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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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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말 씀 : 느헤미야 2:1-10
제 목 :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설교자 : 최낙보목사(포항대흥교회)
설교일 : 2006년 7월 30일 3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듣기 좋은 말 중에 하나가 좋은 의미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라는 말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면 그것 이상의 칭찬이 없을 것입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다릅니다. 너무나 좋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최고의 칭찬이 될 것입니다.
회사의 수많은 직원들 중에 사장님이 따로 김과장을 불러 “김과장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너무 귀한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셉은 17살에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 집에는 수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이 그 많은 종들을 지켜본 결과 요셉이 뛰어남을 발견했습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그리고는 어느날 요셉을 불러 집안의 모든 열쇠를 맡기며 집안을 돌보라고 합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좋은 의미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게 보여야 합니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정말 당신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라는 구별됨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교회 나간다고 하는데, 집사라고 하는데 우리와 다를 바가 전혀 없어. 믿으나 안 믿으나 전혀 똑 같애”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 산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22-23절에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몇 나라 사람들이 연합하여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사는 소돔성을 쳐 들어와서 약탈해 갔습니다. 이 말을 아브라함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잘 훈련시킨 318명의 가병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밤에 몰래 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약탈해 간 모든 것을 되찾아 왔습니다. 그러자 소돔왕이 환영식을 하면서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찾아온 사람들은 우리에게 주고 물건은 다 당신이 가지십시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가 그것을 받아 부자가 되면 사람들은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부자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야지 소돔왕이 부자를 만들었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소돔왕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세상사람들은 자기 공로를 내세워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도 가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릅니까! 소돔왕이 돌아서면 “믿음의 사람은 다르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감동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15장 1절에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주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실오라기 하나 욕심내지 않았던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내려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좀 닮아야지요. 다르잖아요.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에 보면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나옵니다. 이 사람들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것을 교훈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느브갓네살왕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왕이 먹는 진미, 고기와 음식과 술을 하사품으로 내려주었습니다. 다른 청년들은 “이게 왠 떡이냐”하고 먹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는 먹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먹지 못합니다. 제사 드린 음식으로 우리의 몸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그 네 사람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국무총리가 되고, 세 친구는 도지사가 되어 너무나 존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과는 달라야 합니다. 이걸 사모해야 합니다.
모습으로 다 나타납니다. 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타납니다. 기도의 사람은 그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삶으로 나타납니다. 기도의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너무나 삶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깊이 하는 사람은 기도를 소홀히 하는 사람과는 삶의 내용과 질이 다릅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은 온 인류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보다 더 존경을 받고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것처럼 느헤미야 13장 속에 12번의 기도가 나올 정도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느헤미야를 보라. 기도의 사람은 다르지 않느냐?” 이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도의 사람은 특별하다. 기도의 사람은 다르다.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1장에서 연결됩니다.
느헤미야의 동생 하나니가 예루살렘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성이 다 훼파되었다는 보고를 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느헤미야는 기도를 하는데 무려 넉 달 동안 지속됩니다. 그리고 2장 1절에서 그 상황이 지속됩니다. 기도한지 넉 달 정도 된 어느 날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술잔을 올리는데 왕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느헤미야야! 너 어디 몸이 좋지 않으냐? 왜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마음에 근심이 있는냐?” 이것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신하 한 사람 얼굴이 이렇든 저렇든 간섭할게 있습니까? 그런데 왕이 너무나 사랑하니까 그렇게 보는 겁니다. 신하 얼굴의 근심도 보는 겁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왕이여 내 조국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황폐화되었는데 어찌 내 얼굴에 수색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말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들어야 합니다. 왕이 현재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에스라4장 21-22절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오래전에 에스라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변방의 사람들이 시기를 해서 모함하여 왕에게 틀린 보고를 합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이 왕명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지 마라.” 왕이 중지시킨 것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싫어해서 중지시킨 그 일을 신하가 “내가 예루살렘 성벽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내가 죽을지언정 하나님의 일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명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기도의 사람은 어디를 가도 다릅니다. 왕이 중단 시킨 그 일 때문에 수색이 가득하고 말을 하는데 이게 왠 일입니까. 왕이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느헤미야 네가 원한다면 내가 들어주겠다”는 왕의 뜻을 전한 것입니다.
여러분 4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이 말이 중요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이것저것 해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했다고 합니다. 먼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여러분의 모습과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왕 앞에서도 먼저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난 후에 왕께 고하였습니다. “나를 예루살렘에 보내주십시오. 내가 무사히 도착하도록 그 지역 총독들에게 편지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묵을 집을 짓도록 목재를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왕이 모든 것을 즉시 허락해 줍니다.
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하나님이 역사해서 이렇게 되었노라고 느헤미야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일을 통해서 기도의 사람은 남달리 존귀하고, 남달리 특별하고, 남달리 귀하게 쓰임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느헤미야처럼 기도의 사람으로 존귀하고 복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뿐인 고귀한 인생입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며 사시겠습니까? 무엇이든 자신없는 소극적인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세상사람들이 볼 때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소리를 들으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라는 부러운 말을 들으며 성공적인 인생, 아름답고 존귀한 인생, 축복된 인생, 나라와 민족에 힘을 불어넣는 그런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느헤미야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따라합시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느헤미야처럼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위대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헤미야를 닮아서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이 달라지면 우리의 삶도 달라질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합시다. “나의 기도가 달라지면 나의 인생도 달라집니다.” 좀 더 멋있고, 좀 더 귀한 삶을 살려는 마음은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은혜는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무엇이 달랐는가를 몇 가지로 생각해 봅시다.

1.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근심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느헤미야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느헤미야는 높은 관리가 되었음에도 자기 조국 예루살렘성이 파손되고 유다 백성들이 고생당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근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개인 신상의 문제, 가정의 문제로 근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 있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돈이 없다가 많은 돈이 생기면 지난날들을 쉽게 망각해 버립니다. 그래서 낮은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꾸 높은 곳만 보입니다. 낮은 곳은 보지 않습니다. 갈수록 마음이 교만해 집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갑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변함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변함없이 이웃을 섬기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틀려버립니다. 고통당하는 사람과 아픔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존귀한 사람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는 사람은 느헤미야처럼 근심의 차원이 다른 존귀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비전이 확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꿈을 주시고 비전을 주십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줄 알고 그것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그 일을 추진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이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 4개월 동안,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오늘까지 비전을 품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믿습니다. 아버지여....”
매일 매일 꿈을 가지고 그 기도를 해 나가는데 오늘 4절과 5절에 보면 왕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는냐?”라고 할 때 주저 없이 자신의 꿈을 토해놓습니다. “왕이여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저를 보내주시옵소서.” 확고한 비전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오늘도 먹고 마시는지 분명한 목표가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의 축복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기도하지 않고, 기도해도 깊이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저 돈벌이만 열심히 할 뿐입니다. 그저 직장생활만 열심히 할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비전이 없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인생의 종말이 어떻겠습니까? 허무뿐일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압니다. 비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푯대를 향해서 목적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다르구나! 기도의 사람은 다르구나!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목적있는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그래서 다르구나!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분명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사명으로 알고 푯대를 향해서 달음박질 하는 다른 사람과는 기도의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만사를 기도를 풀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에 읽은 대로 왕이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는냐?”할 때, 그 지엄한 자리에서, 왕이 질문하는 그 자리에서, 그 왕 앞에서 눈을 감고 묵도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귀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조금 뭐가 되면 그 때부터 기도하지 않습니다. 힘들 때는 ‘주여, 살려주시옵소서’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도 뭐가 좀 된다 싶으면 그때부터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가 다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느헤미야의 강점이 어디 있느냐? 일이 잘 되어가는 순간에도, 왕이 “내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묻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먼저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좀 되니까 하나님은 우습습니까?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잘 되어 왔어도 하나님이 결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결재가 없으면 왕이 허락해도 안됩니다.”
사람이 다 막아도 하나님이 허락하면 되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이걸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간절하게 기도합니까? 어떤 사람이 남다르게 살아갑니까? 나이 많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달랐습니다. 저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는 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도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세요.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로 나아가자. 먼저 기도로 해결하자. 이것은 모든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싸움 할 때도 먼저 기도하세요. 먼저 말을 불쑥하기 전에 느헤미야처럼 묵도하세요. 그러면 부부싸움하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에는 승자가 있으면 안됩니다. 부부싸움은 함께 이겨야 합니다. “내가 오늘 남편하고 싸워서 이겼다.” 그 사람은 머리가 멍청한 사람입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여러분 복된 인생, 열린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태산 같은 문제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고 해도 그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그 문제를 능히 해결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사람만 되면 여러분은 다르게 살게 됩니다. 요즘 저도 기도해야겠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절실하게 느낍니다. 지난 주 대전 간다고 차표를 사서 버스를 탔는데 제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 번호가 6번인데 비켜주세요”라고 했더니 그 사람도 번호가 6번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때 마침 표를 받는 사람이 올라와서 저 표를 보자고 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대전가시네요. 이 버스는 서울 가는 겁니다.” 급해서 대전인지, 서울인지 보지도 않고 탔던 겁니다.
순간순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은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만사를 기도로 풀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앞길은 누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길은 형통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20절에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라고 할 수가 있었습니다.

4.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자기 할 일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함으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넉 달 동안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준비해 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나옵니다.
기도의 사람은 뭐가 다른가? 오늘 기도안하는 교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진짜 믿음으로 깊이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깊이 기도하는 사람은 뭐가 다릅니까? 그 사람은 기도만 하지 않고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히 믿는고로 준비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고 응답이 늦습니까? 응답이 늦을 때는 내가 일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둘지 마십시오.
보통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는 억수로 하는데 준비를 안 합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응답의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또 자신이 할 일도 하나님께 다 해달라고 합니다. 얼마나 모순되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갈 때는 어떻게 가고, 준비는 무엇을 준비하고 착착 계획을 세웠습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성공하지 못합니까? 준비하지 않으니까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실패란 단지 기회의 상실이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패는 단지 기회의 상실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그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가지 못합니다.
준비는 하지 않으면서 복을 막 달라고만 하니 정작 주어도 받지를 못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실 믿고 받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응답이 올 때 기회를 놓치지 않는 준비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노틀담 박물관게 가면 램브란트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램브란트의 작품 중 두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그가 무명시절의 아주 수준 낮은 작품이 걸려있고, 다른 쪽에는 그의 최고 전성기 때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한쪽에는 가장 낮은 수준의 그림, 다른 쪽에는 최고의 그림, 그래서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램브란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 그릴 수 있습니까?” 그러자 램브란트는 대가답게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십시오.”
여러분, 기도하면서 다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되지요. 기도하면서 내가 할 일은 착착 준비해야 합니다. 계획을 치밀하고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존귀하게 쓰임받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는 십대 때 중국 선교에 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십대 때부터 중국옷을 입고 중국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착착 준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중국으로 보내실 것인데 그 때 가서 당황하지 말고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의 사람이 아닙니까? 이렇게 준비하니까 중국 선교의 큰 장을 열수가 있었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이 늦게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이제 중학교 2학년입니다. 목사님이 지금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이 잘 배워서 나중에 교회에서 반주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준비해야지요. 기도하면서 준비는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의 사람은 착실하게 기도하면 준비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위대한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제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장애물을 만날 때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손길의 도우심을 확신했기 때문에 숱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어떤 장애도 극복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끝이 좋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이 아닐 때 그 사람은 쉽게 낙심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낙심합니다. 주저앉습니다. 끝이 좋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끝이 좋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기도의 사람은 다릅니다. 아름답게 끝을 장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어서 느헤미야와 같은 너무도 탁월하고 존귀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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