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시는 성령님 (마 4:1~11)
본문
낮선 길을 갈 때는 지도도 필요하고 나침판도 필요합니다. 요즈음은 네비게이션이란 것도 있어서 참 편리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예리한 판단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잘 아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낮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확실한 앞길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가장 무지한 자가 바로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인생 길을 가는 방법은 지혜의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려면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을 통과해야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금광이 서부에서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개척시대에는 동부에서 말을 타고 길을 잘 아는 인디안 안내인을 세워서 길을 가게 된다고 합니다. 한번은 금광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사막에서 신기루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식수는 떨어져서 없고 말은 지치고 그래서 그들은 인디안 안내자에게 아름다운 호수처럼 보이는 저 신기루로 인도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인디안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곳을 수도 없이 다녀보았기 때문에 그 것이 실재가 아니라 허상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기루를 쫓다가는 시간만 낭비하고 결국은 기력이 쇠잔해서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게 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금광을 캐려가는 광부들은 처음에는 인디안 안내자를 달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말을 뜯지 않자 나중에는 총으로 쏴 죽여버리고 신기루에 이끌려 그것을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명히 호수가 있어서 달려가보면 또 저만치 먼 곳에 호수가 있고 또 힘을 다해 갈려가보면 또 그만큼 뒤로 물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하고 사막에서 모두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끄는 인디안 안내인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이끄는대로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에 갔을 때 길을 안내하는 한국인 가이드가 그 사막을 지나면서 사막한 가운데 호수를 소유하고 낙시터를 개업하고 있는 위대한 한국인이 있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얼마쯤 지났을까 사막한 가운데 호수가 나타나고 군데 군데 낚시하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참 대단한 한국인이 있구나 바다 만한 호수를 소유하고 그것을 낚시터로 만들어 장사를 하는 한국인이 있다니 참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우리가 속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기루였습니다.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실재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저 신기루가 옛날 금광을 캐려가던 동부인들이 호수인줄 알고 좇아가다가 결국 몰살을 당한 바로 그 신기루라고 해서 다시 한번 이 세상 살면서 신기루 같은 것에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최소한 두 번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는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를 믿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어떻게 예수를 믿을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떻게 예수를 믿고 살 것인가를 새롭게 결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심정으로, 어떤 과정과 어떤 결과를 가져오도록 믿으시겠습니까?
오직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예수님를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도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에 이끌려 사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하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들도 당연하게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엔가 이끌려 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기루와 같은 세상 것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 결국은 사망이고 멸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육신에 이끌리고 온갖 잡신과 우상과 귀신에게 이끌리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린이 성폭력이 갈수록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대부분 사탕, 선물, 그리고 돈 몇푼 이런 것들로 자신이 욕구를 체울 장소로 어린 소녀들을 이끌고 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끄는 것에는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보면 마귀는 예수님을 물질 앞에, 명예 앞에, 권세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에게 굴복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이끄는대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시험했다면 우리 삶은 시험이 다반사일 것입니다.
벧후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하셨습니다. 이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마귀에게, 귀신에게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과 돈과 명예와 권세와 사람에게 이끌려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오직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 뜻대로 살아서 실패하고 넘어진 분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 어리석음의 내 뜻을 던져버리고 성령의 뜻에 맡기고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면 비록 시험의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면 비록 거센 폭풍속에서라도 뚫고 평강의 항구에 이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면 제아무리 사탄의 유혹이 집요하고 강할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은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이김을 주시는 이끄심인 것을 믿습니다.
다시는 죄와 온갖 더러운 것에 이끌리지 않고 사는 비결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한 번 채워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죽을 때까지 유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성령님을 상하게 하면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서 떠나시게 되며, 내가 소홀리 하면 그리고 멀리하면 점점 멀어져가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훼방할 수도, 소멸할 수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을 환영하시고 존중하시고 사모하시고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알콜 중독자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가 술을 끊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느날 술집 앞을 지나가면서 윈도우에 진열된 술병들을 보았을 때 마시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윈도우에 비치는 건너편 우유상점의 간판을 읽게 되었습니다. "1000원만 내고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우유가 있읍니다." 그는 즉시 그 우유 상점에 뛰어 들어가 우유를 배부를 때까지 마셨습니다. 그가 우유상점을 나와 술집을 지나쳤을 때에는 진열된 술병들에게 전혀 미동도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술병에 유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유를 실컷 마셨기 때문에 술이 따로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과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 채워진다면 세상의 것들이 갖가지의 모습으로 유혹해 온다고 해도 이미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목적대로 사용하려고 하기 전에 우리의 빈자리를 성령의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
히 13:20~21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의 인생, 우리의 신앙, 우리의 영혼의 안내자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절대로 부끄러운 길로 이끄시지 아니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결코 몰락의 길로 이끌지 아니하시며 쇠약의 길로 이끌지 아니하십니다. "너희를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이끄시기도록 여러분들을 성령님께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송기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