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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날개로 업어 (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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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날개로 업어 (출 19:1-6)


독수리를 가까이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상상외로 큽니다. ‘이런 덩치로 어떻게 그렇게 나는가?’ 라고 감탄을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을 독수리에 비유해서 말씀을 하시는지 그 의미가 심오합니다.

오늘 본문과 함께 신명기 32장 11-12절을 보면 더 실감있게 묘사를 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은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이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훈련의 시범

독수리는 새 중에 왕입니다. 새 가운데는 당할 새가 없는 왕입니다. 이 종류가 48종이나 있다고 합니다. 많은 종류들이 나라마다 다른 형태로 있는데 그 둥지가 2-3미터 되는 그런 큰 사이즈라고 합니다. 독수리 둥지를 하나 철거하면 그 전체 무게도 1톤에 가까운 둥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둥지에 동원된 각종 재료들이 기묘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최고속력 시속 180키로미터로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옆으로 획 지나가는게 눈에 잘 안 보일 정도입니다. 또 90키로미터 반경에 있는 먹이를 관찰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중에서 90키로미터 반경의 먹이를 눈으로 관찰하면서 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가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비유가 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독수리로서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키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셨다고 말씀합니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은 것 같이”라고 비유를 했습니다. 독수리가 보금자리에 고이 있는 새끼를 날개로 업어서는 공중에 띄워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새끼는 떨어지면서 죽는 줄 알 것입니다. 아직 미숙한 날개로 퍼득거리며 떨어지면서 죽는 줄 알지만 어미 독수리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날개로 받아서 다시 공중으로 올리고 또 공중에서 떨어뜨려서 훈련을 시키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훈련시키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에 하나의 교훈처럼 들려 드리고 싶은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무엇인가 몰두해야 되고 훈련이 있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훈련을 놓치면 일생동안 성장에 큰 차질이 옵니다. 그만큼 청소년 시절에 훈련을 받고 배운다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운동량이 부족하다, 세 번째는 부모와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진단을 했습니다. 이 세 가지 부족은 분명히 청소년 성장에도 영향을 주는 일입니다. 이 부족이 일시적일 수는 있지만 이것이 오래가든지 습관화되든지 하면 우리들의 정서에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사이트에 몰두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집중력이 있어야

우리 세대가 자랄 때만 해도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독서에 많이 심취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을 숙제로 내 주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이라는 것은 컴퓨터와는 분명히 구별성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분명히 순기능이 있고 역기능이 있습니다. 순기능을 살리면서 컴퓨터를 활용해야 됩니다. 역기능에 내가 몰두하든지 심취한다면 부작용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주는 최대 장점은 편리성입니다. 쉽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숙제를 대행해주는 사이트들이 더러 있다고 듣고 있는데 만약에 숙제를 대행해주는 사이트에서 숙제를 자꾸 한다면 이것은 자기 성장에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서 몰두하는 어떤 훈련, 공부하는 이런 시간들이 많이 있어야 됩니다. 청소년 시절을 쉽게 보내면 후 세대에 여러 가지 성장에 차질이 옵니다. 청소년시절에는 파종의 계절입니다. 심어야 됩니다. 거두려고 하면 안됩니다. 계속 심어야 됩니다. 아주 몰두하면서 심어야 됩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공부가 아이에게 너무 짐스럽다, 숙제가 너무 짐스럽다 하는 그런 부모님들은 그것을 너무 애처롭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야말로 몰두하는 공부하는 시절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신화처럼 언급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분명히 테러리스트이고 이슬람의 광신주의자입니다. 이 사람은 악의 화신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한 글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테러집단의 지도자로 군림을 하는가? 이 사람에게 있는 다른 사람이 추종을 감히 못하는 세 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 첫째가 이슬람 신학의 탁월한 이론가라는 것입니다. 총칼만 들고 싸우는 전사가 아니고 이슬람 신학을 통달하고 있는 이론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연설을 하면 모슬렘들이 아주 열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빈 라덴은 한번 책을 보면서 몰두하는 일들이 몇 일씩 지속이 된다고 합니다. 몰두하면서 이슬람 신학에 심취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마구잡이로 총칼을 휘두르는 깡패가 아닙니다. 이 사람의 이론은 탄복할 만큼 조직적이고 미래적이고 거기에 투신할수록 이 사람의 이론 앞에 열광을 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열정적인 행동가이며 계산을 할 수가 없는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재력과 이론과 열정이 겸비된 사람인데 지금 이 시대에 혁명가로서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영향력은 아직도 굉장합니다.

대가 있는 길

우리 사회에 무언가 성취한 사람은 반드시 배움이 몰두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독수리의 훈련이 필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독수리 새끼라고 한 번 연상을 해 봅시다. 높은 창공에서 어미가 나를 집어 던져 버렸다면 죽는 줄 알 것 아닙니까? "아 죽었구나"라는 죽는 줄을 느끼는 그 대목까지 우리는 훈련이 일어나야 됩니다.

몇년 전, 수영선수로서 아시안게임의 금메달 리스트인 최윤희가 금메달을 따고 어느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훈련받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를 훈련시키는 코치를 죽여버리고 싶도록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목이 있기에 금메달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넘으면 금메달이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아주 잘못된 철학이 쉽게, 편리하게 가자는 것입니다. 쉽게 살자는 것입니다. 쉽게 예수 믿자는 것입니다. 편리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 편리는 댓가가 지불된 편리라야 되지 대가를 회피한 편리는 범죄행위입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릴 때는 사랑을 먹고 살아야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일에 보람을 먹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치원생이 받는 그 사랑은 오래 받으면 안됩니다. 유치원시절 때 받던 그 사랑을 계속 요구하면서 크면 안됩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사랑받는 보람이 아니고 이제는 사랑을 베푸는 보람, 일하는 보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 데리고 와서 독수리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훈련을 시켰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출애굽한 백성들입니다. 430년이라 하면 이것은 거의 20대 내지 25대가 되는 긴 세월입니다. 20대 이상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다면 그 종살이가 체질화된 것입니다. 대대로 종살이를 했다는 것입니다. 대대로 백정으로, 대대로 머슴으로 살면 그 머슴살이가 체질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문화화된 것입니다. 종살이가 불편한게 아니라 문화화된 것입니다.

사명의 길

오늘 우리들의 생활 속에 문화화된 게 아주 많습니다. 문화화현상, 콜라 마시고 햄버거 먹고 피자먹고 하는 것은 세계화의 문화화현상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음료입니다. 그러므로 세계화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라는 게 해외여행을 많이 하고 외국어를 잘하는게 아닙니다. 세계의 문화를 함께 누리는 것을 가리켜 세계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피할 수 없이 세계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가 문화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체질화된 종, 문화화된 이 백성들을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답게 다듬으시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독수리를 훈련시키듯이 훈련을 시켰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에게 영원한 민족스승입니다. 본인도 훌륭했지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산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 선생도 도산 안창호의 제자입니다.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창호는 우리 앞에 이런 신앙고백을 줍니다. 이 분의 말의 뜻이 이렇습니다. "안창호는 마이 웨이(My way)를 가기 전에 히스 웨이(His way), 즉 하나님의 길을 발견했다"라는 것입니다. 나의 길을 가기 전에 그 분은 하나님의 길을 먼저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이 웨이보다 히스 웨이를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내 생애에 의도하는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설정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는 목숨을 거두는 그 자리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 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말이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이 이 나라를 지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신앙고백입니다. 평소에 그렇게 말을 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절망의 자리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이 나라와 민족을 맡기면서 살았습니다. 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남강 이승훈이 회개하고 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겠다 라는 신앙가치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독수리새끼가 받는 그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가난할 필요는 없지만 가난의 의미를 알고 커야 됩니다. 우리가 조상들이 물려받던 그 갈등을 우리 세대가 그대로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 조상들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왜 고생을 했는지 그 고생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학문으로만 되는 교육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교육이 담당해야 될 몫이고 우리 부모가 담당해야 될 몫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사회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칫 잘못하면 고칠 수 없는 상태로 우리가 문화화되어 버립니다. 지금 고학력 실업자, 그리고 청년 실업자가 많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들의 문화화와 굉장히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문화, 사회문화, 직장문화 이런 것들로 하여금 우리 사회에 고실업을 양산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3D업종에는 30만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쉽게 살고, 편리하게 살고자 하는 문화화된 의식,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어하고, 조금 어려움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이런 문화화된 의식이 공부할 때부터 익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레벨이상으로 살아야지, 이 레벨 이하는 아니다' 그런 문화가 지금 우리 사회에 많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리 선교사회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도 쉽게 편리하게 전도하는 길이 없나, 이런 문화의식이 나도 모르고 젖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땀 흘리고 희생하고 수고하면서 주님을 섬기는게 아니라 어떻게 편하게, 쉽게 되는 길이 없나, 남들이 수고해 놓은 거기에 덩달아 박수 치는, 내가 밥상을 차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젓가락만 들고 가서 함께 먹는 이런 심리가 오늘 우리들의 신앙행위 속에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의 밥상은 내가 차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을 빼앗는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이와 같은 사회 문화화현상 속에서 우리가 탈출을 해야 됩니다. 내가 ‘이대로’ ‘이게 정상이고 만족하다’ 거기서 탈출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라고 하는 이 문화에서 탈출하는데는 상당한 피땀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을 길 가다가 만났는데 교회에서 복음제시를 위해 성구를 외우라 해서 인사하면서 성구암송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암송할 만 해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외워 보았는데 도무지 머리에 안 들어옵니다"라고 합니다. 그게 정상 아닙니까? 외우는데 숙숙 들어오면 이상한 것입니다. 잘 안됩니다. 잘 안되는 그것을 돌파해야 되는데 그것을 돌파하지 못하니까 못 외우는 것입니다. 잘 안된다는 그것을 돌파하는 것은 나 한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까지 안해 주십니다. 이대로가 괜찮다는 그것을 돌파하는게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깨는 대목이 한번씩 있어야 됩니다.

맺는 말

등산은 좋은 운동입니다. 등산해 보신 분은 누구나 경험합니다. '아, 힘들다. 내려갈까?''정말 힘들다, 저 위에까지 어떻게 올라가나' 하고 절망하는 대목이 한 번씩 있습니다. '정말 힘들다 주저앉고 싶다' 그것을 넘어서서 정상에 이르러야만 등산의 묘미를 압니다. 적당히 올라가는 그런 산이야 올라가도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드는구나 그 대목을 올라서서 정상에 서면 말 못하는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청소년들은 곱게 자라야 됩니다. 하지만 곱게 자란다는 이 개념은 훈련을 생략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잔인할 정도로 교육을 시키는 선생님이 계셔야 됩니다.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공부하는 시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야말로 탈출하고 싶다 라는 고통의 시간을 지식과 더불어 싸우는 대목이 있어야 무언가 됩니다. 독수리의 훈련이 청소년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되는 그런 보람있는 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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