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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루라! (고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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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루라! (고전 2:1-5)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은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전적으로라는 말은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어도 주시는 말씀에 의지하여 온전히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이성과 판단과 경험을 다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십시오.

얼마 전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소년이 도벽을 버리지 못해서 자동차를 훔치다가 붙잡혀 소년원에 들어갔습니다. 소년원을 방문한 그 교회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고 위로했습니다. "얘야, 이번에 교도소에서 나오면 목사님이 힘 닿는데까지 도와주마."
그때 이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그런 말씀 마세요. 자동차를 훔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예요. 목사님이 도와주기 힘들 거예요. 목사님은 설교나 잘하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잘못된 생각을 고칠 마음이 없는 사람은 도와줄 길이 없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고칠 마음이 없는 사람은 도와줄 길도 없습니다. 삐뚤어진 마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처음부터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못난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하나님께서도 잘난 사람만 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에 지혜 있는 사람만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영향력 있고 높은 신분의 사람만을 쓰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적인 가치로 볼 때 잘나지 못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들을 택하사 가장 강한 자로 쓰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가장 지혜로운 자로 쓰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자를 택하사 가장 부한 자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때로는 스스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잘난 사람을 불러서 '야, 그 사람 참 잘났다'라고 하는 감탄의 역사가 아닙니다. 못난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은 저런 사람을 통해서도 엄청난 일을 하시는구나'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을 택하셔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통로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를 풍성하게 만드는 옥토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겸손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는 시대의 사명자가 되십시오. 부족한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 속에서 시위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그 심령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는 꺾으시고 버리십니다. 교만하면 세상 속에서 조롱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혹여라도 내 마음에 교만의 씨앗이 자라지 않게 성령이여 도와주옵소서. 겸손의 띠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길이 있어야 됩니다. 바른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와 꿈을 관리하십시오. 목표와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자기 관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자기 내면의 관리가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취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입니다. 성취자는 자기 만족에 빠지지만, 지도자는 많은 사람들을 다 만족하게 만듭니다. 성취자는 자기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람이지만, 지도자는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만듭니다. 성취자는 자기의 생각과 뜻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주장하지만, 지도자는 자신의 생각은 죽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성취자는 자기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지만, 지도자는 공동의 승리를 위해서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지도자의 제일 큰 의무와 권리는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원리와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바른 원칙이 없으면 시대가 무너집니다. 바른 원칙이 흔들리면 공동체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입맛에 따라서 원칙이 변하면 안됩니다. 자기 감정에 따라서 공동체의 원칙을 흔들면 안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원리와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감정과 이해에 따라서 원리와 원칙을 흔들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원리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가십시오. 그러면 하늘과 땅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깊은 경지에 가면 갈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원칙과 원리에 더 깊은 눈을 뜨게 되는데 그것이 영감입니다.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깊은 영감이 있는 하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자신의 감정을 뛰어넘는 성숙한 영감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 마디의 말에 상처를 받고, 하나의 일에 감정이 틀어지는 그런 미성숙한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시대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상황과 사건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영성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역사 속에서 세상에는 수많은 위인과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에도 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위인들과 성경의 위인들에게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위인들은 모두가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의 위인들은 모두가 자기의 이름을 지면에 드러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위인들은 자기는 죽고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여드린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위인들은 한 세대가 지나고 시간이 흘러가면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위인은 오고 오는 세대 속에서 그 이름이 모든 사람들에게 더 생생하게 기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추구하는 위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믿음의 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이 말씀에서 깨달을 수 있는 바, 성경은 우리들에게 아주 기막힌 투자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삶의 법칙은 메아리 법칙입니다. 준 것만큼 되돌려 받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하면 반드시 좋은 말이 들려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말을 듣기를 원하면 내가 먼저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린 만큼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뿌린 것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거둘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아리의 법칙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이 법칙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외면합니다. 그래서 받으려고만 합니다. 섭섭하고 상한 말만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쉽게 살고 편하게 살려고만 합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떠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삭막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메아리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먼저 주십시오. 섬기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좋은 말을 하십시오. 좋은 생각을 하십시오.

사람들 가운데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일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 안주해서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은 5년, 10년 뒤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서 일어나는 그 행동과 판단은 오고 오는 세대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쁜 습관, 잘못된 사고방식은 내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오고 오는 세대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나로만 살 것이 아니라 내 자녀와 오는 세대를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나로 인하여 하나님 안에서 더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눈물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성경의 위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단한 것 같지만 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때로는 약하여 넘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근심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공포에 떠는 서글픈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대단한 사람에게만 신경 쓰는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우리 같은 사람, 약하여 넘어지는 사람, 두려워 떠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런 우리들을 불러 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똑같이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 받고 복을 받는데 어떤 사람은 왜 실패를 합니까?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능력 있는 삶,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데, 어떤 사람은 늘 넘어지고 절망하고 무력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지식이 모자라서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경험이 부족해서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이나 환경 때문에 자신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환경이 너무 어려워서, 가족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돈이 힘인데 돈이 없어서 자신은 아무 일도 못한다고 미리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지식이나, 돈, 경험이나 넉넉한 환경 따위는 신앙생활의 승리, 능력 있는 삶, 성공적인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없으면 불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불편의 문제와 불행의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불편하다고 다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건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많이 불편합니다. 등산도 못하고, 운동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는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확실히 고백하건데 저는 주님 안에서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매 한가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행복한 신앙생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환경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신의 환경을 의지하다가 절망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더구나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조건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힘으로 하는 것이지 세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나 전도를 가리켜서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무엇이 사도 바울을 이토록 두렵게 하고 약하게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바울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육신의 질병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외모적인 콤플렉스 때문이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말이 어눌해서 미리 겁을 먹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핍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돕는 교인들이 모자라서 고독감에 빠졌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혹 고린도 도시의 위용에 주눅이 들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모두 쓸데없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능력과 당당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대답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헬라의 수도 아덴의 전도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의 거장들이 활동하던 헬라 철학의 본거지입니다. 바울이 이곳에 도착하고 보니 바울은 과거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철학적인 끼가 발동했습니다.

그는 히브리 종교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헬라 철학에도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철학적 방법으로 전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아덴 사람들과 철학적으로 논쟁을 하기도 하고 변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말 싸움에서 보기 좋게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대로 전도를 할 수 없었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도 실패를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처럼 모진 핍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전도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는 그곳 아덴에서 전도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철학적인 논리로 말싸움을 하는 사이에 십자가 초점을 잃은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 철학, 경험을 의지하는 사이에 성령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실패 원인은 이제 분명해졌고 우리가 능력있는 삶,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도 분명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실패를 통하여 큰 것을 깨닫고 큰 결단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신비, 전도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힘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1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다같이 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사도 바울은 아덴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고린도에서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필요없고 지혜도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나 말은 능력입니다. 복음 전도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 말의 방법과 지혜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의 결단, 그리스도인의 능력, 복음 전도의 가장 탁월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본문 2절을 다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여기에서 '작정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대법원에서 내리는 최종적인 결정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 전도에서 달변이나 설득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겠다고 최종 결단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들이 붙잡아야 할 신앙적 자세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복을 받겠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 믿겠다는 것입니다. 병 낫겠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예수님만 붙들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얻겠다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고민을 하고 거룩한 수고를 하더라도 예수님만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 십자가 없는 신학은 깨끗이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에 와서 피묻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더니 거기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굳은 심령이 부서집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세워집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도시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능력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오직 십자가만을 전하십시오. 십자가 안에는 죄인을 의롭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의를 얻게 됩니다. 십자가 안에는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이 자녀가 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십자가 안에는 성결케 하는 능력이 있어서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안에는 승리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우리는 그 구원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오늘도 승리하게 됩니다. 십자가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철학이 아니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학문이 아니요 누림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결코 기독교를 파는 외판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상대방이 그 물건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사도록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멋있는 말로, 그럴듯한 표현을 해가며 물건을 팔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판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사였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신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내용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또 다른 그리스도인의 능력, 복음 전도의 원동력이 있습니다. 본문 4절과 5절의 말씀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여기에 보면 4절에서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라는 말이 나오고, 5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성령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면 삶의 내용이 저절로 변화가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저절로 믿어집니다. 안 믿고 싶어도 저절로 믿어집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심령에 감동과 감화가 넘쳐납니다. 강퍅한 심령이 무너집니다. 돌짝밭 같은 심령이 옥토로 변합니다. 은사가 나타나고 표적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난 사람만 잘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오직 성령의 능력과 나타나심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배짱이 있습니다. 힘이 넘칩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우리들 안에서 회복과 치유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부흥의 불길이 뜨겁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능력을 받아 우리들의 시대에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십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평범한 여러분을 통해서 비범한 신앙 역사를 만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저와 여러분을 통해 비범한 전도 역사를 이 땅에 보여주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비범한 가문 역사를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언양 영신교회를 통하여 비범한 부흥 역사를 이루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변방에 있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전초기지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이 사명을 내 때에, 우리의 시간에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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