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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 맺는 마음 밭 (마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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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 맺는 마음 밭 (마 13:1-9)


한번은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어떤 사람이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나같이 이 비유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시간에 예수님께 나아 와서“아까 말씀하신 비유가 무슨 뜻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 비유를 설명하시기에 앞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는,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깨달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의 밝은 빛을 우리 심령 속에 비추어 주실 때라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더욱 더 진리를 깨닫게 되어 믿음이 자라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냉담한 사람은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믿음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귀가 있어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의 귀가 막힌 까닭이요, 눈이 있어서 보긴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의 눈이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밭에 비유할 것이면, 마음이 길가처럼 딱딱해져서 아무런 진리도 그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를 비롯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체포해서 신성모독죄를 뒤집어씌워서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사형 집행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로마 황제 가이사에 대한 반역죄로 고소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그런 식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죽이려는 것을 잘 알았으므로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하도 격렬하게 요구하는지라 혹시 민란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불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묻기를“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묻기를“진리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빌라도가 진리를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건성으로 한번 던져 본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 주어도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것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살아 있는 생명체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연한 것이 그 특성입니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는 부드럽게 휘지만 죽은 나뭇가지는 딱딱하게 굳어서 휘려면 부러집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집니다. 산 사람은 체온이 따뜻하고 몸의 마디가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죽으면 차디차게 굳은 상태가 됩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장기들도 건강할 때에는 연하고 부드럽지만, 병들면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간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우면 우리 몸 속의 온갖 독소를 해독하지만, 굳으면 간경화증이라는 무서운 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건강한 마음은 동정도 느끼고, 사랑도 느끼고,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할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들면 감각이 무뎌져서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동정심이 생기지 않고, 남들은 즐거워하는데 그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감사할 일인데도 불평하고, 슬퍼할 일에도 무감각해 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왜 하나님의 은혜인지 이해가 가지 않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마음이 완고하고 교만해 집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이처럼 마음이 병들면 불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마음이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그렇게 생동하는 마음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농부는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 수확을 많이 거둘 만한 곳에도, 가망이 없어 뵈는 곳에도 씨를 뿌렸습니다. 여기서, 농부는 복음을 전하는 자를, 씨는 복음을, 밭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농부가 차별 없이 밭에 두루 씨를 뿌리듯이, 복음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이 발부된 이 사실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게 나올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가복음 16장 15절로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네 가지의 마음 밭에 관하여 살펴봅시다.

첫 번째는, 씨앗이 길가에 뿌리운 사람입니다.

길가는 평소에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딱딱하게 다져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씨앗이 떨어져도 흙에 묻히지 않아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아 갑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 문을 굳게 닫고 있어서 그 닫힌 마음 문을 열고 말씀을 넣어 주기란 마치 잘 다져진 길 위에 떨어진 씨앗이 싹이 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완악하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만한 마음, 냉소하는 자세, 진리에 대한 무관심, 편견 등으로 인해 그 마음 밭이 다져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결국 말씀을 전해 주어도 마귀가 채어 가고 맙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마음만 길가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도 방심하면 어느새 그 마음이 길가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한 때는 예배를 드리면 감격이 있고 말씀을 들으면 깨달음이 있어서 은혜를 받았는데, 언제부턴가 예배 시간이 지루하고,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길가처럼 딱딱하게 굳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혹시라도 내가 그런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주님의 마음을 닮아서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꿀송이처럼 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매끼 밥을 대할 때마다 반갑습니다. 하루 세끼, 일년 삼백육십오일, 똑같은 밥을 대하지만 그 때마다 식사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몸이 병들면 밥 먹기가 싫어집니다. 심하면 밥을 보기도 싫어합니다.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지 기피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영적 건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문밖에 세워둔 사람은 실은 그 마음이 세상으로 향하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영적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에 지체 말고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로써 길가처럼 굳은 마음을 갈아엎고, 교만의 흙덩이를 부수고, 편견과 무관심의 돌멩이를 골라 내어버리고 새롭게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풍성한 결실을 산출하는 좋은 마음 밭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돌밭에 뿌리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는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핍박이 일어나면 곧 넘어집니다. 처음에 말씀을 들을 때는 이해도 하고, 관심도 가지고, 열심도 내지만 믿음에 깊이가 없고 확신이 없고 생각이 깊지 못합니다.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한데 그 생활 속에는 변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채 바위 같이 굳고 냉정한 마음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감동도 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좀 어려운 일, 손해 나는 일,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지금까지 믿던 것도 팽개쳐 버리고 맙니다. 믿음의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하는데, 자기 기분이나 인간적인 이해타산에 두었기 때문에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신앙의 열심이 쉽게 식고 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사람은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지 않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려면 그 말씀이 나의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끝까지 순종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자기 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맞을 때는 순종하는 것 같다가도, 틀리면 팽개쳐버립니다. 그러다보니, 말씀이 마음 깊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셨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좇아다녔습니다. 그들은 매우 열심이 있었으며 이구동성으로 예수님을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떡을 얻어먹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의 기대에 맞지 않자 모두 예수님을 등지고 떠나가 버렸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8-69)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그 분이 참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도 시몬 베드로와 같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옥토가 되어 말씀을 듣는대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시 떨기에 뿌리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할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신앙생활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 말씀을 들으면 이해도 하고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 자기의 삶을 맡기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앞길을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믿지를 못합니다. 그저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세상 염려와 근심, 물질에 대한 욕심에 이끌려서 살다보니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가시떨기가 곡식의 성장을 방해해서 결국 결실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데 열심 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시떨기와 같은 염려 근심, 재리에 대한 유혹이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삶 전체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천부께 우리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염려, 근심이 감히 우리 마음을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정함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딤전 6:17). 그리할 때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로 먹이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노라면 때로 시험이 다가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특히 물질 때문에 자주 시험을 당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경제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심을 내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경제문제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심령도 살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립니다. 시험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다가오거든 겁먹고 뒤로 물러갈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겨냄으로 영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기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는, 좋은 땅에 뿌리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으로서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이 좋은 땅은 그 속에 바위나 돌멩이가 없으며 가시 떨기의 뿌리도 남아 있지 않고, 쟁기로 깊이 갈아엎은 보드랍고 영양분 많은 땅입니다. 이런 마음은 진실 되고 정직한 마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또 주님을 향하여 마음 문이 활짝 열려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오랫동안 참음으로 이겨내며, 말씀을 들었으면 생활 가운데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 좋은 땅은 누구의 마음 밭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바로 저와 성도님들의 마음 밭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좋은 땅으로 가꾸어 나가는 비결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첫째로,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은 힘써 지키지 않으면 도적맞기 쉽습니다. 참새가 우리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얼마든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정적이고 불 신앙적인 생각, 의심이나 두려움, 미움이나 욕심과 같은 것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조그만 방심도 놓치지 않고 틈만 보이면 어느새 돌과 쓰레기를 우리 마음 밭에 던져 넣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문에 파수꾼을 세워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와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마귀가 넣어 준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인 역시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우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마음을 지키지 못하자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예수 팔 생각을 넣어 주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마음 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힘써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마음은 생명의 근원을 산출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에 잡초가 나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화초나 채소의 씨앗을 뿌려서 가꾸는 것입니다. 마당에 꽃씨를 많이 뿌려 놓으면 그 마당은 꽃밭이 되고, 채소 씨를 심으면 채소밭이 됩니다. 설령 잡초가 나더라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리 밭을 잘 갈고 돌멩이와 가시 뿌리를 제거했다고 할지라도 꽃씨나 채소 씨앗을 심지 않고 방치해 두면 오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마음 밭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림으로 잡초와 같은 악한 생각이 감히 자리 잡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씨앗이 듬뿍 뿌려진 마음은 천국이 됩니다. 거기서 생명을 거두게 되고, 기쁨과 화평을 거두게 되고, 건강과 범사에 형통케 되는 복을 거두게 됩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씨를 뿌리는 데는 수고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거두기 위해서 이른 봄부터 얼마나 수고로이 일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노라면 때로 낙심할 일도 생기고, 주위에서 핍박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 5절 이하)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모든 장애를 이겨내고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늘이 비를 내려 주어야 합니다.

영농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할지라도 하늘이 비를 내려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땅의 생명력은 중단되고 맙니다. 이 땅 위에는 물 없이 살아갈 생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의 단비를 공급받지 못하면 황무지가 되고 맙니다. 메마른 심성을 가진 인간이 되고, 악한 인간이 되고, 거칠고 비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사막에 독이 있는 전갈들이 사는 것처럼, 사막 같은 인간의 마음에는 귀신들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막이라도 물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면 머지 않아 푸른 들판이 되듯이, 메마른 마음에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시면 다시금 소생하게 됩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단비를 내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사람에게 영원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샘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 샘의 근원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아무리 메마른 땅이라도 단비가 내리고 그 땅이 내리는 비를 흡수하기만 한다면 옥토로 바뀌는 것과 같이, 성령 충만을 받기만 하면 금새 그 마음이 옥토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구함으로써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6장 7절 이하에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땅은 우리의 마음을 말함이요, 자주 내리는 비는 성령의 단비요 은혜의 단비를 말합니다. 성령의 단비가 내린 우리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면 풍성한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음 밭을 지키지 못하고 또 말씀의 씨앗을 뿌리기에 게으르면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는 밭이 되어서 결국은 못 쓰는 땅이 되어 버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도님들은 마음을 항상 은혜받기에 합당한 좋은 밭으로 가꾸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맺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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