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선교 사역 (창 12:1~9)
본문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오늘 말씀입니다. 그를 가리켜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라는 영적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조상은 최고 자리에 있었던 근본적 인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버지도 ‘데라’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나타나고, 아브라함의 할아버지도 있었을 것이요 고조할아버지도 있었을 터인데 아무도 중요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하면서 복음서가 시작됩니다. 그 족보의 뜻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말을 증거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예수님도 이 부분을 인정하십니다. 삭개오를 만나서 이야기 하실 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3장 16절에 18년 된 환자를 고쳐주실 때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하시며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에 보면 죽어서 지옥에 간 어떤 부자 한 사람이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한 성경구절은 성경에 300번도 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의 조상이 누구냐?” 물으면 누구든지 다 아브라함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의 후손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외에 성경에 인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 신학자들이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역하신 일이 역사화된 시기가 아브라함 때부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일을 시키시면서 큰 약속을 하나 주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브라함 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아니하신 약속을 그때 처음 하셨고 더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 “만약 너를 축복하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복을 내려줄 것이다. 만약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그 사람을 저주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절대 권위를 만들어 주셔서 아브라함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절대권위로 첫 번째로 시키신 구체적 사역의 성격은 무엇인가? 살던 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가라고 하셨는가? 바로 이 가라는 명령이 곧 선교입니다. 찾아가는 선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곳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이라크의 바그다드 근처가 됩니다. 이곳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대로 인류 3대 문명의 발상지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 지구상에서 그곳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75년 동안 정착해서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간 경로를 보면 이라크 남단에서 북쪽까지 국토를 횡단했습니다. 시리아 땅을 통과하여 터키 남쪽 하란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남쪽으로 시리아 하단까지 와서 레바논 동쪽 땅을 통과하여 지금의 텔아비브 근처로 온 것입니다. 이쪽 지역을 여행해보셨습니까? 끝없는 사막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곳으로 가게 하셨는가? 이것을 보면 선교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의 삶의 성격은 아브라함과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브라함과 같아야 된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금년 표어로 정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입니다. 그러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려면 자연히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빨리 온 세상의 길을 떠나 흩어지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 백성에 대한 계획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그것이 역사화된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흩어짐을 면하자고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하나님의 계획의 역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바벨탑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흩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주어 언어가 통하는 사람끼리 떼를 지어 세상을 향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흩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데, 예루살렘에 있던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견디기 힘들어 사방으로 다 흩어진 자체를 디아스포라(Diaspora)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흩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도 끊임없이 디아스포라 시키십니다. 흩어지게 하십니다.
초대 교회에서 가장 큰 사도 역할을 하던 베드로는 흩어진 형제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베드로전서, 후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면“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하노니” 아브라함 선교의 특징은 찾아가는 선교, 흩어지는 선교입니다. 노아 선교의 특징은 방주를 준비해놓고 오라는 선교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파송한 최초의 파송 선교사가 됩니다. 그러면 왜 그곳으로 보내셨는가?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게 하시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그 당시에 세계인이 모여드는 상업 거래의 중심지였습니다. 북쪽으로는 소아시아 대륙이 연결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애굽 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쪽은 지중해라서 더욱 중요한 해상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라고 했으며, 이 땅이 탐이 나서 역사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는 수난의 땅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납니다. 애굽에서 장사꾼이 상업을 하기 위해서 그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요셉을 인신매매하여 데리고 돌아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헤롯왕이 어린 아기 학살 명령 내렸을 때 아기 예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도 애굽으로 피난 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로마시에서는 이스라엘 평야에서 재배된 채소를 거의 다 수입하여 식료품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인의 발걸음이 빈번하게 오고가는 중심지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브라함을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을 보십시오. 서양 사람들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형적으로는 동양입니다. 그래서 양쪽을 연결하는 민족과 지형이 바로 이곳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브라함이 살므로 이곳을 빈번하게 오고가는 세계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전달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 세계 선교 역사를 보십시오. 어느 국가나 선교사 한 사람만 잘 들어가면 그 나라는 복음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복음의 능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복음을 들고 들어가면 내 실력이나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자,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기회를 봐서 성경책을 한번 선물 해보세요.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언젠가는 예수를 믿게 됩니다. 저는 간증이 많습니다. 은행 고위층에서 아주 잘 나가던 사람이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는 친구 한명이 도저히 예수를 믿지 않는 이민 가는 자기 친구에게 성경책 하나를 사서 “야! 이민가는 친구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니까 가지고 가라!” “이야, 고맙다.” 뭔지도 모르고 이민 가방에다 집어넣고 왔는데 펴보니까 성경책입니다. ‘아니, 이런 난 예수도 안 믿는데 무슨 성경책을 선물하는 거야?’ 그 사람이 20년 동안 저와 이민 목회를 같이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 최고의 지도자 그룹에서 교회 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머릿속으로 수학적으로 너무 계산하지 말고 그냥 우직하게 하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기드온 협회에서 온 세계 성경 보내기 운동하는데 우리도 해마다 한 번씩 헌금해 주었습니다. 어디까지 성경을 갖다 놨느냐? 달나라까지 성경을 갖다 놨습니다. 아폴로가 달나라 갈 때 성경책을 달나라에 갖다 놓으라고 해서 갖다 놨습니다. ‘갖다 놓기만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 들어가 있으므로 언젠가는 달나라에 인간이 빈번하게 오고갈 때 거기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돈을 많이 내어 온 세계에 성경을 갖다 놓는 것입니다. 성경 없는 지역에 성경만 열심히 나눠주는 겁니다. 그러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어느 나라나 최초의 선교사는 한사람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온 세상이 이렇게 복음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내가 어느 지역에 가서 살기만 해도 빛이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눈에 보이는 업적이 금방 나타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저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이 나라에 찾아온 선교사라고 하는 신분만 알려주어도 언제인가는 그 땅에 복음의 열매가 맺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가나안 땅을 보십시오. 헷족속을 비롯한 31개 종족이 살고 있던 그 곳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들여보내셨습니다.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세계 교회의 중심지 역할인 성지가 되었습니다. 세계인들이 성지순례를 오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 땅에서 인류 구원의 메시아 탄생과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이 생겨지게 됩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인류 구원이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계획하시고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보내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좋은 믿음의 소유자로 생활의 근거지를 옮겼다고 합시다. 이민을 갔다든지 주재원으로 다른 나라에 갔다든지, 아니면 교회가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동네는 반드시 여러분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고 마침내 그곳에 교회가 생겨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아브라함 때부터 디아스포라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고 온 세계에 흩어지라고, 순례자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삶의 정의를 이렇게 해야 합니다. ‘최종 삶의 목표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필요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바로 순례자이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나그네 신학’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베드로는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에게 권하노니” 히브리 11장에 보면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모두 등장시켜서 하는 말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라고 정의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이 또 이같이 하여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가서 살다가 아내가 죽었습니다. 아내를 장사지낸 묘지 하나가 없어서 헷족속들에게 말합니다. 창세기 23장 4절에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로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옵소서.” 창세기 47장에 가면 야곱의 회고록이 나옵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순례자로 살게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가나안 땅을 찾아간 아브라함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9절까지만 읽었습니다. 한절만 더 보시면 10절에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렇게 멀고도 먼 사막 길을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는데, 그러면 왔을 때 좀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자마자 두 식구 입에 풀칠하는 문제가 심각해 밥을 얻어먹기 위해 애굽까지 가야 되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선교지와 선교사는 고난의 삶이 주어집니다. 그것을 각오해야 선교사로 가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떠나는 사람은 누리고 싶어서 떠나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고생을 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교지를 많이 다녀오셨습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누리고 살고 있습니까? 선교 여행 간 사람들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조금씩 걷어서 조금이라도 드려야 위로가 됩니다. 다소 선교사들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다 고생하면서 사역합니다. 우선 다른 문화권 안에서 살아야 되는 상황 자체가 고생입니다. 세상이 이만큼 복음화되었다는 것은 선교사들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11절 이하를 계속 보시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먹을 것이 없는 것보다도 더 괴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아내를 빼앗깁니다. 사라가 굉장한 미인이었던 것으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이것이 평소에는 매우 행복했는데 선교사로 나가니까 이것이 큰 괴로움으로 변합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국적 분위기의 사라를 보고 첩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브라함의 잘못도 나타납니다. 자기 아내 사라를 빼앗으려고 혹시 남편인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하는 나름대로의 계산 때문에 일부러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오빠라고 해서 남매로 가장하자!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사라가 미인인 것이 행복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로 나가니까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남편을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빠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마 아브라함을 닮아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실제로 잠시나마 자기 아내를 빼앗기게 됩니다. 사라가 궁중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뭘 하고 계신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던 고향을 떠나 몇 나라를 거쳐 수천리 사막 길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먹을 것도 안주시고 이제는 아내마저 권력자가 데려다가 첩으로 데리고 살아버리니 이 집은 하나님 때문에 망한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선교사입니다. 선교 사역의 진행에는 이와 똑같지는 않아도 ‘아! 내 인생은 선교 때문에 다 허비했다.’ 이것을 하려고 가는 겁니다. 보통 남자들이 미인 데리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실 그것은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365일 아무데나 내놔도 아무 신경 안 쓰는 사람하고 사는 게 제일 행복합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금년에 선교 헌금도 많이 하시고 감사헌금을 매주일 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이 12장인데 15장에 가면 어느 날 밤 아브라함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큰 고민에 쌓여 슬퍼합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이토록 쓰고 험난한 인생행로에 무슨 뜻이 있는가? 무엇을 얻으려고 75년의 고향 터전을 떠났으며 지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일용할 양식도 충분치 아니하고 아내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그 자체도 너무나도 가슴 쓰리고 실의와 고독, 향수와 슬픔이 불안의 파도를 이루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라! 네가 쳐다보는 뭇별을 한번 세어보라. 셀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네 자손을 저 별들과 같이 많게 하려고 너를 이곳으로 불렀다. 이후로는 모두가 이 땅에 너의 후손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약속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혈통적 유대인만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후로 너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은 다 너의 후손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영적 의미의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지 않았습니까? 온 세상에 가득해 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믿던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가 네 자손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찾아간 가나안 땅은 지금 성지로서 세계인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는 나그네로 떠나 험난한 고생을 하지만 먼 훗날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길을 떠나고 마음 아픈 일을 당하는 겁니다. 얼마 전에 한국을 떠난 언더우드의 4대째 손자가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와 연세대학교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나라를 떠났을까? 언더우드가 처음 대한민국에 왔을 때 이 나라가 어떠했는가? 그러니까 선교사역은 3년, 5년, 짧은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고 100년 밖의 청사진을 미리 그려놓고 지금 수고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땅 선교사 파송은 인류 구원의 본 고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모리아 산이 성지의 중심을 지금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셨는데 그 말씀은 “너는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요, 또 하나는 “네가 있는 곳이 복의 근원지가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21세기 후반이 되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교지 국가가 분명하게 됩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나라를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 성경에 약속이 있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세계 선교 열매 맺는데 필요한 능력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하나님께 쓰일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뜨거운 신앙의 열정! 새벽기도를 이렇게 많이 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열정도 매우 앞서가는 수준입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열심히 헌금하는 교인들도 세계에 드뭅니다. 그 다음으로 신학 교육의 건전성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우리 민족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 강하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기후 조건에서도 살아남습니다. 여러분! 근래에 보세요. 시베리아 벌목 현장, 사우디 사막의 어려운 난공사를 한국 사람들이 다 해냈습니다. 인종 편견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살아남을 수 있고 한국인 들어가는 곳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이미 훈련이 잘 되어 있습니다.
미래학자 사세휘가 “한국은 2025년에 10대 강국 안에 들어갈 것이다.” 예언했습니다. 허만 칸은 “2010년이다.” 앨빈 토플러 박사는 “아니다. 벌써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낸 자들에 의해서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면 이제는 보내야 합니다. 받은 자의 책임은 주어야 합니다. 최초의 파송 선교사 임면을 받은 아브라함,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갈대아 우르, 메소포타미아 문명,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발달한 문명권에 사는 아브라함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거기가 어디입니까?” “가나안 땅이다.” 오늘 말씀 5절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찾아가는 선교인 것입니다. 뼈아픈 과정과 슬픈 사건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서 오늘 이 세계에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같이 많아진 영적 성취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시야가 모두에게 보이시길 바랍니다.
「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은 선교사를 파송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받은 자의 책임을 다하는 보내는 일에 열심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 저희가 100명의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기도 중에 있습니다. 받은 자가 모두 열심히 기도하면서 이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수고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먼저 받는 진리를 저희들이 깨달으면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