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하나님 아버지

본문

하나님 아버지
본문 : 요한복음 1장 12절 마경훈 목사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사람들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친근감을 주는 관계가 하나님은 아버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입니다.
2007년도 첫 번째 주일에 무슨 설교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하나님을 소개하는 설교만큼 좋은 설교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이라 그분을 소개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에 하나님을 소개하기에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가장 좋다고 결론을 내리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2007년도는 행복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축복을 받았어도 그 관계가 형성되지 모하면 그 사람은 영적인 고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세상적인 자랑거리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랑할지 몰라도 그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고아만이 갖는 영적인 고독함이 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불쌍해서 옷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빵도, 사탕도 사주지만 그런 것 다 모은들 아버지 찾아 주는 것과 비교가 되겠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물질적인 축복을 받지 못한 것 같아도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아픔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제 아내가 세상에 태어 난지 6개월 되었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자라면서 그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지나가면 아저씨를 자기 아빠하자고 엄마를 졸랐고, 심지어는 돈 주고 사오자고 까지 졸랐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 없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을 알았을 때 갖게 된 절망감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기독교는 신비적인 종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비체험도 종종 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신비로운 것은 인간인 우리들이 신이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들이 조물주를 아버지라 부릅니다. 죄와 허물투성이인 인간들이 한없이 거룩하신 그분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있을 수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보지도 못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12사도들처럼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사도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처럼 그런 영적인 체험을 한 것도 아닙니다. 앞선 믿음의 사람들이 전한 성경 말씀을 듣고 그냥 믿어지는 것입니다. 눈으로 그분을 보지도 못했고, 귀로 그분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손으로 그분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의 아버지로 믿어지고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신비한 일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롬 8:15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오셔서 믿어지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의 영이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설명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아로마 요법으로 비유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향이 우리 몸속에 들어가면 우리 몸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어떤 향을 쓰느냐에 따라서 다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오렌지는 비만이나 혈액정화에 좋고, 감기나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기억력 증진에도 좋습니다. 레몬은 피로회복이나 고혈압에 좋다고 하더군요. 또 쟈스민은 호흡기에, 감기나 우울증에 좋습니다. 로즈매리 같은 경우는 가래제거와 기억력에 원기회복과 살균과 면역에 좋습니다. 향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우리 몸과 정신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면 자연스럽게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았던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고, 천국과 지옥도 믿어집니다. 사후의 세계도 믿어지고, 천사나 마귀의 존재도 믿어지게 됩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역사를 하시면 하나님이 아버지로 믿어지고, 과거에는 좋았던 죄악과 육체의 쾌락이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 영적인 만족함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 7:6-8에 보면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민이 된 것은 그들이 능력이 있고 잘나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 3: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은 언제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년말 쯤 되면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합니다. 가서 보면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만 고나심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잘하든 못하든 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직 내 자식만 바라봅니다. 사진을 찍어도 내 자녀 중심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아무리 잘해도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오직 내 자식에게 모든 것이 집중됩니다. 내 자녀가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만 잘하면 기분이 너무나 좋습니다. 내 자녀가 실수하면 사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 속상할 수 없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우리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잘하면 너무나 좋아하시고 우리들이 잘못하면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게 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전적인 믿음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도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도 아버지가 자녀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믿음의 자녀들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빈곤과 불행과 가난과 저주에서 건지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스가랴 4장 6절을 그의 평생 요절로 삼았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인간의 문제는 힘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능으로 안 된다라는 겁니다. 어떤 능력도 안 된다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라는 거예요. 이분은 너무 가난해서 외갓집에서 크면서 성경을 많이 읽고 할아버지를 통하여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성경을 수 백 절을 외웠어요. 이것이 기초가 되어서 군 생활을 훌륭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는 빽도 없고 힘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마흔 여섯 살까지 군에서 소령밖에 못 달았어요. 그런데 드디어 찬스가 왔어요. 2차대전이라는 전쟁이 막 일어나면서 아이젠하워에게는 길이 열렸어요. 2차 대전에 참전해서 나중에는 사령관이 되고 마지막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성공해서 최고의 국가 원수까지 된 겁니다. 여러분, 빽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관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찬스가 온 겁니다. 좋은 날이 온 겁니다.
유럽이 예전에는 미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해적질이나 하고 살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그렇게 잘 살게 된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찬란한 문명은 거의 다 동양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중국문명, 인도문명, 이집트문명, 바빌론문명 할 것 없이 찬란한 문명이 다 동쪽에서 일어났고 서쪽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2천년 동안 세계의 최고의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아버지께로 가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께로 가야합니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언제나 평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바로 잡아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는 자식을 징계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녀들이 잘 못된 길로 가면 징계하십니다. 히 12:6,8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쁘다고 오냐 오냐만 하면 자식 버리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바로 잡아주려고 훈계를 해도 듣지 않으면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잡아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징계하시기까지 오래 참으시지만 일단 징계를 시작하시면 버르장머리를 고칠 때까지 무섭게 징계하십니다. 삼손 같은 경우는 나실인으로서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타락한 생활을 하는 중에도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가 결국은 머리카락까지 잘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그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맡겨서 징계하셨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 눈이 뽑히고 맷돌질을 하다가 최후에는 블레셋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무너지는 돌에 깔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데 지금 아무 일 없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받아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가 어떤 큰 잘못을 범했다고 하더라도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유산을 요구하고 재산의 일부를 챙겨서 아버지를 떠납니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버지를 떠나면 고생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하던 탕자가 모든 것을 잃고 거지가 되어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완전히 거지 중에도 상거지 꼴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받아드립니다. 아들을 목욕시키고 새옷을 입혀주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주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합니다. 탕자의 형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을 용납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탕자를 받아줍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언제든지 넓은 품에 우리를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많은 특권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도 응답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막 12:24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다음 절인 25절에서 바로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제 아들 하은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하루는 제가 설교를 하고 있는데 강단 앞으로 걸어오더니 저한테 손을 내밀면서 “아빠! 용돈!”하고는 용돈을 요구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당당하게 용돈을 요구합니다. 학용품이 필요하면 담대하게 돈을 요구합니다. 장난감이 필요해도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제가 자기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즘 제 아들 하은이한테 꼼짝을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63뷔페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끔 언제가느냐고 따지듯이 말하면 할말이 없습니다. 하도 당당하게 요구하니까 제가 왜 가야 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약속 하셨잖아요.”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말이 없었습니다. 하은이는 제 약속을 잊지 않고 제게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죽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 영국에서 활동했던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는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평생 5만번이나 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1만명의 고아를 돌보았고 선교지에 2백만 권의 성경과 3백 만권 이상의 신앙도서를 보냈으며 10만 명 이상의 주일 학생을 교육했습니다. 그가 81세가 되던 해에 어느 신학교의 특강강사로 초청되어 그 비결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의자에 무릎을 꿇고 기도의 자세를 취하면서 “이것이 비결이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뮬러는 이러한 믿음과 기도로 63년 동안 750 만 달러(한화로 약 70억원)이상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70억원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돈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죠지 뮬러가 사용한 기도의 특권을 우리들에게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자녀에게 성장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의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저의 큰 아들 모세가 초등학교 때는 큰 키였습니다. 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서 별로 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성장판 검사를 해봤는데 의사선생님이 성장판이 많이 열려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이 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별로 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다른 의사에게 검사를 했는데 성장판이 많이 닫혔고, 1년 전 사진을 보더니 지난번 성장판을 검사한 의사가 판독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조치를 취해도 조금 밖에는 자라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가 상처 받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납니다. 자녀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주는 것이 부모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큰 기쁨입니다. 자녀를 키워보니까 아주 예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빨기도 하고 깨물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의 믿음도 성장하고 사역도 성장하고 생활도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자녀를 말할 때 ‘테크나’가 있고 ‘쿠이오스’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말할 때 ‘테크나’라고 말합니다. 철없는 아이들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쿠이오스’는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될 때, 정신적 차원에서 비로소 참 아들이 될 때 가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테크나로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쿠이오스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성장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열심히 예배에 나오시고 말씀을 들으시고 기도하셔서 계속해서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죽게 되면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상속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들을 상속자들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시고 영원토록 왕 노릇 하게 하십니다.
믿는 자들이 누리는 축복은 현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죽음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가치관으로 보니까 죽음이 슬픈 것이고,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슬픈 것이지 영적인 차원에서 보게 되면 죽음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 116:15에서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을 버리지도 떠나지도 아니하십니다. 가끔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27에 보면 시편기자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고 고백합니다. 부모가 버린 자식도 영접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떠나지 않으면 그분은 언제나 좋으신 아버지로서 우리들을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2007년은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합시다. 그분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도록 늘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므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