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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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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유대인들이 제2경전으로 여기는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랍비가운데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카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자 아카바는 마을 어귀에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오두막집 한 체를 발견하고 그곳에 묵기로 했습니다. 그는 당나귀와 개를 오두막 앞에 매어두고 방안에 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졌고 그는 하는 수 없이 책 읽기를 단념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오두막집 앞에 매어 둔 개와 당나귀가 죽어 있었습니다. 간밤에 굶주린 사자가 잡아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램프를 들고 홀로 터덕터덕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얼마 후 마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전날 밤 도둑들이 모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모두 죽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만약 간밤에 램프가 꺼지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책을 읽었을 것이고, 당연히 도둑에게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개가 살아 있었다면 개 짖는 소리에 도둑들이 쳐들어 왔을 것이고, 당나귀도 시끄럽게 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덕분에 가장 소중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본문인 로마서 8:28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 한 구절을 바로 이해하고, 이 말씀 한 구절을 항상 잊지 아니하고 기억할 때 우리들의 신앙은 바로서서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며 사랑받는 복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실패하는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아 보이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좀더 현실에 비추어 말씀을 드린다면, 세상이 거꾸로 가든 바로가든 돌아서 가든 간에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인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의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에 하등의 불평이 없고, 추호의 원망도 없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인이 가지는 신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이 진리의 말씀을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주인인 아브라함의 며느리를 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주인의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지시한 대로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낯선 지역에서 어디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어느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하기를“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세기 24:13~14)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가 끝나자 곧 리브가라는 아리따운 처녀 한 사람이 물을 길러왔습니다. 그 처녀에게 물을 좀 달라하자, 자기에게만 아니라 나귀들에게도 물을 길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우연히 물을 기르고자 우물가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이며 섭리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2. 모든 것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런 일도 있게 하시고 저런 일도 있게 하십니다. 우리의 근시안으로 볼 때에는 왜 이런 일이 있나하고,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교회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나눠주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로마 정부의 박해로 교회는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이 박해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거하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복음은 더욱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처럼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 졌습니다.

3.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건강도, 질병도, 성공도, 실패도, 어떤 고난도 다 합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실 때에 심한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 아래층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배가 침몰할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고, 일어나신 예수님은 풍랑을 향해“잔잔하라, 고요하라”는 말씀 한마디에 풍랑은 즉시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겪은 풍랑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가운데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믿음은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누가복음 8:25에“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탄의 전략을 주님은 역이용하셔서 제자들의 신앙을 돈독하게 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기만 하면 승리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역이용하셔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매사에 이렇게 합력하여 유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기록하시기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면 악한 것도 많고, 부조리한 것도 많고, 모순된 것도 많지만 그것은 겉으로 되어지는 일이고, 깊은 곳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썰물 때를 보면 육지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바닷물이 찰랑찰랑 파도를 이루며 육지로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은 물은 반대편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 파도가 이는 것처럼 보여도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의 역사가 차질 없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태풍과 해일은 항구와 배와 어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아무도 태풍을 원하지 않습니다. 없으면 좋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태풍가운데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태풍이 없다면 바다는 잔잔하겠지만 그 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된다고 합니다. 수분이 증발된 해수면의 염도는 높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해조류들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센 태풍이 바닷물을 뒤집는 역할을 합니다. 그로 인해 해조류들이 자라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어촌의 수입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모든 것이 합해져서 끝은 선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 순간은 괴롭고 힘들고 어려워도 결과를 볼 때에는“아, 그랬구나!”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착실했던 요셉은 아무 아유 없이 이복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요셉은 그곳에서도 최선을 다한 삶으로 주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요셉은 또 다시 어이없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성실한 삶을 살아간 요셉은 감옥 내 다른 죄수들을 관리하는 죄수 아닌 죄수였습니다. 요셉이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꿈을 해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바로왕의 꿈까지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로왕의 큰 신임을 얻은 요셉은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한 서러움, 노예와 죄수의 처지로 살아야 하는 억울함, 감옥 내에서의 고달픈 나날 등, 이 모두가 애굽의 총리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온 가족이 요셉으로 인해 기근을 면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5. 나로 참된 성도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진실한 성도 즉 그리스도를 닮은 참 성도가 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패도 필요하고, 억울한 일도 필요하고, 질병으로 앓아눕는 일도 필요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다 합쳐져서 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에게서 이러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색병자들을 고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질병으로 일평생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하신 응답이 이렇습니다.“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린도후서 12:7~9) 이것이 곧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미국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는 말하기를“하나님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 미련한 실수를 저지르게 하신다. 이로 인해 자기가 사람임을 알게 하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나도록 하실까요?

1. 알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서두에“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 문장의 주어입니다. 우리가 알 것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됨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주님을 알고 주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먼저 부르셨습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내가 아직 하나님을 모를 때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역사를 이루지 아니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아 알고 있는 사람은, 왜 병이 들어야 하느냐?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 왜 죽어야 하느냐? 라는 물음을 갖지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예”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결과는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사람이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어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겠습니까? 훗날 주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다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사람에 대하여 본문에는“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 계명을 지키는 자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3에“예수께서....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하셨습니다. 사랑의 속성 가운데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인 계명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요한1서 4:20~21에“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하셨습니다.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육신의 형제를,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 중 또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 늘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보아도 또 보고 싶고, 곁에 있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찾고 또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남달리 사랑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편 84:1~2)라고 했습니다. 몸이 쇄약하기까지 여호와의 장막인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늘 이야기하고 싶듯 하나님께 나아가 대화하게 되는데.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를 즐겨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깨달은 대로 실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데는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합쳐져서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이나, 실패나, 성공이나, 영광이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합해져서 어느 때에 가서는 선한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웨덴의 페트로라는 어부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어촌의 여러 사람들이 배를 몰고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페트로도 아들과 함께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이 어촌에는 고기 잡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돌아오지를 못했습니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도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설성가상으로 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집을 보다가 촛불을 넘어뜨려 불이 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합심하여 이 불을 끄느라고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는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동원해 정신없이 몇 시간을 싸우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배가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풍랑을 이기며 돌아온 것입니다. 아침이 밝아 왔고, 어제 밤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불 끄는데 누가 가장 애를 썼고, 풍랑은 또 어떠했느냐, 얼마나 서로가 힘을 들였느냐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페트로가 말하기를“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웬 불인지는 몰랐으며 어쨌든 불이 보여서 그 불을 바라보고 결국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에 불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집이 불타는 일이 있어야만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음을 우리는 미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불이 나야 했는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잠간 모른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나를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선하신 인도하심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이해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믿고 순종하며, 감사하며,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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