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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히11: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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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브리 11:38-40
제목: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의 선진들을 가리켜 평한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했습니다(본문38절). 세상이 이 사람들을 감당치 못하는 이유로,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본문39절). 그리고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다」고 했습니다(본문40절).
히브리 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을 잘 정의해 주는 말씀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곧 실체를 말합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로 실체를 본 것 같은 확신입니다. 천국을 믿고 소망하는 자는 믿음으로 그 천국의 실상/실체를 보고 누립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눅17:20-21). 다시 말해서 믿음이 있는 자는 자기 안에 천국을 가지고 있고, 천국을 누리며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믿음의 선진들....
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더 좋은 것, 더 나은 본향을 믿고 바라보고 누리며 살았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생활에 이 죄악된 세상이 여러 가지 시험과 핍박으로 고난과 유혹의 올무를 놓았으나, 믿음의 선진들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며 의의 길을 걸어가는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승리의 삶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히11:35-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앞서 간 믿음의 선진들이요, 또한 믿음의 선진들의 발걸음을 뒤따라가는 오늘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으나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구차히 타협하고 면하려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이나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는 바로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본문38절). 여기의 "감당치[악시오스(a[xio")]"는.... "가치 있는, 합당한, 알맞은"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주어로 하면,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 세상이 무시하고 환난과 핍박을 가했으나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또 이런 사람들 곧 믿음의 사람들을 주어로 하면, 그들에게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없어서 세상의 환난과 핍박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믿음의 사람들을 감당치 못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히브리 11장은 이렇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히11:33-34). 히브리 11장에 소개되지 않은 믿음의 사람들도 많습니다. 소개되지 않은 사람들 중의 몇 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습니다.

다니엘 3:16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우리 성도들이 잘 아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유다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온 포로들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 포로들 중에서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뽑아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놀라운 성공과 대접입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고(高)가 육십 규빗이요, 광(廣)이 여섯 규빗이나 되는 커다란 금신상(金神像)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자기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게 하여, 나팔을 불 때 금신상에 절하게 했습니다.
금신상에 절하는 것....
바로 제2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고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이는 왕명을 어기는 행위로 즉석에서 참소를 받았습니다(단3:8). 느부갓네살 왕이 분노하여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터이니 금신상에 경배하라고 했습니다(단3:15).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대답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온 포로로서 바벨론의 도를 다스리는 오늘의 도지사 자리에 올랐습니다(단3:12). 세상적으로 보면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갈대아 사람들 곧 본국 사람들이 시기할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성공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가치관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기에 이 세상은 가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 세상 것에 휘둘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의 발걸음이 좌우로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갑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세상적인 성공에 붙잡히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얽매여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진노하여 풀무불을 칠 배나 더 뜨겁게 하여 던져버린다고 하나, 하나님이 건지실 터이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금신상에 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결정하고,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이 「믿음으로」에는 세상적인 요소나 혈육의 정을 초월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대답은 간단합니다. 나를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세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고, 곧바로 대답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길에 복잡하게 생각하면 혈육의 정에 가로막히게 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지게 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결단이 풀무불에서 구원받는 놀라운 이적을 가져왔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는 승리를 가져 왔습니다(단3:28). 바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승리입니다.

2.욥이 있습니다.

욥기 1:20-21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욥은 동방 우스 땅의 부자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욥1:1). 에스겔 14:20절에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 5: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욥은 실제의 인물입니다. 독특하고 난해한 욥기의 특성으로 욥을 신화적 인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성경은 노아나 다니엘처럼 실제의 인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지금 욥에게는 엄청난 고난과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하루아침에 폭삭 망했습니다. 7남 3여의 10남매가(욥1:2) 맏아들의 집에서 생일 잔치를 벌이다 대풍이 밀려와 집이 무너져 다 죽었습니다(욥1:19). 뿐만 아니라 그 날에 스바 사람들의 습격으로 소와 나귀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 양 떼를, 갈대아 사람들이 습격해 약대를 탈취해 동방의 갑부라는 그 많던 재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재물도 가족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땅에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우스 땅의 거부(巨富), 욥의 그 모든 재물이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물질관입니다.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사도행전 4:32절에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맡기신 것이라고 합니다.
욥이 그러했습니다.
자신은 모태에서 적신(赤身)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빨가숭이 빈손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갈 때도 적신(赤身)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곧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말합니다. 그러니 지금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자식도, 재물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하나님이 취하여 가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욥의 이런 신앙고백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기른 내 자식이고, 피땀 흘려 모은 내 재산이라는 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고, 가치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약탈당하고, 빼앗긴 것으로 분통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욥기 1:22절/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스 땅의 거부(巨富) 욥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렸습니다. 재물만이 아니라 10남매의 자녀도 잃었습니다. 더욱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태워버렸고, 대풍(大風)이 불어 10남매를 죽여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 모든 환난에서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차원 높은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욥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격동하여 까닭 없이 욥을 쳤습니다(욥2:3). 사탄의 충동적인 요구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욥에게 더 큰 고난과 시련을 주었습니다. 「어디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지 아니 하나 보자」는 것으로, 이제는 온 몸에 악창(惡瘡)이 나게 했습니다(욥2:7).
욥기 2:8절/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 몸에 악창(惡瘡)으로 인하여 그 가려움을 견디기 힘들어 기와 조각으로 긁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마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욥2:9).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욥2:10).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얼마나 힘든 고난인지를 보여줍니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하는 아내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 엄청난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욥은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믿음의 사람 욥을 보세요. 10남매의 자식을 잃었습니다. 동방의 거부(巨富)라는 그 많은 재물을 잃었습니다. 모두가 사탄의 시험이요, 흉계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쫄딱 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승리자이요, 성공자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꾸짖으시며 당당하게 욥의 승리를 칭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받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3.스데반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59-60절/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은 초대교회의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스데반은 믿음의 사람으로 예수를 「오시리라 예고한 의인」 곧 그리스도라 증거하고, 그 의인을 너희가 죽였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행7:52). 이에 격분한 유대인들이 이를 갈며, 스데반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죽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에 맞아죽은 실패 같으나, 실상은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는 승리자입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돌에 맞아 죽어가며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는 스데반의 모습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기도했습니다(눅23:34). 이런 기도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외칠 수 있는 승리의 개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교회사 속에 나타난 수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더 좋은 부활의 생명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시대 때에 믿음을 지키려다 죽어간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혹독한 고문과 채찍으로 믿음의 변절을 요구했으나 오직 주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믿음의 사람들을 감당치 못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습니다. 욥이 있습니다. 스데반이 있습니다. 모두들 더 나은 본향 곧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더 좋은 부활의 영생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고난과 시련으로 시험하고 미혹해도 오직 주만 바라보기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구차히 면하지 하지 않고,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기도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승리의 개가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고 대답하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평소의 믿음대로 간단히 생각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한, 욥처럼 고난과 시험당할 때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증거하고, 그 믿음 지키기 위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기도하는 스데반처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
이제 2006년도 저물어 가는 이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신앙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아왔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오히려 세상 것에 얽매이고, 휘둘려 믿음을 저버리는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빌4:13). 예수님께서는 「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요16:33).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성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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