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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환난을 멈추게 하라 (창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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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환난을 멈추게 하라 (창 35:1-7)


오늘을 본문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인생의 환난이 멈추고 평안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 각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성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는 “정신적 방황에서 자기의 갈 바를 깨달음 혹은 잘못을 깨달아 정신을 차림”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영적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야곱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20여년 전에 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가 도망하는 중에 루스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닥다리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는 하늘에 닿아 있었고, 그 사다리를 타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야곱을 향해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 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꿈에서 깬 야곱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격해서 그곳을 기념하여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베고 자던 돌을 기념비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세 가지를 하나님 앞에 약속했습니다.

창세기 28:20-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첫째로 오직 여호와만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했습니다. 둘째는 자신이 세운 이 돌이 반드시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셋째는 내가 반드시 주신 물질에서 십일조를 드릴 것이다는 십일조의 약속을 했습니다.

그후 그는 2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아내와 자녀들도 주시며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지혜를 주심으로서 큰 부유함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는 20년 후에 하란 생활을 마치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향 집으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가슴이 답답해 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형 에서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형의 문제로 근심하고 있을 때에 그 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야곱 앞에 서서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안하고 걱정하는 야곱에게 에서의 군대보다 더 강하고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가 그와 함께 하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군대를 본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야곱을 돕는 것을 보여 주셨지만, 그 속에는 아직도 불안으로 가득했습니다. 야곱은 고향 땅으로 들어가기 전 에서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하인들을 형에게 보내었습니다. 형 에서에게 다녀온 하인들은 한 결 같이 형 에서가 무려 400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자신의 목을 치러 온다는 두려운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두렵고 마음이 답답하여 이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인간적인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보호하면서 형 에서의 분노를 달랠 수 있는 기막히고 아주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가족과 양과 소와 낙타 등을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두 떼로 나눈 것은 에서가 한 떼를 지면 다른 한 떼는 에서를 도망하여 피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에서에게 예물이라는 명분 아래 일종의 뇌물을 주면 에서의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암염소와 숫염소와 암양과 숫양과 낙타와 암소와 황소와 암나귀 중에서 최상급으로 500여 마리를 구별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물을 다시 세 떼로 나누고 형 에서를 만날 때마다 형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면서 서서히 앞으로 전진 해 나갔습니다. 마음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물질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 시켜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물질을 준비해서 형에게 주고,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을 설치했지만, 야곱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불안했고, 초조했습니다. 왜 야곱이 불안한 것일까요? 왜 야곱의 가슴이 이렇게 답답하고 무엇인가 막혀 있는 것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전도서 7:14절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곤고한 날에는 왜 자신이 곤고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왜 우리가 불안한지 왜 가슴이 답답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왜 야곱이 곤고한 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는 아직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를 환난 날에 도우실 것이라고 했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잊어 버리고 전적으로 자신을 도우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분의 은혜를 잊지 말자!”

인생의 곤고함에서 벗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 인생의 곤고와 불안함과 답답함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까? 방법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함께 하시며 내 가는 길에 언제나 나를 돕고 계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돕고 계시다” 할렐루야!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그분의 도움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자” 시편 22:24절에는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라고 했고, 시편 34:6절에도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고 했습니다.

가족을 보낸 야곱은 고향을 앞두고 자신에게 찾아온 불안과 곤고 속에서 홀로 얍복강 가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놓고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성경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도록 씨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보낼 수 없다”고 매달리고 또 매달렸습니다. 그는 허벅지 관절뼈가 부러지면서까지 그를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복을 달라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을 때 응답이 있습니다. “부르짖을 때 응답이 있다.”

기도에 승리자가 되자 야곱은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근심으로 가득찬 마음은 이제 기쁨으로 변화되었고, 그가 얍복강을 건널 때 그곳에는 아침 해가 떠서 야곱의 가는 길을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잠언 16:7절에는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37:4절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로 나가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믿음으로 주께 나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부르짖어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기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의 환난이 멈추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께 부르짖어 간구하는 것 외에는 환난의 바람을 멈추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야곱처럼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환난을 멈추고 복을 받기 위해 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키자

드디어 야곱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립던 고향 땅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고향에 돌아 온 야곱은 이제 가장 먼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그가 서원했던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33:16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야곱은 벧엘로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숙곳이라는 곳에서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집을 짓기로 약속해 놓고, 하나님의 집보다 자기 집을 짓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의 집을 지을 것을 약속해 놓고, 짐승들의 마구간을 짓는 것에 더 급했습니다. 하나님의 집보다 짐승의 집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집보다 자기 집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 그가 머물기를 원했지만, 그는 숙곳 즉, 짐승의 집인 우리간에 머물러 있기를 더 바랬습니다.

이런 일은 학개 선지자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 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보다 자기의 집과 자신의 곡간을 위해 집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었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1:4-8).

주님의 전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지고, 배부르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가슴 가슴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는 마음이 충만하기를 진실로 축원합니다. 이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손의 복과 물질의 큰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몸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받아 가정이 크게 번성하고 인생이 형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그의 가정에는 환난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딸이 디나는 숙곳에서 히위 족속의 추장의 아들인 세겜에게 간강을 당하였습니다.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는 복수의 칼을 들고 히위 부족을 공격하여 추장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이 소식을 들은 이방 부족들은 야곱 족속들을 죽이겠다고 군사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이제 20년 동안 피로 쌓은 재산과 자식을 한 순간에 잃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또다시 죽음의 공포과 멸망의 공포가 찾아 왔습니다. 이 죽음과 멸망의 공포 속에 불안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주 간단히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야곱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 심각한 위기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바르게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인생의 환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나라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생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까? 그것은 야곱이 했던 것처럼 세 가지 서원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 첫째는 여호와 만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2절 말씀에서 우리는 야곱의 가정이 우상으로 가득한 가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자”

야곱처럼 이제 우상을 제거하고 우상을 묻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형통함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절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소망이 없는 중에라도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이 복을 받으면 하나님의 집을 세운다고 서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고, 믿음의 복을 주시며, 명예의 복을 주시며, 자녀의 복을 주시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을 꼭 세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라는 것은 건물만을 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건물만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섬기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연견해주고, 화목하게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전도의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찬양으로 섬기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교사도 있어야 합니다. 봉사하며 주의 전을 돌아보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십시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고 할 때에 건물만을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세워 제사장 제도를 바르게 하며, 찬양대를 만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러 가지 섬기는 제도를 바르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무너진 성벽을 세웠고, 학개와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무너지 성전을 세우며 백성들은 즐거워하고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기쁨과 은혜가 여러분 속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십일조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말하는 목사도 참 어렵고, 듣는 사람도 시험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일조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의 복을 받는 축복의 통로요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내 삶에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쓸 것을 주시고, 나에게 풍요를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의 외적 표식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채우실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일조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말씀에 보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백성들에게는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복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업의 복과 명예를 주심으로 인해 이방인들조차 우리를 가리켜 복되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풍성한 삶과 명예로운 삶을 누리려면 반드시 십일조를 거르지 말고 드릴 수 있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야곱은 이 세 가지 즉, 1) 하나님 만을 섬기겠다 2)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 3)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겠다라는 약속을 어김으로 인해 환난의 바람과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자녀를 그대로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그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제시한 환난을 이기는 최대의 방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들이 복을 받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벧엘로 올라와 제단을 쌓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의 행복은 세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벧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벧엘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벧엘에서 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시며 인생을 형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9절에서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셨다”는 구절을 읽게 됩니다. 벧엘로 올라 갈 때 인생의 추격자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예배의 회복만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벧엘로 가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가던 발 걸음을 멈추고 벧엘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반드시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예배의 회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를 회복하자 예배의 회복이 바로 인생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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