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주시는 예수님 (요 4:1~26)
본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 중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는 그 만남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 三遷之敎)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집을 세 번 옮겼다는 말입니다. 맹자 어머니는 맹자를 키우면서 아들의 바른 교육과 성장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했습니다. 맹자가 만나는 사람들이 맹자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기에 바른 만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만나느냐는 것은 내가 무엇이 됨에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죄악을 만나 죄악과 함께 사귀면 악한 죄인이 됩니다. 사기꾼을 만나 사기 치는 일을 가까이 하면 사기꾼이 됩니다. 공의로운 사람을 만나 공의로운 일을 가까이 하면 공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인간 생애의 많은 만남 가운데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만남입니다. 이 만남에서 인간이 찾아야 할 구원과 함께 참인간 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서본문 중에서 예수님과 중요한 만남을 가진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이 여인은 극히 불행한 인생을 살았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깨끗한 혈통을 가지지 못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을 피하여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어야 할 정도로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불륜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극한 가난 속에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창녀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여인을 예수님은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이 여인은 인간이 찾아야 할, 진실 된 모습을 찾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주셔서 만나주시는 예수님과 어떤 만남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만남의 삶을 어떻게 지속시켜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주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만나주십니까? 우리는 우리를 만나 주시는 예수님과 어떤 만남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대화로 만나주시는 분.
유대인들은 타민족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보아 상종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인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가’라는 동네 우물가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물을 길러 오는 여인에게 말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물을 좀 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시는 대화를 만드십니다. 따뜻하고 정다운 말로 대화를 여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문이 꼭 닫혀있으면 고난의 방법을 사용하시기까지 하시면서 대화의 문을 여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듣는 대화로 이끄십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고 적대적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으로 하여금 듣는 대화로 이끌기 위하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에게 듣는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여인은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큽니까?“고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는 듣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듣는 대화가 이루어질 때, 여인의 사마리아인으로서 민족적 적대감과 증오심이 어떤 것인지 드러났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는 불륜의 부끄러운 생활이 드러났습니다. 신앙적 회의와 갈등이 드러났습니다. 그녀의 영적 목마름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만남을 가질 때, 우리는 예수님과 듣는 대화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는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나게 하시고 그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만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만나 대화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우리는 주위에서 대화부재니 대화단절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대화가 단절될 때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갇히게 됩니다. 주님과의 대화부재나 단절이 될 때에 우리는 우리자신 속에 갇히게 합니다. 우리로 자신 안에 가두어져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과 대화하는 만남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우리의 신앙의 삶은 주님과 대화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음으로 주님과 대화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대화 할 때 우리자신을 드러내게 되고 우리 영혼을 시원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구세주로 만나주시는 분
만남에 있어 상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깨닫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여인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예수님과의 대화과정에서 발전해 갔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깨달음의 과정은 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표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물을 좀 달라”는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당신으로 칭했고 유대인이라고 한 것은 한 평범한 인간이되 나보다 좀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먼저 여인은 예수님을 인간으로 만났습니다. 나보다 나은 유대인 중 한사람으로 만난 것입니다.
이러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고 하시자 여인은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주여’라고 칭한 것입니다. RSV 영어성경에서는 ‘주’ 라는 말이 Lord 가 아닌 Sir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랍비 곧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고 하십니다. 여인이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 고 여인의 불륜의 삶을 들추어 내셨습니다. 이 때 여인은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본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큰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이해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바른 예배에 관해서 대화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은 예루살렘성전예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였기에,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예배드려야만 하는 여인은 예배의 장소에 관해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예배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유대인들과 사마리안 인들의 예배장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다”(새번역)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광의 대화에서 예수님이 바로 구세주이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구세주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로 만나십니까? 내가 예수님을 우리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만날 수 있을 때, 그분은 나의 메마른 심령에 생수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다가오셔서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 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인줄을 알지 못하기 때문 아닙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구원자 그리스도로 만나는 사람은 예수님께 구하여 생수를 받아 마심으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축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를 찾도록 만나주시는 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자신을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을 구원해주신 구세주 그리스도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여인은 변화되었습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난 감격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는 감격적인 삶의 태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에 배우지 못한 사람이 부흥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뒤 너무나 그 은혜가 감사하고 예수님 안에 사는 삶이 너무 기뻤습니다. 가정예배를 꼭 드려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고는 온 가족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가족에게 가장으로서 그분은 “지금부터 가정 예배를 드린다”고 개회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본인도 가족들도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마음은 뜨거운데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던 가장은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따라하라고 외쳤습니다. “예수 만세!” 가족들도 가장을 따라 큰 소리로 “예수 만세!”를 외쳤습니다. 가장은 이렇게 세 번을 외치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이젠 됐다. 예배를 마쳤으니 가도 좋아”라고 했습니다. “예수 만세!” 라는 감격 속에 사는 신앙의 삶으로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가성 여인은 삶이라는 것은 무의미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비관과 함께 절망하며 살았던 삶에서, 삶은 값진 것으로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도록 변화되었습니다. 자기를 은폐시키는 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를 자신 있게 공개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음에서 인생이 얼마나 귀하고 보람된 것인가를 말할 수 있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서 소문내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전하는 적극적인 믿음의 여인으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변했고 변해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무엇을 만들어 놓았습니까? 신앙의 삶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켈러웨이’라는 사람의 Knight3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재치와 만남이라는 두 친구가 똑 같이 사랑이라는 소녀에게 구혼했으나 접근 방법은 전혀 달랐습니다. 재치가 소녀의 부모님과 현관에서 열심히 이야기하는 동안 만남은 뒷문에서 그녀를 만나 구혼하였습니다. 누가 젊고 아리따운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는지 말할 필요도 없이 만남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 재치 있는 이론이나 논쟁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더 중요합니다.
남자가수 팻 푼(Pat Poon)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훌륭한 크리스천이기도 합니다. 팻 푼이 교회는 다녔으나 진실한 신앙을 가지기전의 일입니다. 힐튼 호텔의 고급 나이트클럽에 초대를 받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호텔 측에서 최고의 대접을 하여 사장 힐튼씨가 잠을 자는 방을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힐튼씨의 음식을 요리하는 요리사가 음식을 직접 요리해 주는 등 힐튼씨와 동등한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여전히 힐튼호텔의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힐튼씨가 쓰는 방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벽에 걸려 있는 힐톤씨의 초상화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힐튼씨가 자는 방에서 자고, 그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고 그의 초상화를 바라보지만 아직 자기는 힐튼씨를 직접 만난 일이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팻 푼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임하였습니다. 그 감동으로 그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나는 오래 동안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나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구나!” 이때부터 팻 푼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고자 하는 깊은 영적 목마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과 대화의 만남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구세주 그리스도를 깨달으십시오. 그래서 변화의 삶이 되게 하십시오.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과 만남을 가지심으로 목마르지 않는 인생의 풍요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