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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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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말 씀 : 느헤미야 5:6-13
제 목 :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설교자 : 최낙보목사(포항대흥교회)
설교일 : 2006년 9월 24일 오후예배

지금 이 시간은 점심 드시고 제일 잠이 많이 올 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오면 잠이 잘 와요. 집에서는 잘 안오는데...그런데 지금 이 시간은 정신을 좀 차리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일날 말씀을 드린대로 예루살렘 성벽을 열심히 힘을 합하여 건설하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원성이 터져나왔습니다. 흉년이 들었는데 예루살렘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일이 생기면 사람이 모여들잖아요. 사람은 많은데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요. 또 파사제국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 가니까 더 어렵지요. 그리고 고리대금하는 돈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땅을 저당잡아서 돈을 빌려주고는 땅까지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지금은 자식까지도 종으로 넘어가서 이제는 도저히 자식을 속량할 그런 길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심은 요란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느헤미야는 영적인 통찰력으로 바라보았고 이 문제를 영적인 문제로 풀어나가며 해결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실제적으로 당면한 역사적인 문제를 느헤미야가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성숙함을 다 표현해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신앙정도 만큼, 인격정도 만큼, 성숙한 만큼 그 해결방법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즉 신본주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그 사람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지 못하여 자꾸 인간적인 꾀를 부리고 인간적인 어떤 자기 수준의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될 것 같아도 꼬입니다. 풀려지지가 않습니다. 다 좋지 않은 결론을 얻게 되고맙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종종 그런 것을 느낍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나님의 방법에 접근해서 인생의 문제를 풀어가려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큰 축복이 되는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느헤미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요?

첫째, 느헤미야는 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크게 노했습니다.
6절에 보시면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서 크게 노했다고 합니다. 잠언서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기를 했습니다만 이 말씀을 여기에 적용시키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크게 노하셨습니다. 회초리를 들고 판떼기를 때려 엎으시며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고 엄청난 분노를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는 마지막에 심판으로 쏟아진다고 말씀하시고, 역사속에서도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오래 참으시지만 때때로 소돔성에 유황불을 내리시듯이, 물로 인간 세상을 심판하시듯이 하나님의 진노를 쏟으실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의로운 분노가 없으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이해관계 속에서 옳지 않아도,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불의를 보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왜? 자기를 위해서... 그 사람은 잘못된 것이지요. 첫 단추부터 잘못시작한 거지요.
오늘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의로운 분노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작용하셔서 저게 아닌데 할 때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출발이 되어집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중심에 계획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불의한 일을 볼때 크게 노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분노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여러분, 엘리제사장의 문제가 뭐였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잘못한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에서 자기 것부터 챙겼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엘리 제사장은 그것을 보면서도 크게 노하지 않았습니다. “너, 이놈아 그럴 수 있느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일에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노할 수 있는 감정을 주셨습니다. 따라합시다. “거룩한 분노, 공의로운 분노” 이 분노심이 꼭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분노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7절을 상반절을 보세요.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6절에서 백성의 말을 듣고 7절에서 어떻게 했지요. 중심에 계획했다고 합니다. 아주 침착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딱 적당한 분노를 하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심에 계획을 했습니다. 계획하기 위해서는 뭐가 있어야 합니까?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가 분노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되나 못되나, 엉망이 되나 진창이 되나, 저거 말하면 내게 손해되겠다. 내한테 안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권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게 손해가 되어도 분노할 것은 분노하고 일어나야 할 것은 일어나야 올바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심에 계획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깊이 생각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하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저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기득권 세력이 이런 짓을 했습니다. 오늘도 정치권을 보세요. 다 기득권들이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지금 정권을 참여정권이라고 하여 민주화 세력이 어떻게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집값은 더 올라가고 엉망입니다. 5년전보다 학원이 2배나 늘었습니다. 교육을 평준화시킨다고 했는데 학원은 두배나 늘었습니다.
올해 대학입시에서도 각 대학마다 논술점수를 10%이상줍니다. 박이 터지도록 공부합니다. 이제는 학교 공부만으로는 안된다는 겁니다. 사교육비 줄인다고했는데 오히려 더블로 학원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풀어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에 계획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 참 귀한 사람이지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짓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세밀하게 갈 길을 지도하시고 지혜를 주실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느헤미야는 대회를 열어 잘못을 그대로 지적했습니다.
기도하고 중심에 계획을 딱 붙잡았습니다. 확실하지요. 이게 지도자입니다. 이렇게 한다는것, 기도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뜻을 받았습니다.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공동체에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는 왔다 갔다 하면 안됩니다. 기도해서 딱 받았으면 이제는 선포하고 밀고 나가야 하지요. 누가 반대해도 이끌고 나가야지요. 이 사람이 무슨 소리 하면 ‘아 그래요.’ 저 사람이 무슨 소리하면 “아, 그래요.‘ 그러면 공동체는 무너지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책망하면서 대회를 열었습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먼저 느헤미야는 꾸짓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을 꾸짓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보통은 기득권층을 꾸짓기 보다는 그냥 지나가고 눈감아주고 하지만 느헤미야는 귀인과 민장을 아주 심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대회를 열었습니다. 뭘 열었다고요? 대회를 열었습니다. 지금 밖에서는 산발랏과 도비야 이런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공격을 하면서 성벽을 못짓도록 방해를 하는 상황입니다. 하루라도 성벽을 완성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딱 부닦치니까 성벽을 건설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데 우선순위에 혼란이 와버리면 그 사람은 좋은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 신본주의의 사람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부터 합니다. 성벽을 쌓는 일은 뒤로 미루더라도 하나님앞에서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면, 즉 우리 안에 사랑이 깨어지고 갈등이 생겼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합니다.
안에는 갈등이 있고 문제가 있는데 성벽만 완성했다고 됩니까? 그게 아닙니다. 본질적인 문제를 먼저 찾아가잖아요. 오늘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낮은 사람은 영적인 문제를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적당히 하면되지, 성벽쌓는 일이 중요한데 성벽부터 쌓자고 합니다.
회의를 해봐도 금방 나타납니다.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주도권을 가진 공동체라면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권위를 가지고 말발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은 적당히 구슬려서 나가고 성벽부터 쌓읍시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부터 하세요. 공동체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일하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고, 우선순위를 뒤바꾸어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우선적인 일을 뒤로 미루고 사람의 방법으로 서둘 때 거기에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통찰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신앙중심의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느헤미야에게는 권위가 있습니다. 지금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스톱시켜 버리고 대회로 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성벽쌓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저도 많이 깨닫습니다. 뭐가 중요한 줄 알고 대회를 엽니다. ‘성벽 쌓는 것 중단해.’ 그리고 다 모이게 합니다. 그렇게 소중한 일을 손을 놓아 버리고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다 모인 자리에서 책망을 합니다.
7절 끝에 보세요. “대회를 열고 저희를 쳐서” 대회를 열고 저희를 어떻게 했어요. “쳐서”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본인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을 모아놓고 귀인들과 민장들을 쳐서 책망하는 거예요. 이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저희가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8)
아무도 말못합니다. 우리에게 창피를 준다 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나타나는 거예요. 이런 지도자가 이 땅에 필요한 겁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죄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바로 돌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이 곳에 임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문제가 그 안에 있는데 그것을 놔두고 성벽만 쌓는다고 그 땅에 평화가 오고 좋은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정말 여러분, 생각하세요.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떤 사람은 똑 같은 방법으로 그 문제에 접근합니다. 믿음이 좋아서 은혜로운 아름다운 사람은 똑같이 아름다운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느헤미야는 대회를 열고 책망을 합니다. 우선순위를 알고 하나님이 지금 싫어하시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 여러분 꼭 그렇게 하세요.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하세요. 일을 중단하고 그것부터 해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일하는 모습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렇게 하세요.

네 번째, 느헤미야는 치밀하게 구체적인 해결방식을 제시합니다.
느헤미야는 책망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며 계획을 세우고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지적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까?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치밀한 사람입니다. 10-11절을 보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곡식을 백성에게 취하여 주나니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취한 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 보내라 하였더니”
먼저는 이식 받는 것을 그치자고 합니다. 그런데 10절 초두에 보면 느헤미야 자신도 함께 놓습니다. 느헤미야는 돈을 받고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일에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잘못된 사람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에서 자신을 그 속에 포함시킨 겁니다. 여러분 나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곡식을 백성에게 취하여 주나니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제는 이자받는 것을 그치자고 합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받은 것을 돌려주자고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취한 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 보내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따라합시다.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해결하자.” 회개한다고 회개하면서 돈을 떼먹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그 사람에게 오지 않습니다. 천만원 빚을 졌다면 그 사람을 찾아가서 “제가 십년동안 그 돈 갚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쓸 것 다 쓰면서 돈은 갚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여러분, 기독교인은 돈을 빌렸다면 다 갚아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넘었으면 찾아가서 사과하고 다 갚아야 합니다. 남에게 손해를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의 마음에 이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탕감받을 수 있으면 탕감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악용해서는 안됩니다.
집사 두 사람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갑니다. 한 사람은 달걀과 사이다고 혼자 먹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님, 성경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기가 막힙니다. “예, 성경에는 내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도 했지요.”
전부다 자기한테 유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합니다. 이게 되겠습니까?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야단을 치면 “하님은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그런 하나님이 아니지요. 나태하고 게으른 종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하게 책임을 묻는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해결방안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해결방안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첫째는 이자를 받지 말자. 즉 가난한 사람을 뜯어먹지 말자, 둘째는 지금까지 받은 것 다 돌려주자.
느헤미야 이 방법을 제시하자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 보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저희에게 그 말대로 행하리라는 맹세를 시키게 하고”(12)
느헤미야의 제안을 백성들이 다 받아들입니다. 축복받은 공동체입니다. 귀인들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저희에게 그 말대로 행하리라는 맹세를 시키게 하고” 확실하게 해버리는 겁니다.
느헤미야 총독의 지도대로 이자도 받지않고 받은 것도 다 돌려 보내겠다고 하자 ‘아 그래요’라고 하지 않고 바로 제사장을 불렀습니다. 제사장앞에서 맹세한 것은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제사장을 불러서 그들이 말한 것을 재확인을 시킵니다. 여러분, 치밀해야 합니다.
또 잘못을 청산하는 일에는 사탄이 틈을 탑니다. 느슨하게 해놓으면 틈을 탑니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아니함만 못합니다. 확실하게 정리를 합니다. 13절을 보세요. 거기에다 못을 박습니다.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제사장 앞에서 맹세 시키고 그것도 부족하여 마지막 한 마디 더 합니다. “여러분이 제사장 앞에서 맹세하고 이자 받는 것 중단하고 받은 것 다 돌려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고 합니다. 대단한 선포지요. 꼼짝을 못하고 그 말씀대로 하게 합니다.
이자 몇푼 받는 것보다 하늘의 복을 받아야지요. 그렇게 지도를 해 주었습니다.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많이 빌려주고 많이 받은 사람이 더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그 중심을 깨닫고 순종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옳습니다.” 그 많은 이자 받지 않고, 받은 집과 밭을 돌려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실천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제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법대로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고 다시 성벽을 쌓고 완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축복을 위해서 느헤미야는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세요. 중심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정말 다시 한번 늘 그렇게 기도하세요. 따라합시다. “주여, 어느 때라도,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문제를 풀어가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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