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서 취하자! (민 13:25~33)
본문
자신을 쥐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고양이를 보면 무서워하고 떨게 되고 발이 얼어붙는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람을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의사가 이 사람에게 계속 강조했습니다. “당신은 쥐가 아닙니다. 고양이를 무서워 마세요.” 약물치료도 받았습니다. 의사가 이제는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퇴원을 시켰습니다.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퇴원을 하는데 병원 앞에 고양이가 있는 거예요. 고양이를 보는 순간 또 발이 얼어붙었습니다. 그것을 의사가 유리창으로 보고는 달려내려 왔습니다. “여보세요. 당신은 쥐가 아닌데 왜 고양이를 겁을 내는 거예요. 빨리 가세요.”라고 의사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의사에게 하는 말이 “의사선생님 저도 제가 쥐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 고양이가 제가 쥐가 아닌 것을 알까요?” 참 걱정도 팔자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쥐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메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자기를 비하한다고 해도 어떻게 메뚜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오늘 이 시대에는 자신을 메뚜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을 뽑아서 가나안땅에 40일간을 정탐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들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어떤 보고를 했습니까? 그들 중에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에 가보니 그 성읍은 견고하고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이 크고 그들에 비하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이 보였을 거라고 했습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낙자손들은 네피림의 후손으로 키가 좀 큽니다.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좀 작습니다. 자신들의 키 작은 것을 비하해서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메뚜기 자화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메뚜기 자화상에 빠져서 열등감과 좌절감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고정관념에 빠져서 자신을 비하시키고 구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입니다. 우린 고정관념을 조심해야 합니다. 고정관념이란 고장 난 생각입니다. 한번 고정관념에 노예가 되어 버리면 평생을 가게 됩니다.
어려서 국수 먹고 배탈이 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 국수만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가 배탈 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그 고정관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나는 사업만 하면 실패해! 나는 뭐든지 않되!” 이런 고정관념이 우리를 얽어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이 고정관념에서 탈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메뚜기 같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들은 메뚜기처럼 살아갑니다. 왜 사람들은 종종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 좋은 결과가 없습니다.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내 아내와 남의 아내를 비교하지 마세요. 장점은 인정하고 단점은 내가 기도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좀 잘나면 우월감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찬양하는 분들이 그런 것에 잘 빠집니다. 남들보다 내가 더 잘하면 우쭐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절망에 빠집니다. 아니면 질투하거나 시기하게 됩니다. 비교는 서로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남과 비교하면 쉽게 열등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독특한 창조물이고 걸작입니다. 세상에 귀한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났던 못났던 여러분은 하나님이 창조한 유일한 창조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값진 보배로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소중함을 모를 때 우리는 잘못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어제 뉴스를 통해 군산 어느 여관에서 아내는 가출한 어떤 한 가장이 세 자녀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은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자살에 실패한 비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려운 삶이지만 그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감에 빠져 자신의 목숨을 끊고 아이들의 소중함도 모르고 죽였을까요? 이 사람은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고 아이들의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나는 키가 작다”라는 열등감에 빠져있습니다. 학력이라는 키에 사람들은 고통 합니다. “나는 많이 배우지 못 했어 가방끈이 짧아!” 외모의 키, 재물의 키, 배경의 키 무언가 좋지 못한 배경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지고 있는 소유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 후서에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족속이요 택하신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을 비하시키고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내 생각 속에 주는 악한 가라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여러분 안에 자신감과 담대한 믿음과 자존감을 회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존감은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가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동행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그 책 2월호에 성악가 조수미 씨의 인터뷰 기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인터뷰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항상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오늘 이 무대에서는 내가 최고다 하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찬양하고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뉴욕의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서든 지방에 작은 무대에 서든 내가 서기 때문에 이 무대가 특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직장이 특별해 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에게 패를 끼치고 거치적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요, 축복의 근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전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30절에 보니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라고 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은 비옥하고 아름답지만 우리는 그들을 이 길수 없다고 절망적인 보고, 패배적인 보고, 비관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보고 때문에 온 백성들이 절망에 빠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제일 무섭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전염병처럼 쉽게 퍼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담대한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취할 행동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차지해야 될 가나안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올라가서 차지해야할 가나안은 여러분이 살아갈 한해입니다. 이 한해에 여러분의 목표, 계획, 직장, 사업의 현장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의 우리의 일생을 어떻게 하면 승리하며 살아 갈 수 있겠습니까? 승리의 요건들을 생각해 보려합니다.
첫째는 여러분의 생각을 바꿀 때 승리 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우리 행동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바뀌면 우리의 습관이 바뀝니다. 습관이 바뀌면 우리의 인격이 바뀝니다. 인격이 바뀌면 우리의 운명이 바뀝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여러분의 미래를 바꿉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돈이 많으냐? 아이큐가 높으냐?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느냐? 아니면, 믿음의 생각을 하느냐? 성령의 생각을 하느냐? 생각의 차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쓰레기통입니다. 잡다한 것을 집어넣어서 생각이 쓰레기통이 됩니다. 그 쓰레기통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아름다운 것들을 담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황금은 땅속에서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이고 자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 속에서 어마 어마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우리 자화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1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악한 생각이 우리 마음, 우리 생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생각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열 명의 부정적인 정탐꾼들은 이미 마귀가 주는 그 부정적인 생각에 포로가 되어버리고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해 버렸습니다.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생각을 지키셔야 합니다. 한해를 승리하려면 여러분의 생각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 우리 생각을 바꾸면 우리 인생이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오늘 31절 말씀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패배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능히 그들을 이 길수 없고 그들을 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미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생각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릅니다. 그들은 승리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합시다. 능히 이길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생각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올 한해 승리하며 살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에 대한 놀라운 표현들이 많습니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 질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산들을 들리어 바다에 던지려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산을 들어 옮길 수 있는 것은 말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얼마나 귀중한 보화요 능력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면 불가능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다윗은 하나님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돕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골리앗 앞에서 겁나지 않았습니다. 한해를 시작하는 여러분 어려운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담대함을 가지고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불신앙을 가졌습니다. 아니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땅을 차지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패하고 패배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참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며 우리는 그 땅을 능히 차지 할 것이다. 14장 8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갈렙은 담대한 승리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능력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영적 능력입니다. 믿음이란 할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을 가질 때 여러분의 인생에 놀라운 경험을 할수 있게 됩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자원, 믿음의 능력을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한해를 승리하려면 마음의 꿈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열 명이 가졌던 생각들은 패배적인 꿈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기대는 우리가 여기서 다 죽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우리는 가나안에서 죽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14장 2절-3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다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라고 말합니다. 이미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죽을 것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미래의 꿈은 절망적인 꿈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릅니다. 그 땅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비전을 가진 것입니다. 14장 7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라고 말합니다. 갈렙은 아름다운 땅을 보면서 기대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아름다운 꿈으로 가득 차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꿈은 우리의 현실로 바꾸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꿈을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망한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세상은 꿈꾸는 자들을 통해서 변화되어 집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한 해 동안 가지는 목표와 계획이 여러분의 꿈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이 열정이 있고 열정에서 의욕이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존 맥스웰이라는 리더십에 대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지갑에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당신은 새해에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 인생에 아름다운 꿈을 가지시고 목적을 가지십시오. 그 사람이 앞을 향해 발전하는 진취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과소평가합니다. 내 인생은 점점 시들어 갈 거야. “내가 나이가 60인데 70이면 얼마나 비참할까? 80이면 얼마나 저주 서러울까?” 그러면 그대로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최고로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발전적일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희망을 꿈꾸십시오. 자신의 미래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아름답고 위대한 일을 펼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려면 말을 바꾸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를 한번 보세요. 민수기 13장 32절-3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은 그 탐지한 땅을 악평했습니다.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의미입니다. 고의적으로 나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언어도 부정적인 언어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악평하지 마십시오.
늘 긍정적으로 말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믿음의 언어로 말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것이 그대로 되어 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는 말 하나님이 다 들어 십니다. 그러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14장 27절-28절을 보겠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값아 줄 것이다. 우리가 말하면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는 광야에서 시체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을 조심해야 되고 가려서 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입술로 승리를 선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느라.” 하니 죽은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지났는데 살아서 나왔습니다. “풍랑아 잔잔하라.” 했더니 거친 풍랑이 잔잔해 졌습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말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구름도 끼고, 몸도 찌뿌듯한데 저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 저를 보고 “오늘 넥타이 참 근사하네요. 누가 선물한 거예요?” 저는 넥타이 신경도 안 썼는데 그때부터 내가 봐도 더 멋있어 보입니다.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세수도 안하고 넥타이도 마음에 안 들면 누구를 만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넥타이에 자신감이 생기면 사람 만나기가 즐거운 것입니다. 기대도 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오늘 백화점에서 산 근사한 옷을 입고 폼을 잡으려고 왔는데 한분이 “집사님 그 옷 신풍시장에서 산거 맞죠. 만 원짜리 열 벌 있는데 나도 사려다 말았는데”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게 되고 기분이 나빠집니다. 말에 힘이 있습니다. 넥타이를 칭찬하는 말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기분이 좋으니 사업도 잘되고 하루가 행복합니다. 그래서 말에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왕이면 칭찬의 말 권면의 말 축복의 말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늘 메머트마사로우의 말을 합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물 연구가 인데 물을 놓고 늘 연구를 했습니다. 물의 결정체를 볼 때 물에 대해서 저주를 하고 욕을 하면 그 물의 결정체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바뀌어 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물을 축복하고, 사랑하면 그 물이 너무 아름다운 결정체로 바꾸어집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몸은 80퍼센트가 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혈압이 오르고 얼굴이 달아 오르고 화내다가 죽게 됩니다. 내 속에 있는 물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소화도 잘되고, 밥도 맛있고, 잠도 잘 옵니다. 왜냐하면 내 몸이 평안해 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가 우리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놀라운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승리하는 비결을 아시겠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담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꿈을 꾸십시오.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갈렙처럼 “그 땅을 올라가서 차지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