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성령의 법 (롬 8:1-2)
본문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 한 교사가 반의 학생들에게 사도신경을 한 구절씩 외워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사의 인도에 따라 학생 각자는 자신이 외운 사도신경의 한 구절씩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일어나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를 외우자 두 번째 학생이 일어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했고, 또 다른 학생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교사가 다음 번 계속하라고 하자 한 학생이 "선생님, 다음의 '성령을 믿사오며'를 외울 학생이 결석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이와 같이 '성령을 믿사오며'하는 대목에서 빠지곤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집 나갔던 둘째 아들 탕자가 처음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챙겨 가지고 집을 나갈 땐 100점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을 나가자마자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호적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관계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탕자가 된 것입니다. 집 나갔던 아들, 방탕한 아들이 어느 날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해 보나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와서 자기가 깨달은 것은 자기 자신은 죄인이고 자기 스스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기한 사람인 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아니다. 그래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아마도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계실거야 하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 생각이 어디서 났으며 누가 준 것인가 하면 성령님께서 주신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합니다.
율법을 좇는 자의 참담한 결과를 선언한 사도 바울은 이제 새로운 법이 계시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제까지 죄의 법을 섬겨 사망에 이른 자에게 생명의 법이 있음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법이 아니요 영의 법이며, 행위의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입니다. 이 법에서는 정죄함이 없고, 이 법을 따르는 자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다시는 육신과 율법을 좇지 않고 성령과 믿음을 좇아 영원한 삶을 얻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법이 있습니다. 자연에도 법칙이 있고, 인간의 생존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또 회사에는 사규가 있듯이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이 세계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정죄함이 없게 하고 사망의법에서 살리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 하고자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게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절) 합니다. 정죄는 곧 죽음이요 파멸이요 심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죄에 대한 마땅한 법적인 형벌이나 하나님의 진노하심, 또한 양심의 벌과 두려움으로 인한 현재의 고통과 장치 임할 파멸과 죽음이 면제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사형 선고가 내려진 죄인에게 무죄가 선언되고 해방되어 풀려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죄를 선언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인침을 받은 자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어서 진노 아래 있었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언약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미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절).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 되어서"라는 찬송처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모든 죄와 마귀와 세상의 풍랑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반석이신 예수님은 도피성으로도 비유됩니다. 구약 시대에는 실수로 죄를 지은 사람이 도피성으로 속히 도망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도피성은 예수님이십니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죄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죄성과 개인적 죄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겁이 나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죄의 결과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며,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속에 죄 성과 죄가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직접 보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십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시고 완전하신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영원히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보시고 죄가 없다고 단번에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영적 평화와 기쁨과 만족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죄 사함이 없고, 구원이 없고, 따라서 천국의 영생도 없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살았지만, 어느 날 놀라운 복음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제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마귀와 세상과 죄성의 자리에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심지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라 할 찌라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만나게 되었든 아니면 끌려와서 예수님을 만나 게 되었든 간에 일단 예수님을 한번 만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기만 하면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죄인이든지 간에 죄 용서함을 얻으며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죄를 범하면 그 죄로 인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고 합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시 38:3)합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하여 죄의 법에서 해방을 받으면 그 때부터 죄로 인한 가책과 불안과 공포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잃고 사는 것은 환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가진 소유가 적어서도 아닙니다. 좋은 환경과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마음에 기쁨이 없는 사람들은 다 죄로 인해서 평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잃고 사는 이유는 있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없어야 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이 죄는 물로 씻어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끓는 물에 삶아도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인데 정죄를 받지 않는 이유는 바로 성령의 법이 죄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만이 영생의 길이고, 구원의 길이고,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죄를 사하기 위해서 제사 율법을 정하시고 양이나 소나 비둘기의 피를 흘리게 해서 속죄 받는 예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단 번에 드린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또 그 모든 죄를 자백함으로 죄에서 해방을 받게 하였습니다. 죄는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더러운 존재요 가장 위험한 존재요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이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됩니다. 죄의 법에서 해방을 받을 때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이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복이 함께 하고 형통한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아래 있는 자는 더 이상은 죄가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죄가 쇠사슬로 묶어 지옥으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죽는다고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죽어도, 죄와 사망에서부터 이미 해방을 받은 우리는 부활과 생명으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으므로, 육신의 생명이 끊어진 순간 하늘나라에 올라갔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 임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 문가인 수 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예화뱅크-성령에 맡겨라)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이며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게 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심령 속에는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합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우시다가 떠나신 예수님은 자기와 똑같은 분이지만 육체가 아니고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 속에 영원히 계시며 동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위해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5-8절) 하였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성령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신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고, 하나님께 예물과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김은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매사에, 심지어 사소한 생각 하나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죽을 몸을 살려주십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0-11절).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심은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심과 동시에 성령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의 몸을 살리실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온전히 부활하여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을 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2-13절). 죄가 살아있고, 자아가 살아있으면 영은 죽어갑니다. 반면에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좋지 않은 생각과 태도와 습관과 감정을 하나씩 죽이면 영혼이 살아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죄의식으로 고통을 당하며 자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심령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몸속에 있는 죄들을 하나씩 죽임으로써 영혼이 활발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게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됩니다. 전에는 우리 속에 두려움의 영이 있었지만,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절)하였습니다. 또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16절).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성령님이 내 안에 내가 성령님 안에 있으므로, 담대하게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고 성령님이 내 안에 임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영원히 성령님과 함께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 이냐시오는 길을 다닐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무엇을 하더라도 언제나 마치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이를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이냐시오에게 물었습니다. "주교님, 답답하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냐시오는 웃음을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성령을 모신 몸일세. 내 몸은 곧 성전이란 말이네. 그러니 어떻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깨끗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더불어 함께 합시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함께 합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게 하시며 사망의 법에서 해방 하시며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함께 합시다.
(강성찬 목사)