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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있는 곳에 해법도 있다 (눅 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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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있는 곳에 해법도 있다 (눅 5:17-26)


<'죄와 질병,' '용서와 치유'의 변증법>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주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공관 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마 9: 1-8; 막 2: 1-12 참조).
이 말씀은 '죄의 용서'와 '병의 치유'가 어떻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본문 말씀은 질병이 죄 때문에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 다른 어떤 말씀이나 행동도 나타내지 않으시고
"네 죄가 용서받았다."(20절), 이 말씀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사람이 중풍으로 고통 받는 원인이 죄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해주지요.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침범하는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다며 시비를 겁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중풍 병자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 사복음서 어느 곳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죄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고 보신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오직 두 군데, 즉 본문 말씀과 요 5: 1-15절에 나오는 이야기, 즉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고쳐주신 기적만이 죄와 질병을 연결짓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한 9장에 보면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자기 죄 때문도 아니고
조상의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어쨌든지 간에 중풍병자는 먼저 죄의 용서를 받은 후에
육신의 질고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중풍 병자는 죄사함과 질병의 치유라는 이중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영혼과 육신이 다 구원을 받았기에 대단히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요.

여러분,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육신은 병 고침을 받았는데 영혼의 죄는 용서받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사함은 받았는데 육신의 병은 치유받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이 중풍 병자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입니까?
그의 영혼과 육신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웃의 도움으로 이중의 고침 받은 중풍병자>
그런데, 이와 같은 이중의 축복을 누리게 된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 사람은 이웃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이러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어서 문 앞에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 때 친구인지 가족친척인지 잘 모르겠지만 네 사람이 이 환자를
들것 침상에 뉘여 예수님 계신 집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걷어내고
구멍을 뚫고서는 그 들것을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가옥구조는 지붕이 평평했습니다.
지붕을 만들 때 천장에 대들보를 촘촘히 세워 그 사이에 나무 잔가지와
모르타르 회토석 등을 뒤범벅해서 채워놓습니다.
따라서 천장 대들보 사이에 있는 내용물들을 제거하고
지붕을 뚫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지붕을 뚫어서 관을 집 안팎으로 운구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정상적인 문을 통하지 않고 지붕을 뚫어서
환자를 주님께 내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지붕을 뚫고 기와를 걷어내는 일이 쉬웠다고 할지라도 지붕으로 엮어
만든 짚이나 마른 진흙더미의 잔해, 그리고 대들보에서 나온 작은 나무 조각들이
먼지를 내면서 쏟아져 내렸을 것이기 때문에 집안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중풍병자가 실린 무거운 침상을 지붕 밑으로
내리는 일 역시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친구들의 믿음 때문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20절 전반부를 보세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중풍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본인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신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에서는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환자의 병을 고쳐 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비된 문제를 푸는 세 가지 해법>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좀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중풍병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로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경우처럼 만일 우리의 죄 때문에 중풍병과 같이
인간의 육신이 마비될 수 있다면, 우리의 죄 때문에 역시 인간관계와
국제관계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마비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마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 세상에는 문제없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는
문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해법도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도 있듯이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앞에서 중풍병이라고 하는 것을 알레고리칼하게 상징적으로 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앞에 여러 가지가 얽히고 설켜서 마비된 문제들이 분명 있습니다.
하나 둘 잘 풀려나가야 할 터인데 경색이 되어서 아예 기능이 마비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마비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 해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이 있을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는 중풍병자가 앓아 누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인지 가족친척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네 사람이
이 환자를 끔찍이 사랑해서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떤 질병도 다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막상 환자를 주님 들어가신 집으로 데려왔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때 이들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지붕위로 올라가 기와와 천장을 뜯어내고 환자의 침상을
주님 계신 방으로 달아 내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님께 나아가려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냈습니다.
주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이 환자의 중풍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이 마비되어 있습니까?
얽히고 설켜서 쉽게 해결될 기미가 엿보이지 않습니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시도했더니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옵니까?
그래도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십시오.
좋으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분명히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마비된 문제가 술술 풀리고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제 토요일 자 국민일보 신문 '미션'란을 보니까
조용기 목사님과 하용조 목사님의 대담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조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인생은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줄을 붙잡으면 살고 놓치면 죽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목사님이 이렇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과 같지요.
평지를 걷는 게 아니라 벼랑 끝에서 주님과 만나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48년 전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폐결핵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조목사님은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 역시 그동안 간암 수술을 6번이나 받고 최근에는 일주일에 3번씩이나
혈액투석을 받는 등 최악의 건강 상태에서도 열정적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목사님은 처음 암수술을 받을 때 수술대 위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수술을 잘 받을 수 있는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가 아무리 수술을 잘 해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
인생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은혜 안에서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두 분은 우리 시대 믿음의 거장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문제와 장애물과 고난 앞에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의 줄을 붙드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 2)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의 크기만큼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용서의 마음이 있을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중풍병 환자는 중풍이라는 큰 문제가 있어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20절 말씀 후반부를 보면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한 마디 말씀이 본문 전체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됩니다.
바로 이 말씀 때문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24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먼저 죄를 용서받았을 때 그 몸이 저절로 치유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때 마비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가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힙니다.
하나님과 우리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려서 우리의 모든 삶을 마비시킵니다.
좁게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부터 넓게는 나라사이의 국제관계를 보더라도 죄의 문제,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고 마비되는 것입니다.
오직 죄의 용서만이 우리의 마비된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는 우리 이웃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도 용서하실 것입니다.
마 6: 14-15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정말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온통 마비된 문제가 있습니까?
먼저 우리 이웃에 대하여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자신의 삶과 모든 인간관계를 마비시키는
영적인 중풍병으로부터 치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레드 오션이 아니라 블루 오션에서 서로 돕고자 할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경영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 중에
'레드 오션'(red ocean)과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레드 오션은 직역하면 붉은 대양, 즉 경쟁의 핏물로 빨갛게 물든 피바다요,
블루 오션은 푸른 대양, 즉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청정 해양입니다.

레드 오션은 쉽게 말씀드리면 과자라는 시장을 가지고
롯데와 해태가 한정된 시장내에서 피 튀기는 경쟁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블루 오션은 기존 시장에서 숨막히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경쟁 없는 새 시장을 개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위성DMB 휴대인터넷처럼 유선인터넷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무선의 장점과 유선의
장점을 복합적으로 살려서 인터넷의 참여인구를 넓히고 시장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제한된 시장에서 유혈경쟁을 하지 않고서 평화로운 새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블루 오션 전략이 각광을 받는 것은 경쟁하지 않고서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WIN-WIN,' 나도 이기고 상대방도 이기도록 하는 전략이기 때문이지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서로가
다 좋게 하면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레드 오션에서 블루 오션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과 가치의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남들이 열을 올리며 피 튀기게 경쟁하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편을 슬쩍 건드려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 PC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려고 난리를 칠 때
과감히 생각을 바꿔 디자인의 혁신에 눈을 돌려보라는 것이지요.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키는 땅으로부터 재면 작지만 하늘로부터 재면 누구보다도 크다."
참 재미있는 말이면서도 새겨들을 만한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소란스럽고 냉혹하기 짝이 없는
레드 오션으로부터 비경쟁 공간인 블루 오션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고 다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미덕이 사랑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하여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들것이 사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놓쳐서 안 됩니다.
지붕을 뚫고 이 환자를 달아 내릴 때에도 네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잡은 들것의 귀퉁이를 놓치면 환자는 한쪽으로 쏠려 다칩니다.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미 하나가 되었기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들의 믿음과 사랑이 이 환자의 병을 고쳤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레드 오션에서부터 블루 오션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이 아닐까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인간관계라는 것이 온통 보기 싫은 사람, 미운 사람, 경쟁자, 이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까?
마비된 인간관계를 풀어내기 위해 우리는 레드 오션에 머물러서 안 됩니다.
나는 좋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손해보고 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 튀기는 경쟁을 피하고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시인인 도종환씨가 쓴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라는
산문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 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되는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일꾼들이 지붕을 옮기려는데 꼬리 쪽에 못이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도마뱀이 아직 살아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3년 전에 인부들이 공사를 할 때 이 도마뱀에 못이 박혔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3년 동안이나 도마뱀이 못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도 살아남은 사실이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리하여 원인을 알아보기 위하여 즉시 사흘 동안 철거공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나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바로 또 다른 도마뱀 한 마리의 눈물겨운 사랑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먹이를 날라다 주는 도마뱀이 못에 박힌 도마뱀과 어떤 사이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미와 새끼 사이일 수도 있고, 한 형제 자매일 수도 있고,
부부 사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 사이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혀 꿈쩍도 하지 못한 채
고통 당하고 있던 도마뱀을 다른 도마뱀 하나가 살려냈다는 사실입니다.
말 못하는 미물들의 세계에도 블루 오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 된 것이지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려라>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주름잡았던 세 영웅이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 세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의 기질의 차이를 알려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새를 울게 만들 때 오다 노부나가는 이렇게 말한답니다.
"새는 마땅히 울어야 한다.
울지 않거든 목을 쳐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거든 때려서라도 울려라."라고 말한답니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한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일본열도의 패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미 블루 오션의 개념이 뭔지 알았던 것 같습니다.
"큰 사냥을 하기 위해 발자국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패배와 치욕 한
가운데에서도 참고 또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일본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잘 참고 기다리는 사람은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미움과 질투와 보복과 경쟁이 판치는 레드 오션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합니다.
사랑과 관용과 화해의 경쟁 없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블루 오션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문제는 다 해결되고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있는 곳에 반드시 해법도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레드 오션이 아닌
블루 오션에서 사랑으로 서로 협력하려 할 때 우리의 마비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본문 24절 후반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오늘 중풍병처럼 여러분의 삶을 마비시키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일어나 여러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침상을 거두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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