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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 (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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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 (히 11:6)


인간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올 것을 압니다. 불은 뜨겁고 얼음은 차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자연현상에 대한 믿음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법칙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고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중국 기(杞) 나라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늘 전전긍긍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불행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믿음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은행이나 보험회사를 믿기에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듭니다. 개인 간에도 믿음이 있기에 거래도 하고 계약도 합니다. 가족 간에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간혹 복잡한 집안에서 상속 문제로 말썽이 나면 친자확인을 위해 DNA 검사를 해 보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마는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친부모 자식인 것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인간관계에서 믿음을 제해 버린다면 이는 초석을 빼낸 건물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듯이 우리 삶은 파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의 생활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귀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이르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하지만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음의 기초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방법 곧 오감에 바탕을 두고, 오감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이성(理性)에 의해 판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감이나 이성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보다 차원이 높은 세계에 계시므로 이성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주만물에 자기의 흔적을 남겨두셨다고 증언합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이르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집이나 가구나 고속도로와 같은 것을 보면서 그것을 만든 자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그 보다 더 차원 높고 더 탁월하고 치밀한 우주만물을 보고서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집이나 탁자는 지성을 가진 존재가 만든 것이 분명하고 이 보다 더 복잡하고 위대한 생물들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의 인식능력이 이처럼 추락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아담의 타락이 그 원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타락의 결과에 대하여 로마서 1장 21절로 23절에 이르기를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의 생각이 허망해 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이유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들의 영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리켜 영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죽은 영이 소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나야 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바리새인 니고데모에 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그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알고자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이었으나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거듭나는 도리에 대하여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고 했습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 사람의 영을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절에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는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중생한 심령에 뿌리박은 믿음을 말합니다. 또한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말씀해 드림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 째로,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그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사람의 경험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다른 종교들과 다른 점입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영적으로 소경이므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만물에 자기의 신성과 능력을 나타내셨으나 인간들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만물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고대로부터 모든 민족이 태양이나 달과 별들, 바다와 강, 대지, 산과 바위, 짐승 따위를 신으로 숭배해 왔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금도 과거에 비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아니, 현대인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교만해져서 스스로 신이라도 된 듯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우주 만물을 보면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찬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시란 베일을 열어서 감추어진 비밀을 밝히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계시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주시되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인간 저자들을 영감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오류가 없이 기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내용이 다 진실하고 오류가 없습니다. 고고학이 발달할수록 성경의 내용이 정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과학적인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성경이 정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신 목적은 역사나 과학이나 윤리에 대한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그와 동시에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관해서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관통해서 흐르는 큰 물줄기는 인간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헛되이 읽은 것입니다.

성경을 한 구절로 요약한 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바른 믿음을 갖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듣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성경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마음속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번 째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라고 하였고,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감동과 성령의 감동은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방금 인용한 두 구절은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심을 증거합니다.

만약에 성경이 철학적인 깨달음이나 윤리에 대한 가르침을 기록한 책이라면 우리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께서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을 감동하셔서 기록하신 것이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지혜로는 성경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복음을 들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이 복음을 전해 들었어도 어떤 사람은 믿고 구원을 받는데 또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배척합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 선교를 위하여 마게도냐로 건너갔을 때였습니다. 마게도냐 지역의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러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으러 강가로 나갔다가 거기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많은 여자들이 바울의 말을 들었지만 오직 한 사람 루디아라는 여자가 믿고 개종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16장 14절에는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왜 똑같이 복음을 듣고도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말해 줍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따르는 무리에게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리 가운데서 논란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라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는 믿음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이 이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 지금 가진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을 갖기 위해 겸손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큰 믿음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세 번 째로, 우리는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고 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은 눈에 보일 듯 말 듯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땅에 심어 놓으면 싹이 나고 자라나서 많은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잘 자란 겨자 나무는 그 키가 3메타 혹은 4메타를 넘는 것도 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겨자씨 한 알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속에 이처럼 위대한 내일의 실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집니다. 작은 믿음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겨자씨 한 알이 새들이 무리지어 깃드는 큰 나무로 자라나듯이, 비록 적은 믿음이지만 언젠가는 위대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교회에서 무슨 일을 맡길 때 “나는 믿음이 없어서요”라고 핑계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치고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초 신자일지라도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현대와 같이 바쁜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하게 예배드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신 지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돈을 줄 터이니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자 해도 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누가 강권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교회에 나온 것이니 이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갓난아이는 매우 약한 존재입니다.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자고 먹고 똥오줌을 누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도 곁에서 엄마가 일일이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갓난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가만있지 않고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젖을 달라고 울고 보챕니다. 몸이 아파도 울고 보챕니다.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성숙한 성도들의 눈으로 볼 때에 초 신자들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소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산 믿음은 자라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믿음은 위대한 기적을 산출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시니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리어 말하기를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고,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대답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겨자씨가 모든 씨앗 가운데서 가장 작은 종류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겨자씨는 배추씨보다도 작습니다. 겨자씨 한 알을 손바닥에 얹어 놓으면 씨앗이 너무 작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작은 점과 같은 씨앗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주 작은 것을 겨자씨에 비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따라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매우 작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말씀입니까? 유대인들은 크고 엄청난 일을 해결할 때 이를 산을 옮긴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비록 적은 믿음이지만 우리가 그 믿음을 활용할 때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산과 같이 큰 문제를 만났습니까? 문제를 바라보고 지레 겁을 먹지 마시고 성도님들에게 있는 믿음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을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을 활용하는 것은 곧 기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삶의 문제를 만났거든 혼자 걱정 근심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형제들에게 사정을 고하고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목회자에게 여러분의 형편을 이야기 하시고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하였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4-16)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대신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결코 소극적인 대응이 아니며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하면 누구나 능력있는 선지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행한 모든 위대한 일들은 하나같이 기도를 통해서 된 것입니다. 그는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활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했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인정받는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이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믿음을 더 큰 믿음으로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기도와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인정받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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