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충성하라 (행 5:1-11) > 설교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설교자료실 >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설교자료실

끝까지 충성하라 (행 5:1-11)

본문

끝까지 충성하라 (행 5:1-11)


세계의 재벌로 손꼽히는 사람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와 투자전문가 워런 버핏입니다. 지금 미국 사회와 기업들 사이에서는 “부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빌게이츠는 자신의 재산 500억 달러중 95%기증 약속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선 사업에 매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지난 25일 워런버핏이 자신의 재산 440억42조원)달러 중 85% 370억달러(35조원)를 5개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전체 기부액의 300억 달러는 게이츠 재단에 나머지는 2년 전 숨진 부인을 기념한 수전 톰슨 버핏 재단과 세 자녀가 운영하는 또 다른 자선 단체에 각각 기증하기로 한 것입니다. 버핏 회장은 자신의 자식들이 만든 자선단체를 제쳐놓고 게이츠재단에 재산 대부분을 내놓기로 하자 미국 재계는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버핏 회장은 상속세 폐지 움직임이 있는 부시 정부에 강한 반대를 표시하면서 “내 가족에게 스스로 노력해 벌지 않은 돈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좋은 나라가 되는 중요한 이유들이 여기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성공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경영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부를 이룩하였고 끝까지 바른 길을 걷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끝이 중요합니다. 잘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끝내는 것입니다.

엊그제 논산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베다니 교회 김성용 목사님의 부친상에 조문을 갔습니다. 지병으로 오래 편찮으셨던 부친은 78세의 생애를 마감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은 화장터로 가지 않고 건양대 의대로 간다고 합니다. 이미 살아생전 시신을 학교에 기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시고 교회를 섬기셨던 그분이 마지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시신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험실의 도구로 헌신하신 것입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신선한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중요한 결단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마음으로 좋은 생각을 결단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해야 할 때 넘어지고 핑계하고 결단의 마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도 잘해야 하지만 끝까지 잘하는 것이 진정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소아시아의 7교회 중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시기를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촉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는 더 이상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첫사랑은 끝까지 이어져야 하고 열매 맺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울왕은 당대 최고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충성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말년은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이었고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졸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처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끝이 좋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끝까지 충성하고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실이 달라졌습니다. 이기적인 삶이 이타적인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변하였습니다. 자발적으로 아름다운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 바나바
후에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안디옥 교회를 섬기며 놀라운 부흥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경건과 인격과 아름다운 삶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웠던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그는 끝까지 충성하며 초대교회 부흥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섰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 같은 삶을 사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부흥과 성령의 역사 한가운데 왜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 또한 초대교회 부흥의 이야기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이 주는 교훈으로 초대교회는 더욱 큰 부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교훈은 끝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진실 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순수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한결같이 섬겨야 함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은혜와 성령에 이끌려 헌신을 결단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교회에 헌신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집을 팔아 그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사실 한 쪽에서 반대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에 이끌려 함께 마음을 모아 결단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헌신하는 일은 참 귀한 일이다.
부부가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인지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부부가 함께 헌신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부 가운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는데 이들 부부의 헌신은 바울의 선교에 큰 몫을 감당했습니다. 목회자의 동역자요 파트너로써 헌신한 아름다운 부부입니다.
그들의 헌신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고 바울의 선교지마다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충성하는 아버지와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자녀들은 행복합니다. 이미 받은 복이 큽니다. 또한 미래의 하나님의 축복이 준비되어진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자긍심을 갖게 되고 부모님의 헌신을 배우게 되어 훌륭한 믿음의 자녀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시작은 참 좋았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그들을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불행한 비극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행복한 시작이 행복한 결론으로 끝나야 진정 축복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으면 성령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혹 불행으로 시작하였지만 행복한 결론을 맺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더욱 큰 축복입니다.
불신으로 시작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더욱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끝이 좋아야 합니다. 결론이 행복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살았어도 끝이 좋지 않으면 잘 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말년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끝까지 잘하셔야 합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그들의 죽음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 그러자 성령이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이것이 그들 부부의 비극의 원인입니다.

유혹에 넘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유혹은 언제나 있습니다. 문제는 유혹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운 선악과의 유혹은 에덴 동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온 세상에 깔려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따라할 수 없습니다. 먹을 수 있다고 다 먹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유혹이 안방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그것을 다 허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자유로운 금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선악과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유혹의 선악과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과 축복의 길입니다.
유혹은 그 결과가 불행이며 비극인 것입니다.

성경의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위대한 신앙의 사람 다윗이 있습니다.
그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때 그 중심을 인정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의 사람 다윗도 밧세바의 아름다움에 유혹 당했을 때 범죄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를 무너뜨릴 만한 유혹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다윗도 유혹에 무너져 범죄 하였다면 ‘나는 절대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또 다른 죄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음폐하기 위한 다윗의 계략은 더 무서운 죄를 생각해 냈습니다. 밧세바를 범한 죄를 숨기기 위해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몰아 죽게 했습니다.
죄를 범할 때 처음에는 두려움과 거리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계속 반복하게 되면 양심이 화인 맞은 자처럼 되어 죄에 대한 거리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를 결코 방심하지 마십시오. 작은 죄라도 두려워하며 멀리해야 합니다.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여러분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나를 무너뜨리는 악한 사단의 계획이 가까이 있음을 기억하고 잠시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유혹에 무너졌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가 얼마나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함께 공모하여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성령을 속였습니다.
한사람이라도 깨어 있었다면 이 비극을 막아 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무너져도 다른 한 사람은 무너지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이 불신앙에 빠져도 아내는 신앙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둘 다 무너지면 안 됩니다. 죄를 합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안 된다고 거부해야만 합니다.

맛 장구 만 치지 않았어도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이 놀러가자. 등산가자. 낚시가자. 가족이 함께하는 취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배를 망치는 유혹이라면 포기해야 합니다.
선악과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갖기에 탐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른 더 큰 행복과 축복을 위한 최소한의 포기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좋은 것이지만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이 그들 마음속에 들어 온 유혹 때문이었다면 그 유혹은 잃어버린 성령의 자리에 들어온 유혹이었습니다.

충만했던 성령의 역사가 그들 부부속에서 식어졌을 때 그들은 유혹에 무너졌습니다.
성령이 떠나간 자리에는 악령이 틈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교만하여 성령을 소멸케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을 악령이 사로잡고 그를 조종했습니다. 악령으로 그는 고통 받았고 살기가 가득했고 분노와 미움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한 시기심에 붙들렸고 은인이었던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성령을 소멸함으로 비극적인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성령 받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힘쓰고 또 애써야 성령의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소멸하고 쏟아 버리기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너무 쉽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담는 과정은 힘들어도 항아리가 깨지면 한 순간에 쏟아지는 것이다.
공들인 탑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법입니다.
애써 받은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을 소멸한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이 떠나간 자리에 악한 영들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영이 내 안에 충만하면 추하고 더러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위해 성령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특히 자기 스스로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도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을 소멸한 자의 비극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 가족의 비극은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심판과 엘리의 죽음이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교만하여 제단의 불을 다른 곳에서 가져오다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장한 사울도 성령을 소멸하고 악령에 사로잡혀 살다가 일가족이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는 죄를 저지르므로 결국 즉사하여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제사장의 반열에 또는 왕의 반열에 섰고 성령의 은혜로 헌신을 결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모두 성령을 소멸한 결과입니다.
성령을 잃게 되자 그들 가운데 악한 영들이 틈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악령의 지배속에서 교만하여 졌으며 성령을 훼방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오히려 처음은 부족했더라도 나중은 넉넉해져야 옳은 것입니다. 첫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엄중히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의 부르짖음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쫒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쫒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말아 달라고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다윗은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뼈아픈 회개를 드렸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 앞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은 돌이켜 질 수 도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왜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는 지적을 하였을 때 그 죄를 바로 인정하고 회개의 기회를 붙들었다면 비극을 지나갈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의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기회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깨닫는 순간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회개의 기회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지금도 계속 하나님의 기회가 여러분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기회를 붙들고 다시 멋진 영적회복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시작이 좋았으면 끝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부부 중 한사람이라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아름다운 축복의 결론을 맺는 영광스러운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객센터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기독정보넷공식트위터 Copyright © cjob.co.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