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제 3요소 사랑 (고전3:13)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신앙생활의 제 3요소 사랑 (고전3:13)

본문

신앙생활의 제 3요소 사랑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스바냐 3장 17절 마경훈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스바냐 3장 17절
고린도 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설교영상보기] [설교 동영상을 보시기 원하시면 [설교영상보기]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신앙생활의 핵심 요소인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랑을 명하십니다. 마 22:37-40에 보면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되는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설교하는 저도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원수가 아닌 내 가족도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말씀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두 가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나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진리는 먼저 사랑을 받아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자신은 사랑 받을 자격도 없고 사랑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 3:16에 보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는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놓으셨겠습니까?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대신해서 죄인의 모습으로 온갖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 그 당시 가장 흉악한 죄인들만이 당했던 십자가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채찍에 맞으셨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대못에 박히셨으며,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고 하는 고백의 책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진하게 베어있는 사랑의 책입니다. 저는 오늘 이 사랑의 책인 성경 가운데서 습 3:17로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바냐서는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말해줍니다. 스바냐서는 총 3장으로 된 짧은 책인데, 1장부터 3장 전반부까지는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3장 후반부는 우리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습 3:17을 통해 3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우리 가운데 계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습 3:17에서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의 신분에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갭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끼리도 신분의 차이가 나면 함께 있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그 놀라우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것입니다.
요즘 제가 운동하러 다닙니다. 스쿼시를 합니다. 제가 다니는 스포츠센터는 일반 회원이 있고 정회원이 있습니다. 일반회원은 10만원을 내고 정회원은 천만원 보증금에 년회비가 280만원입니다. 스포츠센터에서는 일반회원들과 정회원을 차별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일반회원이 다니는 통로가 있고 정회원이 다니는 통로가 있습니다. 일반회원은 아주 불편한 통로를 이용해야 하고 정회원은 아주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돈 몇 푼에도 일반회원과 정회원을 차별화해서 대합니다. 이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들은 스포츠센터의 정회원과 일반회원의 차이보다 엄청난 신분의 차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구원을 베푸시는 사랑을 해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너무나 죄가 많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가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병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문둥병자들은 문둥병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주님은 문둥병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을 병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기가 죄인이고, 가난하고, 병들었기 때문에 구원의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치 병들었기 때문에 의사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병들었으니 의사를 못 만나는 것이 아니라 병들었기 때문에 의사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부족함이나 잘못됨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롬 10:10).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하나님께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거나 지나친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라 할지라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탕자도 사랑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고 고난 당하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가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그녀는 대학시절에 남자를 알게 되었고 결혼을 하자는 감언이설에 속아 몸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었습니다. 그래서 뒷조사를 해 보니까 그 남자는 아기 하나를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녀는 삶의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렸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녀는 그 남자가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녀는 스스로 자기는 버려진 인생이고 마구 짓밟힌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그녀에게는 더 이상 희망도 없고, 살아갈 기력도 없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죽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나면 그를 찌르고 자기도 죽으려고 항상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목사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해주었습니다. “자매님! 하루에 두 번 이상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하신다’고 말해보십시오.” 그녀는 목사님이 가르쳐 준 그대로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하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하신다!” 고 외치고는 눈을 감고 예수님이 자신을 품어 주시는 모습을 마음속에 그렸습니다. 그 후 그녀는 새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중견 커리어 우먼으로서 매우 활기차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2)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사랑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도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보면 우리 인생이 참 가치 있는 인생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교회 안에 1-3살 된 아이들이 몇 명 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까 엄마들은 자기 아이를 다 사랑하더군요.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엄마는 아이를 쳐다보는데 얼마나 사랑스럽게 쳐다보는지요. 한참을 쳐다보다가 하도 예쁘니까 달려가서 확 껴안더니 아이 몸을 흔들어 데더군요. 그것도 부족해서 뽀뽀를 하고 빨고 어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런데 아이가 사랑 받을 행동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돈벌이도 못하고 돈만 쓰는 아이입니다. 돈만 소비하면 다행이게요. 얼마나 사고는 잘 칩니까! 옷에다 똥도 싸고 움직이면 말썽입니다. 그런데도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더군요. 엄마의 아기를 향한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 좋은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에는 항상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별명도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목사님을 찾아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목사님이 “알아!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지?” 하니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이번에는 그것보다 좀더 위대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예수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으면 살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토록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연약한 모습이 있어도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사 43:4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계속해서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이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소리가 적습니다. 크게 떠드는 사랑은 대개 진실한 모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지 신앙, 이벤트 신앙을 별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는 시끄럽고 충격적인 은혜가 없다고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란하게 사랑을 표현하실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잠잠히 사랑하시고 잠잠히 사랑을 표현해 주시는 분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은 좀 다르게 표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좀 시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뽀뽀하고 끌어안고 요란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은 조용합니다. 사랑하지만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다놓습니다. 사랑이 조용히 표현되는 것이지요.
어떤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추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고기 한 근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이 추석인데 목사님과 아이들에게 고기 국도 줄 수 없네요. 하나님, 고기 좀 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밖으로 나오니, 대문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날 잡아 드세요." 하는 듯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을 급히 불렀고, 급히 달려 나온 목사님이 가까이 갔는데도 그 청둥오리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상처 난 곳이 없는 멀쩡한 청둥오리였습니다. 결국 사모님의 기도 응답이라 여기고 그 청둥오리를 잡아서 먹었는데, 그 오리고기를 먹으면서 온 식구들이 다 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기적적으로 청둥오리도 보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지켜 주시면서도 결코 생색내지 않으십니다. 그저 잠잠히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40년 동안 하루도 굶기지 않으시고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조용하셨습니다. 생색을 내거나 시끄럽게 소리를 내면서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잠잠히 사랑하시며, 잠잠히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2. 믿는 자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에게는 사랑이 없다는 말을 잘합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말 같지만 성경적인 말은 아닙니다. 롬 5:5에 보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강단에 있는 컵에 물을 부으면 그 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연히 컵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으니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사랑을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없는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겠습니까? 아니 사실은 있지만 없다고 생각하니 사랑이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만나면 우리 안에 원수에 대한 미움도 있지만 원수에 대한 사랑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천만에요. 나에게는 원수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원수를 만나면 내 육신은 악으로 반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영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고, 그에게 친절과 관용으로 대해야 하는 것도 압니다.
문제는 선택입니다. 내 의지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악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사랑으로 반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육신의 감정을 선택하기 때문에 원수에게 사랑이 나가지 않고 악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은 악을 선택하지 않고 감정을 쳐서 복종시키며 영에 알아지는 지식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원수에게 사랑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감정은 때려주고 싶습니다. 육신은 계속해서 때려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 영 깊은 곳에서는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아주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 때 들리는 성령의 음성이 내게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분명 내 속에 사랑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입니다. 내가 육신의 감정을 선택하면 원수인 A를 떼려주게 되고 그 사람과의 사이는 더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영 가운데서 들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웃으면서 상대의 손을 잡아준다면 그가 어떻게 반응을 하든지 나는 내 속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성령으로 부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면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와계시다면 그 분 안에 있는 사랑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돈이 든 가방을 들고 있으면 가방만 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방 안에 있는 돈도 들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성령님만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 안에 있는 풍성한 사랑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들을 대할 때 내 감정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내 감정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상대가 나에게 사랑을 주면 나도 그에게 사랑이 갑니다. 상대가 나에게 악으로 대하면 나도 그에게 악으로 반응합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항상 동일한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악으로 대해도 내 속에 계시는 성령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나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경우도 역시 내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그에게 사랑으로 반응하라고 하십니다.
갈 5:22에 보면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말하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내 감정을 선택하고 ?J정대로 반응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반응하십시오. 그러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