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의 3가지 전략요충지
본문
오늘날 곳곳에서 치열한 영적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귀신이라는 존재를 망각하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저는 어떤 분들의 고통스런 상황이나 성격적인 결함을 무조건 귀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기독교의 전 역사를 통해 악한 귀신과의 영적 전쟁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영적 전쟁에 관한 시야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이미 귀신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이미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귀신의 정수리를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이미 종이 호랑이요, 늙은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귀신들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기만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승리한 사람들이 마치 포로처럼 행동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포로가 되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귀신과의 영적 전투에서 항상 승리자의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지, 항만, 다리, 방송시설 등과 같은 전략 요충지를 지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켜야 할 전략 요충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입술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수시로 여러 생각이 찾아오는데 그러한 생각 중에서 좋은 생각은 취하고 나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 과 5절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이 말씀에서 말하는 견고한 진이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기독교를 대적하는 견고한 진을 인본주의적 휴머니즘이나 이슬람교나 공산주의나 다른 기독교를 반대하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견고한 진은 생각의 견고한 진들입니다. 불신, 낙담, 두려움,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우리 속에 지어진 고정관념이 바로 진짜로 견고한 진입니다.
오늘날에는 기독교인들이나 비 기독교인들이나 할 것 없이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의 견고한 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등감과 죄책감입니다. 가끔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찾아와 속삭입니다. "너는 키가 작구나, 너는 너무 못생겼구나!" 그렇게 속삭이며 열등감을 부채질합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해, 너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어, 너는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지, 너는 하나님과 친할 수 없어"라는 속삭임이 생각 속에 찾아와 죄책감을 줍니다.
우리는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붙잡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감정이 저하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심에 빠져서는 안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기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정서적으로 고양되기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지고 슬픔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성숙해지면 더 이상 정서적으로 기복이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정서적인 기복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히려 정서적인 기복이 있는 것은 살아있는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삶이 밋밋하게 이어진다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의 성숙이란 우리가 전혀 침체를 겪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성숙이란 우리의 감정적 기복을 다루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취약할 때 귀신의 공격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격려하는 법과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감정적으로 저하되었을 때 아내는 믿음의 말을 함으로 남편이 낙심되거나 부정적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과 동시에 지켜야 할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특히 우리는 마음속의 쓴 뿌리로 인해 잘못된 태도가 생겨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4장 26절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구절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분노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분노하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렇게 말하는 성도님들을 목격합니다. "글쎄요, 저는 그저 반항기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알다시피 저는 '네네'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저는 모든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런 말은 해가 없고 생동감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들은 영적인 패배로 내려가는 미끄럼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인격을 잘 다듬기에 항상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과 마음을 지켰으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전략지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입술입니다.
특히 우리는 부정적인 말을 최선을 다해서 막아야 합니다. 성경 민수기 13장에서 열 명의 정탐꾼이 한 것처럼 부정적인 보고를 확산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부정적인 말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을 훼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하라, 겸손하라, 거룩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귀신들은 '너는 강할 수 없어, 너는 겸손하지 않아, 너는 거룩하지 못해'하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나는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시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없는 성경적 원리란 하나도 없고 우리가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강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이 '겸손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으며 성경이 '거룩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거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전쟁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만약 우리가 주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우리는 계속 패배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우리는 강합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고 자존심도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리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진정한 겸손입니다. 항상 생각과 마음과 입술을 잘 지킴으로 영적 전쟁에서 능히 승리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