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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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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욥기 2장 7-10절

< 사람은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

어떤 가정에 사업이 부도나고 극심한 어려움이 닥쳐오자 남편이 교회 다니는 부인에게 자살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부인은 남편에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결국 혼자 죽기 싫어서 죽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 부부는 서울 암사동에서 과일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고, 두 부부는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 되었고, 아들들은 대학원까지 나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동반자살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실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죽을 각오를 할 만큼 열심히 살 각오를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의 마음처럼 강한 것도 없고, 반대로 사람의 마음처럼 약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강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도 없고, 어려움이 없는 곳도 없습니다. 성공과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욥의 이야기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몇 가지 비결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욥기 1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은 의인이었고 거부였습니다. 그는 아들이 생일잔치를 벌인 후에는 혹시 죄를 짓지 않았는가 염려해서 아들들을 위해 제사까지 드리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욥에게 어느 날, 4가지 시련이 연이어 닥쳤습니다. 스바 사람이 와서 소와 나귀를 탈취해 갔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목자를 살랐습니다. 또한 갈대아 사람이 와서 약대를 빼앗고 종을 죽였고, 더 나아가 대풍이 불어 7아들과 3딸이 몰살했습니다. 그처럼 동방의 의인인 욥이 극심한 고난을 당했다면 부족한 우리에게 고난이 없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어려움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고난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고난은 있다. 고난은 때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갈 때는 여름에도 겨울 장비를 준비하고, 비상식량도 준비하고, 두꺼운 옷도 준비합니다. 그처럼 인생의 높은 고지를 원하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실제로 고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고난에 대비하는 사람에게 고난은 더 적게 옵니다.

우리는 고난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살면서 편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집돼지에 비해 산돼지는 너무 힘들게 삽니다. 집돼지는 때가 되면 밥도 착착 주지만 산돼지는 날마다 스스로 먹이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집돼지가 행복한 것 같지만 얼마 후에는 서울 마장동이나 인천 십정동에 있는 아저씨들에 의해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나 산돼지는 사는 것은 힘들어도 잘하면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처럼 고난이 없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나중에 보면 그 고난이 내 인생을 돕는 결정적인 천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신앙이 좋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축복을 아름다운 인격과 함께 받을 수 있도록 고난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기도했다고 금방 축복해주면 얼마나 밋밋합니까? 하나님께서 축복과 더불어 아름다운 인격과 성품을 주어야 진정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단 것부터 먹으면 입맛을 버려서 그 다음 음식이 맛이 없습니다. 그처럼 인생도 부유한 가정에서 풍족하게 살면 결혼 후에 작은 시련에도 쉽게 흔들리고 쉽게 불평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인생의 쓴 맛을 체험한 사람은 작은 축복에서도 크게 행복을 느끼고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기쁨과 감사과 감격이 넘치도록 먼저 고난을 허락하시고 승리와 성공을 주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찬송가 535장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 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 있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 후에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실 때 하루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그처럼 영광의 아침 전에는 먼저 저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고난을 잘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2. 더욱 인내해야 합니다.

1장에서 욥에게 4가지 시련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때 욥이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1장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얼마나 대단한 신앙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련이 끝나지 않고 사단이 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그처럼 어떤 때는 아무리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해도 시련이 계속될 때도 많습니다. 그때 무엇이 필요합니까? 바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는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어려움을 당할 때 욥과 같이 참으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항상 참고 인내하는 자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힘든 일을 당하고 “내가 지금까지 참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인내를 시험하는 결정적인 때입니다. 그때 참지 못해서 기분대로 수습하기 힘든 일을 터뜨리지 말고, 한 번 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화를 내고 불평하면 손에 잡힐 것 같던 축복도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애인의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교통체증이 심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있는데 갑자기 차가 한 대 끼어들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청년은 창문을 열고 욕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행히 많이 늦지 않아서 장인 장모님을 뵈었는데 알고 보니까 조금 전에 욕설을 퍼부었던 바로 그분들이었습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여자 부모가 그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 더 인내해야 합니다. 재능이나 영감도 중요하지만 인내는 더 중요합니다. 지식에도 인내가 더해져야 그 지식이 지혜가 됩니다. 1킬로그램의 꿀을 얻기 위해서 꿀벌은 7백만 번 이상 꽃을 찾고 지구의 일곱 배의 거리를 난다고 합니다. 그런 꿀벌의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엄청나게 크고 단단한 나무도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쳐줍니다. 만약 성공을 위해 기회와 인내가 겨루면 인내 쪽을 택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어떻게 인내할 수 있습니까? 첫째, 성공에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요새 6개월 이상 수영을 다니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수영을 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닌다면 금방 포기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하니까 수영이 거의 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일 세면을 한다고 생각하고 수영 자체를 즐기니까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기간의 성공과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길게 생각하고 멀리 봐야 합니다.

둘째, 내일의 축복을 확신해야 합니다. 군인들이 제대할 때쯤 되면 “거꾸로 매달아놔도 시간은 간다.”고 말합니다. ‘거꾸로 매다는 것’은 환난을 뜻합니다. 그런 환난이 있어도 곧 제대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내일의 소망이 크면 현재의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소망의 크기는 인내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창조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학력,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 가치를 모르니까 결국 세상의 물질을 가지고 자기 가치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내가 귀해야지 아무리 귀한 것을 가진들 그것이 나를 귀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입술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이 고통 중에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8절 말씀에서 “욥에 재 가운데 앉았다”는 말씀은 그가 회개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회개하면서 기와 조각을 가지고 몸을 긁고 있을 때 욥의 아내는 무서운 말을 했습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남편이 회개 중인데 격려해주지 못할망정 저주하고 있으니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물론 자식 10명이 한꺼번에 죽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할까 이해도 됩니다. 그래도 극단적인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힘들다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나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 “저분이 교양이 있나? 배운 분인가?”라는 생각은 고사하고 “저런 남편, 저런 아내와 함께 어떻게 살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욥이 당대의 의인이라고 할 정도로 온유하고 착한 남편이었기에 참고 지나갔지 성질 더러운 남편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아마 초상났을지도 모릅니다. 여자들은 성질 더러운 남편에게는 말을 조심합니다. 그러면 착한 남편에게는 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남편이 착한 것을 알고 멋대로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더 나쁜 태도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말을 다 받아준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착하다고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면 고등학교 때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맞고 다니는 아이들이 아내 앞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짜 싸움 잘하는 친구들은 아내 앞에서 성질부리고 싸움 실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 남편과 아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지금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 절반 정도라는 통계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내 남편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반대로 내 아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지금 아내들이 얼마나 많이 탈선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복 받은 남편입니까? 이제 배우자에게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고, 더 위로를 주고, 더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상처 주는 말로 남편과 아내의 가슴을 찌르고, 자녀의 마음에 독침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로 나가면 정당하게 매로 징계할 일이지 말로 독침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자식들이 자살 안 하고 사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고 가출 안 하고 사는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괜히 남과 비교해서 자녀가 감당하기 힘든 말을 쏟아내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혀를 잘못 쓰면 자기도 죽이고 다 죽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 써야 합니다. 가장 큰 죄는 입으로 짓는 죄입니다. 반대로 가장 복된 일도 입으로 합니다. 찬송과 기도, 그리고 감사와 신앙고백도 다 입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을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을 때 욥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10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상처를 주는 말을 듣고도 얼마나 온유하게 응답합니까? 우리는 욥처럼 남이 모진 말을 해도 온유한 말로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15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케 하느니라.” 우리는 온유한 말을 훈련해야 합니다. 스펀지처럼 상대의 말을 잘 받아주고,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훈련도 잘해야 합니다. 말로 상처를 입었을 때 “왜 그 말을 했을까?”하고 분석하면 분노와 상처는 커집니다. 그러나 상처 주는 말을 한 사람을 긍휼히 보고 그냥 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큰 인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어려워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은 인생의 댐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습니다. 큰 댐도 구멍 하나로 무너지듯이, 모든 축복도 말 한마디로 무너집니다. 어려울 때는 더욱 기도하고, 더욱 감사의 말을 하고, 더욱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려움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4.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욥은 아내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그는 축복이나 재앙이나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철저히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때 무엇이 나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과 언어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자기를 존귀하게 만드는 길이고, 원망은 자기를 천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지성인이라도 불평하면 천해집니다. 반대로 아무리 공부를 못한 사람이라도 감사하면 존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면서 “너 성공해서 내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길은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는 행복의 비결입니다. 사람은 감사할 때 행복이 느껴지고, 감사 속에서 삶의 감격이 커지게 됩니다. 오늘날 왜 사람들 사이에 감동이 사라졌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감동을 찾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도 더 부어주십니다.

이제 죽는 한이 있어도 감사하십시오. 생애 최고로 힘들어도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때도 며칠, 몇 주만 감사하지 말고 감사를 체질화시키십시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감사가 넘치는 생각을 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십시오. 고난이 있을 때 고난을 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고난 중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인생에서 실패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망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힘들면 주변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반면에 인생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감사가 많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행복과 축복도 그의 것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도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았기에 그에게 시련은 있어도 시험 드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왜 교인들이 시험 드는 경우가 많습니까? 교회를 다닐 때, 하나님 이외의 것을 바라보면서 축복 때문에 다니고, 친구 때문에 다니고, 이성 때문에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다니면 결코 시험 들지 않는 전천후 신앙인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잠언 29장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어려움을 당하면 사람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을 찾아 가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어려울 때 친정에 가면 위로를 받을 것 같고, 친구를 만나면 위로를 받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마음은 더욱 허전할 뿐입니다. 친정에는 좋을 때만 가고, 어려울 때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에게 가면 약간의 위로는 받을지언정 그 위로가 나의 무의식과 자존심에 더욱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은 되도록 감추는 것이 좋고,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의 수치를 다 벗어던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 앞에서는 다 털어놓지 마십시오. 나중에 어떻게 수습하려고 다 털어놓습니까? 친구에게 다 털어놓고 그 친구가 위로한다고 그것이 도움이 됩니까? 아닙니다. 속으로 우습게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잘되는 사람은 존경하고, 실패한 사람은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결의 길은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까?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더욱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는 것이 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런 것들은 문제 해결과 아주 동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어떤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오히려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헌신하십시오 >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변함없이 충성하고 변함없이 헌신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선한 일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행하면 반드시 크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미 아는 얘기이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 2003년 우리가 이곳을 매입한 후, 여러 사정으로 교인들이 떠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한 달에 3백만 원 이상 헌금하던 분이 떠나고, 여러 교인들이 함께 떠나면서 교회는 마이너스 재정상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첫 번째 고민했던 것이 “선교를 하지 말아야 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속에서 수없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선교를 포기해야 합니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어렵다고 선교를 안 하면 언제 선교를 하느냐? 의리 없는 성도가 되려느냐? 어려울 때 드리는 소중한 영적 별미로 선교를 계속하길 원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선교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신기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연약한 사람들만 남았지만 남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조금 더 헌신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새로 보내주신 권사님과 집사님들을 통해서 헌신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지출에 비해 수입은 부족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구청으로부터 “건물을 샀으니까 취득세를 내라!”는 독촉장이 날아왔습니다. 교회는 원래 취득세가 없는데 우리가 다 쓰기에는 교회도 넓고 재정적인 보충도 하려고 아무 것도 모르고 키튼 코리아에게 세를 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곳은 교회 용도로 쓰지 않는 것이니까 취득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청에 말했습니다. “우리가 몰랐는데 법이 그렇다면 취득세를 내겠습니다.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데 몇 천만 원을 어떻게 한꺼번에 냅니까? 결국 내지 못하자 구청에서는 한달이 멀다하고 교회를 압류하겠다고 통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또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래도 우리가 선교를 해야 합니까?” 그래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를 끊으면 교회의 존재 의의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도저히 선교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선교하다가 어렵다고 도중에 후원을 끊어버리면 얼마나 의리 없고 불충한 모습입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압류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정 집사님에게 “어려워도 선교는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가 미안하니까 먼저 저부터 최선을 다해 헌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제가 매달 십일조와 선교와 구제 등의 헌금으로 얼마나 드리나 아내와 따져보니까 매달 10의 6조 정도를 드리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금액을 모으면 우리도 여름철에 물이 수시로 끊기는 주택에서 20평짜리 작은 아파트로라도 이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새 권사님들이 저를 보시면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면서 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주고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속으로 “힘들면 내일을 기약하고 선교를 끊을 수도 있는 것이지. 참 어리석다. 의리가 밥 먹여주나?”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래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선교는 해야 할 일이고, 선교의 축복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외부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도우면 사양하지 않고 그냥 받습니다. 더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힘들어도 선교해야 하고, 선교의 축복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교회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고, 더 많이 선교할 수 있는 힘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교회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이래도 선교와 구제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며칠 전에 몽고의 신학교로 500권의 책을 보내는데 “그 비용을 우리가 대야 하나?”는 문제로 선교위원과 상의를 했습니다. 당연히 대야 하는데 재정이 부족하니까 그런 고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사소한 고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선교해야 합니다. 몇 주 전에는 어려움 중에도 감독님 방문하셨을 때 상당히 많은 선교헌금과 구제헌금을 인편으로 보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할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몇 배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그까짓 세금이 문제입니까? 아직 주일 예배 인원이 많이 늘지는 않고 있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새벽에 기도하는 식구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때가 되면 우리 교회도 하나님께서 큰 부흥의 은혜를 주시고, 엄청난 독지가와 선교의 큰손들도 붙여주시고, 선교센터도 짓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10배-100배 더 선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는 만큼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을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 응답을 원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응답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와 찬양과 기도와 헌신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교회도 없습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믿음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잘 이겨내면 어려움이 없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 어려운 순간이 와도 마음과 생각과 입술을 지키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내함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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