전도자로서의 삶의 모습으로 해석합니다. 이 해석도 쉽고, 기억하기 쉬운, 좋은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 해석의 아쉬움은 이런 해석을 들으면, “아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열망이 많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나더러 비범(非凡)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처럼 들려져서, 열매맺는 풍성한 삶이 되레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려고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들겠다, 재미없겠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을 때, 지중해의 탐스런 포도송이에 익숙한 제자들에게 그 말씀은 참 매력적이고 소망이 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내 삶도 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풍성하였으면...” 풍성한 삶에 대한 소망이 마구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풍성한 삶에 대하여 우리가 쉽게 듣는 또 하나의 해석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처럼, 풍성한 삶을 성령충만, 사업형통, 무병장수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도 전적으로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영혼만 잘 되면, 나머지는 아무렇게나 해도 잘 된다, 그러므로 교회만 열심히 다녀라” 이렇게 비약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이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잘 되기를, 풍성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 해석의 장점은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고 사업형통하고 무병장수한다는 데, 고고한 척하는 위선적 종교인이 아니라면, 어느 사람이 이를 선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해석의 어려움은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복을 세상의 복과 동일시여겨서 복음을 미신적으로 전락하게 할 여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열매맺는 삶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총체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왜 여러분, 구약성경에서도 종종 하나님 앞에서의 풍성한 삶, 형통한 삶을 열매를 많이 맺는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같으니...” 시1편에서도, “너는 마치 물댄동산처럼 되어 가물 때에도 (열매를 많이 맺고)” 이사야 58장에서도,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예레미야 17장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풍성하게 사는 삶을 묘사할 때,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의 모습으로 그려줍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풍성한 삶이란,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히는 모습,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모습..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느 사람이 있는데, 다들 그는 인격이 참 훌륭하다고 합니다. 그를 통해서 전도의 열매도 많고, 사업도 번창하고, 감기도 잘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하고 다 형통한 것 같은데, 딱 한 가지 문제는 그의 마음, 심령이 항상 불편해요. 기쁘지 않고, 짜증이 많이 나고, 우울에 잘 빠지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멋진 옷을 입어도 맘에 안들고...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람이 풍성한 삶, 열매맺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돈도 잘벌고 사람들로부터 인기도 많은데, 마음은 참 불편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돈도 많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지만,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우리 목사님은 참 질문을 아리까리하게 낸단 말야~ 나는 그래도 돈많고 인기짱이고 한번 그래봤으면 원이 없겠다” 이렇게 느끼시는 분은 돈에 한맺힌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한다고요? 돈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는 열매맺는 풍성한 삶은, 삶의 조건, 환경, 결과 이전에 심령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은 우선적으로 심령의 즐거움, 삶의 의욕과 열정, 밀려오는 행복감입니다.

제가 억지논리를 펴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간간이 비춰주신 열매맺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확인해 보시면, 제가 심령의 상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여 말씀드리는 것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7절>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된다구요?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진다, 확실한 기도응답의 삶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의 짭짤한 맛 중의 하나가 신비하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지요? 기도를 들어주실 때, 얼마나 신나고 담대해집니까? 여러분은, 오늘을 살면서 기도하시고 기도의 응답을 누리며 살고 계십니까?

또 하나 <11절>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해주시는 이유, 초점이 너희가 나의 기쁨을 많이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지요?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가듯이, 신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이 뜻이지요?

결국, 열매맺는 삶, 풍성한 삶이 이것 아니겠어요? 신나고 즐겁게 살아가는 마음, 그 심령이 삶의 여건과 환경에 종속되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려서 기쁘게, 힘있게, 건강한 의욕이 넘치는 삶이 풍성한 삶, 아니겠습니까?

라틴어 신약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윌리암 틴델, 그가 누린 풍요로움의 기쁨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기쁘고 즐겁고 춤추며 뛰어놀게 하는 것이다.”

복음은 깊이를 텃치(touch)합니다. 얼마나 많은 세상 사람들이... 나는 뭐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한스러워하며 살고 있는지요? 그렇게 불평하는 인간의 마음 바닥, 인간의 심령 제일 바닥, 중심에 뭐가 있습니까? 행복을 향한 갈망, 영원을 향한 갈망 이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환경과 조건에 얽매여 눌리고 쪼들려서, 자신이 정작 원하는 것이 행복인 것도 잊어버리고 그저 돈만 많았으면 하고 한이 깊어지는 그 마음 바닥을, 예수님은 텃치하십니다.
그렇게 인간의 심령 제일 바닥에 숨어있는 행복을 향한 열망, 영원을 향한 갈망, 신나게 기쁘게, 사는 것답게 잘 살고 싶은 갈망을 복음은 텃치합니다.

앞에서 드린 질문을 다시 한번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돈 많기 원하십니까, 행복하기 원하십니까? 복음은 우리 마음의 행복을 위하여 더 많은 소유, 더 편리한 삶의 여건을 만들어주겠다는 거짓 환상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직접적으로 행복을 약속하고 부여합니다.

중요한 것은, 풍성한 삶,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가 쥐어짜서 이 열매맺는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4절> 보십시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실 열매는 저절로 맺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오늘 비유의 모습, 포도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포도나무 가지 하나가 자신을 비틀어짜서 열매를 맺습니까? 나무가 가지에게 열매를 맺게 하지요?

그렇다면, 나의 삶에서도 이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하기 위하여, 무엇이 중요합니까? 두 가지가 관건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깨끗해져야 합니다. 깨끗해지기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을, 당신의 심령을 손질하시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십시오. 새번역성경 난하주에 설명되어 있듯이, <2절>의 손질하다와 <3절>의 깨끗하다는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인생을 깨끗하게 손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백성들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던 우리나라가 왜 1998년에 IMF 긴급차관을 받는,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습니까? 경제, 경영이 너무 방만했기 때문 아니었습니까? 괜히 폼만 잡다가.. 거추장스러운 것이 너무 많아서 소모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기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뭐가 없어서 풍요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쉽게, 월급 많으면 뭐합니까? 이것저것 지출이 훨씬 더 많으면,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쪼들리는 것이지요?

몽골의 징기스칸이 유럽을 정복한 요인을 분석한 책이 하나 있습니다. 『CEO 징기스칸』 이라는 책인데, ‘유목민에게서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조선일보 편집부 출판국장으로 있는 김종래 씨가 쓰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2002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유럽의 멋있게 생긴 기사가 아시아의 촌뜨기같이 생긴 징기스칸 군대에 질 수 밖에 없는 이유, 크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는, 기동력에서 큰 차이가 났습니다. 기사들은 철 갑옷으로 완전무장하고 한껏 멋을 부리느라 말이 절대로 빨리 못갑니다. 그러나 몽골군대의 군복은 헐렁한 핫바지, 얼마나 가볍고 편한지 모릅니다.

둘째는, 무기, 칼의 크기입니다. 당시 유럽의 기사들은 칼이 크기가 힘의 과시였습니다. 클수록 힘이 쎄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몽골인들의 칼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달형으로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기사가 칼을 빼려고 폼잡고 있을 때, 이미 몽골군인의 칼은 한 바퀴 돌았습니다.

셋째는, 식량보급의 차이입니다. 유럽의 기사 군대들에게는 전투병보다 식량지원병이 더 많을 정도로 식량보급 문제가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고기, 빵, 우유... 등등. 그러나 징기스칸의 군대는 부식지원병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유목민이라, 자기 먹을 육포, 하루에 한 개씩 한 달치 30개 차고 다녀야 기사 머리에 쓴 투구무게만도 안 나갑니다, 그리고 물은 아무데서나 먹고.

요는 유럽의 기사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너무 많아서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는 거추장스러운, 가시덤불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손질이 안된 머리에는 비듬이 풍성하여 이가 자라고, 손질이 잘된 머리에는 아름다운 윤기가 흐릅니다. 손질이 안된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손질이 잘된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질이 안 된 인생은 엉망이고, 손질이 잘 된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손질이 잘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손질하신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떻게 깨끗하게 손질해 주십니까?

<3절>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무엇으로 깨끗하게 손질하셨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무를 손질하는 농부의 도구는 전지와 낫, 칼이지만, 인생을 손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구는 그 말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려주시는 지금 이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입니다. 말하자면, 이제 제자훈련을 거의 다 마칠 때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제자들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그들의 마음이, 가치관에 깨우침받고 정리가 되고 손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말씀을 듣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고 말씀으로서 제자들의 인생을 손질하셨습니다. 말씀으로써 제자들을 훈련하셨습니다. 성경말씀이 인생을 손질하는 도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고 공부하는 이유와 소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성경말씀이 우리 인생을 깨끗하게 손질해 줍니다. 우리의 죄의 습관을 버리도록, 마음 속에 감추어진 악을 회개토록, 연약한 마음이 강건케 되토록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을, 인생을 손질하십니다.

목수가 나무를 켜려고 하는데 톱과 대패를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그것을 찾는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면, 그 목수는 필경 가난할 것입니다.

요새 소위 뜨는, 폴란드계 미국여자가 하나 있습니다. 『마사 스튜어트 아름다운 성공』이라고 책도 나왔습니다. 시골 농장에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가 억만장자가 된 비결을 다룬 책입니다. 이 마사 스튜어트의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별명이 뭐냐면, “살림의 여왕”입니다. 설거지하는 일, 정원을 손질하는 일, 옷정리를 하는 일 등 살림을 하는 데에서 발휘한 지혜를 사업에 사용하여 억만장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손질이 되어야 풍성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풍성한 삶을 살도록 성경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손질하시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이 진정으로 풍성한 삶, 열매맺는 삶을 누리기 원한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예수님께 헌신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받고, 묻고, 대답하고 하였듯이, 우리도 당연히 열심히 성경말씀을 듣고, 받고, 묻고, 대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꺼이 내 인생을 손질해 주시도록, 코칭(coaching)해 주시도록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고집으로 버팅기고, 내 가치관과 판단의 벽을 고수하고, 내 취향과 코드에 집착하고 있으면 깨끗함을 입지 못합니다. 결국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내 남은 여생에서 진정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기 원하신다면, 당신의 인생을 손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온전히 맡기십시오.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해달라고 하면서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씀으로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온전히 맡겨 보십시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받으십시오. 당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마음과 인생을 해석하고 치유하시도록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을 받으십시오. 말씀 앞에서 묻고 대답해 보십시오.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내 심령과 인생을 맡기는 것, 그것이 풍성한 삶, 진정으로 열매맺는 삶의 우선적인 조건입니다.

또 하나, 무엇이 우리에게 열매맺는 삶, 풍성한 삶의 은혜를 누리게 합니까?

<4,5절>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지요? 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확실하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이지만,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예배당 밖을 떠나지 말라 이런 의미입니까? ‘우리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를 떠나면 죽음이다’ 이런 것입니까? 조직을 벗어나면 조직의 쓴 맛을... 이런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약간의 논리의 연쇄고리로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9절> 보십시오.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이것은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 말씀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우리는 어떻게 머무를 수 있습니까? <10절> 보십시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앞 14장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로는 예수님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것은 사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많은 경우는, 사실은 자기가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12절> 보십시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무엇이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안에 머물러 있는 것<9절>이고 예수님의 사랑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10절> 그리고 예수님의 계명은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12절>.

그리고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16,17절>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무슨 뜻입니까? “나는 너희가 열매맺는 풍성한 삶을 살도록 택하고 불렀다.” 그러므로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하여 뭐하라구요?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형제를 사랑하는 삶이 우리 심령에 삶의 행복, 풍성한 기쁨, 살맛나는 신바람 가져다 줍니다.

예) 사랑의 행복 - 1978년에 미국 뉴욕에서 Freedman 이라는 심리학자가 행복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 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데 있어서 제일 상관관계가 높은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연구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행복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돈, 건강, 지위 등과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유일하게 높게 나타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행복한 삶,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보십시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공동체, 행복은 그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용납과 용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을 나와 비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 용납하며 용서하는 것에서부터 사랑은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가르침이 있기 바로 며칠 전에도, 그들은 누가 크냐를 놓고 서로 비교하며, 서로 자기를 높이며 갈등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서로 사랑하기를 시작도 못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가만히 지켜 보십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은 내일이면 십자가를 지시고 제자들을 떠날 것을 아셨습니다. 아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날 것을 아셨습니다.
모래 바람이 많은 당시 유대 지방의 풍습으로는 밖에서 돌아오면 발에 묻은 먼지를 씻도록 세수 대야에 물을 떠나주는 것이 아름다운 예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장면 상상을 해 보셨습니까? 아마도 이곳 다락방은 주인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마치 콘도에 함께 가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주인이 없는 빈 집에 도착했습니다. 습관적으로 발을 씻고 싶은 마음은 모두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이덕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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