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치료하는 법
본문
본 문 : 이사야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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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우리는 지금까지 불행 즉 인생의 저주의 증상들과 그러한 저주를 날라주는 매체와 저주의 원인들에 대하여 살펴보았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것들을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읍니다.
나의 삶을 많이 살펴보았읍니다.
어떤 분은 자기의 삶 속에 그러한 저주가 있음을 발견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저주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치료하는 것이 없으면 저주의 증상과 원인들을 안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읍니다.
저주에서 벗어나는 출구가 없다면 차라리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더 났읍니다.
저주의 증상과 원인은 알았는데, 출구가 없다면 더욱더 절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증상이나 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주에서 벗어나는 출구입니다.
그런데 모든 저주에는 출구가 있읍니다.
저주에서 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읍니다.
그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또한 기독교 역사가 증명을 하고 있읍니다.
① 여리고의 터는 매우 아름다웠읍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면 언제나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것이였읍니다.
쉽게 말하면 여리고 땅은 저주받은 땅이였읍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날 햇볕에 얼굴이 몹씨 그을리고 얼굴에 저주의 고통이 가득한 그 여리고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읍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저주스러운 삶을 이야기 했읍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오라고 하고는 그 소금을 물 근원에 던지며 여리고의 물근원의 저주를 치료했읍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왕하2:21)
그러자 그 저주가 치료가 되어서 다시는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일이 없게 되었읍니다.
여리고의 저주의 땅이 치료가 되었읍니다.
이렇게 저주가 치료되는 길이 있읍니다.
② 제 기억에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은 가난하게 살았읍니다.
제가 태어났던 집에서 살던 기억은 안나나 그 집을 저는- -
알았읍니다.
저희 부모님이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을 이야기해 주었읍니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한동안 그 집이 있어서 그 집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난하던 우리 집에 그 당시에 비하면 꽤 괜찮은 집으로 이사를 갔읍니다.
당시에 우리 집의 형편은 좋지 않았읍니다.
우리 아버지가 삼 형제 중 막내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림을 났읍니다.
그래서 오두막집으로 살림을 났읍니다.
그런데 조금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읍니다.
저는 그 이유를 후에 바로 저희 집 아래 살던 친척 할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읍니다.
하루는 그 할머니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저희가 그 집으로 이사를 와서 큰 걱정을 하셨답니다.
왜냐하면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다 불행하게 되어서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집은 일종의 저주받은 집이였읍니다.
그래서 친척인 우리가 그리로 이사를 오니까 걱정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너희가 예수를 믿어서 괜찮은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우리는 그렇게 저주 받은 집에 이사를 왔으나 그 집에서 4남매 다 잘 잘랐읍니다.
이렇게 저주의 집에도 벗어나고 복받을 길이 있읍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부터 이번주 새벽기도에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 복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II. 본 론
그러면 우리를 저주에서 치료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
무엇이 우리를 이 저주스러운 삶에서 복된 삶으로 치료해줄 수 있을까요 ?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희생이 모든 저주의 치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저주의 치료가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저주에서 복으로 바꿔주십니다.
1) 오늘 본문 (v. 6)을 보면 우리가 불행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① 그것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우리 마음대로 간 것이 바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읍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 돈이 다 떨어지고, 그러자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었던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우리 마음대로 간 것이 바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읍니다.
이것이 모든 저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② 이것을 오늘 본문 (v. 6)을 보면 “죄악”이라고 했읍니다.
우리가 저주를 받은 것은 바로 이 죄악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죄는 하나님과의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불행하게 된 것이나 죄를 범하여 저주를 받은 것이나 같은 말씀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낙원을 잃어버린 것과 같이,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복된 삶을 잃어버리고 저주의 삶을 살게 되었읍니다.
즉 죄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았읍니다.
③ 이 죄악을 히브리어로 아본(ןוֹꘝ -av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본이란 말은 하나님으로 등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께 반항(rebellion)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바로 저주의 제일 원인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 즉 반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았읍니다.
④ 이 아본에는 심판(punishment)이란 뜻도 있읍니다.
즉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찾아오는 악한 결과들 즉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 합니다.
즉 저주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잘 나타난 것은 (애4)입니다.
(애4)에는 아본이란 말이 두번 나오는데, 한번은 (v. 6)과 또 한번은 (v. 22)에 나옵니다.
그런데 (v. 6)에서는 “죄”라고 번역을 했고, (v. 22)에서는 “죄악의 형벌”이라고 번역을 했읍니다.
즉 아본에는 “죄”와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내리시는 모든 “형벌”을 다 포함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불행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께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이 내린 저주의 심판으로 우리가 저주를 받았읍니다.
2) 오늘 본문에는 저주를 치료하는 방법도 나옵니다.
① 예수님이 우리의 이 “아본”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v. 6)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 - 즉 아본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여기에 나오는 고난 당하는 종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과 그 죄악으로 인하여 받는 모든 저주를 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다 담당하셨읍니다.
② 이것의 좋은 예가 (레16:21-22)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속죄 염소”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속죄일이 되면 제사장은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고합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가 그 염소에게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어 무인지경에 이르면 놓아줍니다.
그러면 그 염소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갑니다.
이 속죄 염소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와 그 죄로 인하여 받아야 할 저주의 심판을 다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염소는 맹수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③ 이 염소가 십자가 위에서 희생이 된 예수님에게 적용됩니다.
(사53:9)을 보면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었읍니다.
그런데 (v. 6)을 보면 하나님이 그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과 그 죄로 인한 형벌 즉 아본을 담당시키셨읍니다.
즉 우리의 죄악과 그로 인하여 받을 형벌 즉 우리의 저주까지 다 담당시키셨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모든 죄을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아본을 다 해결해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우리의 아본, 즉 우리로 저주받게 하는 아본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희생은 놀라운 치환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
즉 우리의 저주를 어떻게 치료하셨을까요 ?
1. 영적인 치료와 육적인 치료가 있읍니다.(사53:4-5)
십자가 위에서는 두가지 치환이 일어납니다.
1) 영적인 치환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
이것은 우리의 죄악과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위에서 돌아가시고, 대신에 우리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으셨읍니다.
그러므로 대신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원수가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저주가 치료되었다는 것입니다.
2) 육적인 치환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의 질병을 다 담당하시고 대신에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읍니다.
예수님은 온 몸이 망가지는 채찍질을 당하셨읍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의 몸의 모든 질병을 담당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대신 우리가 나음을 얻었읍니다.
이것이 (마8:16-17)에 잘 나옵니다.
해가 넘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많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읍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귀신들을 쫓아내시면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읍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v. 4)에 나오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하셨읍니다.
즉 마태는 예수님이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대신에 예수님이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육신의 질병의 저주가 치료되는 줄 믿읍니다.
2. 죄를 의로 치료해 줍니다.(고후5:21)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의로 바꿔줍니다.
(고5:21)을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그에게 담당하시키셨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드셨읍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가 사라졌읍니다.
죄는 우리의 저주의 원인이였읍니다.
그런데 이 죄가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저주에게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저주를 치료해주시는줄 믿읍니다.
3. 사망을 생명으로 치료해 줍니다.(롬6:23)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범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읍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망에 매여 사망에 종생활을 하는 저주의 사람이 되었읍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셨읍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우리의 죄값을 끝까지 완전하게 대신 갚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값는 죽음까지 갚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끝까지 다 갚아주셨읍니다.
그로인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읍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죽음의 종의 저주에서 영생의 복으로 바꿔주셨읍니다.
4. 가난을 부요로 치료해 줍니다.(고후8:9)
사도 바울은 (고후8:9)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되셨읍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되시되 완전히 가난하게 되셨읍니다.
우리가 저주를 받아서 당하는 가난은 (신28:48)을 보면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가난을 다 당하셨읍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당하신 가난의 저주는 십자가에서 잘 나타납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은 하루 이상을 굶으셨기 때문에 주리셨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시다고 외쳤읍니다.(요19:28)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옷벗김을 당하셨읍니다.(요19:23)
예수님은 죽어서 그의 몸이 잘사될 곳도 없어서 남의 무덤을 빌려서 장사가 되었읍니다.(눅23:50-53)
그러므로 예수님은 철저하게 가난하게 되셨읍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난하게 된 것은 저주로 인하여 가난하게 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하셨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가난을 부요함으로 고쳐주십니다.
5.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치료해줍니다.
부끄러움의 저주는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은 치료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저주가 치료되어도 가장 치료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나중에는 그 잘못에 대한 문제가 다 해결되어도 부끄러움의 감정은 없어지지 않읍니다.
그로 인하여 크게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읍니다.
우리의 죄와 그 죄로 인한 형벌이 다 사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범한 죄에 대한 부끄러움의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읍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타날 수가 없읍니다.
이것이 잘 나타난 것이 바로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는 이미 그의 죄가 다 용서함을 받았읍니다.
아버지는 그의 죄를 이미 다 용서해주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워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기기 어려웠읍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와서도 아들로 여기지말고 품군의 하나로 여겨달라고 했읍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의 감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이 부끄러움을 다 담당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셨읍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히12:2)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온갖 부끄러움을 다 당하셨읍니다.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당한 것은 우리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우리로 대신 예수님의 영광을 얻게 하셨읍니다.
이것을 (히2:10)에서는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부끄러움의 감정을 치료하여 영광의 감정을 갖게 합니다.
6. 버림받음을 화해로 치료해줍니다.
우리는 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읍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읍니다.
그런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었읍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예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고 돌아가신 후에, 즉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으심으로, 성자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어 우리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화해의 길을 열어놓으셨읍니다.(마27:51)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우리의 저주를 치료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복을 받게 합니다.
7. 저주를 복으로 치료해줍니다.(갈3:13-14)
우리의 저주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를 복으로 치료해줍니다.
(갈3:13-14)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읍니다.
그리고 우리로 복을 받게 하셨읍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대신 받으신 저주는 무엇이며,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되는 복은 무엇일까요 ?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받으신 저주는 율법의 저주라고 하셨읍니다.
이것은 (신28:15-68)에 나오는 모든 저주를 이야기 하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는 복은 무엇인가요 ?
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하셨읍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요약하면 (신28:1-14)에 나오는 복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를 복으로 바꿔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 여러분의 모든 저주를 복으로 바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이한배 목사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