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성장을 돕는 법 (롬 8:29)
본문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마다 삶의 목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시민이 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천국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점점 자라나듯이 우리 성도들도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만큼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 성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인격으로, 다시 말해서 성품의 문제입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식이 뛰어나고 기술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품이 악하고 불의하고 음란하고 거짓되면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부유하고 기술이 뛰어나고 첨단의 문명이 발달해도 백성들의 성품이 악독하고 잔인하고 음란하고 거짓으로 가득하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나라를 복음화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 4:7).
180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화가인 후쿠사이에게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찾아와 수탉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탉을 그려 본 적이 없는 그는 친구에게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친구가 찾아오자 약속을 미뤘습니다. 한 달, 두 달, 육 개월... 이런 식으로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친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후쿠사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후쿠사이는 말없이 종이와 물감을 가지고 오더니 순식간에 수탉을 그려주었습니다. 완성된 그림이 어찌나 생동감이 넘치든지 마치 살아있는 수탉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는 기뻐하기보다 왜 3년씩이나 기다리게 했느냐고 따져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친구를 자신의 화실로 데려갔습니다. 커다란 화실에는 3년 동안 밤낮으로 습작한 수탉의 그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이처럼 타고난 재능도 거듭된 훈련으로 단련됩니다. 성도의 영적 성장도 얼마나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제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이가 많아진다고 인격이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며, 성품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성품이 더 고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신사가 호텔 주차장에 아주 값비싼 자동차를 주차했습니다. 그때 한 소년이 다가오더니 아주 부러운 눈으로 그 자동차를 바라보며 차에서 내리는 신사에게 “아저씨, 이 차 굉장히 비싸겠네요.”하고 물었습니다. 신사는 “이 차는 형님이 나에게 선물로 사주신 거란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의 입에서 “나도...”하는 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신사는 “왜, 너도 커서 이런 자동차를 선물 받고 싶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나도 빨리 커서 내 동생에게 이런 좋은 차를 사줄 수 있는 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동생은 몸이 불편해서 멀리 가지 못하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특한 소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격도 이 착한 소년처럼 영적으로 성장하여 좋은 인격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돕는 자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 혼자서는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의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여섯 형제가 무릎을 꿇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찍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장사를 하시는 가정이었기에 자연히 맏형이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저는 예수 잘 믿는 이 형님을 통해 기도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성경은 어떻게 읽는 것인지,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등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그것이 저의 평생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서로 서로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숯불의 원리와 같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숯도 하나씩 흩어놓으면 얼마 못 가서 불꽃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숯을 모아놓으면 서로 열이 전달되면서 불꽃이 오래갑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방 소그룹 모임을 중요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1을 보면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라고 했습니다.
서로의 성장을 돕는 방법은?
1.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남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멸시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려면 첫째, 서로 받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 15:7을 보면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이들이 서로 쉽게 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상대편의 허물만 보고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0을 보면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허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좀 부족해도 내 맘에 들지 않아도 서로 받아주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두 가지 좋은 점은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한 두 가지라도 그 장점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사람이 변합니다.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의 한 구절을 보면 “좋은 행위를 했는데 칭찬하지 않은 채 죽인다면 그 뒤를 따르는 무수한 좋은 행위들을 죽이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칭찬의 효율성은 이미 심리학 연구를 통해서 증명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는 미국의 심리학자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1968년에 실시한 실험입니다. 학기 초 담임교사에게 몇몇 학생의 명단을 넘겨주면서 “검사결과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들”이라고 귀뜸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학업평가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성적과 지능지수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눈에 띄게 월등히 높아진 것입니다. 물론 학기 초 교사에게 건넨 명단은 잠재력이 우수한 아이들이 아닌 평범한 아이들로, 무작위로 추출한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긍정적으로 기대할 경우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넌 안돼. 틀렸어.”하면 그런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은 부족해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일전에 가이드포스트 잡지에 실린 문진우 씨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저의 나이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려대면 너무 분해서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싸웠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혼내기만 하셨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던 4학년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저의 어머니가 학교에 좀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일을 하시느라 집에 늦게 오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늦어도 좋으니 어머니 일이 끝나는 대로 오시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 저녁 무렵 학교에 오신 어머니는 몹시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교무실에 모셔다 드리고 나오면서 문득 선생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궁금했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죄송합니다. 우리 진우가 말썽을 피워서요.”라고 하시자 선생님께서 정색을 하시며 “아닙니다. 진우는 착하고 속이 깊은 아이입니다. 아직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만 머리가 좋아서 수업도 잘 이해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달리기도 잘 하고, 축구도 열심히 한답니다. 어머니께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런 칭찬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모자란다, 못한다, 나쁘다는 말만 들었는데 선생님은 나를 착하다, 머리가 좋다, 열심히 한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미술도 체육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같이 실제의 나와는 한참 거리가 먼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미술 시간이면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이, 시험을 앞두고는 ‘머리 좋고 똑똑하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친구들의 놀림에 주먹이 쥐어졌다가도 ‘착한 아이’라는 말이 떠올라 잘 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모범생 소리까지 들어가며 일류대학에 진학했고 이제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줄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적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관심을 보이는 것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 템플턴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순수한 관심 뿐이란 걸 기억하라.”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관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관심이란 사랑이며,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그 사람이 무얼 먹든, 죽든 살든 나와 상관이 없다는 무관심한 태도보다 이 세상에 더 잔인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질 때 구체적으로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해답을 얻게 됩니다.
셋째,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볼티모어시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한 사회학 전공팀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는 200명의 젊은이들이 속한 한 교회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이들의 결론은 ‘그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고 기회도 없다’였습니다. 25년이 지난 뒤 어느 사회학 교수가 다시 그들을 추적 조사하며 180명을 찾았을 때, 놀랍게도 그 중에 176명이 크게 성공하여 변호사, 의사, 목사, 사업가 등의 성공한 사회인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교수는 그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각자에게 묻자, 한결같이 한 선생님의 이름을 댔습니다. 교수는 다시 그 선생님을 방문하여 무엇이 그토록 희망이 없던 학생들에게 큰 변화를 줄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웃으며 “나는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이 그것을 알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사랑이 그들을 이처럼 변화시킨 것입니다.
넷째,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때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서로의 성장을 돕게 될 줄 믿습니다.
2. 서로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기도하는 내용은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 중에서도 건강, 사업, 자녀의 학업 등등 대부분 이기적인 기도의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기도는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한 기도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금 대접에 담긴 향과 같아서 하늘 보좌에 올라가 응답이 되고 또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기도했습니다(엡 3:18~19). 우리도 합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할 때 함께 영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완벽한 것처럼 행동하여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성장을 도우려면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죄가 많고 잘못이 많은지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자신의 과오와 연약한 부분들을 드러낸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나만 문제가 많은 줄 알았는데, 나만 이렇게 괴로운 줄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분도 나와 마찬가지구나.” 느끼는 순간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서로 형편을 알고 나면 더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4. 서로의 헌신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과 다른 성도를 사랑하는일과 말씀 안에서 성장하는 일 그리고 사역을 통해 섬기는 일에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사역을 통해 섬기는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할 때 우리 모두 서로의 성장을 돕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성숙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정필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