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내는 비결 (눅 7:1∼10)
본문
사람은 누구든지 죽는다. 하지만 죽을 인생이 살리시는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의 인생은 가장 불쌍하다. 그러므로 인생은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 이 땅에서도 죽을 자가 살리심을 받아야 하고 한번 죽은 후 죄를 심판하는 심판대 앞에서도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이후 오늘날가지 사형수들은 한 사람도 사형집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사형수들은 남을 죽이는 것을 파리목숨 죽이는 것보다 못하게 취급했던 자들이지만 죽음은 진정 피하고 싶고 살아야 된다는 소망으로 초조하게 하루 하루를 지낸다는 것이다. 저들에게도 사명의 소식만이 최고의 뉴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죽을 자라고 죽게 내버려두는 무정한 사회와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살려내는 구조의 일을 해야만 한다.
오늘 본문에서 병들어 죽게된 어떤 백부장의 종이 있었다. 종은 한 가정에서 주인을 섬기는 노예이기에 자신의 죽음의 절망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죽음을 맞이하여 죽어가는 것 밖에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하인이 살리심을 입고 강건해지는 복을 받았다.
그를 살려낸 비결이 무엇인가?
1.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2절∼3절)
대개 로마의 제도는 주인이 노예의 생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했다. 로마의 시민들보다 두 배나 많은 노예들은 주인의 집에서 머물며 쓸모 없는 노예, 나이 먹고 일을 잘 못하는 노예가 되면 가차없이 버림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 백부장이란 사람은 이 종을 물건처럼 다루지 않았다. 노예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래서 백부장은 이 종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고 죽게된 질병에서 나음을 입는 살길을 모색하였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관심을 갖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다. 신분과 계급을 문제삼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신분의 핑계를 대고 상대방이 지금 어떤 괴로움과 아픔에 허덕이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지낸다면 그 사랑은 거짓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면서 가능하다면 그 고통을 벗어 던지도록 해주는 일이다. 바로 백부장은 자기 집 종을 그렇게 사랑하였다. 누가7:3 예수의 소문을 듣자 자기 종을 구원하기를 원하여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게 된다. 얼마나 백부장이 종을 사랑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백부장은 종을 가족과 식구로 대하였고 그 사랑이 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무관심과 냉대는 죽음을 재촉하는 독약이다. 그러나 사랑은 죽을 자라도 살려내는 기적의 묘약이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면 내 가족 내 교회가 살아난다. 무엇보다 죽어가던 영혼들이 살아난다. 전도는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남편과 이웃 전도하는데 숫자를 채우려고, 교회를 채우려고 남편 예수 믿으면 내 말 잘 듣고 핍박 안할 것 같아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순전히 예수 안 믿는 영벌 인생이 불쌍해서 그 영혼을 사랑해서 예수를 소개하려는 전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살아날 수 있다. 완악한 사람도 변화될 수 있다.
2. 땀 흘리는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다.(4절∼5절)
사랑이란 수고와 희생을 하게 한다. 그러나 사랑의 수고와 희생은 힘들거나 고된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갓난 아기를 기르는데 사랑의 수고를 한다. 아버지는 가정을 먹여 살리느라고 땀흘리는 수고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여길뿐이지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인생을 원망하지 않는다. 사랑은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부장은 종을 살리기 위해 유대교의 장로 몇을 보내었다.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초대하는데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이 합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백부장의 의중을 알고 예수께 나아간다.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게 된다.
그후 백부장은 누가7장6절을 보면 다시 벗들을 보낸다. 그것은 백부장에게 있어서 주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태도가 달라졌기에 주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였다.
자기의 집에 예수님을 들어오시도록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에 사람을 다시 보낸다. 사람을 인선하고 사람에게 종의 문제를 부탁하고 종의 쾌유를 위해 예수님 만나는 사절단을 보내는 일을 위하여 백부장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더 좋은 방안을 찾고 그 주어진 길을 좇아 수고하고 땀흘리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베트남 선교사로 보내었던 이철휘 선교사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골절되었다. 그때 의료기술이 뒤떨어진 베트남에서 치료하다가 염증이 생기고 뼈가 제대로 정형되지 못했다. 그 때 그를 한국으로 데려오는데 그 형이 얼마나 수고를 했는지 모른다. 비행기에 환자를 탑승시켜야 하는 문제, 한국에 병원을 마련하여 수술하는 문제, 병원치료비의 문제를 위하여 땀흘리는 수고를 하므로 썩어서 잘라야 할 다리가 회복되고 부서진 턱뼈도 교정하여 언어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살려내는 일은 땀과 눈물의 수고가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회복된 이야기를 보라. 지붕을 뚫고 고치시는 주님께로 인도하려는 4명의 사람들의 피나는 수고가 있었다. 결국 한 사람을 살려낸 것이다.
새생명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인도 되었다. 참 감사하고 기쁜 것은 집사님 한 분이 다시 나오신 것이다. 무려 5년만의 일이라고 할 까?
나는 그분 오시는 것을 보고 다음 날 새벽에 기도하였다. 계속 나오게 해달라고, 계속 주님께 붙잡히게 해달라고, 누구보다 강건하게 주의 사랑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쁨으로 기도하였다.
나의 가족, 나의 자녀, 이웃을 위하여 수고의 땀을 흘려보자. 거기에는 무한한 사랑의 기쁨이 흘러 들어오게 될 것이다.
강영우 박사, 그는 시각 장애인이다. 석은옥 부인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 미국정부의 차관보가 되었다. 또 하인즈 워드는 미식축구의 MVP가 되었는데 혼혈을 극복한 승리로 어머니의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잡지에서 읽은 젊은 여의사의 이야기인데 환자의 기관지에 생긴 가래를 기계로 끄집어 내어 제거하는 것이 잘 안되니까 그 환자의 가래를 빨아내기 위해 빨대로 직접 입으로 빨아내어 사람을 살려내는 수고를 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허준도 사람을 살리려 고름이 가득찬 환부를 입으로 빨아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을 이미 받은 자들이다. 여기 이방인 백부장이 자기 집의 종을 사랑하여 어떤 수고도 할 수 있다고 하면 우리는 마땅히 사랑으로 수고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3. 절대적인 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7절∼9절)
주님을 초대하여 하인의 죽을 병을 해결하고자 했던 백부장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새로워졌다. 주님이 가장 크신 하나님이신데 내 집에 들어오심도 감당치 못하고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게 되었다. 주님이 막연히 고치시는 의사로서의 주님이 아니다. 모든 사물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최고 지존자이시다. 호령 한마디로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사령관으로서의 주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말씀만 하사 하인을 낫게 하소서 라고 아뢰이게 되었다. 백부장은 백 명의 부하를 움직이는 장교다. 그의 말 한마디면 군병들이 가고 온다. 백부장은 총사령관이신 주님이 말씀 한 마디로 하인의 질병을 복종시킬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 때 예수님은 이 백부장을 기이히 여기셨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하셨다. 백부장은 절대적인 큰 믿음 주님이 놀라고 주님이 칭찬하는 큰 믿음을 가졌다. 하인의 병을 고치실 주님의 권위와 능력을 믿었다. 믿음이 있는 곳에 기적이 일어난다. 주님이 하실 수 있다고 주님을 제한하지 않는 나들에게 죽을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주님의 하시는 일은 이해되니까 믿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초보단계는 이해되므로 믿는다. 그러나 이제 백부장처럼 믿고 나면 해답이 나오고 이해가 뒤따르게 된다. 말씀 한마디의 권세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믿는 믿음 ! 절대 믿음 있는 곳에 산이 들려 바다로 옮겨진다.
마가11:23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우리도 의심치 말고 믿고 질병의 산을 향해 외치자. 안타까운 것은 의심이다. 백부장은 이방인으로서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데 하인이 낫는다고 믿었는데 믿는다고 자처하는 크리스챤들이 의심속에 있다. 기적이 일어날 수 없고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없다.
막6:5∼6을 보면 예수님은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칠 뿐이었다. 왜 그런 것일까? 백부장과 달리 예수의 동족, 예수의 고향사람, 예수의 이웃은 불신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적은 믿음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기적은 믿음에서 온다. "나는 저 사람에게 전도할 수 없어, 저 사람의 완악함과 교만함은 주님도 못 고쳐, 사는 습관이 틀려먹은 사람인 걸" 이라고 생각하는 그 의심을 깨뜨려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주님은 오늘도 기적을 일으키시려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충남 시흥교회 신정열 성도는 모태신앙이나 믿음이 없어 불교인과 결혼하여 30년을 살면서 늘 두통과 신경좌골통으로 고생하였는데 어느 날 속이 안 좋아 검진했더니 위암2기말에서 3기로 넘어가는 상태였다. 그는 수술하였고 일년 후 재발하여 다시 수술하기로 하였는데 언니가 눈물로 기도해주었다. 언니의 권유로 기도원에 갔고 괴로워하는 동생을 위해 금식기도 해 주었다. 언니의 소망을 주는 사랑과 기도의 말씀을 통해 우상섬기던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켰다. 그리고 수술 날자가 되어 병원에 갔는데 암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되어 수술을 못하고 2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시한부생명을 선고받게 되었다.
생명연장을 위하여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언니의 권유로 5일 금식기도로 매달렸는데 "딸아 네 믿음의 기도, 네 눈물의 기도를 들었노라."는 언니의 응답 받은 기도대로 나음을 입게 되었다. 이 간증의 고백속에 바로 사랑, 수고, 믿음의 살려내는 비결이 담겨있다.
이방인 백부장이 ①사람을 사랑하므로 하인을 살렸다. ②사랑의 수고와 헌신으로 하인을 살렸다. ③큰 믿음으로 치유를 믿을 때 하인을 살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방인으로 믿어 은혜아래 사는 크리스챤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 능력의 예수는 나의 영적 신랑이고 나는 그의 신부다. 나는 절망에 빠진 사람을 사랑 못할 이유가 없다. 사랑의 수고를 못할 이유가 없다. 해주실 줄 믿는 믿음을 버리고 의심에 빠질 이유가 없다. 사람을 죽을 자리에서 살려내는 일, 상식을 넘어 기적을 일으키는 일, 지옥에 갈 인생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일, 그 일에 적합한 자가 바로 나 자신이다. 크리스챤이 할 일이다.
의기소침을 버리라. 기쁨으로 그 믿음의 역사를 나타내자. 살려내기 위하여 교회가 있고, 성도가 있고, 말씀이 있고, 기도와 찬양이 있다. 살려내기 위해서 신령한 것들이 있다. 오늘 이 시대에 기적을 다시 일으키자.
예배하는 이 자리가 치유의 현장이 되게 주님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