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왕상 3:4~15)
본문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그 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큰 산당이 있는 기브온으로 가서 일천 번제를 드린 날 밤에 꾼 꿈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왕상3:1-4). 그 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무엇을 줄지 너는 구하라”(본문 5절) 하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다른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오직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본문 9절) 했습니다. 즉 백성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솔로몬의 말에 흡족해하시며(본문 10절)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시되 그처럼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게 하실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것 즉 그 어느 왕도 누릴 수 없는 부귀와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본문 11-13절).
이 꿈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지만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려는 것은 솔로몬에 관해서가 아닙니다. 그 아버지 다윗에 대해서 아직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려는 구절은 14절입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언급에 주목합니다. 이때는 이미 다윗이 죽고 난 후입니다. 따라서 이 14절에서 다윗에 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의 삶 전체에 대한 종합적 평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평가는 “다윗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본문보다 뒤에 나오는 왕상9:4에서도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다시 반복됩니다. 이때는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였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다윗에 관해 언급하시기를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했다” 하셨습니다. 다윗에 관한 하나님의 이 두 차례의 언급을 종합하여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는 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다윗 이상으로 평가를 받은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의 그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다윗은 과연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었는지를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다윗은 성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지을 마음을 가졌었지만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완벽한 도덕군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크게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는 그의 충직한 부하장수 우리아가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을 때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의 궁으로 불러들여 자기의 여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삼하11:1-4). 그뿐이 아닙니다. 그 일로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전투 중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들여 아내 밧세바와 지내게 함으로써 자기의 범죄사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삼하11:5-8). 그러나 충직한 우리아가 자기의 계책대로 움직이지 않자(삼하11:9-13) 다윗은 그를 다시 전장에 내보내고 맹렬한 전투지에 홀로 남게 만들어 결국 전사하도록 일을 꾸몄습니다(삼하11:14-17). 그렇게 해서 다윗은 자기의 충신인 장수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삼음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삼하11:27).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일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를 계수하게 한 일입니다(삼하24:1-10, 대상21:1-8). 인구를 조사하는 일이 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범죄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때부터 그의 자손으로 하여금 “땅의 티끌 같게”(창13:16) “하늘의 뭇별 같이”(창15:5)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반복해오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자기의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일이며 그 약속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편에 서있기만 하면 그들의 수에 비해 적군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심으로써 늘 승리할 수 있음을 역사적으로 수없이 증명해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싸워보겠다는 불신앙과 교만과 불충의 표시인 것입니다. 다윗으로부터 인구조사의 명령을 받은 장군 요압은 오히려 그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기고(대상21:6) 다윗에게 아뢰기를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을 백 배나 더하게 하실 터인데(삼하24:3) 왜 부질없는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막무가내로 인구조사를 재촉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이 죄는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보다 더 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는 하나님 앞에서 다윗 자신의 개인적인 죄로 남는 데 반해, 인구를 계수하는 죄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하나님 앞에 죄 짓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요압이 다윗에게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한 말 속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실제로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행한 일로는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 성폭행과 살인행위가 줄이어 일어나고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다윗은 그 반란의 무리들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쫓겨다니고 생명의 위험과 욕설과 돌팔매질까지 당하는 수모를 받는 신세가 되는 등 상대적으로 개인적인 성격이 강한 징벌을 받았지만, 인구조사를 강행한 일로는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퍼져 삼일 동안 칠만 명의 백성이 죽는 국가적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삼하24:15).
우리는 여기서 이런 다윗임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켰다”고 하시고 그가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했다”고 하셨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그 크나큰 범죄사실들을 당신의 기억에서 다 지우시고 그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여기시게 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다윗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음을 깨달아 안 후 취한 태도와 언행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빼앗고 그의 남편인 충신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몬 일이 일어나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그에게 보내 그의 죄를 질책하게 하셨습니다. 나단은 지혜로운 비유이야기를 먼저 함으로써 다윗이 자기가 저지른 행위와 유사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격노하며 엄히 정죄하게 만든 후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요”(삼하12:7)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하셨소”(삼하12:9) 하며 다윗의 면전에서 그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 자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와 밧세바 사이의 부정한 관계로 태어난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셔서 심히 앓게 하시자 금식하며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자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성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었습니다(삼하12:15-20). 그것을 본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묻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자 다윗은 대답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했습니다(삼하12:21-23). 죽고 사는 문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인정하고 그의 뜻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추악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심히 사랑하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많은 백성이 그에게로 기울자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향하여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삼하15:23). 그때 그를 따르던 제사장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오자 다윗은 사독에게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15:24-26) 하고는 사독과 그의 두 아들과 또 다른 제사장 아비아달을 하나님의 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삼하15:27-29).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은혜 베푸심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이에 승복하려는 자세를 보인 것입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다윗은 감람산 산마루를 넘어(삼하16:1) 베냐민 지파의 땅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요단 골짜기를 향해 가는 길에 있는 바후림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베냐민 지파의 옛 사울 왕의 친족 중 한 사람인 시므이라 하는 자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다윗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저주하는 말을 퍼붓고 돌까지 던지며 따라다닌 일이 있었습니다(삼하16:5-13). 그러자 다윗을 따르던 신복 아비새가 다윗의 의향을 묻기를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했습니다(삼하16:9). 그때 다윗은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라”(삼하16:10) 하고, 또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1-12) 하고는 그 시므이가 던지는 저주의 말과 돌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그냥 지나갔던 것입니다(삼하16:13). 그 모든 고난과 수모의 원인이 자기의 죄 때문이며 이 때문에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불평과 거역을 하지 않고자 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압살롬은 처참한 죽음을 당했으며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자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지던 시므이가 다윗 앞에 나아와 엎드려 살 길을 찾으려 할 때 다윗의 신복 아비새는 다시 그를 주여야 한다고 다윗에게 청했습니다(삼하19:16-21). 그러나 다윗은 변함없이 시므이를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저주하고 돌을 던진 일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므로 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고 난 후에야 그 일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일인 줄을 깨달은 다윗은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빕니다. 삼하24:10을 봅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을 보내셔서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삼하24:11-12). 선지자 갓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제사하신 세 가지 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삼하24:13). 다윗이 갓에게 답하기를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삼하24:14).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셨고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다윗은 곧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했습니다(삼하24:17).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통회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다윗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켰다”고 하시고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했다”고 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율법으로 아무 흠이 없다고 여기는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감히 눈을 들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기를 간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요구하는 믿음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찾으며 그 뜻에 전적으로 승복하려는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믿음일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새삼 그의 위대함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하는 것은 그런 다윗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큰 죄를 범한 다윗을 용서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을 징벌하시면서도 그를 아끼시는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거룩하심과 엄위하심을 지키시면서도 그 가운데서 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복하자 곧바로 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해주셨습니다(삼하12:13). 진정으로 회개하고 육신의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못하며 그의 뜻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그의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 하나만 보시고 의롭다 인정하시고 선언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다윗처럼 승리하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드높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