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을 달아보시는 여호와 (삼상 2:1-10)
본문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인생은 스무 살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가 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것은 젊은 시절 "6대 생활수칙"을 정해 이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아침 일찍 일어나 5분씩 기도합니다. 아침기도는 정신을 맑게 합니다.
② 불필요한 잡담을 금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적이 많습니다.
③ 겸손한 태도와 열정적인 행동, 진실한 대화의 자세를 갖습니다.
④ 매일 성경을 네 장씩 읽습니다. 성경은 영혼을 살찌우는 자양분입니다.
⑤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의탁합니다. 의지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너그럽습니다.
⑥ 이 수칙을 하루에 두 번 이상 큰소리로 외칩니다.
인생은 분명한 결단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젊은 시절의 좋은 습관이 멋진 인생을 만듭니다. 윌리엄 부스처럼 경건한 습관을 유지하시는 분도 계시겠고 좀 더 노력하고 새롭게 하여야 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습관에 의해서 인생이 달라지고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다. 하나님 중심의 습관과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강하고 기쁘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미래와 영혼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채 그릇 되이 말하는 것은 더욱 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우리의 사고나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대로 올바르게 알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성서를 주셨고 성서주일을 제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한나의 기도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제대로 섬기는 것은 최고의 지식과 지혜와 지성이며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한나가 감사 찬송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은혜 충만히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쁨을 주시는 여호와
본문 1절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내 마음, 내 뿔, 내 입' 이것은 히브리 문학에서 전형적 수사 기법으로 사용되는 3중 대구법적(三重 對句法的) 표현 방식입니다. 한나는 이 같은 표현을 통하여 자신에게 베풀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벅찬 감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사무엘이 출생함으로써, 한나의 마음은 괴로움과 슬픔에서 즐거움과 기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뿔'은 먼지 가운데서 짓밟힘을 당하던 비참한 처지에서 다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입'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처량한 신세에서 다시 크게 열려져 자신의 원수에 대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마음껏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뿔'은 동물이 자신의 머리를 높이 쳐들고 힘을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다닌다는 점에서 힘, 능력, 권위, 자부심, 긍지를 상징합니다. 무자시(無子時)에 브닌나에 의해 무참히 이 뿔을 짓밟힌 한나는 이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뿔을 다시 높이 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셨다고 찬송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높이 찬송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말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자녀를 저속한 말로 꾸짖고 싶을 때마다 명심하십시오. 한 번 한 말은 결단코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단 내뱉은 말은 살아서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남을 축복하는 말을 하십시오. 이제부터라도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이 미래에 행할 위대한 일을 선포하십시오. 부모로서 우리가 하는 말은 자녀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의 말은 가족 전체의 방향을 설정하고, 기업주의 말은 회사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우리 말은 그것을 듣는 모든 사람의 미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갑니다. 굳이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나름의 세력 범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향을 미치는 상대에게 '좋은 말'을 던져야 합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반박하지 말라는 뜻도,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 줘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말을 하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부정적인 말은 상대방을 망가뜨립니다.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 붓고도 그가 복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자녀가 꿈을 이루고 성공하길 바란다면 그들을 향해 파멸과 절망을 경고하기보다는 생명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성경은 우리 말이 사람들을 축복할 수도 저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부터 축복의 말만 입에 담기로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은 다음세대와 자녀들에게 "널 사랑한단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너는 최고의 걸작품이란다. 너는 반드시 성공한다"라고 축복합시다. 축복은 말로 표현하기 전까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한나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마음 속에만 가두지 아니하고 끄집어내어 마음껏 기쁨으로 찬양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마음껏 고백하고 축복하고 간증하고 찬양합시다. 이제 무엇이 부끄럽고 누가 두렵습니까? 한나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범사에 더 큰 기쁨을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생명을 주시는 여호와
본문 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한나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생사문제를 언급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재권 사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한나는 사망과 생명의 열쇠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사무엘을 주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권력과 땅과 집과 귀중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생명은 소중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가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6).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귀한 생명과 영생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거져 주십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우리는 다만 믿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그토록 예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최고의 생명과 영생을 거져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측량할 수 없는 최고의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이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하여 예배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헌신하여도 만분지일도 갚지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증거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기뻐하시고 만족하십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임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수도사 세 사람이 추수를 하러 나가 각자 넓은 지역을 배당 받았습니다. 그런데 추수 첫날, 한 사람이 병이 들어 움막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그 형제가 병이 들어 돌아갔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합시다. 나도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할 것이오. 그러면 병든 형제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 형제의 몫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오."
그들은 열심히 일하여 배당 받은 들판의 곡식을 모두 추수했고, 품삯을 받아 사막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병든 형제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형제여, 그대의 몫이니 돈을 받으시오."
병든 형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병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그 무엇도 받을 게 없소이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사히 추수를 끝낸 것이 모두 그대의 기도 덕이니 어서 그대의 품삯을 받으시오."
병이 들어 일하지 못한 형제는 끝내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두 형제는 그 형제가 돈을 받지 않으면 자기들도 품삯을 갖지 않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의 거룩한 논쟁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근처에 기거하는 은둔자를 찾아가 지혜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병이 들어 일하지 못한 형제가 먼저 은둔자에게 말했습니다.
"저희 세 사람이 돈을 얻기 위해 어떤 농부의 들판에 추수를 하러갔습니다. 그런데 추수 첫날에 제가 몹시 아파 일하지 못하고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형제가 제 몫까지 다 일해서 품삯을 받아왔습니다. 그들은 제게 품삯을 주었지만,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므로 받을 수 가 없습니다."
그러자 다른 두 형제가 말했습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저희는 각자 넓은 땅을 배당 받았습니다. 만약 저희 세 사람이 추수를 했더라면, 힘겹게 일해 이제야 겨우 추수를 끝내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형제가 기도해준 덕분에 저희 두 사람이, 세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추수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 형제에게 몫을 받으라고 청한 것인데, 형제는 도무지 자기 몫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은둔자는 세 수도사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아, 자신과 함께 기거하는 수도사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교회의 종을 울려 형제들을 소집하라"
모든 형제들이 교회에 모이자 은둔자가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공평한 판결을 내릴 테니 경청하시오."
은둔자는 다른 모든 형제들에게 세 수도사의 이야기를 전한 뒤에 병들어 일하지 못한 형제가 자신의 몫을 취하되, 원하는 대로 처분해도 좋다고 결정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주는 작은 선물에도 감사를 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해서는 더 큰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병들고 아픈 사람들과 영생을 모르고 지옥을 향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 여호와를 찬양하고 증거 하는 이 시대에 한나와 같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본문 10절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하늘 우뢰로 치시고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십니다. 한나는 자신의 힘으로는 승리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높이시고 승리하게 하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뿔을 높이신 것은 원수를 낮추시고 한나를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셔야 높아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교만하여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님이 물리치시고 낮추십니다. 하나님이 물리치시면 어느 누구도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권력자라도 먼지와 티끌과 같이 작고 힘이 없습니다. 불어 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감히 누가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단과 사단의 사주를 받는 악한 세력과 더불어 영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앞서 사단과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힘만 의지할 때는 모든 부분에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승리하게 됩니다.
과거의 일 때문에 지금껏 슬퍼하고 우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는 미래를 포기하는 행동이므로 과감히 털어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실망감은 결단 없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겠어. 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거든. 미래를 보면서 전진할거야."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이 병자는 기적을 바라며 베데스다 연못 옆에 거적을 깔고 평생을 누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불쌍하게 누워 있는 그를 보셨습니다. 누가 봐도 병색이 역력했으므로 예수님의 질문은 엉뚱하게 들렸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병자는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생각나는 대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는 혼자에요. 저를 도와 연못에 넣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죠. 그래서 매번 다른 사람이 저보다 빨리 연못에 들어갔습니다. 전 도무지 가망이 없어요."
우리 같았으면 "그렇군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무 불쌍해요."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보며 "일어나 걸으라" 하신 말씀의 속뜻은 이렇습니다. "정말 낫기를 원한다면, 삶의 제자리를 잡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이 혼란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다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갈 길을 가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자 병자는 기적같이 나았습니다.
낫기를 원한다면, 몸과 마음이 온전하기를 바란다면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드러누워 신세나 한탄하는 행위를 그만둡시다. 상황을 탓하지도 말고 실망스러운 사람들을 비난하지도 맙시다.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실패와 비난과 상처에서 일어나 걸어야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 일어나 삶과 신앙에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생명과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여호와를 더욱 잘 섬겨서 최고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