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다시 보게 되는 새해 (마4:17)
본문
김은영 목사 [성경본문] 마태복음 4:17
2007년 새해가 이제 막 열렸습니다. 2007년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훌륭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난해보다 더 아름답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으실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이 50이 훌쩍 넘고 보니 새해를 맞는 감회가 연년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유가(儒家)의 성현이신 공자께서는 나이 40에 유혹을 받지 아니하게 되었고(不惑), 50에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는데요(知命), ‘나는 과연 어떠한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50이 훌쩍 넘은 나는 과연 유혹에 흔들림이 없고, 그리고 하늘의 뜻을 깨달고 사는가?’ 하는 자문(自問)을 해보았다 그 말입니다. 한참 동안 저 자신을 살펴본 후에 제가 찾아낸 답은 이렇습니다.
‘유혹에 흔들림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유혹을 빠지지 않는 방도는 알고 있다. 하늘의 뜻은 정녕 내가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아니하고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 시대만큼 유혹이 강렬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는 40 이전의 젊은이들만 유혹하는 시대가 아니라, 이순(耳順)의 젊은 노인들(?)뿐 아니고 고희(古稀) 그리고 산수(傘壽)의 노인들까지도 유혹하는 시대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유혹의 과실들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TV와 인터넷을 통하여 보여주는 시각적인 광고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유혹합니다. 사고 싶은 것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또 살 것들이 왜 그리 많은지, 가보고 싶은 곳들이 얼마나 많은지, 해보고 싶은 놀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모두 유혹의 과실들이 손짓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유혹들로 인하여 별 것도 아닌 것을 사게 되고, 별 맛도 없는 음식점을 찾아가서 먹어보고, 실제 가보니 별 볼 것도 없는 곳을 돈 들여, 시간 들여 찾아가 보고, 별 재미도 없는 놀이를 한답시고 돈 써가며, 시간 버려가며, 몸 지쳐가며 기를 쓰고 해 보고, 그래서 일하는 시간보다는 유혹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서 ‘바쁘다.’고 투덜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이 시대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이 시대는 배움의 유혹도 엄청 강렬한 시대입니다. 배우지 아니하면 시대에 뒤쳐질까 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삶에 별 유용하지도 않는 것들을 배워보겠다고 안달이 났습니다. 지방자치 단체마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많은 강좌들을 실시하고 있음도 봅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강좌는 그래도 좀 괜찮지 않나 생각합니다만, 여기에 요즘은 사교댄스 강좌, 마술 강좌, 심지어 술 빚는 강좌까지 그야말로 별의별 강좌들이 다 배움의 유혹들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12:11에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하신 예언의 말씀은 바로 이 시대를 가리킨 예언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유혹들은 커다란 한 마리의 괴물에게 굴복되는데, 이 괴물만 손에 쥐면 모든 유혹들이 주는 감미로운 맛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괴물을 손에 쥐지 못하면 감미로운 유혹의 맛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괴물을 손에 쥐어 보겠다고 하다가 무서운 죄까지도 짓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세상 모든 유혹들의 감미로운 맛을 얼마든지 맛 볼 수 있게 하는 괴력을 지닌 괴물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바로 돈(money)입니다. 돈만 있으면 별 것 아닌 물건도 살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별 것 아닌 곳도 갈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별 것 아닌 놀이도 얼마든지 해 볼 수 있고, 그리고 돈만 있으면 별 것 아니 것도 배울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감미로운 유혹들은 모두 다 그림의 떡이 되고 맙니다.
실상 모든 유혹은 돈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있는데, 돈이 없으면 유혹도 없는 것이냐 하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돈이 많으면 유혹에 빠지지 아니할 수 있느냐 하면 현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즉 돈이 없는 사람은 유혹의 감미로운 맛을 보겠다고 욕구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마련하려고 하다가 죄를 짓게 되고요, 돈이 많은 사람은 작은 유혹이 아니라 더 큰 유혹의 감미로운 맛을 보겠다고 하다가 또 다른 죄를 짓고 맙니다. 결국 유혹과 돈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고, 여기에 사람들은 유혹과 돈 때문에 지어서는 아니 되는 죄를 짓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죄악 구덩이입니다. 개미가 개미핥기가 파 놓은 모래 구덩이에 미끄러지듯 빠지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혹과 돈의 구덩이에 미끄러지듯 빠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한번 조사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런 유혹들이 첫째는 내 신앙에, 둘째는 내 인격에, 그리고 셋째는 내 삶에 해가 되지 않는 유혹들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큰 방죽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소하고 별 것도 아닌 유혹으로 인해서 삶에 큰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요, 가정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고요, 인격이 파괴될 수도 있으며, 결정적으로 신앙에 엄청난 해악(害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새해에 무엇을 하겠다.’, 또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멋진 계획보다는, 사실 ‘올해만큼은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켜보겠다.’고 하는 다짐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의 원 뜻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류의 첫 번째 실패가 바로 유혹 때문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깊이 유념하는 새해 첫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2007년 새해 첫 시간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마태복음 4:17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광야 시험을 마친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가장 먼저 외친 말씀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때부터’란 ‘광야 40일 금식 기도 후 시험을 마치신 때부터’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약 30세쯤 되셨을 때에 광야로 나가 마귀로부터 시험(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40일을 금식하신 주님에게 마귀는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떡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지붕 꼭대기에 세워 놓고는 뛰어 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달려와서 예수님의 발이 성전 바닥의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주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시험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마귀는 다시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기서는 산 아래에 펼쳐진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자기에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산 아래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마귀 유혹의 시험에 승리하신 후에 예수님은 드디어 천국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때부터’란 바로 이 내용을 가리킨 것으로, ‘예수님께서 광야 40일 금식 기도 후 마귀의 3대 시험을 이긴 때부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비로소’라고 했으니, 이 말은 ‘드디어 때가 되어 처음으로’라는 예수님의 첫 사역을 강조해서 덧붙여 쓴 부사(副詞)입니다.
예수님께서 비로소 전파하신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말씀을 저에게 2007년 새해에 다시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새롭게 전파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할 것을 믿습니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基督)인들은 신앙의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제가 이 시대를 유혹이 많은 시대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 이 시대만큼 살기 좋았던 시대도 일찍이 없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자유가 한껏 보장된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남의 눈치 안보고 제 멋대로 살 수 있는 시대라 그 말입니다. 둘째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보장된 시대라는 점에 있어서도 실상 이 시대는 살기 좋은 시대입니다. 물론 불평등한 조항들과 장애물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보편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셋째는 능력만 있으면(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세상을 즐기면 살 수 있는 시대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넷째로 여기에 최첨단 과학 기술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생활을 엄청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고 봅니다.
세상이 이렇게 좋아지고 보니까 우리 그리스도(基督)교 내에서도 신앙의 목적을 상실한 교회들과 교인들이 속출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基督)인들, 모든 교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프로테이지(%)가 그리스도(基督)교 신앙의 목적을 바로 알지 못한 체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곧 주후 4세기 초 밀라노 칙명 이후부터 교회의 세속화는 경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예전의 세속화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의 실상을 보여주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진단하신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시작으로 해서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가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운행하시는 주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평가하신 각 교회의 메시지를 보면 칭찬하심도 있었고 그리고 책망하심도 있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등 네 교회는 칭찬의 말씀도 있고 그리고 책망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씀은 한 말씀도 받지 못하였고, 오직 책망과 권면의 말씀만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교회들과 성서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들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교회들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월밍톤 박사는 이 일곱 교회를 논하기를 에베소 교회는 주후 30년부터 100년 어간의 사도 시대의 교회를 말한다고 했고, 서머나 교회는 주후 100년부터 313년 밀라노 칙명 전까지의 순교 시대의 교회라고 했고, 버가모 교회는 주후 314년부터 590년까지 세속화 과정이 급속히 진행되던 시대의 교회들로 보았고, 두아디라 교회는 주후 590년부터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1517년 이전까지의 교회인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라고 했고, 사데 교회는 주후 1517년 종교개혁부터 시작해서 1700년까지의 가톨릭교회에 반항하여 성서적인 교회를 세워보겠다고 힘을 모았던 종교 개혁 시대의 교회들이라고 했고,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1700년부터 1900년까지 개신교회들이 전 세계를 급속하게 확장되어 가던 때의 교회 부흥 시대의 교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1900년 이후, 곧 20세기 이후의 교회들로서 교회가 급속도록 세속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나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들의 모습들이 다 있겠습니다만,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들을 기독교 2천년 시대의 교회들로 이해한 해석은 상당히 긍정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정말 이 시대의 교회들은 -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 아합 왕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인이 남아 있었다고 했으니까, 이 시대에도 서머나 교회와 같은 교회도 많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회도 많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보면,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의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자,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은데요, 요한계시록 3:14-22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의 교회
⑵ 스스로 부자라고 자랑하는 교회
⑶ 눈이 멀어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교회
⑷ 벌거벗은 임금님의 꼴을 한 교회 -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나 실상은 벌거벗은 교회
⑸ 열심히 식어버린 교회
⑹ 문을 닫아 건 교회
⑺ 주님의 음성을 못 듣는 교회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의 이 같은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 교회는 부자야.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어.’라고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걱정스런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자기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만에 빠지고 말았는가?’하는 물음을 갖게 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눈멀고 귀먹게 된 까닭이 무엇이었겠느냐?’하는 물음을 갖게 된다 그 말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눈멀고 귀먹게 된 원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부자 교회,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
바로 이 점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눈멀게 되었고 귀먹게 되었고, 그리고 미지근한 신앙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교인들이 부자가 되고 교회가 물권이 넘치면 사람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나 교회 안의 사람들이나 가리지 않고 ‘축복을 많이 받았나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두 다 부러워합니다. ‘나도 저런 축복을 받았으면 …,’ ‘우리 교회도 저 교회처럼 재정이 풍족했으면 ….’하고 부러워합니다.
좋습니다. 물론 곤핍한 생활을 축복 받은 생활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이 다 축복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주님의 가르침은 부자가 되라하심이 아니라,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물질 축복을 다 거절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축복을 어떻게 누리며 살아야 하는가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오늘 설교 주제가 아니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자 교회,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가 미지근한 신앙에 빠질 수밖에 없고, 눈이 멀고 귀먹게 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상 만족에 마취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니 아주 쉽게 확정적으로 말해서 부자 교회가 되어 부족한 것이 없다는 자만에 빠지면 결국 천국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그 말입니다. 세상이 천국인데, 굳이 천국을 소망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신앙생활에 진력하는 겁니까? 교회를 잘 받들어 섬기고, 받은바 사명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그 말입니다.
물질 축복의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건강 축복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도 아니면 세상에서 출세하도록 하나님께서 팍팍 밀어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여러분, 보세요. 새해가 되면 사람들이 무엇을 소망합니까?
어제 밤 뉴스를 보니까, 한강 둔치에 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색색 풍성을 불어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행사인가 했더니, 새해에 바라는 바 소망들을 적은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행사였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소망을 풍성에 적어서 하늘로 띄었는지, 여러분도 다 짐작이 될 겁니다.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좋은 직장 구하게 해 주세요, 결혼하게 해 주세요, 등등 결국은 부자가 돼서 부족한 것 없이 세상에서 재미나게 살게 해 달라는 소원이 전부였습니다. 그 외에는 없었어요.
또 이제 7시간 후면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해변, 언덕, 포구 할 것 없이 해돋이를 보겠다는 사람들로 굉장할 겁니다. 자, 그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면서 무엇을 소망할 것 같습니까?
답은 뻔 한 것 아닙니까? 세상이나 교회나 한결 같이 바라는 소망이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자가 되고 부족한 것이 없는, 그야말로 이 세상이 천국 같은 곳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원들이 전부입니다.
‘새해에는 죄 짓지 않고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양심이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비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큰 부자가 되어도, 그리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만족스러운 지금의 삶이라고 해도, 결코 그런 생활은 단 일 년도 지속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돈 많은 부자야 몇 대를 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부자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어느 한 부자도 항상 ‘나는 만족해’하며 살지 않습니다. 그네들도 항상 뭔가가 부족해서 그 부족한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또 고통 받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이 무엇 때문인지 여러분은 이미 잘 아실 겁니다. 한 마디로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구원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죄와 악으로 오염된 이 세상, 그래서 죄와 악의 오염 때문에 고통 받고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통의 세상에서 건져내어 고통 없고, 눈물 없고, 염려 근심 없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전쟁이 없는, 오직 사랑과 평화와 찬양만 있는 아름다운 나라 곧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基督)교 신앙의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부자야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어.’라고 배 두드리고 거들먹거리며 사는 세상 축복을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진정 우리 그리스도(基督)교 신앙은 하루라도 빨리 주님 계신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최상의 목표요 목적입니다.
천국을 잃어버린 신앙은 이미 그리스도(基督)교 신앙이기를 포기한 것이요, 천국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교회이기를 단념한 사람들이 사교(社交)하는 친교 집단에 불과합니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 회개뿐입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소위 ‘반성(反省)’을 많이 하고요, 새롭게 살 것을 다짐합니다. 물론 그래서 정말 새 사람이 되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1월을 넘기지 못하고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교인 중에도 회개(悔改)를 ‘반성’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죄를 뉘우치고 고치기를 힘쓴다.’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회개란 그런 차원의 모습이 아닙니다. ‘반성,’ 또는 ‘욕망을 버림,’ 또는 ‘욕정을 죽임’ 따위의 일들은 우리 그리스도(基督)교가 아니어도 일반 종교들도 다 강조해서 가르치는 내용이고요, 세상 선생들도 제자들에게 항상 가르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회개’의 참 뜻이 무엇이냐 하면, 한 마디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디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느냐 하면,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회개의 소극적인 의미가 죄를 뉘우치는 것, 그래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깨끗하고 거룩하게 사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회개의 핵심적인 의미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동차로 운행하는 사람이 길을 잘 못 들었다는 것을 알면, 하시라도 빨리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산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서울역에서 아무 기차나 타면 됩니까? 목포행 기차를 탔다면, 그래서 자기가 부산행이 아니라 목포행을 탔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체하지 말고 도착하는 정거장에서 내려서 부산 가는 기차로 바꿔 타야 합니다. 그냥 멍청하게 않아 있다가는 부산이 아닌 엉뚱한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치신 까닭은, 정작 천국행 구원 열차를 타고 있어야 할 유대인들이 천국행이 아닌 지옥행 사망행 열차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로 운행하시는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회개하고 신앙의 승리자가 된 사람에게는 첫째 주님과 더불어 먹는 은혜를 주겠다고 하셨고, 둘째 주님 보좌에 함께 앉을 수 있는 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계 3:19-22).
여러분, 주님과 더불어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주님이 앉아 게신 보좌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 가야만 주님과 더불어 먹게 되는 것이고요, 천국에 가야만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칭찬해 줄 모습이 하나도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디게아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은혜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제가 2003년 6월에 40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 내가 40일 기도를 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랄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의지로 한 일도 아니었고, 또 제가 믿음이 좋아서 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금식하라 하셔서 그렇게 한 것뿐입니다.
여하튼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는 날, 저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아버지 품에 안기는 모습을 제가 주님 품에 안기는 모습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아침에 주님이 제게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4:17절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품에 안기는 광경과 마태복음 4:17 말씀이 오버랩(overlap) 될 때에 저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탕자와 다를 바 없는 저였는데, 주님은 그런 저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 그 날 아침에 저는 회개에 대한 진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이 되었든, 교회 밖이 되었든, 교회 안팎을 불문하고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 세상에는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회개를 거절하고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도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2003년 7월에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시간 상 더 많은 말씀은 드리게 않겠습니다. 2007년 첫 메시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새해에는 다른 어떤 소원을 기도하시기 전에 먼저 올해만큼은 세상 유혹에 빠져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유혹에 빠지면 천국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천국을 잃어버리면 예수님의 구원하심도 믿어지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교인일수는 있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받지 못한, 그래서 착각 속에 사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교인에 불과하게 됩니다. ‘교회 다녔으니 천국 가겠지,’ ‘십일조 바치고 감사 예물 많이 드렸으니 천국 가겠지,’ ‘교회 일 많이 했으니 천국 가겠지.’라고 착각하며 사는 한심한 교인이 될 수도 있다 그 말입니다. 착각은 자유겠습니다만, 착각은 엄청 무서운 결과에 이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착각 속에 산 어리석은 못난 종교인들이 있을 것을 이미 경고해 주었습니다. 마태복음 7:21-23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아뿔싸,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에는 천국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천국을 전파하지 않는 교회들도 점차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유혹의 실과들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에 세상을 낙원으로 착각하는 교인들이 점차 늘어만 갑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결코 세상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에 반드시 들어갈 사람들이고, 천국에서 주님을 기쁘게 만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쪼록 세상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 계신 천국에서 면류관과 상급을 받는 멋진 신앙인으로 사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메시지의 결론은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세속적인 소망만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고요, 둘째는 혹 천국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에 지난날의 잘못된 신앙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셋째는 2007년 새해에는 말씀과 기도로 세상 유혹을 이기며 살자는 것이고요, 넷째는 천국 소망을 크게 가지고 사는 참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쪼록 2007년 새해는 우리 무두에게 천국이 활짝 열려지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천국에서 받게 될 영화로운 상급과 즐거움을 위해 참된 회개와 신앙의 열정으로 승리하며 사시기를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