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하여 부자가 되라 (눅 12:16-21)
본문
언젠가 우리 교회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는 어느 분께서 “헌금에 대한 설교를 안 하는 것 같은데 잘 들어보면 실제로는 많이 한다” 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목사님은 헌금 설교를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게 하신다” 라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교회를 섬기다가 우리 교회로 오신분이 했던 말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헌금 설교는 대단히 부담스런 설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헌금 설교를 하면 별로 은혜를 못 받기 때문입니다. 헌금이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헌금이란 은혜 받을 때 하는 것이고 은혜 받으면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노골적인 헌금 설교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헌금 설교를 안 하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설교자의 고민이 있습니다.
헌금 설교에 대한 설교자의 고민
미국의 ‘밥 러셀’ 목사님이라는 분은 목회 초년기에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헌금에 관해서 1년에 꼭 한번만 설교하겠다. 교인들이 부담을 느낄 테니까.” 그는 일년에 한번씩만 헌금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헌금에 관한 설교를 할 때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제가 헌금 설교를 해야합니다. 부담스럽더라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양해를 구한 후에 헌금 설교를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 자신의 방법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우상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도덕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설교자가 언제라도 아무 부담없이 설교합니다.
그런데 “헌금하라” 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인데 헌금 설교를 할 때 교인들 부담이 된다하여 1년에 한번만 설교하고 그리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설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저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혹시 안식일을 잘 지키지 못하는 성도님들은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혹시 그 말씀에 거부감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사람이 몇 사람 생기더라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담대히 외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헌금 설교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에 담대히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러셀 목사님은 1년에 서너 차례씩 헌금에 관한 설교를 시리즈로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도 수는 더 많아지고 헌금도 15%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헌금 설교를 많이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을 하든 열 번을 하든 올바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그 해에 풍년이 들어 넉넉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창고가 차고 넘쳐서 근심이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걱정이었습니다.
그는 생각 끝에 끝에 낡은 창고를 헐어버리고 더 크고 넓은 창고를 짓고 풍성한 수확물을 저장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 동안 허리띠 졸라매고 고생한 보람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이제는 쉬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태까지 돈을 모으느라고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먹고 즐기며 편안히 지내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넓은 새 아파트도 장만하고 이태리제 고급 침대도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비디오 오디오 씨스템도 갖추었습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골프장 회원권도 하나 구입하고 멋진 외국산 골프채도 몇 벌 마련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얼마나 멋진 삶이 전개될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둥 바둥 살던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이제는 즐길 때가 된 것입니다. 내일의 화려한 꿈을 수놓으며 그는 새로 산 침대에 누어 모처럼 발을 쭉 뻗고 편안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에게는 그 다음날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날밤에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신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그의 많은 재산이 다 남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 라고 하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리석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다 섯 가지 면에서 어리석었습니다.
① 그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이 부자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14:1)
하나님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생사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의식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부자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입니다.
② 자신의 영적 빈곤을 몰랐습니다.
본문은 그를 부자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물질이 많다고 해서 다 부자가 아닙니다. 영적 재산이 있어야 참다운 부자입니다.
③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이 어리석습니다.
이 부자는 여러 해 고생 끝에 그야말로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여러 해 쓸 물질을 쌓아놓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모두 즐기는 인생을 위해서였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가 성공한 다음에 세운 계획은 “쉬고” “먹고” “마시자”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인생의 목표는 고작 “쉬고” “먹고”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성도는 이 부자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좀더 높은 수준의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④ 물질이 영혼을 만족하게 못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영혼에게 말합니다. 많은 물질을 쌓아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것입니다. 물질은 영혼의 편안함을 주지 못합니다. 양식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님의 은혜 안에서만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⑤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는 내세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히9:27절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며 심판 그 다음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부자는 하나님 앞에 설 때 빈털터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자는 위의 다섯 가지 이유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자 택일을 해야합니다. 즉 나를 위해서 재물을 세상에 쌓는자가 될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재물을 천국에 쌓아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합니다.
과연 세상에서 부자될 것인지 하나님 나라에서 부자될 것인지 엄숙한 선택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는 넉넉하고 부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는 얼마나 인색한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자가 됩시다. 즉 천국의 부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자가 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마6:20-21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나의 재물을 하나님 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마 6:33절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말씀은 기도할 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물질 사용에 있어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물질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라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재벌이라고 하는 미국의 빌 게이츠는 1998년도부터 자기 재산의 60%를 가난한자들의 복지와 교육사업을 위해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느 날 한 믿음의 선배가 찾아와서 “빌 그렇게 많은 돈을 은행에 처박아 두는 것이야 말로 자네가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정신 번쩍 나서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을 통해 수입의 60%를 사회사업을 위해 쓰도록 기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부자 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에는 모자라면 꾸고 빚을 내서라도 풍성하게 쓰면서 혹시 하나님과 그의 기뻐하는 일을 위해서는 아까워 벌벌 떨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상당히 가까워 왔음에도 아직도 계속 은행에 저금할 생각만 하고 재산 증식에만 신경 쓰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것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잘 못 사용하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부자 되는 방법 중에 아주 소박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헌금입니다. 성경이 정하여준 헌금을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드림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헌금을 드려야 하는 이유
그리스도인들이 헌금을 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헌금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예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 6:21절에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깨긋이 씻으사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구속의 진리를 깨닫고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자는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헌금은 나의 모든 즉 몸과 마음을 드리는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헌금의 중요성
헌금이 왜 중요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에 동참하는 헌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세상 나라 땅끝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선교사를 보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도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 일에도 돈이 필요합니다.
헌금은 바로 이와 같은 일에 내가 직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동참하는 헌신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어떤 권사님이 늘 전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한 여인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돈,돈,돈, 이야기만 한다면서요? 그래서 교회에 가기 싫어요. 나 쓰기에도 부족한 판에…"
"그래요? 나는 내 아들을 키우느라고 돈이 꽤 많이 들어갔어요. 먹을 것, 옷, 장난감, 교육비, 병원비….커 갈수록 돈이 더 많이 들어가더군요"
"그야 당연한 것 아녜요? 헌데 아들 키우는 것과 교회와 무슨 상관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일년이 넘게 한 푼도 아들에게 들어가지 않는답니다"
"아니,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누가 돈을 대주나요.그래도 그렇지…"
"아닙니다. 일년 전에 그 아이가 죽었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 생동하는 교회는 늘 돈이 필요하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와 같은 대외적인 곳으로 재정의 50% 가까이 투자 됩니다. 작년에 경상비 대비 선교와 구제비등으로 지출된 것이 총액 대비 46%였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내부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면 돈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교회의 할 일입니다.
둘째는 천국에 보물을 쌓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세상의 재물을 영원한 보화로 바꾸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갈 때 반드시 은행에서 우리나라 돈을 달러로 바꾸어 가지고 갑니다. 한국 돈은 다른 나라에서는 휴지에 불과합니다. 바꾸어가지 않으면 안되듯이 헌금을 드리는 것은 세상의 화폐를 천국의 화폐로 바꾸어 천국 창고에 쌓는 것입니다.
셋째는 축복의 씨를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이 땅에서 누릴 축복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후 9:5-7절에서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헌금이 축복을 심는 것이라면 다음의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많이 심으라는 것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는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 때문입니다. 이것은 양적인 면입니다. 정성만 있으면 된다하니까 적은 정성만 드리려 하지 말고 많은 정성을 드리기 원하십시오. 과부의 엽전 두 개는 과부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엽전 두 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즐겁게 심으라는 것입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것은 헌금의 질적인 면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바쳐도 인색한 마음에서 억지로 내는 헌금이나 사람을 의식해서 내는 헌금은 천국에서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쁘게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 위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간섭을 보여주십니다. 곧 재정적인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별로 힘들게 살지 않도록 돌보아 주시는 기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신나게 헌금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교우들에게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부자 되는 것 보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천국의 부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빅재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