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 (삼상 12:6-12, 마 19:23-30)
본문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요구되는 능력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판단력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우리에게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할 능력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과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제자가 예수님께 고백하기를 “저는 주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좇아가겠습니다” 했습니다. 자발적인 헌신의 고백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어땠을까요? ‘자네, 참 훌륭한 결단을 했구만, 나를 따라오게!’ 이렇게 말씀하시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재물의 문제가 제자의 길에 방해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는 먼저 청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이 사람의 대답은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극단적으로 구별하셨습니다.
결단의 기준 – 하나님 나라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위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최고의 가치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최고의 가치를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모든 것을 주고 산 그 밭에 묻혀 있는 보석이 다른 모든 재산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도 가질만한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50대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딱 부러지는 경력을 내 세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건강이나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가 현재 감당해야 할 책임도 그에게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처지입니다. 가족의 생계는 물론이고 자식들의 교육도 그에게는 부담으로만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과 접하자 바로 그 피곤하게 느껴졌던 삶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그의 결핍에 대한 심각한 고통을 겪었는데, 그 결핍이 천국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국은 이 세상적 기준으로 무언가를 많이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곳이면 그 어디서나 천국이 임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항상 결핍만을 느끼며 피곤하게 살아가던 똑같은 삶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 있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는 나라
먼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될 때에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이 때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갈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무계획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생활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결코 비합리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계획을 포기 하지만 결코 무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리석은 것 같아도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의 삶에서 문자 그대로 인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무게를 다 감당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느니 차라리 창조주 하나님께 맡기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여기에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끝간데 없는 교만과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둘째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
셋째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의 법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말씀이 법입니다.
우리가 세상 나라에서도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가려면 그 나라의 법을 잘 알고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모임이 그저 먹고 마시는 모임이 아니고, 모일 때마다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회의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를 진지하게 한 마음으로 찾아가는 회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가?
현실과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은 곧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장소는 어디입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1.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는 다른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실을 초월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가야 할 종착역이지만 이 세상 역사 안에서는 도저히 완성될 수 없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마지막에 심판에 의해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가 모든 사람이 기독교를 믿는 나라가 되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것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 속에 와야 합니다.
이 세상 나라 한가운데에 하나님 나라가 와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은 현세의 나라는 전혀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멸망의 도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실과 관계 없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끝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 와서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심판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심판으로서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세상 나라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멸망의 나라가 아니라, 끊임 없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서 구원을 받아야 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와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정치를 뛰어 넘는 것이지만, 인간의 정치 한가운데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종교를 뛰어 넘는 것이지만, 인간의 종교 한가운데 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인간의 일에 개입하여 의미를 주기도 하며 심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 장소는 우리의 삶의 장소입니다. 각자의 소명의 장소입니다. 각자의 소명의 장소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나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룰 것입니까?
1. 내 나라의 포기
먼저 하나님 나라는 내 나라를 버릴 때,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 위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태복음 19:23-24).
물질 위에 세운 자기 나라를 포기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물질 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의 권력 위에, 이상[idea] 위에, 철학 위에, 이념[ideologie] 위에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규범이 잘 지켜지고 도덕이 있으며 조화로운 나라를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정의와 평등과 박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건강과 위로와 자비가 있으면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독을 이길 수 있고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으며 참된 공동체가 형성되고 자유가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비한 경험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동경과 소원과 희망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혼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편협한 한 가지 소신이 곧 하나님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도덕주의’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실천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내적 평안이나, 영적인 실체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모든 것 속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통치인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는 모든 인간적인 것의 포기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의를 추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두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숭고함도, 인간의 도덕적 완벽함도 하나님 앞에서는 누더기 옷과 같이 보잘것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는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크게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를 맞아 들여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소식이 복음입니다. 이 소식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3. 갈등,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쟁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세번째 방법은 영적인 전쟁을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다르면서,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는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에는 평화롭게 보였던 가정에 균열이 생깁니다. 삶의 장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태복음 10:34-36).
언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를 위해서 파송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전도를 하니까 갈등을 일으켜서, 미움을 받게 되고, 박해와 고난을 받게 됩니다.
전도와 하나님 나라 – 전투의 현장
전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전파하면 이 세상 권세와 사탄의 권세는 정면으로 도전해 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할 것인가? 여전히 죄악과 죽음의 나라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결단을 촉구합니다. 심지어는 가정 질서에도 변화가 오게 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마태복음 10:37).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생명까지도 주관하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따라가면 갈수록 우리는 이 세상 나라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게 하며 십자가를 감당하게 합니다. 즉 내가 죽는 사건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는 내게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에 이 세상에서 나를 괴롭히며 나를 유혹하던 세상의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나 사망에 대한 두려움이나, 현실의 괴로움 등이 함께 죽어 버립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죽고 하나님의 것만이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만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자리에 만이 하나님의 나라는 건설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헛된 권력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주권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꼭 기도해야만 하는가?
걱정의 교환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꼭 기도해야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기도를 안 하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기도가 없이도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역시 우리에게도 오기를 기도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하나님 나라가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걱정거리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책임져 주시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걱정거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의 대상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군대에 입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군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오로지 명령에 대한 충성이 목적입니다. 그대신 우리의 모든 사소한 것은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심사의 교환입니다. 걱정거리의 교환입니다. 목적의 교환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딤후 2:4).
병사는 목숨을 다해서 국가를 지키고, 국가는 그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줍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걱정하며 자신의 삶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제자의 삶은 병사의 삶과 같습니다. 병사가 임무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듯이 제자들도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8-39).
이런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복음19:29)
이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영원한 생명
이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복음은 우리로 믿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면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왔을 때 세상의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인 것에 자유를 주고 의미를 주고 생명을 주고 빛을 주는 것입니다. 존재의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그 안에 약동하는 에너지를 줍니다.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위 엘리트 교육 과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름 대로는 열심히 살아왔고 도덕적으로도 별 문제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직업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업적이 있으며 미래도 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 진지한 시간이 되면 자신의 삶이 방향이 없는 것 같고 자신의 인생이 공허한 풍선과 같이 부풀려진 것처럼 허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언가 쫓기는 듯 살았습니다.
그는 성탄절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집 안에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갑자기 썰렁하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그는 허탈하고 무의미한 느낌이 들고 죽고 싶어 졌습니다.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면 되겠다 하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서 바닥에 눞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 봅니다. 모든 것이 바쁘고 피곤할 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떠오르는 즐거운 장면이 초등학교 2학년 성탄절 때 교회에서 성극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의 모습이 정말로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래 교회를 다시 나가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잠에 빠졌습니다. 다음 주일날 그는 아무 인도하는 사람도 없이 집 앞의 교회에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정말로 쉼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는 교회를 나갔습니다. 인사하는 교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점점 진리가 깨달아 졌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자기 만족과 사회적 삶에서의 성취가 덧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세상적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속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자 그는 과거와 같이 일의 강박 관념에서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미가 세속적 삶에서 행동 철학이 되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걱정하니까 하나님은 내 삶을 가장 먼저 걱정해 주십니다. 나의 유한한 관심사를 하나님의 관심사로 바꾸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이 나와 함께 합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적을 가지니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를 가장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박명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